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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평] <마더!> - 도발적 우화 ※ [짤평]은 영화를 보자마자 쓰는 간단한 감상문입니다. 스포일러가 없는 게시물이므로 댓글에서도 스포일러가 없도록 부탁드리겠습니다. ※ 이 게시물은 https://www.facebook.com/shortcritique 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메시지가 곧 영화이다보니 풍자가 지목하는 대상이 무엇인지 명확히 적을 수 없는 점 양해바랍니다. 저 또한 비유해서 말하자면 는 아벨이 아닌 카인의 주장이며, 예수가 아닌 아하스페르츠의 설화이고, 베드로가 아니라 마리아의 고백입니다. ※ 는 너무 친절했다고 표현하기 보다 노골적이었다고 말해야 적확하다는 생각입니다. ※ 본문에 적힌 이유로 이번에는 다이아 점수를 적지 않았습니다. 스토리나 작품성의 높고 낮음은 결국 통(通)에 따라 갈릴 거라 생각합니다. 그 외에 ..
[짤평] <블레이드 러너 2049> - 가장 완벽한 후속작 ※ [짤평]은 영화를 보자마자 쓰는 간단한 감상문입니다. 스포일러가 없는 게시물이므로 댓글에서도 스포일러가 없도록 부탁드리겠습니다. ※ 이 게시물은 https://www.facebook.com/shortcritique 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조이 언제 출시하나요. 일해라 마이크로소프트! ※ 지루하다는 얘기가 있던데, 어느 정도는 공감합니다. 진실에 다가설수록 되레 호흡이 느려지더라고요. 사건의 전말을 친절하게 설명하지도 않고요. 하지만 그 와중에 스크린에 펼쳐지는 공허한 풍광이 인물의 심리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덜 대중적이긴 하지만, 그런 연출이 저는 마음에 드네요. ※ 드니 빌뇌브랑 저는 잘 맞는 것 같아요. 올해 본 두 편의 영화 , 모두 올해의 영화였네요.
[짤평] <남한산성> -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 ※ [짤평]은 영화를 보자마자 쓰는 간단한 감상문입니다. 스포일러가 없는 게시물이므로 댓글에서도 스포일러가 없도록 부탁드리겠습니다. ※ 이 게시물은 https://www.facebook.com/shortcritique 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저는 "웰메이드"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흔히 웰메이드라고 불리는 작품은 대중성에 있어 보이는 메시지를 잘 녹여낸 작품이었거든요. 훌륭하지만, 특색은 없었죠. 양산형 테란. 불편하지 않기 위해 애쓴 흔적도 싫었습니다. 굳이 구분하자면 웰메이드 작품은 작가주의가 아니라 상업주의였습니다. 그러나 은 웰메이드이면서도 대중에 굽실대지 않은 기분입니다. 치욕의 역사를 정면에서 다뤘죠. 이것만으로도 보고 나서 기분이 후련했습니다.
이해의 종말 이해란 무엇인가?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1. 사리를 분별하여 해석함. 2. 깨달아 앎. 또는 잘 알아서 받아들임. 3. 남의 사정을 잘 헤아려 너그러이 받아들임. 사리, 분별, 해석, 깨달음, 사정, 헤아림. 정의를 보자면 이해는 이성적 활동이다. 머리가 하는 일이다. 그래서 무례한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는 자를 멍청이 취급한다. "어떻게 이해하지 못할 수가 있죠? 난독이시네요. 공부 좀 더 하고 오세요." 텅텅 빈 머리가 잘 돌아가지도 않는다고 요리조리 돌려 말한다. 하지만 이해는 이성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전적 정의에도 쓰여있다. "너그러이 받아들임." 이성적 활동이 이해의 시작이라면, 이해의 끝은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는 감성적 활동이다. 가슴이 하는 일이다. 아무리 머리로 헤아려도 가슴..
