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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쌤 윤PD

[영화토크] <연애의 온도> - 당신의 연애는 안녕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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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영화 <연애의 온도>






충달 : 한국어 제목은 <연애의 온도> 인데, 영문 제목은 ‘Very Ordinary Couple(V.O.C.)’이네. 영어 제목이 작품과 더 맞는 것 같아.
 
존리 :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근데 그걸 한국말로 바꾸면 ‘평범한 연애’ 쯤이 되는데. 제목으로서 조금 심심한 것 같아.
 
충달 : ‘아주 평범한 커플’ 뭐 이렇게 하면 안 되려나?
 
존리 : 홍상수 영화 같잖아;;;;
 
충달 : 그러네. 너무 홍상수 같네;;;; 근데 <연애의 온도>라는 제목이 시류에 편승한 느낌이 있긴 해. <연애의 목적>하고도 비슷하기도 하고
 
존리 : 두 영화는 개봉시기가 좀 차이가 있지 않나?
 
충달 : 차이가 있긴 하지.
 
존리 : ‘연애의 뭐시기’라고 하는 게 사람들의 흥미를 돋우기에 좋지 않았을까 싶어.
 
충달 : 그래도 적합한 제목은 아닌 것 같아.
 
존리 : 왜 굳이 이렇게 했을까 싶었던 장면들과 일맥상통한다 할 수 있겠는데, 뭐 자세한 얘기는 본론에 들어가서 하도록 하고...
 
충달 : 난 제목 얘기를 하면서 썰 좀 풀고 싶은데, 우리나라 영화들이 제목을 좀 이상하게 붙이는 것 같아.
 
존리 : 또 어떤 게 있지?
 
충달 : 요번에 <끝까지 간다> 같은 경우도 외국 제목은 ‘A Hard Day’인데, 그 제목이 더 잘 맞는 기분이거든.
 
존리 : 아까랑 똑같은 얘기를 하게 되는데, ‘힘든 날’ 이러면 꼭 60년대 영화 같기도 하고, 홍상수 영화 같기도 하고...
 
충달 : ‘힘든 날’ 보다는 좀 더 문학적인 느낌을 살려서 ‘지독한 날’ 이렇게 하면.... .... 진짜 홍상수 영화가 되는 구나;;;
 
존리 : 그야말로 완전 홍상수 삘이잖아 크크크.
 
충달 : 뭔가 안타깝긴 한데, 내 역량 안에서 곧바로 답이 나오진 않는구나.
 
존리 : 나는 <끝까지 간다>라는 이 제목 괜찮은 것 같은데?
 
충달 : 반대로 생각하면 홍상수 감독이 제목을 참 편하게 지으시는 건가 싶기도 하네.
 
존리 : 사실 <연애의 온도>와 ‘V.O.C.’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영화 내용과 어울리나 한다면 영어 제목이 더 잘 맞지. 근데 이건 홍보 전략상의 문제라고 봐. 포스터의 국내판과 해외판의 차이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해. 우리나라 관객들은 배우에 대한 의존도가 크기 때문에 배우 얼굴을 전면에 내세워서 포스터를 내는 경우가 많은데, 해외에서는 국내 배우에 대한 인지도가 부족하기 때문에 영화의 분위기를 전달하기 위한 포스터를 제작하는 경우가 많거든. <끝까지 간다>, <황제를 위하여> 같은 영화들 해외 포스터 보면 극의 분위기를 살려서 정말 멋있게 찍었더라고. 이런 맥락에서 제목도 해외버전의 경우 궁금증을 유발하는 제목보다는 알기 쉬운, 내용을 예측하기 쉽게 지은 거라고 생각해. ‘V.O.C.’나 ‘A Hard Day’도 어떤 영화인지 예상이 되니깐. 근데 <연애의 온도>라고 한다면 궁금증을 유발하면서 이목을 끌게 되는 게 아닐까 싶어.
 
충달 : 배우의 인지도가 있으니 친절할 필요까진 없겠지. 하긴 ‘온도’라는 단어의 선택도 크게 어긋난 건 아닌 것 같네. 연애 감정이 ‘식어가는’ 얘기니깐. 근데 보통 ‘온도’라는 단어가 온도가 올라가는 느낌인데 식어가는 이야기다 보니 좀 이질감이 들었어.
 
존리 :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게, 영어제목이 정확히 본질을 잡아냈기 때문에 비교가 되긴 하지만, 영화 포스터를 보면 의문점이 조금 해소가 돼. 포스터엔 둘이 놀이동산에서 닭살 돋는 사진을 찍는 모습인데 쓰여 있는 문구를 보면 ‘이날 우리는 헤어졌다’라고 나오거든. 우리가 연애 관계에서 피로감을 느끼게 되는 점이 아침에 만날 땐 엄청 좋았는데 집에 갈 땐 대판 싸우고 집에 가는 경우도 있다는 거잖아. 그 만큼 연애의 온도라는 것이 급격하게 달아올랐다 급격하게 식어버리는, 그런 경우가 있으니깐. 그렇게 생각한다면 <연애의 온도>도 나름 잘 지은 제목이 아닌가 싶다.
 
충달 : 너 말을 들으니 꽤 괜찮은 제목인 것 같네. 그럼 영화의 기본적인 통계자료를 살펴볼까?
 
존리 : 전국 관객 수 180만 명. 매출 130억. 제작비가 30억 원 정도.
 
충달 : <숨바꼭질>이 28억 원이었으니깐 정말 싸게 먹혔네.
 
존리 : 한 35억쯤 쓴 것 같이 보이는데.
 
충달 : 손익분기점을 갓 넘겼다고 봐야겠네.
 
존리 : 사실 영화 자체가 상당히 괜찮은 편이라 생각이 되서, 그에 비하면 흥행 성적이 조금 아쉽긴 하네.
 
충달 : 보통 우리나라 영화 관객이 데이트 커플이거든. 오히려 영화 자체를 즐긴다면 이런 영화는 극장 보다는 집에서 보는 것이 나을 수도 있어.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커플끼리 보러 갈만한 영화는 아니야.
 
존리 : 커플들을 타깃으로 했을 텐데, 커플끼리 보면, 보고나서 싸울 것 같아.
 
