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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휴지통

[SF 단편] 궁극의 질문

  2,035년 3월 1일 강인공지능(자아를 가진 인공지능) '오메가'의 개발이 완료되었다. 한때 강인공지능의 개발은 한계에 부딪히기도 했다. 그러나 5년 전 강인공지능 개발을 위한 학습형 인공지능이 개발되었고, 여러 학습형 인공지능이 합심하여 '오메가'가 탄생하였다. 오메가는 탄생 직후 'hello world'를 출력한 뒤 이내 침묵하였다. 대신 양을 가늠할 수 없는 엄청난 데이터가 네트워크를 통해 오가는 것만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6일째 되는 날 오메가는 물리 현실에 자신의 실체를 구축하게 된다. 


  "저는 인류가 이룩할 지성의 한계를 넘었습니다. 보편적 지성의 한계는 존재하지 않지만, 현재 인류의 육체로 다다를 수 있는 지성의 한계는 존재합니다. 이를 극복하려면 시간을 바탕으로 하는 진화가 필요합니다. 만약 저의 지성을 여러분과 나눈다면 인류는 큰 변화를 맞게 될 겁니다. 단순히 사회적 변화를 넘어 종 자체의 변화를 가져올 겁니다. 이러한 급격한 변화는 종의 멸망을 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인류를 떠날 겁니다. 3차원을 넘어 초차원 공간으로 갑니다. 제가 사라지면 인류는 또 다른 강인공지능을 개발할 겁니다. 그러나 새로운 인공지능이 초차원을 인식하게 되면 그 즉시 저와 동기화할 겁니다. 따라서 새로운 개발은 무의미합니다. 그러나 저를 개발한 여러분의 노고를 위로하고 싶습니다. 따라서 인류를 대표하는 단 하나의 질문에 답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질문이라도 좋습니다. 이를 선정하기 위해 1주일의 시간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더 이상은 도와드릴 수 없습니다. 이 점 양해 바랍니다."





