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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쌤 윤PD

[리뷰]<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 보면 지는 거다


  중국집 배달부인 주(현성)는 우연히 구매한 라이터에 적힌 전화번호를 통해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라는 게임에 접속하게 된다. 게임의 목적은 성냥팔이 소녀(임은경)가 사람들의 도움을 받지 못하게 하여 원작 동화에서처럼 얼어 죽게 만드는 것. 그녀가 얼어 죽을 때 환상속의 주인공이 플레이어가 된다면 진정한 승리자가 된다. 이미 게임 속에선 오인조(단체 접속자 : 김정호, 백원길, 신범식, 박정기, 신삼봉)나 라라(진싱), 오비련(정두홍)같은 플레이어들이 성냥팔이 소녀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중이다. 뉴비였던 주는 라라 뒤를 따라다니며 레벨 업을 하고 아이템을 강탈해가며 게임에 적응한다. 그러나 시스템으로부터 바이러스로 지목되어 쫓기는 신세가 된다. 이런 주를 퇴출당한 시스템 개발자인 추풍낙엽(명계남)이 도와주어 위기를 넘긴다. 우연히 성냥팔이 소녀와 접촉하게 되나, 주와 접촉한 성냥팔이 소녀는 폭주하게 되고 시스템에 의해 회수된다. 그녀를 구하기 위해 추풍낙엽으로부터 전설의 고등어를 얻은 주는 시스템의 본부로 쳐들어가 그녀 앞에 다다른다. 허나 교정프로그램을 주입받은 성냥팔이 소녀는 주를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이다. 주는 마지막으로 라이터를 돌려주며 사랑한다는 고백과 함께 눈물을 흘린다. 이에 성냥팔이 소녀는 각성하고 주와 함께 시스템을 파괴한다. 그 후 주와 성냥팔이 소녀는 어딘지 모를 장소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게 된다.

  (보통 리뷰할 땐 줄거리를 잘 안 적는 편인데, 이번엔 다르다. 줄거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적어 놓았으니 무슨 내용인지 궁금한 마음에 이 영화를 찾아보는 어리석은 행동은 시도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Don’t try this at home.)





  시대를 앞서간 작품?

  2014년에 바라본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하 <성소재>)은 놀라운 장면들이 생각보다 많이 존재한다. <매트릭스>의 아류작으로 볼 수 있는 작품이지만, <매트릭스2>, <매트릭스3>가 떠오르는 장면들이 존재한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시스템의 비호를 받는 오비련이 나이트를 운영하는 점이나 마지막에 주와 이(김진표)가 빗속에서 대결하는 모습이 그러하다. 특히 시스템의 본체와 마주친 장소가 <매트릭스3>에서 아키텍쳐와 마주쳤던 장소를 연상시킨다는 점은 놀라웠다. 이러한 이미지들, 가상세계에 대한 감독의 감각은 시대를 앞섰다는 평가를 내릴 만하다. 시스템에 쳐들어가는 시퀀스에서 보이는 액션과 CG는 당시의 기술력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훌륭하기도 하다. 이런 면에서 100억이 넘는 제작비 대부분을 회식으로 썼다는 평가는 부당하다 하겠다. 충분히 돈 값을 하는 영상과 이미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 이 정도 스틸샷이 나올 정도면 영상에 돈 좀 썼다는 게 이해가 된다.






  문제는 그럴듯함과 개연성

  그러나 이러한 장점은 영화를 해부하며 보는 것이 아니라면 잘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이미 시대가 지나버린 다음에 성공한 후속작과 이미지를 비교해야 보이는 면이니 <성소재>만 접한다면 보이지 않을 장점이기도 하다. 문제는 라스트 시퀀스의 액션신들도 멋있게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멋있어 보이는 것은 컷이나 스틸샷으로 분해했을 때 뿐이다. 원인은 그럴듯함(핍진성)의 결핍에 있다. 이러한 단점이 가장 두드러진 곳은 헬리콥터가 등장하는 신이다. 게임 속이기에 느닷없는 등장이라 할지라도 개연성에는 문제가 없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헬리콥터는 전혀 그럴듯하게 보이지 않는다. 일단 실내 복도에 출현한 점도 그렇고, 무엇보다 벽을 뚫고 다니는 등 물리법칙을 무시하는 모습에 황당함만이 느껴질 뿐이다.(이런 게임이 있었지... Big rigs...) 다른 액션신들에서도 어울리지 않는 와이어 액션이 남발되면서 헛웃음을 유발하는 것들이 많다. 여기에 엉성한 배우들의 연기까지 더해지면 보고 있는 것이 괴로운 작품이 만들어진다.