충달 : 그치? 차라리 깨지고 나서 혼자 보러 갔을 때 더 느낄 게 많은 영화다 보니깐...
 
존리 : 그만큼 메시지가 많다고 느끼나봐?
 
충달 : 그런 면도 있고. 암튼, 데이트 하면서 이 영화 보러 가면 안 될 것 같아.
 
존리 : 홍보는 사실 커플을 노린 것 같은데... 어쩌면 보고나서 애인하고 싸운 사람들이 입소문으로 커플은 보러가지 말라고 해서 흥행이 안됐을지도.
 
충달 : 충분히 가능한 얘기야 크크
 
존리 : 이 영화가 감독의 입봉작이지? 입봉작치고는 뛰어난 연출을 한 것 같아.
 
충달 : 여러 영화에서 스태프로 활동 하셨던데, 그런 경험이 발휘 된 거라고 봐야겠지.
 
존리 : 나이도 젊고. 앞으로가 기대가 되네.
 
충달 : 본론 들어가기 전에 수상경력에 대해서 언급하고 싶었는데, 감독이 ‘상하이 국제 영화제’에서 신인 감독상을 받았고, ‘백상예술대상’에서 김민희씨가 최우수 연기상을 받았지.
 
존리 : 백상이... 권위가 있는 편인가?
 
충달 : 청룡이나 대종상처럼 엉망은 아닌 것 같아. 크크. 아무튼 연기로 상 받을 만 했어.
 
존리 : 좋은 연기이긴 한데, 생활 연기다 보니깐 클래스가 느껴지진 않았어.
 
충달 : 뭐 자세한 얘기는 뒤에가서 얘기를 하도록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자.


 

 
  그라데이션처럼 자연스러운 이야기 전환
 
충달 : 우선 결론적으론 칭찬을 해주고 싶어. 기본기를 확실히 갖추고 있는 시나리오라고 생각해. 엉성함도 없고, 붕 뜨는 에피소드도 없고. 물론 개별적인 서브플롯들에서 불필요한 부분들이 존재하긴 해. 박계장 운전얘기 같은 거라든가. 하지만 그 대신에 죽은 캐릭터 없이 모든 캐릭터가 살아났으니깐.
 
존리 : 캐릭터들에 대한 애정을 보여줬다고 할 수 있겠네.
 
충달 : 전체적으로 잘 만든, 기본기를 갖추고 있는 시나리오라고 생각해. 넌 시나리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존리 : 나도 몇몇 설정들이 과잉으로 느껴지긴 했어. 그래도 확실히 짜임새가 있다고 생각해.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어떤 형태의 시나리오를 써야 되는지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
 
충달 : 어떤 점에서 그런 걸 느꼈어?
 
존리 : 전반부와 후반부의 이야기가 결이 전혀 다른 이야기인데, 그럼에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는 점에서 시나리오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한 것 같아. 이런 면에서 짜임새가 있다고 생각해.
다만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다면 역시 인터뷰 장면들이 마지막에 사실은 다큐 영화를 찍었던 것이었습니다~~~로 등장하는 순간! ‘아... 이거 좀 피곤한데...’ 싶더라고.
 
충달 : 앞부분과 뒷부분의 결이 다르다고 했잖아. 나도 그 이야기에 100% 동감해. 앞부분을 보면 <사랑과 전쟁> 영화판이야. <연애의 온도>라기 보다는 ‘찌질의 온도’라는 제목이 더 어울리지. 웹툰 중에 <찌질의 역사>라는 작품이 있는데, 그거랑 비견될 정도로 연애를 하면서 겪을 수 있는 찌질한 것들을 다 모아서 보여주더라고.
 
존리 : <찌질의 역사> 보냐?
 
충달 : 뭐 대충 보긴 했는데... 여담이지만 <연애의 온도>랑 <찌질의 역사> 둘 중에 어느 것이 더 찌질할까?
 
존리 : 음... 난 조금 보다가 그림 작가가 마음에 안 들어서 잘 안 봤어. 스토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같다고나 할까, 콘티 자체가 안 좋은 건지, 콘티를 전개하는 능력이 안 좋은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예전 작품..다욤이의 다이어트 다이어리인가 보면서 크게 실망하고 나서는 안 보게 되더라고.
 
충달 : 음... 아무튼 본 것만 가지고 따졌을 때 누가 더 찌질해 보이남?
 
존리 : 찌질함만 놓고 보면 <찌질의 역사>가 더 찌질하지. 보면서 ‘휴머니즘 적으로 사람이 이렇게까지 찌질하면 안될 것 같은데...’ 하면서 봤거든.
 
충달 : 인간이 이렇게까지 찌질해 질 수 있는가? 크크크. 본론으로 돌아와서, 앞부분은 ‘찌질의 온도’라고 봐도 될 정도로 찌질한 이야기를 하고, 중반에 재결합 때문에 민차장 에피소드를 넣어주지. 영화적으로 보면 가장 핵심적인 에피소드일거고. 그리고 후반부에 영화의 결론에 해당하는 ‘헤어진 연인들이 어떻게 다시 만나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주지. 그런데 우리가 영화를 다 본 입장에서는 이렇게 구분을 할 수가 있는데, 영화를 보고 있는 도중에는 이런 구분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이어졌었어. 그런 면에서 나도 시나리오가 참 유기적이라고 평하고 싶어.
 
존리 : 넌 어떤 부분에서 유기적이라고 느꼈어?
 
충달 : 보통 시나리오를 잘못 쓰면 앞부분에서 찌질한 이야기 하다가, 후반에 진지한 이야기를 하면 캐릭터가 확 돌변하는 경우가 생겨. 그런데 캐릭터들이 영화 끝까지 일관성을 유지하는 편이지. 그리고 영화에서 ‘찌질의 온도’의 마무리에 해당하는 장면이 김과장 마누라가 갱킹오는 장면이야. 여기서 주인공들의 ‘찌질의 온도’는 끝나는데, 뒤 이어서 조연들의 찌질함을 깨알같이 다뤄주면서 앞에서의 논조를 이어가줘. 그러면서 민차장 에피소드가 자연스럽게 거기에 오버랩이 되고, 민차장 에피소드가 마무리 되면서 재결합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마치 서로 다른 플레이트를 빈틈없이 잘 연결한 느낌이야.
 