[짤평] <킹스맨 : 골든 서클> - 냄새는 비슷한데, 맛이 좀... ※ [짤평]은 영화를 보자마자 쓰는 간단한 감상문입니다. 스포일러가 없는 게시물이므로 댓글에서도 스포일러가 없도록 부탁드리겠습니다. ※ 이 게시물은 https://www.facebook.com/shortcritique 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아이유양 미안해요. 이보다 적절한 짤방이 없었어요. ※ 뚜렷한 비교 작품이 있고 기대치가 있다보니, 제가 매긴 점수지만 좀 짜네요.
[단편] 초식남의 탄생 사람을 한 마디로 규정할 수는 없다. 인간은 복잡미묘하다. 이기심과 이타심이 공존하고, 사랑과 증오는 맞닿아 있다. 또한, 변화무쌍하다. 악당이 회개하거나 영웅이 타락하는 이야기는 수없이 많다. 그럼에도 세상은 사람을 규정하고 분류한다.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이다.' 한 마디로 단언한다. 나쁜 사람, 착한 사람, X세대, N세대, 김치녀, 한남충... 종류도 많다. 학창시절에는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나는 모로 보나 좋은 사람이었다. 훌륭한 성적, 원만한 교우관계, 사려 깊고 친절한 행동, 적당한 존재감... 따지고 보니 그냥 평범한 학생이다. 어쩌면 평범하기에 좋은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딱히 대단한 것도 없고. 그렇다고 흉볼 것도 없고. 그러니 적당히 기분 상하지 않도록 좋은 사람이 된다..
[짤평] <아메리칸 메이드> - 이게 다 미국 때문이다 ※ [짤평]은 영화를 보자마자 쓰는 간단한 감상문입니다. 스포일러가 없는 게시물이므로 댓글에서도 스포일러가 없도록 부탁드리겠습니다. ※ 이 게시물은 https://www.facebook.com/shortcritique 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같은 블랙 코미디를 좋아하신다면 이 영화도 괜찮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호불호는 갈릴 것 같습니다. ※ 톰 형 이제 눈가가 처진 것이 늙은 게 티가 납니다. ㅠ.ㅠ
[짤평] <살인자의 기억법> - 서스펜스인척 하는 드라마 ※ [짤평]은 영화를 보자마자 쓰는 간단한 감상문입니다. 스포일러가 없는 게시물이므로 댓글에서도 스포일러가 없도록 부탁드리겠습니다. ※ 이 게시물은 https://www.facebook.com/shortcritique 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몹시 기대했던 작품인데, 기대에 비하면 좀 아쉽네요. 그렇다고 실망스러운 작품도 아니고요. 역시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면이 큰 것 같습니다. ※ "기억이 없는 살인범도 살인범인가?" 이 질문에 대부분의 지인은 "살인범이고 처벌해야 한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는 제각각 다르더군요. 한 분은 범죄는 행위의 결과로 처벌하는 것이니 살인범이라고 했습니다. 피해자와 유가족을 생각한다면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었습니다. 기억이 없어서..
<V.I.P.> - 누아르 판타지 ※ 이 글은 영화 , , , (이하 ''), , , 게임 , 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감독 : 박훈정대표작 : , , 리얼리즘과 판타지 과 는 비슷하다. 개봉도 1년 차이고, 주요 소재도 둘 다 조직폭력배다. 심지어 장르마저 갱스터 누아르로서 같다. 그러나 두 영화는 다르다. 껍질은 비슷할지 모르나 그 속에 담긴 본질이 다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은 리얼리즘*이고 는 판타지다.* 여기서 다루는 리얼리즘은 핍진성(Verisimilitude)의 요소인 현실감이나 생생함과는 다르다. 핍진성은 '얼마나 현실적으로 그럴듯하게 보이는가?'를 가늠하는 것이다. 그에 반해 본문의 리얼리즘은 '얼마나 현실의 진실에 가까운가?'로 받아들이면 편하다. 이 차이를 수잔 헤이워드는 '이데올로기적 리얼리즘'과 '미학..