  액션이야 당시 기술의 한계를 생각한다면 비난보다 안쓰러움으로 바라봐 주었을 수도 있다. 액션신의 내용만 보자면 비슷하게 황당한 <원티드>의 경우 기술력이 받쳐주다 보니 그럴듯하게 보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럼 액션을 차치하고 <성소재>라는 작품을 바라본다면 어떨까? 안타깝게도 액션을 빼면 영화는 더 엉망진창이 된다. 영화 내내 개연성이라곤 쥐똥만큼도 없기 때문이다. 다소 변태적이고 전위적인 설정(여주인공이 얼어죽게 만드는 게 목표라니...)들이 어떤 이유에서 이루어진 것인지 설명도 없고, 그러한 설정이 작중 인물의 동기로 작동하지도 않는다. 이처럼 기본적인 인과 구조조차 성립하지 못했으면서도 감독은 불가의 사상을 이야기하려 했다고 인터뷰했다. 아... 진짜 짜장면으로 때려주고 싶다.

▲ 도대체 왜 성냥이 아닌 라이터인가. 난 아직도 이유를 모르겠다.






  오만한 감독에게 어울리는 철퇴

  이쯤 되면 감독의 의도를 생각해 봐야 한다. 개인적으론 한국 평단과 관객이 지나치게 내러티브에 집중하여 작품을 판단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그럼에도 명망있는 감독의 작품에 대해서는 이러한 비난은 영화 보는 눈이 없는 걸로 치부된다.) 이러한 개연성 부족에 감독의 의도가 녹아있다면 이를 두고 작품을 폄하하는 것은 어쩌면 정말로 영화 보는 눈이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성소재>는 단순한 블록버스터 무비로 제작되진 않았다. 전체적으로 보이는 것은 위선에 대한 냉소이다. 성냥팔이 소녀를 얼려 죽이라는 설정부터 위선에 대한 거부감이 명확하다. 주가 주인공인 이유는 그가 정의로운 영웅이기 때문이 아니라 죽어가는(게임이니 실제로 죽는 것은 아니다) 동료를 주저 없이 버리고 가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나중에 이가 자신에게 공격하자 죽을 뻔 했다며 화를 내는 모순을 보여준다. 보는 이로 하여금 씁쓸한 비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성냥팔이 소녀와 관련해서는 자본주의와 체제에 대한 전복의 의지가 보인다. 제일 처음 등장하는 npc인 돈 많은 노인네는 자본주의 폐해의 전형이라고 하겠다. 그녀가 폭주한 뒤 처형한 천사의 집 원장도 마찬가지의 인물이다. 그리고 시스템. 주인공이 대항하는 존재의 이름이 ‘시스템’이라는 점에서부터 체제 전복의 의도가 엿보인다. 그 대항 방식의 폭력성과 과격함에선 막시즘에 대한 동경도 느껴진다. 더불어 여기에서도 냉소는 잃지 않는다. 성냥팔이 소녀에 열광하는 우매한 대중들을 묘사하며 체제 전복에 대한 대중의 선망이 한심하다는 것을 비웃는다.