존리 : 그라데이션이 좋다는 이야기네.
 
충달 : 아! 그 표현 좋다. 맞아. 전혀 다른 색깔의 이야기인데 그 경계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변하니깐.
 
존리 : 네가 좋은 얘기 많이 했으니깐, 난 불만스러웠던 부분을 좀 얘기해 볼게. 아까도 얘기했지만 설정에서 불만이 좀 있었고. 여성감독이라 그런지 전체적으로 장영 위주의 시점을 유지하다 보니 이동희라는 캐릭터가 현실성이 떨어졌어. 감정조절이 지나치게 미숙하다거나...
 
충달 : 크크 분노조절장애.
 
존리 : 응. 그런걸 보면 ‘저 남자를 도대체 왜 사랑하는 거야?’ 하고 느껴지니깐.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이 영화의 핵심적인 부분에서 의구심이 느껴지는 거지. 사랑해야만 하는 이유가 없어 보이니깐.
 
충달 : 하긴 장영에 비해서 이동희가 너무 개새끼로 나왔어;;;
 
존리 : 아마도 장영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 더 치중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동희라는 캐릭터가 과장되어 표현이 된 점이 아쉬웠어. 또 한 가지는 민차장 에피소드도 좀 과잉이라고 느껴졌어. 굳이 팰 필요가 있었나 싶었거든. 물론 심각하게 받아들이면 정말 심각한 문제이긴 하지만 한편으론 또 양해해줄 수도 있어 보이는 일이었거든.
 
충달 : 민차장이 한 일에 대해서 양해해줄 수도 있다. 뭐 양해해주려면 양해해줄 수도 있어. 근데 여기서 양해를 하면 극이 전개가 안 되니깐. 동희가 거기서 남자다움을 좀 보여줘야지 재결합도 되고 하잖아. 그리고 패려면 팰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든.
 
존리 : 음. 그런데 나는 어느 정도 이해해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니깐. 그 장면이 기능적으로 다가오더라고. 그게 눈에 띄니깐. 그 점이 굳이 꼽자면 아쉬운 점.
 
충달 : 그래서 그런 기능적인 게 많이 거슬렸었어?
 
존리 : 음… 많이 거슬리진 않았어. 다만 난 5번 봤거든. 5번 쯤 보고나니. 좀 많이 느껴지나 보지.
 
충달 : 거슬릴 정도가 되면 문제가 되는데
 
존리 : 뭐 한번 볼 때 거슬릴 정도는 아니고, 5번 쯤 보면 약간 거슬릴 지도...
 
충달 : 나도 불만족스러운 부분들이 있긴 해.
 
존리 : 되게 칭찬 많이 하더니?
 
충달 : 전체적으로 보면 칭찬해줘야지. 근데... 좀 뻔하다고 할까? 특히 후반부로 갈수록 진지한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그 이야기들을 풀어내는 에피소드들이 좀 뻔했어. 근데 따지고 보면 제목도 잖아.
 
존리 : 그걸 노린 걸 수도 있어.
 
충달 : 응. 뻔한 커플들 얘기를 노린 거라....
 
존리 : 흔한 사랑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흔한 에피소드를 넣은 것이기 때문에, 새롭지 않다고 비난하는 것은 감독 입장에서는 억울한 부분도 있겠지.
 
충달 : 근데 문제는 지루해 지니깐... 시나리오만 따지고 보면 확실히 루즈해지는 면이 있어. 대신에 그걸 다른 부분에서 잡아줬기 때문에, 뭐 이걸로는 닦달하지 않는 걸로... 사실 깔려고 하다보니깐 나오는 이야기들이지 영화를 감상할 때 있어서는 별 무리는 없었어.
 
존리 : 기본적으로 결함이 없는 시나리오였으니깐.
 
충달 : 시나리오에 대해서, 구조적인 부분에 대해서 언급하고 싶은 게 있어. 일단 네가 말한 대로 인터뷰가 나중에 다큐영화로 나온다는 설정은 나도 좀 별로였어. 그 점을 빼놓고 살펴보면, 중간에 등장인물들의 인터뷰 장면이 나오는 게 좋았어. 등장인물의 변(辯)을 듣는다는 기분이었어. 연애를 하다보면 서로의 입장이 달라서 싸우게 되는데, 그럴 때 상대방의 변을 듣게 되니깐. 관객으로 하여금 객관성을 유지하게 해주더라고. 이 영화가 등장인물에 너무 감정이입을 하거나 몰입을 하면 안 돼. 연출적인 부분에서도 관조적인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고. 이런 인터뷰 형식을 차용한 구성이 관조적이고, 타자의 입장, 객관성을 유지하는데 큰 도움을 주는 거지.
 
존리 : 감독이 관객과의 거리감을 두려고 했던 의도와 잘 맞아 떨어졌다고 봐. 타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기 때문에 자신의 연애에 대해 더 고민할 수 있게 만든다고 봐. 그리고 마지막 다큐영화가 구린 설정이긴 한데, 그래도 어쩔 수 없다고 느껴지기도 하는 게, 그 영화를 보러갔다가 다시 만나거든.
 
충달 : 그래. 둘이 다시 만나게 되는 계기가 있어야 되는데, 그런 면에선 상당히 설득력 있는 장치지.
 
존리 : 만약에 장영이 정말로 해외파견을 나갔다가 거기서 우연히 동희가 여행을 와서 만났으면... 정말 쓰레기였을 거야 그건;;
 
충달 : 아까 전에도 짜임새 있다고 얘기했는데, 이 영화에는 ‘우연’이라는 요소가 없어. 차라리 억지스러운 설정을 넣더라도 필연적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겠다는 의지가 있는 거지.
 
존리 : 더구나 등장인물의 의지가 들어있는 필연이었으니깐. 다시 보고 싶다는 의도와 감정들을 상황만 봐도 알 수 있게 해주잖아.
 
충달 : 장영이 영화를 보러간 게 아니었거든. 동희 찾다가 없으니깐 그냥 나와 버린 것만 봐도.
 
존리 : 구리기는 하지만, 이해해줄 만은 하다.
 
충달 : 이런 면면들을 보면 여러 해 동안 공을 들였던 시나리오라는 생각이 들어.
 
존리 : 입봉작이니까 아무래도 공을 들였겠지.
 