[단편] [기담] 정전 버스 막차는 전혀 한산하지 않았다. 다들 뭐가 그리 다망한지 빈자리 하나 없었다. 오늘은 일찍 들어갔어야 했다. 하지만 박 차장이 물고 늘어졌다. 이 대리 한 잔만 하고 가자. 딱 맥주 한 잔만. 외면하기 어려웠다. 정 과장은 아내가 만삭이고, 나머지 사원은 전부 여자다. 그렇다고 박 차장이 부장님께 엉겨 붙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만만한 게 나다. 그래도 오늘은 일찍 들어갔어야 했다. 왜 일찍 가야 하는데? 박 차장이 다그쳤을 때 나는 이유를 기억하지 못했다. 뺑기 부리지 말고 가자. 그렇게 딱 한 잔만 하자던 술자리는 3,000cc 세 피처를 채우고야 말았다. 더 주문하려는 박 차장을 겨우 말려낸 구실이 바로 이 버스 막차였다.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져있다 보니 어느새 동네에 버스가 당도했다. 씹던 껌..
[짤평] <청년경찰> - 웃기면 족하다고 생각해 ※ [짤평]은 영화를 보자마자 쓰는 간단한 감상문입니다. 스포일러가 없는 게시물이므로 댓글에서도 스포일러가 없도록 부탁드리겠습니다. ※ 이 게시물은 https://www.facebook.com/shortcritique 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박서준 몸매 서비스 컷 있습니다. 갑빠가 진짜 예쁘더라고요. ※ http://magazine2.movie.daum.net/movie/45219 이런 기사가 나왔는데요... 정작 영화에서는 남성을 성 상품화 했는데 기사는 이런 게 나오네요.
[짤평] <군함도> - 장단점이 분명하다 ※ [짤평]은 영화를 보자마자 쓰는 간단한 감상문입니다. 스포일러가 없는 게시물이므로 댓글에서도 스포일러가 없도록 부탁드리겠습니다. ※ 이 게시물은 https://www.facebook.com/shortcritique 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일제 시대를 다룬 영화를 주제에 따라 분류한다면 과 이 비슷하고, 과 가 비슷합니다. (완성도가 아닙니다) ※ 이 영화를 본 일본의 반응이 몹시 궁금합니다. 그 모습을 대놓고 영화에 넣을 줄은.... 그런 면에서 중국에서도 흥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 본문에서 언급한 조롱의 대상은 현 '일본'이 아니라 '일제'입니다.
<덩케르크> - 세 가지 시간, 하나의 승리 ※ 이 글은 영화 , , , 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 시간의 예술 사진이 처음 발명되었을 때 세상은 미술의 종말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사진은 미술을 대체하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사진의 발명은 미술을 해방시켰다. 화가는 현실을 완벽히 재현하도록 강요당하지 않게 되었다. 현실을 똑같이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 존재하는 진실을 추구한다. 그렇게 미술은 여전히 예술로서 숨 쉬고 있다. 사진은 태생부터 모방에 대한 강박으로부터 자유로웠다. 왜냐하면, 사진은 현실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셔터가 열리면 그 순간에 피사체로부터 반사한 빛이 감광판에 새겨진다. 여기에는 어떠한 왜곡도 존재할 수 없다. 필터랑 포토샵 무시함? 사진에 형태를 새기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짤평] <덩케르크> - 이것은 가장 리얼한 전쟁영화다. ※ [짤평]은 영화를 보자마자 쓰는 간단한 감상문입니다. 스포일러가 없는 게시물이므로 댓글에서도 스포일러가 없도록 부탁드리겠습니다. ※ 이 게시물은 https://www.facebook.com/shortcritique 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놀란의 작품에서 킬리언 머피는 항상 찌질한 역을 맡고, 톰 하디는 멋있는 역을 맡는 것 같습니다. 만 봐도 스케어 크로우는 중간보스인 데다 성격도 얍실한데, 베인은 카리스마 킹왕짱에 배트맨 허리를 분질러 버리는 강려크함을 보여줬었죠. 감독이 배우를 편애하는 건가요? 킬리언 머피 힘내세요... ※ 마크 라이런스의 연기가 정말 일품이었습니다. 에 이어 에서도 놀라운 연기를 보여주네요. ※ 군대 영화 아니랄까봐 주요 출연진이 완전 남탕이네요... ※ 영상도 좋지만 ..