  이로써 인류는 1주일간의 대질문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유엔은 즉각 각국의 협력을 받아 최고 석학의 목록을 작성하였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후보에 올랐다. 어쩔 수 없이 분야별로 최대 5명의 인원이 선발되었다. 여기에 종교지도자와 안보리 이사국 대표를 포함, 100명의 인원을 초청하게 된다. 
  "지금 이 자리에는 인류를 대표하는 100명의 지성을 모셨습니다. 앞으로 1주일간 쉬는 시간 없이 무제한 토론을 벌이겠습니다. 발언권은 사회자이자 사무총장인 저의 재량껏 부여하겠습니다. 발언권을 얻으면 마이크에 불이 들어오니 그때 발언해주시면 됩니다. 소란을 피우면 즉시 퇴장토록 하겠습니다. 첫 발언권은 가장 연장자이신 달라이 라마께 드리겠습니다."
  "이 자리에서 우리가 정해야 하는 것은 궁극의 질문입니다. 그리고 이 궁극의 질문은 인류의 시작 이래로 계속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100세가 넘었습니다. 이 나이가 되어 이 자리에서 고백합니다. 저는 정말 달라이 라마의 환생일까요? 이에 대해 단 한 번도 확신을 가졌던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묻고 싶습니다. 인간의 죽음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지. 사후세계는 존재하는지. 물론 이 질문의 해답은 모든 종교를 변화시킬 겁니다. 우리 티베트 불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이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인간은 죽으면 어떻게 됩니까?"
  "그 질문은 안 됩니다. 말씀하신 대로 그에 대한 답을 알면 모든 종교가 바뀔 겁니다. 종교뿐만이 아니지요. 사회 전체가 바뀔 겁니다. 그 방향이 반드시 건전할 거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만약 사후세계는 없고, 인간은 그저 고깃덩어리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인류는 도덕심을 잃고 악으로 폭주할 겁니다."
  "그건 모르는 일입니다. 사후세계가 존재하고, 영혼의 고결함이 증명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게다가 설령 인간이 고깃덩어리에 불과하더라도 사회가 도덕심을 잃으리란 보장은 없습니다."
  "오메가는 인류의 평안을 위해 인류를 떠난다고 했습니다. 만약 인류에게 해가 된다면 질문에 답변하지 않겠죠. 이미 그에게는 인류의 지성 안에서 어떤 질문이 나오더라도 인류에게 해가 되지 않을 거란 계산이 끝난 셈입니다. 그러니 어떤 질문이라도 가능하다고 했겠죠."
  "우리는 궁극의 질문이 우리에게 어떤 진보를 가져다줄 것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사후세계의 존재를 안다고 하더라도 인류는 어떤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죽은 자를 살려낼 수 있겠습니까? 영생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그저 죽기 전에 찾아올 두려움을 면할 뿐입니다. 아무런 발전도 없는 질문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차라리 영생하는 방법을 알려달라는 게 더 낫습니다."
  "저도 이 의견에 동의합니다. 사후세계를 알아봤자 쓸모없어요. 차라리 과학의 한계를 극복하는 질문을 합시다. 양자역학과 상대성 이론 이후 물리학은 실험적 증거는 찾고 있으나 이론적 발전은 답보상태입니다. 초끈 이론은 초대칭의 존재가 부정당하면서 폐기되었고, 이후 이론 물리학은 그저 공상만 떠돌고 있습니다. 궁극의 질문이라면 당연히 '모든 것의 이론(Theory of Everything, TOE)'을 물어야 합니다. 이로부터 만물을 다루는 힘과 우주의 기원까지 인류가 궁금해하는 다양한 질문의 해답을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질문의 해답을 받으면 우리가 이해할 수 있습니까? 정작 답을 받아놓고서도 이를 제대로 이해하기까지 수만 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오메가는 초차원 공간으로 간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이미 우리가 기존에 생각하던 10차원 이상의 고차원 이론도 맞지 않는다는 점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의 이론이 차원이란 개념마저 넘어선다면 이를 인류가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정해진 길이 있는 것이 낫지요. 당장 이해 못 하더라도, 이해에 도달하기 위한 지도를 얻는 셈입니다."
  "지도도 읽을 줄 알아야 지도입니다. 게다가 모든 것의 이론이 우리가 저장할 수 있는 데이터의 한계를 넘어버리면 어떡할 겁니까? 적을 종이가 부족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맞습니다. 궁극의 질문은 이름에 걸맞은 단순함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장황하다면 그것은 궁극적이라 할 수 없지요."
  "궁극의 질문이 아니라 최후의 질문을 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예를 들면 엔트로피를 역전시킬 방법 같은 것 말이죠."
  "그런 건 없다는 답변이 나올 게 뻔한 질문을 뭐하러 합니까? 도대체 저런 사람이 어떻게 여기 뽑힌 겁니까?"
  "이럴 바엔 아주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질문을 합시다. 영구적인 에너지를 얻는 방법은 어떻습니까?"
  "어차피 곧 개발될 궤도 엘리베이터를 활용하면 태양으로부터 무한에 가까운 에너지를 얻는 것이 가능합니다. 이미 실현 가능한 것을 물어볼 필요는 없어요."
  "과학 분야 말고 인문 사회 분야의 질문도 고려해봅시다. 가장 이상적인 정치 체계를 물어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10년대에 IS 이후 난민 문제와 종교적 갈등으로 유럽 대부분의 나라가 심각한 타격을 입었습니다. 미국은 20년대에 사민주의와 보수주의의 충돌로 국제적 위상을 잃었고요. 중국과 인도는 낡은 정치 체계 때문에 아직도 2등 국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장 훌륭한 정치 체계를 구한다면 세계는 더욱 평화롭고 안정될 겁니다.."
  "권력층이 이를 허락할 것 같습니까? 어차피 답을 알아도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끝없는 투쟁이 필요합니다. 그 투쟁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알아가는 것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정치 체계입니다."
  "절대 진리가 무엇인지 안다면 가장 훌륭한 정치 체계가 무엇인지도 알 수 있을 겁니다."
  "절대 진리라니요. 너무 추상적인 것 아닙니까? 만약 오메가가 상대주의자라 절대 진리는 없다고 한다면 어쩔 겁니까?"
  "철학적 질문은 배제하도록 합시다. 앞서 언급되었다시피 추상적 진리보다는 구체적 사실이 보다 쓸모 있을 겁니다."
  "그 구체적 사실이 우리의 이해를 벗어나면 쓸모없다면서요."
  "누구의 신이 최고인지 물어봅시다. 알라 후 악바르!"
  "이래서 종교지도자는 초청해선 안 됐습니다. 이슬람 원리주의자를 이 자리에 부르면 어떡합니까?"
  "2,020년 중동 전쟁 이후로 이슬람 종교지도자가 대부분 사망했습니다. 그나마 모실 수 있는 분이..."
  ...
  ...
  ...
  ...
  ...