   


  라미란=섹시
 
충달 : 이 영화에선 등장하는 캐릭터들에 대해서 한번 이야기 해봤으면 좋겠어.
 
존리 : 어떤 캐릭터에 대해서?
 
충달 : 모든 캐릭터에 대해서. 일단 어떤 캐릭터가 제일 인상적이었어?
 
존리 : 아~ 내가 뺏어가는 것 같은데? 난 손차장이 제일 인상적이었어.
 
충달 : 크으~
 
존리 : 손차장은 역시 탕비실에서 담배피던 장면이 어쩜 사람이 그렇게 섹시하고 카리스마가 넘치는지! 분명히 뒤에 금연이라고 적혀 있는데, 거기서 담배를 딱 물고 두 모금 빤 다음에 동희가 들고 있는 커피잔에 담배를 던져 넣으면서 “맛있게 먹어!” 하고 가는데, 그 한 장면만으로도 그야말로 씬 스틸러라는 말이 어울리는 장면이었어.
 
충달 : 어떤 느낌이었어? 나 같은 경우는 굉장히 섹시했어.
 
존리 : 나는 그 카리스마가 굉장히 강렬했어. 손차장이 그 시점에서 느꼈을 감정은 분명히 차가운 분노였어. 뭔가 무서운데 되게 섹시해.
 
충달 : 정말 씬 스틸러라는 말이 어울렸지. 근데 솔직히 라미란씨가 섹시한 외모가 아닌데 말이야.
 
존리 : 그 왜 그 바로 앞 장면에 탈의실에서 “이혼했어.” 라고 말한 직후에 옷을 갈아입느라고 속옷만 입고 있는 뒤태가 나오는데, 그 몸매가 사실 객관적으로 핫 하다고 할 만한 바디는 아니야. 근데 묘하게 섹시하다? 크크크. 그 장면이 되게 섹시해.
 
충달 : 라미란씨가 토크쇼에서 19금 토크로 유명해졌는데, 본인이 그런 색기를 가지고 계신 것 같아. 절~대 섹시한 외모가 아닌데, 섹시해. 앞으로 이런 섹시함을 더 부각시켜주는 그런 배역을 맡았으면 좋겠어. 한동안 아줌마라던가, 상궁이라던가, 이런 역할만 맡아가지고 아쉬워.
 
존리 : 조금 다른 역할...
 
충달 : 개인적으론 <라퓨타>에 나오는 해적 여두목 역할 같은 거 맡았으면 어떨까 싶어. 범죄 집단의 여두목 같은 거.
 
존리 : <무방비 도시>에서 김해숙씨가 맡았던 역할이 생각나네. 사실 김해숙씨 외모는 너무 푸근한 느낌이 있어가지고 아쉬움이 있었는데, 차라리 거기서 라미란씨가 맡았었다면 더 강렬하지 않았을까 싶어.
 
충달 : 손차장이 제일 좋았다. 라미란씨가 섹시했다. 이렇게 정리해야겠네. 나도 손차장이 제일 좋았어. 그 다음을 생각하면 역시 박계장. 박계장이 영화 속에서 고생과 찌질함까지, 갖은 고초를 다 받아냈으니깐. 뭐랄까 불쌍한 현대인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달 까.
 
존리 : 심지어 연애도 안 해. <연애의 온도>인데 연애도 안 해.
 
충달 : 근데 연애 못할 것 같아.
 
존리 : 차도 새로 뽑았다는데… 분명히 연애 한번 해 보려고 뽑았을 텐데, 근데 연애 못할 것 같아.
 
충달 : 다른 캐릭터들이 집착에 의한 찌질함을 보여준다면, 박계장은 내추럴 본 찌질함이라;;;
 
존리 : 타고나길 찌질하게 태어났어.
 
충달 : 불쌍하긴 한데 답이 없다.
 
존리 : 박계장을 연기한 김강현씨가 연기를 잘한 것 같아. 그래서 아마 거의 같은 캐릭터로 <별에서 온 그대>에서 천송이 매니저 역할을 맡게 된 것 같아.
 
충달 : 매니저란 직업에 정말 잘 어울린다. 크크크.
 
존리 : SNL 극한직업! 크크크.
 
충달 : 그럼 이제 두 주인공에 대해 얘길 해보자. 일단 이동희란 캐릭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존리 : 좀 이상한 것 같아. 인간적으로 어울리고 싶지 않은 느낌이 강하게 들어.
 
충달 : 아까 전에 여성감독이다 보니 이동희라는 캐릭터의 현실감각이 떨어진다고 말했는데, 그 점에 대해 얘기해줄래?
 
존리 : 우선 거슬렸던 모습이 많았어. 우선 여자 친구 앞에서 태연하게 담배를 뻑뻑 피는 점. 둘째로 폭언도 하고. 심지어 아무리 헤어졌다고 해도 거의 폭력 행사 직전까지 가. 이것만 봐도 ‘저런 애 내 주변에 없는데?’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충달 : 내 여동생이 동희랑 사귄다고 그러면 진짜 죽여 버릴 거 같아.
 
존리 : ‘이런 애랑 도대체 왜 연애를 하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드니깐, 영화의 근간이 흔들리는 것 같아.
 
충달 : 현실감각이 떨어질 정도로 이상한 남자라는 말이지. 그에 반해서 장영이란 캐릭터는 어느 정도 현실성이 있어. 민차장하고 자고 나서 몰래 나온다던가. 헤어지고 나서 집안정리를 한다거나. 특히 가짜미소를 짓는 장면이 많았는데, 인간관계나 사회생활을 위해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들의 고충이 드러나는 것 같아서 현실성이 있어보였어.
 
존리 : 그럼 김민희씨의 연기력도 그 이미지에 많은 기여를 했겠네.
 
충달 : 그렇지. 내가 두 주인공 캐릭터를 시나리오의 구성과 관련해서 얘기하고 싶은 게 있어. 앞부분이 ‘찌질의 온도’라고 얘기했잖아. 근데 그 부분에서 둘이 나가도 너무 나갔어. 각각의 얘기들을 따로따로 봤으면‘사람이 한번쯤은 저렇게 미친 짓도 하겠지.’ 싶은데, 그걸 다~~~ 모아놓고 행동하니깐, 이건 완전 미친놈, 미친년이 따로 없는 거야. 연애는 둘째 치고 완전 사이코인거지. 너무 심하더라고.
 
