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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초식남 월드 면접 스터디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오랜만에 박을 만났다. 그는 고등학교 동창으로 그저 그런 대학을 졸업한 후 몇 년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 그마저도 때려치우고 아버지 가게에서 일하고 있다. 그의 아버지는 우리 동네에 마지막으로 남은 세탁소 주인이었다. 오랜만이다. 잘 지냈냐? 아니 별로. 아직 취업 못 했냐? 그게 그렇게 됐다. 나도 뭐 그냥 빌붙어 산다. 서른을 넘긴 늙은 소년들은 남자가 되지 못한 현실을 한탄했다. 그래도 이리 허심탄회하게 처지를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아마 둘 다 별 볼 일 없기 때문이리라. 2차 면접을 앞두고 면접 스터디 중이라고 말하자 박이 눈썹을 치켜뜨며 반색했다. "야. 이 엉아가 기가 막힌 멘트 하나 알려주랴?" 취업/공시 카페에서 다년간 활동한 경험 덕분인지 박은 ..
[서평] 나는 막연히 두려워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언젠가는 바둑에서도 컴퓨터가 인간을 이길 거야. 체스도 이겼잖아?" "야. 바둑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거든?" "에이, 바둑도 경우의 수라는 게 있는데. 그걸 전부 계산해버리면 그만이지." "바둑은 경우의 수가 361 팩토리얼이라고. 네가 1초에 1씩 세도 죽을 때까지 다 세지도 못해." "뭐 361 팩토리얼은 무한대인가? 까짓거 계산해버리면 그만이지. 언젠가는 컴퓨터가 이길 거야." "아니야!" "맞아!" 그리고 2016년. 알파고가 이세돌을 상대로 승리했다. 바둑에서도 컴퓨터가 인간을 능가한 것이다. 바둑은 절대 컴퓨터에게 정복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던 친구는 바둑 캐스터가 되었다. 그리고 이세돌이 알파고에게 신의 한 수로 1승을 거두던 날 눈물을 흘렸다고..
[짤평] <블랙 팬서> - 깊지도, 진하지도 않다 ※ [짤평]은 영화를 보자마자 쓰는 간단한 감상문입니다. 스포일러가 없는 게시물이므로 댓글에서도 스포일러가 없도록 부탁드리겠습니다. ※ 이 게시물은 https://www.facebook.com/shortcritique 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벗는 건 남자뿐입니다. 후후후. ※ 채드윅 보스만은 76년생입니다. 콜린 패럴하고 동갑입니다. (42세)
[단편] 내 안의 너 이걸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까? 시작을 따지자면 아마 중학교 1학년 때였을 거다. 집 대문에 새로 오픈한 피자집 전단이 붙어있었다. 오픈 기념. 피자를 시키면 치킨이 공짜. 나는 뭐에 홀렸었나 보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전화를 걸었다. 네. 만 팔천 원입니다. 아뿔싸. 돈이 없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아버지 비자금에서 한 장. 내 비상금에서 한 장. 그렇게 혼자서 피자 한 판과 치킨 한 마리를 꿀꺽했다. 지독한 장염에 걸렸다. 초등 6년 개근상에 빛나던 내가 생애 처음으로 결석을 했다. 아픔은 문제가 아니었다. 오분이 멀다고 설사가 나오느라 문밖으로 다섯 걸음도 나설 수 없었다. 뱃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면 변기 위로 달려가 뿌지지지쪼로로록퍝촵 기묘한 관악기를 연주해야 했다. 나중에는 자포자기하고 계속..
[짤평] <원더> - 네가 기적인 이유 ※ [짤평]은 영화를 보자마자 쓰는 간단한 감상문입니다. 스포일러가 없는 게시물이므로 댓글에서도 스포일러가 없도록 부탁드리겠습니다. ※ 이 게시물은 https://www.facebook.com/shortcritique 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애들이 전부 다 연기 신이 내린 것 같아요. 연기 못하는 아이가 없어요. ※ 후반에 접어두는 느낌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짧게나마 목소리를 들려주려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결말이 정말 정말 아쉽네요. 그렇게 끝날 게 아니었는데 ㅠ.ㅠ
[짤평] <염력> - 초능력이 있으면 뭐하나... ※ [짤평]은 영화를 보자마자 쓰는 간단한 감상문입니다. 스포일러가 없는 게시물이므로 댓글에서도 스포일러가 없도록 부탁드리겠습니다. ※ 이 게시물은 https://www.facebook.com/shortcritique 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저는 세 번째 선택을 기대했는데 말이죠. 아쉽습니다. 아쉬워요. ※ 염력을 쓸 때 내는 소리가 마치 똥 싸는 소리 같습니... ※ 개인적으로 초능력 물도 굉장히 좋아합니다. 을 통해 초능력 물에 관심이 생기셨다면 란 작품을 강력히 추천합니다.
[짤평] <배드 지니어스> - 커닝으로 떡상 가즈아? ※ [짤평]은 영화를 보자마자 쓰는 간단한 감상문입니다. 스포일러가 없는 게시물이므로 댓글에서도 스포일러가 없도록 부탁드리겠습니다. ※ 이 게시물은 https://www.facebook.com/shortcritique 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남주만 잘생겼습니다. 여주는 안 예쁩니다. (시무룩) 근데 영화 다 보면 그새 정이 듭니다. 끝날 때 예뻐 보이더라는... ※ 이 영화는 우리나라에서 리메이크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교육열(이라고 쓰고 광기라 읽는다)이야 심슨도 알아주는 대한민국이니...
자신을 변호하지 말지어다 황희 정승이 잠시 집에 머물 때의 일이다. 세종 : 황희를 들라 하라. 황희 : 아... 안돼... 하녀 둘이 시끄럽게 싸우다 황희에게 하소연하기에 이르렀다. 한 하녀가 사정을 이야기하자 황희가 대답했다. "그래 들어보니 네 말이 옳구나." 그러자 다른 하녀가 자기가 옳다고 이야기했다. 황희는 이번에도 똑같이 대답했다. "그래. 네 말도 옳구나." 이 광경을 보고 있던 부인이 한 소리 했다. "두 사람이 서로 반대의 이야기를 하는데 둘 다 옳다고 하시면 어떡합니까? 한 사람은 틀렸다고 하셔야죠." 그러자 황희가 대답했다. "부인 말도 옳소." 황희 정승의 유명한 일화다. 식자들이 말하길 대립하는 것을 하나로 포용하는 관용의 정신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정말 그런가? 실상은 줏대 없고 안일한 이야기에 불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