[짤평] <스파이더맨 홈커밍> - 짜잔! 내가 돌아왔다! ※ [짤평]은 영화를 보자마자 쓰는 간단한 감상문입니다. 스포일러가 없는 게시물이므로 댓글에서도 스포일러가 없도록 부탁드리겠습니다. ※ 이 게시물은 https://www.facebook.com/shortcritique 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가 많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특히나 소셜 미디어 친화적인 면이 그러합니다. ※ 아줌마 너무 좋아! 중년 배우들이 여주보다 이쁘다능... ※ 개봉 전까지 의 독주를 막을 작품이 보이질 않습니다.
<옥자> - 옥자의 세계는 양면적이다. ※ 이 글은 영화 , , , , 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봉준호의 세계는 이질적이었다 봉준호의 세계는 이질적이었다. 이에 관하여 봉 감독은 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손석희 : 봉 감독의 영화에는 이질적인 요소가 섞여 있습니다. 예를 들면 에서 모성과 범죄가 합쳐져 있고, 은 가족과 괴수, 는 소녀와 거대 동물이 그러합니다. 모두 의도한 겁니까? 봉준호 : 의도도 의도지만, 저의 취향이 그런 쪽으로 흘러갑니다. 안 어울리는 것들, 어색한 것들을 억지로 한 화면에 욱여넣으면 저는 쾌감을 느낍니다. 같은 경우는 '옥자'라는 이름부터 이질적 결합이었습니다. 옥자라는 생명체는 거대회사 첨단기술로 탄생하였는데, 이름은 무척 촌스럽죠. 이것이 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이질적 결합을 선호하는 봉준호의..
[짤평] <리얼> - 진짜, 정말, 레알... ※ [짤평]은 영화를 보자마자 쓰는 간단한 감상문입니다. 스포일러가 없는 게시물이므로 댓글에서도 스포일러가 없도록 부탁드리겠습니다. ※ 이 게시물은 https://www.facebook.com/shortcritique 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은 본래 이정섭 감독의 작품이었습니다. 그러나 '의견 차이'로 감독이 하차하고 제작자였던 이사랑씨가 감독을 맡았다고 합니다. 이사랑씨는 영화 제작도 처음이었고, 감독 경험도 없었습니다. 왜 이런 작품이 나왔는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 노출은 확실합니다. 궁디파티, 찌찌파티 다 나옵니다.
남자끼리 막 저녁 장사를 개시했을 때였다. 한 커플이 가게로 들어섰다. 남자는 자주 보던 얼굴이다. 까무잡잡한 피부와 매끄러운 턱선이 인상적인 미남이었다. 여자도 만만찮았다. 새하얀 다리는 쭉 뻗었고 오똑한 콧날 위로 주먹만 한 눈망울이 그렁그렁 달렸다. 잘 생기고 이쁜 것들이다. 누가 찌르지도 않았건만, 허전한 옆구리가 콕콕 쑤셔왔다. 여자는 두리번거리며 미심쩍은 시선으로 가게를 훑었다. "자기 여기 와 봤어?" "여기 진짜 맛있다니깐." 남자는 우리 식당을 좋아했다. 사실 우리 음식이 맛있기도 했지만, 남자는 계산할 때마다 "여기 정말 맛있어요."라는 말을 연발했다. 몇 번 보지 않았음에도 내가 그의 얼굴을 기억하는 이유였다. "몇 번 와봤나 보네?" "두어 번?" "누구랑 왔는데?" "음... 혼자 왔지."..