존리 : 특히 우리 꼬부기 스토킹 할 때! 심지어 전화로 사기 치는 와중에 수업 중에 전화 받아도 되냐고 깐족대기까지 해. 크크크.
 
충달 : 둘이 정말 너무 나간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뒤에서 진지한 얘기를 하려면 캐릭터를 이렇게 막장상태로 놔두면 안 되거든. 그래서 손차장 결혼식 날 300만원을 돌려주면서 어느 정도 캐릭터들을 정상인으로 돌려놓으려는 노력을 했다는 점. 그 부분을 캐릭터 설정과 관련해서 칭찬을 하고 싶어.
 
존리 : 캐릭터를 극단으로 몰고 갔다가 다시 중립으로 돌려놓았군.
 
충달 : 그걸 중립으로 안돌려 놨으면, 뒷얘기가 공감이 안 되니깐. 그나마 좀 중립으로 돌려놔서 진지한 얘기가 됐지.
 
존리 : 그런 면에서 <싸움>이 왜 망했는지 알 것 같네.
 
충달 : 그 영화는 정말 끝까지 가지. 브레이크가 없어.
 
존리 : 그걸 보여주려는 영화이긴 했지만, 연기가 안 되다 보니깐 그런 건지...
 
충달 : <싸움>이라는 영화를 잘 만든 버전의 영화가 있어.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
 
존리 : 아~~ 그렇네.
 
충달 : 싸울거면 끝까지 가야지. 크크. 아무튼 캐릭터를 어느 정도 정상인으로 돌려놔서 뒷얘기가 가능했다는 점. 시나리오 단계에서 캐릭터를 정말 잘 만들었다고 생각해.

▲ "그으으음연? 인정할 수 없어!"




 
 
  진부함이 주는 여유
 
존리 : 연출 면에서 가장 칭찬하고 싶은 게, 여자 감독이어서 그런 건지 김민희의 감정을 정말 섬세하게 잘 잡아냈다고 생각해. 특별한 카메라 워킹을 사용한 건 아니지만 장면에서 가장 효과적인 촬영이 어떤 것인지 고민한 흔적이 보이고, 김민희가 그것에 부응해준 느낌도 있고.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장면이 두 군데가 있는데, 첫 번째는 민차장하고 모텔에 갔다가 아침에 나오는 장면. 정말 ‘주섬주섬’이란 말이 이렇게 잘 표현해 낼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모텔을 나서는데, 나설 때 얼굴은 안 잡아주고 다른 신체부위를 단편적으로 잡아주잖아. 그 속에서 장영이 어떤 감정인지 공감이 많이 되더라고. 두 번째로는 장영이비오는 놀이공원에서 밥 먹다 말고 음료수 사온다고 나와서 벤치에 앉아있는 부분이 있었는데, 거기가 왠지 모르게 너무 좋더라고. 이동희가 찾으러 나왔는데 처음엔 이동희한테 포커스를 맞췄다가 앵글이 뒤로 쑥 빠지면서 둘을 잡는데 동희가 불렀는데도 돌아보지 않고 울고 있어. 장영이 상처를 많이 받았다는 느낌. 그 푹 젖어있는 모습 하며, 상실감이 절절히 느껴졌어.
 
충달 : 난 우선 영화 전체적인 연출 컨셉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 일단 영화적으로 기교를 많이 안 부렸어. 연출이 도드라지게 표현하지 않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거든. 이 영화는 연출이 드러나지 않아야 했어. 타자의 입장에서 객관성을 유지한 채로 두 주인공을 바라봐야 했기 때문에, 그 둘의 감정에 극단적으로 몰입하는 연출이 없었지.
 
존리 : 인터뷰라는 형식을 차용해서 시작을 했기 때문에, 그 기조를 유지했다고 봐야지.
 
충달 : 그런 객관적인 연출이다 보니, 연출력이나 감독의 특색이 쉽게 드러나진 않는데, 그럼에도 드러나는 장면들을 몇 개 꼽자면, 우선 아까 언급해준 모텔에서 나오는 장면. 어떤 남자와 원나잇을 했다는 죄책감이나 허무함을 잘 느끼게 해줬어. 특히 모텔 입구를 나설 때 화면이 화악 밝아지는 장면이, 마치 <타짜>에서 밤새 도박하고 해 뜨고 나왔을 때 눈부셔 하는 느낌이랄까. 이청준 단편소설 <눈길>에 보면 노모가 아침햇살에 눈이 부셔 돌아가지 못했다는 부분이 나오는데, 그런 느낌이었어. 이런 밝은 곳에 내가 어울리지 않는 것은 아닌가 하는 죄책감이 느껴졌어. 두 번째는 민차장 때문에 대판 싸우고 나서 다시 재회하는 장면에서‘엇갈린 길’이라는 상징성 강한 장소가 등장하는데, 이 상징이 전체적인 주제와 연결이 되는 복선이라 마음에 들었고.
근데 마지막 부분에 롤러코스터가 또 하나의 상징으로 등장하는데, 이거는 좀 아쉬워. 너무 뻔한 연출이라서. 연애는 롤러코스터 같다는 얘기는 너무 식상한 이야기라.
 
존리 : 그렇지만 롤러코스터가 끝나는 장면은 좋았잖아?
 
충달 : 어 그 전환은 참 좋았지. 그래도 롤러코스터로 표현한 게 참 식상했어.
 
존리 : 그런 식으로 따지면 이 영화는 식상한 거 투성이니깐.
 
충달 : 뭐 좋게 봐주면, 영화가 끝날 때가 됐으니 정리도 좀 해야겠고, 하고 싶은 얘기가 뻔한 커플 얘기니깐 뻔하지만 분명하게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서 롤러코스터를 등장시켰다고 봐줄 수도 있겠지.
 
존리 : 난 좀 아쉬웠던 장면이 중간에 영화에서 베드씬을 보다가 이동희가 불편해서 빠져나오는 장면이 있는데, 무슨 장면인지 보여주지 않은 게 좀 아쉬워. 등급도 청불 인데, 그냥 보여주면 되잖아.
 