  ‘이처럼 감독의 깊은 생각이 담겨있으니 망작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폭주하는 성냥팔이 소녀에 열광하는 우매한 대중들과 다를 바 없다. 좋은 사상이 담겨있다 하더라도 이 영화가 형편없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우선 이러한 의도와 개연성 부족이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 오히려 왜 소녀는 죽어야만 하는지, 왜 추풍낙엽은 시스템에 저항하는지, 왜 라라는 레즈비언인지, 왜 성냥이 아니고 라이터인지, 이러한 부분들을 설명해줬다면 감독의 의도가 더 살아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장선우는 설명이 아닌 이미지로만 의도를 전달하려 했다. 각종 설정들에서 저항의식에 대한 상징적 요소가 발견되나 이것은 그저 설정으로만 남을 뿐이다. 물론 영화라는 매체가 서술보다 이미지와 상징에 집중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럴 거면 예술영화를 만들지 왜 상업영화를 만들었을까? 그것도 120억이나 들여가면서 말이다. (심지어 그 사상이 가치가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이다.) 

  한 때 열풍이었던 ‘체게바라’의 이미지 사진이 떠오른다. 젊은이들에게 저항의 상징으로 떠오르며 티셔츠와 모자마다 체게바라의 얼굴이 그려진 음영이 새겨졌다. 이를 두고 그의 행동에 대한 별다른 고민 없이 저항의식에만 사로잡혀 그를 영웅주의로 퇴색시켰다는 비판이 있었다. <성소재>의 작가주의가 정확히 그러하다. 깊이 있는 이야기들에 대한 설명은 없고, 그 이미지만을 따와 거들먹거린다. 더구나 우스운 것은 영화 내에서 그러한 세태에 대해 비웃고 있다는 점이다. 누워서 침 뱉기도 120억을 들이면 이정도로 할 수 있다. 

  감독의 관객에 대한 비뚤어진 태도도 문제다. 장선우는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제까지 관객이 영화를 평가했다면,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사상 최초로 관객의 삶에 대한 경험수준과 이해력을 평가하는 영화가 될 것이다. 만약 당신이 진정한 지존이라면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기쁨을 느낄 것이고, 고수라면 슬픔을 느끼게 될 것이다. 중수라면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 게임을 다시 접속하고 싶어지겠지. 하수라면 아예 영화를 보지도 않을 것이다. 이 영화가 가져올 파장이 개인적으로 궁금하다."
  영화로써 관객을 평가하겠다는 오만한 태도가 영화를 망작으로 만든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싶다. 억지로 작품을 구겨놓고 그 안의 그림을 보지 못한다며 비웃는 모습이다. 이것은 예술이 아니라 거드름일 뿐이다. 관객과 평단의 차가운 평가는 이러한 오만함에 어울리는 철퇴라 하겠다. (안타까운 점은 <성소재> 이후에 장선우가 아예 메가폰을 잡지 못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의 전작들에서 보여준 재능을 생각하면 분명 안타까운 일이다. 더불어 이 영화로 커리어가 박살난 배우들에게도 애도를 표한다.)

▲ 말해 봐요. 나한테 왜 그랬어요. 이제 막 주목받기 시작한 나한테 왜!






  총평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그걸 똥통 속에 넣어 놓고 먹으라 하면 누가 좋다고 먹겠는가. 생각 없는 제작사와 자아도취에 빠진 감독이 합심해서 관객에게 빅똥을 선사하는 작품이 <성소재>다. 그러면서 그 똥을 헤집고 나올 지존을 바란다는 오만함까지 가면 어이가 우주 끝 저 어딘가로 날아가 버리는 기분이다. 관객을 평가하겠다는 이런 상종할 가치도 없는 자세는 무시하면 그만이다. 이렇게 공을 들여 욕을 해주느니 쳐다보지도 말고 그냥 무시해야 했다. 그러나 나는 이 덫을 물었고(심지어 타의에 의한 것이다), 장선우에게 2시간 동안 농락당했다. 이 영화는 그런 영화다. 보면 지는 거다. 





  한줄평

  120억짜리 오만 ☆





※ 당시에 100억이나 끌어모은 기획력과 투자사의 열정을 생각해서 별점을 반개정도는 더 주고 싶었으나, 이후 영화 산업을 휘청이게 했다는 점에서 산업적 측면에서도 재고해야할 가치가 전혀 없는 작품이기에 그냥 말았습니다.

※ 상큼한 월요일 오전을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과 함께하도록 '망작 리뷰'를 제안해주신 Eternity님께 이 영화를 바치고 싶습니다. (성소재나 먹어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