어떤 고쳐쓰기 바이마르 공화국. 정식 명칭은 Deutsches Reich(독일국). 1919년 2월 수립되어 1933년 나치 제3 제국(제3 라이히)의 아돌프 히틀러에 의해 망할 때까지 존속한 독일의 공화국 체제다. 바이마르 공화국은 일종의 별명이다. 헌법이 만들어진 도시인 바이마르(오늘날 독일 중앙의 튀링겐 주에 있다.)의 이름을 따 훗날 붙여졌다. ▲ 바이마르 시 전경 바이마르 공화국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선진화된 헌법을 보유하고 있었다. 원체 뭔가 만드는 데 철저했던 독일인답게 각국 헌법의 좋은 점만 따서 바이마르 헌법을 만들었다. 지방자치가 보장된 기존 독일 제국 헌법에 미국의 대통령제, 영국의 내각제와 수상제, 스위스의 국민투표제 등이 모두 바이마르 헌법에 들어왔다. 바이마르 헌법이 얼마나 선진적이었냐면, 당..
알파고가 울린 여자 2001년의 어느 여름날. 버스 안에서 고등학생 남녀가 설전을 벌였다. "언젠가는 인공지능이 이길걸? 체스는 이미 인공지능이 더 뛰어나잖아." "체스랑 바둑은 다르다고." "아. 물론 다르긴 다르지. 이름도 다른데." "야. 장난하지 말고." 남자가 약 올리듯 어깃장을 놓자 여자가 정색하듯 받아쳤다. "알았어. 그런데, 농담 아니고, 체스나 바둑이나 다를 게 뭐 있냐? 둘 다 놓을 수 있는 경우의 수에는 한계가 있잖아." "체스는 경우의 수가 얼마 안 되니깐. 그래서 인공지능이 이긴 거야. 그런데 바둑은 경우의 수가 거의 무한대라고." "거의 무한대는 무한대가 아닌걸." "야. 삼백육십일 팩토리얼(361!)이라고. 이건 부르는 이름이 따로 없을 정도로 큰 숫자란 말이야." "그래도 무한대는 아니니깐. 삼..
[단편] 비결 사랑에도 갑을이 존재한다. 더 좋아하는 쪽이 을이다. 당연하게도. 그녀를 처음 만난 건 대학 2학년 때였다. 신입생으로 들어온 그녀는 내가 감히 말을 걸기도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녀의 존재감은 실로 대단했다. 가뜩이나 남자만 득시글한 학내에서 그녀는 자연스럽게 여왕이 되었다. 남학생들은 벌떼처럼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누구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가장 처참하게 차인 건 신입생 대표였다. 그는 5월 대동제 때 그녀에게 공개 고백을 했다. 전교생이 보는 노천극장에서 커다란 목소리로 "사랑합니다. 제 마음을 받아주세요."라고 소리쳤다. 그녀는 받아주려는 듯 침착한 걸음걸이로 무대에 올랐다. 그러나 "마음은 고맙지만, 받아들일 수 없어요."라며 교과서 같은 대답으로 거절하고 다시 침착한 걸음걸..
돗대를 피우고, 칵테일을 마시고, 반지를 뺐다. 마지막으로 일회용 라이터를 돈 주고 산 적이 언제던가? 흡연자의 방에는 일회용 라이터가 굴러다닌다. 책상 서랍, 옷장, 책꽂이, 냉장고? 처치 곤란이다. 그래서 일회용 라이터를 사는 일은 없다. 하지만 그런 날도 있는 법이다. 주머니를 뒤져봐도 라이터가 없다. 백팩을 내려놓고 뒤져봐도 라이터가 없다. 혹시나 담배 피우는 사람이 있을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불 정도 빌려주는데 인색한 사람은 없다. 하지만 사람이 없다. 점심시간을 갓 넘긴 오후의 도로에는 행인조차 보이지 않았다. 새까만 아스팔트 위로 어지러이 아지랑이가 일렁였다. 담배가 땡기는 풍경이었다. 걸어온 길을 돌아갔다. 편의점에 들어서자 상쾌한 공기가 귀밑부터 뒷목을 감싸 안았다. 역시 에어컨은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다. 미사토 당신은 언제나 옳았어..