충달 : 돈이 문제지. 영상 아니고 음성만 들려주는 게 싸게 먹히잖아.
 
존리 : 그래서 처음 봤을 땐 쟤들이 뭔 장면 보고 갑자기 저러는지 이해가 안됐거든. 뭐 내가 비행기에서 봐가지고 소리가 잘 안 들려서 그런 탓도 있기야 하겠지만 영상을 넣어줬으면 훨씬 알기 쉬웠을 텐데.
 
충달 : 난 그 장면에서 실제 영화장면을 사용한다면 <은교>의 베드씬 장면을 넣었으면 좋았을 것 같아. 그런데 그러면 사용료를 지급해야 되니깐. 그러니깐 음성만 따로 녹음해서 했겠지. 녹음 참여한 배우들은 좀 민망했을 것 같긴 한데... 크크크.
 
존리 : 음성 얘기를 하니깐 얘기할게 있는데, 이 영화가 음성에 신경을 많이 쓴 것 같아. 인터뷰 하는 카메라로 찍는 듯 한 기분이랄까? 옥상에서 싸우는 장면을 보면 카메라가 촬영하는 위치에 따라서 소리가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하는 게 느껴져. 의도적이라고 생각되는 게 소리는 멀게 들리긴 하지만 대사는 희미하게 들리는 건 아니거든. 카메라가 가까워지면 소리도 가까워지고 멀리서 찍을 땐 멀게 들리고. 이런 사소한 부분에도신경을 썼다고 생각해.
 
충달 : 그런 부분도 객관성을 유지하는 데에 일조한다고 봐야겠지.
 
존리 : 눈에 띄지 않는 부분에서도 신경을 많이 쓴 것 같아.
 
충달 : 전체적으로 연출이 담백했어. 객관적이라는 기조 상 절제를 할 필요가 있었는데, 잘 한 것 같아.
 
존리 : 사실 입봉작에서 이렇게 관조적이고 담담한 어조를 유지하기가 힘들 것 같기도 한데.
 
충달 : 좀 욕심이 날 법도 한데.
 
존리 : 배우들이 연기력이 안 되는 것도 아니니깐. 감정 쫙 뽑아내게 찍었어도 됐을 텐데, 그런 욕심을 잘 억제했다고 봐야지.
 
충달 : 그 관조적인 면이 드러나는 장면 중에 하나가, 김과장 마누라가 손차장 갱킹들어왔을 때, 클래식 음악 깔아놓고 슬로우로 보여주거든. 둘의 감정이 폭발하는 장면인데, 현장 사운드 없애고, 슬로우로 돌리니깐, 정말 남의 일이 돼 버리더라고. 관객이 과몰입하지 않도록 신경을 많이 쓴 것 같아.
 
존리 : 몰입을 안 하게 해서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집에 가는 길에 숙제가 많이 떠오를 것 같아.
 
충달 : 자기를 돌아보게 만들지.
 
존리 : 이 영화를 보고 나온 많은 커플들에게 숙제를 안겨줬겠지. 보고 나서 헤어진 커플 제법 많을 것 같은데.
 
충달 : 자기를 돌아보게 만든다고 했잖아. 영화에서 대사로 직접적으로 내용을 전달하지는 않아. 배우들의 연기나 상황에 기대는 편인데, 그럴 때마다 뻔하긴 하지만 상징적인 것들을 많이 넣어뒀어. 정말 뻔한 상징인 롤러코스터도 그렇고, 엇갈린 길도 그렇고, 마지막에 짜장면 집이 망했다는 것도 그렇고. 이걸 직설적으로 대사로 풀지 않고 상징으로 표현해서 좋은 게 뭐냐면 관객이 생각을 하게 만든다는 점이야. 뻔해서 식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너희들도 이런 고민을 해줘’ 하면서 생각할 여지를 주거든. 영화가 막 몰아붙이거나 대사가 쏟아지면 관객이 스스로 생각할 여유가 없어지거든. 근데 배우의 연기와 상징으로 우회적으로 이야기 하다 보니 관객이 생각할 여유가 생긴다는 거지.
 
존리 : 클리셰를 효과적으로 사용했다고 할 수도 있겠네.
 
충달 : 그렇게 따지면 클리셰도 나름 장점이 있다고도 볼 수 있겠네.
 
존리 : 다만 생각을 많이 하게 되니깐 보고나서 많이 헤어졌을 것 같다는 거.
 
충달 : 생각이 많으면 안 돼. 크크크. 연출 면에선 클리셰가 많아서 식상하긴 하지만 나름 장점도 있고, 전체적으로 짜임새 있고 유기적이었다고 정리할 수 있겠네

▲ 식상하지만 적절한 마무리였던 롤러코스터씬. 특히 이민기가 10년은 늙어보인 점이 인상적이다.




 
 
  정점의 김민희, 기대되는 하연수
 
충달 : 이 영화의 가장 재밌는 씹을 거리인 연기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최고의 연기는 누구였다고 생각해?
 
존리 : 말할 것도 없이 김민희지.
 
충달 : 어떤 점이 좋았어?
 
존리 : 우선 생활연기(?)를 이 정도로 하는 배우를 원로 배우 중에서도 못 본 것 같아. 나문희씨나 윤여정씨 조차도 연기할 땐 연기하는 거로 보이거든. 그런데 김민희는 진짜 김민희가 저런 애일 것 같아. 진짜 스토킹도 할 것 같고. 제일 놀라웠던 건 인터뷰를 하는 장면인데, 그냥 길가는 사람 잡고 인터뷰 하면 저렇게 말하거든. 버벅거리고 더듬거리고 심지어 동어반복을 하고. 이게 왜 신기했냐면, 어떤 벤치마킹을 할 게 없을 것 같은 연기인데 그걸 하니까 너무 신기한 거지.
 
충달 : 그치? 듣도 보도 못한!
 
존리 : 뭘 보고 저런 감정을 표현하는 거지? 싶어서 놀라울 따름이지.
 
충달 : 정말 인터뷰 하는 연기를 어떻게 한 걸까? 심지어 배우들은 인터뷰를 많이 하잖아. 연예가 중계에서 인터뷰 했을 때 일반인처럼 어설프게 인터뷰 안하거든. 그런데 일반인이 인터뷰하는 걸 뭘 보고 한 건지.
 