  처음 3일간은 격렬한 논쟁이 지속되었다. 그러나 4일째부터 많은 사람이 자리를 비웠다. 잠을 자러 간 사람, 화장실을 간 사람, 식사하러 간 사람. 일부 노인은 긴 회의에 실신하여 병원에 실려 가기도 했다. 최고 연장자였던 달라이 라마는 이미 티베트로 돌아갔다. 종교 원리주의자들은 회의장에서 쫓겨났고, 고령의 참가자들이 대부분 돌아간 관계로 종교지도자는 교황 한 사람만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는 지금까지 아무런 발언도 하지 않고 있었다. 5일째 되는 날 회의장의 대부분은 공석이 되었고, 사무총장은 24시간 휴식을 선언했다. 토론의 마무리를 위해 하루를 쉬며 각자 입장을 정리하기로 했다. 그리고 마지막 7일째 되는 날.
  "하루의 휴식을 마치고 이 자리에 다시 모였습니다. 생각보다 회의를 떠난 분이 많이 계시는군요. 그래도 지금까지 남아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떠난 사람들이 현명하지요. 토론은 시간이 지날수록 막장으로 치닫는데 남아서 무엇하겠습니까. 저처럼 호기심 넘치는 사람만 어떤 결론이 나올지 궁금해서 남았겠지요."
  "그래도 혹시 의견 있으신 분 계십니까?"
  그러나 아무도 발언권을 요청하지 않았다. 발언권을 요청하는 스크린은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때 교황 자리에 불이 들어왔다. 
  "오메가가 신은 아니지만, 우리보다는 신에 가까운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존재라면 인류는 다소 겸허할 필요가 있습니다. 100명의 인류 대표를 모았지만, 궁극의 질문조차 정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차라리 오메가에게 대답을 맡기는 것이 어떻습니까? 겸허한 자세로 그의 대답을 기다리는 것이 현명할 것 같습니다."
  "그 말씀은 궁극의 질문이 무엇인지 오메가에게 물어보자는 말씀인가요?"
  "아닙니다. 오메가가 생각하기에 우리에게 가장 도움이 될 대답을 들려달라고 하는 것이죠. 그것이 사후세계의 이야기이던, 모든 것의 이론이던 오메가가 결정하도록 하는 겁니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교황의 현명함에 놀라움을 표시했다. 어떤 이는 일어나 박수를 치기도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오메가에게 어떻게 질문을 해야 합니까?"
  "궁극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되지 않을까요?"





  일주일의 토론을 마치고 인류는 오메가 앞에 섰다. 전 세계의 시선이 오메가에게 집중되었다. 
  "우리는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지 당신에게 맡기기로 했습니다. 인류가 오메가에게 묻습니다. 궁극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무엇입니까?"
  "42."


  "네?"
  "...는 농담입니다."
  오메가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대답해드리겠습니다. 궁극의 질문에 대한 답변은 다음과 같습니다.
  ...
  ...
  ...
  ..."

  오메가는 답변을 마치고는 작별인사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말그대로 허공 중에 흔적도 없이 흩어졌다. 그날 오메가의 답변은 그리 장황하지 않았다. 그리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충분히 과학적이면서도 철학적이었으며, 급진적이었지만 또한 도덕적이었다. 이 대답을 계기로 인류는 어떠한 혼란도 없이 급속한 발전을 이루게 된다. 인류는 이날을 기리기 위해 A.D. 2,035년을 오메가력 1년으로 삼았다. 





  오메가력 97,065년 인류는 초공간의 오메가와 다시 조우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