트루맛 쇼 "네. 감사합니다. OOO입니다." 아버지는 퇴원하셨다. 처음에는 깁스도 하지 못하셨다. 발이 퉁퉁 부어서, 부기가 빠지기 전에는 수술도 깁스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했다. 다행히 수술은 면했다. 약간의 불편함을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하지만, 수술하는 것보다는 낫다고들 말한다. 수술하면 평생 아프다고... 이제 부기도 빠지고, 깁스도 하시고, 집에서 요양만 하시면 된다. 꽤 오랜 시간 동안... 나는? 그 사이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 별수 있나. 이럴 때 써먹으라고 백수다. 백수(白手)인 줄 알았는데 백수(百手)였던 것 같다. 아주 일손만 필요하면 아무 데나 막 갖다 써먹는다. 나는 군 시절 행정병이었다. 전화 받는 요령이야 도가 텄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여보세요."를 말하는 어설픈 모습 ..
커뮤니티, 소통, 어그로 그리고 나 커뮤니티 활동을 하면서 싫어하는 것이 생겼다. 무플이다. 누가 그랬던가? 무플보다 악플이 낫다고. 나는 이 말에 매우 공감한다. 무관심만큼 무서운 것이 없다. 무관심이 조회 수로 드러날 때도 있다. 하지만 정말 기분이 울적한 것은 조회 수는 높은데 댓글은 없는 경우이다. 한 번 독자의 입장에서 상상해봤다. 왜 기껏 들어와 읽어놓고 아무 말도 달지 않았을까? 내 글이 뭐라 한마디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완벽하기 때문일까? 그럴 리가... 정답은 글이 재미없기 때문이다. (단순한 의미의 재미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독자가 게시물을 클릭한다. 들어와 한두 문단을 읽는다. 글이 재미없다. 스크롤을 내린다. 그리고 다른 게시물을 찾는다. 너무나 당연하면서도 엄정한 과정이다. 그리고 이 과정은 쉽사리 예측할 수..
날개를 접습니다 백수생활 5년째 어머니는 다 닳아연골이 없어진 무릎 때문에새벽마다 잠에서 깨어시린 무릎을 부여잡으십니다.아들아. 아들아.엄마는 이제 쉬고 싶단다.아니, 쉬지 않으면 안 된다고 의사가 그러더라. 내 꿈은 영화평론가였습니다.나름의 철학도 있었습니다.현학와 허영이 없는 평론.아이부터 노인까지누구에게나 쉽게 다가가는 평론.그런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꿈이 다 무슨 소용입니까?목구멍은 포도청이고부모님의 삶은 지우개처럼하루하루 닳아 없어지고 있습니다. 돈이 많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라지만,돈이 없으면 행복할 수 없습니다.그리고 꿈도 없습니다. 내가 펼친 꿈의 날개는어찌나 보잘것없었는지돈 한 푼 되지 않았습니다.돈이 안 되는 꿈은꿈이 아니라 망상입니다. 나는 날개를 접습니다.구름 위로 날아오르지 못할 바엔땅을 ..