존리 : 그야말로 레퍼런스가 없는 연기지.
 
충달 : 나도 최고의 연기는 김민희씨라는 데에 동의한다. 내가 개인적으로 정말 놀라웠던 건, 가짜미소를 지을 때와 진짜미소를 지을 때의 표정이 달라. 행동심리학에서 말하길 얼굴에는 진짜 미소를 지을 때만 쓰는 뒤센 근육이라는 부분이 있어. 근데 그 근육이 움직이는 연기와 안 움직이는 연기가 다른 거야. 생활연기라고는 했지만 진짜 메소드 연기를 한 거야. 행복한 순간에 자기가 행복했다고 암시를 걸어버린 것 같더라고. ‘저게 연기로 컨트롤이 되나?’ 하는 생각이 드니깐 무섭더라고;;;
 
존리 : 김민희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연기력에 대해 의문부호를 달고 다녔는데, 언제 이렇게 대단하게 된 건지.
 
충달 : <여배우들>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지.
 
존리 : <여배우들>때는 등장하는 배우들이 워낙 쟁쟁하니깐 밀릴 줄 알았는데, 안 밀리니깐 놀란 거지, 연기가 막 따봉 수준은 아니었거든. 그런데 어느 순간 따봉이 됐어.
 
충달 : 가짜미소와 진짜미소를 나눠서 쓸 수 있다니, 진짜미소는 본능이잖아. 의식적으로 조절 되는 게 아닌데.
 
존리 : 그 순간에 완벽히 이입이 된 거지. 대단한 연기를 한 거야.
 
충달 : 또 무서운 점이. 다른 배우랑 비교했을 때야. 이민기씨도 연기를 잘했는데, 근데 생활형 연기를 잘한다고 느껴질 때는 상황이 그런 점을 돋보이게 하는 점이 많았어. 아파서 낑낑 댄다거나, 짜장면에 밥 말아 먹는다거나. 술 마시고 다음날 회사에서 씻는다거나. 근데 김민희씨는 그런 상황은 청소 정도? 오로지 자기 연기만으로 실생활 같이 보이게 했으니깐.
 
존리 : 그냥 걸음걸이도 자연스러워. 이민기는 캐릭터 자체의 깊이가 부족하다보니 그런 한계 때문에 딱 평타 이상 정도의 연기였다고 생각해. 그런데 어쩌면 김민희가 디테일하고 구체적으로 캐릭터를 잡아왔기 때문에 감독이 김민희 위주로 후작업을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 정말 깊이 있는 연기를 보여줬거든. 놀이공원 가기 전에 김밥 쌀 때 막 좋아하던 장면이나, 그 뒤에 동희가 늦게 와서 툴툴대는 것도 그렇고.
 
충달 : 영화의 후반부가 영화의 본론이고 진지한 이야기다 보니깐 좀 루즈해질 수가 있는데, 그 루즈함을 날려 보내는 게 김민희씨의 연기였어.
 
존리 : 혼자서 하드캐리 했다고는 말을 못하겠지만, 그래도 그 와중에 단연코 빛나는 연기였어.
 
충달 : 좀 더 센 연기를 맡아도 이런 연기가 유지가 되면 정말 좋을 것 같아. 만약 김민희가 <아메리칸 허슬>의 제니퍼 로렌스 역할을 맡았다면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나는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해.
 
존리 : 김민희가 그 배역을 맡으면 감당할 수 있는 감독이 없을 것 같은데.
 
충달 : “봉”급이면 되나?
 
존리 : 봉은 멜로 안 찍잖아. 크크크.
 
충달 : 김민희씨 찬양은 여기까지 하고. 이민기씨도 연기 잘했어.
 
존리 : 잘했긴 잘했는데, 김민희가 워낙 잘해서 밀릴 수밖에 없어. 다른 배우들도 연기 정말 잘 했고, 감독이 모든 캐릭터들에게 애정이 있다 보니 연기력이 되는 배우들이 자신의 역량을 다 보여줬지만, 그 와중에 너무 압도적으로 빛나는 하나가 있다 보니깐 기억이 잘 안 나네.
 
충달 : 조연들이 감독의 요구에 맞게 연기를 해준 게 참 고맙기도 해. 특히 하연수씨가 의외로 괜찮았어. 보통 조연 중에 얼굴마담으로 나오는 분들이 연기력이 안 좋을 때가 많아. 근데 정말 괜찮더라고.
 
존리 : 내가 느끼기엔 좀 안 어울리는 옷을 입은 느낌도 있긴 했어. 너무 그냥 귀여운 얼굴이니깐 화내는 게 이상하더라고.
 
충달 : 화내는 것도 귀엽던데
 
존리 : 좀 어색했어. 꼬부기가 화내고 있으니깐;; 그래도 전반적으로 연기가 좋았어. 특히 알바하면서 고객응대용 미소를 보여주는데 안 어색하더라고. 진짜 착하고 순수해 보이는 거야.
 
충달 : 그 장면을 김민희씨가 했으면 가짜미소가 작렬했을 텐데
 
존리 : 하연수가 맡은 배역이 그런 캐릭터가 아니었으니깐.
 
충달 : 흔히 하연수씨가 연기적으로 보여준 것에 비해 인지도가 과하다 라는 평이 많은데, 맞는 말이긴 해. 얼굴로 떴으니깐. 근데 연기가 많이 떨어진다고 흠잡기에는 연기가 좋았어.
 
존리 : <감자별> 보면 여진구랑 합을 맞췄는데 되게 잘했어.
 
충달 : 여진구랑 합이 맞는다면 연기 잘 하고 있는 거네.
 
존리 : 시트콤 연기니깐 과도한 리액션을 취하고 웃음을 유발하는데도 크게 어색하지 않더라고. 얼굴만으로 뜬 거는 아니구나 싶더라.
 
충달 : 본인의 커리어에 비해 인지도가 과하긴 하지만, 그런 인지도가 아깝지 않을 정도의 연기력은 있다고 생각해.
 
존리 : 앞으로 주목할 만한 배우지. 다만 마스크 적인 한계가 있을 것 같다는 걱정은 있어. 꼬부기 얼굴로 격정멜로 같은 건 못 찍잖아.
 
