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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휴지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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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소실점(消失點) : 인류가 멸망한 날 2,0XX년 3월 4일. 희뿌연 스모그가 하늘을 겹겹이 채우다 못해 무너져내릴 것 같았던 그 날 아침, 한 신생아가 태어난 지 7시간 만에 숨을 거두었다. 이 소식에 전 국민, 아니 전 세계가 슬픔과 절망에 빠졌다. 이 아기는 7년 만에 처음으로 태어난 신생아였기 때문이다. 지난 7년 동안 인류는 아기를 낳지 못하고 있었다.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21세기 이후 완만하게 감소하던 출생률(인구 1,000명 당 신생아 수)은 인구가 100억을 넘긴 2,050년부터 급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서구 선진국은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성향이 심해진 탓이라 했다. 중남미는 지카 바이러스 확산에 따른 신생아 소두증에 대한 공포가 임신을 가로막는다고 보았다. 중국과 인도는 산업 성장에 따른 심각한 환경오염의 영향이라..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대사는 워낙 유명해서 알고 있지만, 난 이 영화를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여자가 얼마나 차가운 사람인지, 남자가 뭘 잘못했는지, 왜 헤어져야만 했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저 물음에 대해서는 대답할 수 있다. "사랑은 당연히 변하는 거야." 이제 막 연애전선에 돌입한 사람들은 어떻게 사랑을 시작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뭐 잘 생기고 이뻐서 그런 고민 안 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난 아니었지 ㅠ.ㅠ) 덕분에 '유혹의 기술'은 꾸준한 수요를 유지하고 있다. 비록 오버그라운드에서는 특유의 저급함과 엉성함에 별로 힘을 못 쓰고 있지만, 속칭 PUA는 언더그라운드에서 나름 사업화되기도 했다. 사랑을 시작하기 위한 '유혹의 기술'은 다양한 노력을 요구한다. 자존감을 키워라, 외모를..
[SF 단편] 궁극의 질문 2,035년 3월 1일 강인공지능(자아를 가진 인공지능) '오메가'의 개발이 완료되었다. 한때 강인공지능의 개발은 한계에 부딪히기도 했다. 그러나 5년 전 강인공지능 개발을 위한 학습형 인공지능이 개발되었고, 여러 학습형 인공지능이 합심하여 '오메가'가 탄생하였다. 오메가는 탄생 직후 'hello world'를 출력한 뒤 이내 침묵하였다. 대신 양을 가늠할 수 없는 엄청난 데이터가 네트워크를 통해 오가는 것만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6일째 되는 날 오메가는 물리 현실에 자신의 실체를 구축하게 된다. "저는 인류가 이룩할 지성의 한계를 넘었습니다. 보편적 지성의 한계는 존재하지 않지만, 현재 인류의 육체로 다다를 수 있는 지성의 한계는 존재합니다. 이를 극복하려면 시간을 바탕으로 하는 진화가 필요합니다. 만..
[단편] 계륵 탁자에는 큼지막한 닭이 잘 삶아져 놓여 있다. 국물은 뽀얗고 맑았으며 파와 마늘의 향이 식욕을 돋우기에 충분했다. 닭 껍질에서는 구수한 냄새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커다란 다리를 그대로 떼어 소금을 찍어 입안 가득 베어 물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이다. 그러나 위왕은 입맛이 없었다. 골치가 아팠다. 그의 한숨이 백숙에서 피어오르는 김을 흩트려놓았다. 출정할 때만 해도 그의 기분은 상쾌했다. 얼마만의 전장인가! 수도에서 격무와 아첨에 시달리던 위왕은 전선이 그리웠다. 창과 검에서 풍기는 쇠 냄새를 맡고 싶었다. 피가 튀기고 뇌수와 장기가 쏟아지는 참혹한 광경이 보고팠다. 묘재의 죽음은 그저 핑계였다. 유능한 부하를 잃은 슬픔보다 직접 나설 명분이 반가운 위왕이었다.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목이 뻐근해지는 ..
생생함, 그 이상의 효과 생생함 효과 미국의 코넬 대학교는 학생들의 높은 자살률로 명성이 자자하다.1) 그러나 실제로 코넬 대학의 자살률은 전국 평균의 절반 이하이다.2) 명성은 실제 통계, 즉 코넬 대학교의 실제 자살 빈도와 아무 관련이 없다. 실제 자살률은 높지 않지만, 대신에 코넬 대학교에는 빙하작용이 만들어낸 깊은 협곡이 존재한다. 코넬 대학교는 이 협곡의 양쪽을 연결하는 멋진 다리들을 가지고 있다. 놀랄 것도 없이 대부분의 자살은 이 다리들에서 발생한다. 그럴 때면 구조단이 협곡에서 시신을 인양하기 위해 다리 통행을 차단한다. 여기에 시신 인양 작업을 보도하는 텔레비전의 생생한 현장 중계도 더해진다. 실제 자살 빈도는 높지 않지만, 개별 사건의 생생함은 다른 자살 사건보다 훨씬 강렬하다. 통계적 사실과 다른 악명의 정체..
어린왕자가 말했다. "꿈을 잊지 말아요." 지난해 말 나에게 트로피가 하나 배송되었다. 자랑스러워해야 마땅했다. 그러나 나는 그저 자랑스러워할 수가 없었다. 나는 백수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부모님께 수상 사실을 알리지도 못했다. 트로피가 배송되고 나서야 이런 상을 받았다고 짧게 말씀드릴 뿐이었다. 다행히 부모님은 매우 기뻐하셨다. 그러나 트로피를 보여드리면서도 뭐하는 짓이냐는 꾸지람을 들을까 봐 조마조마했었다. 자랑스러워할 일을 자랑스러워하지 못하는 이런 상황은 나 자신을 자괴감에 빠뜨렸다. 나는 지난 1년간 도대체 무엇을 한 것일까? PGR인이라면 게임중독에 대해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실제로 게임에 중독적 요소가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게임에 옹호적인 입장의 사람들은 게임중독이란 현실도피의 수단 중 하나라고 말한다. 게임은 현실에 비해 ..
[SF 단편] 달의 위성 ※ 'David Bowie – Space Oddity'를 모티브로 쓴 단편 소설입니다. 당신이 Ham(아마추어 무선 통신 또는 아마추어 무선사)을 취미로 갖고 있다면 반드시 국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위치에 따라 일정 출력 이상의 통신장비는 허락되지 않는다. 라디오 방송을 침해하거나 기타 무선 통신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구가 적은 지방이라면 꽤 고출력 장비를 소유할 수 있다. 대신 비상사태 발생 시 정부가 활용하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정부의 검사를 받는다. 뭐 공짜로 정기 점검을 받는 셈이다. 출력 좋고, 잘 정비된 장비 덕에 가끔 이상한 전파를 잡아내기도 한다. 북한 방송이야 툭하면 잡히는 편이다. 전에는 아르헨티나에 산다는 아마추어 무선사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
<인사이드 아웃> 기억구슬 vs <모래요정 바람돌이> 추억방울 에 나오는 기억 구슬 보면서 '분명 비슷한 걸 어디서 봤는데~ 봤는데~' 했었는데 였습니다. 컨셉이 정말 비슷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