영화 비평은 어떻게 써야 하나 (입문) 비평이라는 게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비평은 평(評)해야 한다. 좋다. 나쁘다. 잘했다. 못했다. 옳다. 그르다. 판단을 내려야 한다. 이는 주관적 판단이다.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여기까지 본다면 비평이 뭐 어려울 게 있나 싶다. 작품을 보고나니 좋았더라. 나빴더라. 신선했더라. 식상했더라. 꿀잼. 노잼. 주관적 판단은 누구나 내릴 수 있다. 문제는 이를 객관적으로 입증해야 한다는 점이다. 즉, 비평이란 객관적 논리와 근거를 가지고 주관적 판단을 주장하는 것이다. 객관적 근거는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까? 대부분은 전통에서 가져온다. 과거의 명작과 비교하여 비평할 작품의 가치를 가늠한다. 어떤 작품은 전통을 잘 따랐을 수도 있고, 어떤 작품은 전통을 뛰어넘어 혁명을 일으키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
로또에 당첨됐다 "로또에 당첨되고 싶으세요? 로또를 사세요." 그래서 나는 매주 로또를 산다. 딱 만 원어치. 한 달에 4만 원. 알바로 버는 돈이 45만 원 이니깐 대충 수익의 10%를 쏟아붓고 있다. 엄청난 투자잖아? 그러나 워낙 기대값이 낮은 투자종목이다 보니 수익률은 처참했다. 석 달 간 벌어들인 돈은 0.5만 원. 수익률은 -96%. 당연한 결과려나. 그래도 당첨된다면 말 그대로 대박은 대박이니까. 어차피 매주 허공에 담배 연기로 만 원씩 날려 먹는데, 기부하는 셈 치고 주당 만 원 쓰는 게 나쁜 일은 아니다. 로또는 나눔이라잖나. 저번 주 짤평 작품은 이었다.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올리버 스톤 감독이 민감하고 핫한 정치 소재로 만든 영화다. 오, 이건 봐야 해! 다행히 추천 수도 제일 많아! 앗싸 보러 가자!..
<컨택트> - 이 영화는 SF인가? ※ 이 글은 영화 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는 외계인이 중심인 영화처럼 보인다. 예고편과 포스터는 물론이고, 심지어 개봉명마저 를 따라 라 지었으니 말 다했다. (의 원제목은 ) 그러나 영화를 끝까지 보면 이 영화에서 외계인이 별로 중요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신 엄마와 딸의 운명을 중요하게 다룬다. 딸의 죽음을 알면서도 딸을 낳을 수밖에 없는 엄마의 심정을 서정적인 화면과 애달픈 연기로 전달한다. 이런 점은 와 비슷하다. 우주와 밀접한 사건으로 시작하지만, 결말에서는 가족애를 내세운다. 묘하게 그 대상도 둘 다 딸이다. 하긴 칙칙한 아들보다는 귀여운 딸이 낫다. 딸 바보는 들어봤어도 아들 바보는 못 들어봤다. 딸을 향한 부모의 절절한 모습을 보노라면 눈시울이 붉어진다. 이에 공감한다면 ..
퀴어와 케이크 퀴어 담론을 접하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듭니다. 어떤 대상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는 게 어떤 종류의 케이크를 좋아하는 것과 다를 게 있을까요? 제 여자친구는 당근 케이크와 고구마 케이크를 좋아합니다. 저는 초콜릿 스펀지나 티라미수를 좋아하죠. 생크림 케이크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배스킨라빈스는 아이스크림을 케이크라고 우기고 있고, 종종 푸딩인지 케이크인지 분간이 안 가는 것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아예 케이크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죠. 성적 지향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는 여자가 좋고, 누구는 남자가 좋고, 누구는 2D가 좋을 수도 있죠. 생물학적으로 남성이지만 언젠가 성전환 수술을 하고 싶은 트렌스젠더가 여자를 좋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사람은 동성애자일까요? 이성애자일까요? 그러나 이성애자가..
[짤평] <컨택트> - 당신이 봐야 할 이야기 ※ [짤평]은 영화를 보자마자 쓰는 간단한 감상문입니다. 스포일러가 없는 게시물이므로 댓글에서도 스포일러가 없도록 부탁드리겠습니다. ※ 이 게시물은 https://www.facebook.com/shortcritique 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드니 빌뇌브의 차기작은 리부트라고 합니다. 한 때의 J.J. 마냥 영화팬들이 기대하는 작품을 죄다 도맡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