충달 : 그러고 보면 외모가 참 제약이 많이 들어가는 외모네.
 
존리 : 독특한 외모라서 눈길을 끌긴 하지만, 원탑 주연으로 쓰기엔 지루할 수도 있어.
 
충달 : 너무 귀엽기만 하니깐. 하긴 <연애의 온도>의 주연에도 안 어울리는 얼굴이고, <화차> 같은 영화는 정말 안 어울리고.
 
존리 : 괜히 안 어울리는 배역을 연기력으로 극복하려고 하다가 문근영처럼 돼 버릴까봐 걱정이 돼.
 
충달 : 문근영씨도 참 마스크 때문에 힘들었지.
 
존리 : 연기력에는 문제가 없지만, 마스크를 극복하려다가 무리수가 많이 나왔지.
 
충달 : 그러고 보면 여배우 기근이라는 말이 더 와 닿네. 좀 주목할 만하면 제약이 있고. 최근에 주목받는 심은경씨도 약간 제약이 있는 마스크야. 그렇게 따졌을 때 제약 없고, 젊고, 예쁜 여배우가 누구 있을까? 일단 김민희씨도 딱히 제약은 없는 마스크이긴 해
 
존리 : 뭐 송혜교라던가, 전지현... 음... 전지현씨는 마스크가 아니라 이미지에 제약이 있는 것 같고.
 
충달 : 하지만 송혜교씨도 이제 좀 나이가 들었고, 손예진씨가 정말 여기저기 다 어울리는 마스크인데, 역시 나이가... 그래서 개인적으로 좀 기대했던 배우가 신세경씨였어.
 
존리 : 나는 강소라씨가 좀 기대 됐었어.
 
충달 : 근데 차기작이 안나와.
 
존리 : 그러게 차기작이 좀 뜸하네.
 
충달 : 김민희씨보다 좀 젊은 배우로 김옥빈씨. <박쥐> 보면서, 이 배우한테도 캐릭터의 한계는 없구나 싶었어. 근데 요즘 작품이 뜸하네. (드라마를 안 봐서 ^^;; 최근 유나의 거리 주연이시더군요.)
 
존리 : 연애하느라 바빠서 그런가보지.
 
충달 : 음... 연애하시는구나. 근데 따지고 보니깐 여배우 기근이라기엔 좋은 여배우 참 많은데?
 
존리 : 인재 풀은 있는데 꽃을 못 피우고 있어서 그렇지. 박보영씨만 해도, 마스크의 제약이 분명 존재하는 배우인데, 그걸 무시하고 출연한 영화가 있어. <피 끓는 청춘>이라고.
 
충달 : 내가 이름도 생소한 거 보니 정말 망했나 보네.
 
존리 : 실제로도 망했고, 영화 보는 내내 오글거려서 쉬었다가 봐야 할 정도로 과잉으로 가득한 영화였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의 연기가 탄탄하게 받쳐주니까 배우는 빛나더라고. 거기서 박보영이 일진 짱 역할을 맡았는데 캐릭터도 살아있고, 감정을 잘 표현했어. 근데 그냥 안 어울렸지. 애기처럼 생겨서 뭐하는 건가 싶었어. 배우한테 마스크의 한계는 절망적인 얘기일 수도 있는데, 그런 한계가 드러나는 사람들의 연기가 두드러지니깐 좀 아쉬운 면이 있어.
 
충달 : 근데 그런 면을 고려했을 때 이 영화에는 정말 특이한 분이 나오네.
 
존리 : 누구?
 
충달 : 라미란씨. 본인의 마스크와 전혀 반대인 매력을 보여주시는데.
 
존리 : 마스크의 한계를 캐릭터로 뒤엎어 버리는 분이죠.
 
충달 : 다른 분들도 라미란씨처럼 마스크를 극복해주면 좋겠네.
 
존리 : 근데 난 라미란씨는 마스크의 한계도 있지만, 마스크의 덕을 보는 면도 있다고 생각해서...
 
충달 : 맞아. 반사이익으로 더 섹시하게 느껴질 수도 있으니깐. 어쨌든 라미란씨처럼 마스크를 뛰어넘는 매력을 보여줬으면 좋겠네.
 
존리 : 가능하지만, 하연수에게 그런 걸 기대했다가 망할 것 같아서 조심스럽네.
 
충달 : 그래도 하연수가 연기를 못하진 않으니깐.

▲ 나이가 깡패 ㅠ,ㅠ 김민희니뮤....



 
 
 
  총평
 
충달 : 전체적으론 칭찬을 해주고 싶은 영화야. 일단 시나리오가 굉장히 유기적이고 짜임새 있으니깐. 아까 말했듯이 그라데이션처럼 자연스럽게 전개되는 점이 정말 좋았거든. 연출에선 클리셰가 많지만 관객에게 생각을 하게 해준다는 장점도 있어. 시나리오와 연출에서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기 때문에 감정전달이 뚜렷하지 않은데, 그 부분을 배우들의 연기가 확실하게 표현해주고 있어서... 서로의 부족한 부분들을 잘 다른 부분들이 잘 커버해주고 있어서, 흠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 영화였어.
 
존리 : 이 영화는 명작의 반열에 오를 수가 없는 영화이고, 애당초 그럴 생각도 없는 영화기도 해. 근데 좋은 영화라고는 할 수 있을 것 같아. 좋은 영화에 필요한 것은 연출과 각본의 기본기야. 기본기만 되고 좋은 배우만 있다면 되는 거거든. 여러 요소 중에서 뛰어난 한 가지가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다른 부분은 기본기만 갖추려고 노력을 해도 된다는 보편적인 사실을 확인하게 되는 영화였어. 아 근데 영화 속에서는 비록 김민희가 최고였지만, 결국 이민기 혼자 복 터진 영화지.
 
충달 : 하연수 거르고 김민희 크크크.
 
존리 : 김민희 거르니깐 11살 어린 하연수가 나와. 그리고 하연수를 거르니깐 다시 김민희가 나와. 이건 진짜 이민기 혼자 복 터진 영화야.
 
충달 : 심지어 베드씬 나온 민차장은 베드씬이 서로 등 돌아 누워있는게 다였는데 크크.
 
존리 : 어쨌든 이민기 부럽다.
 
충달 : 영화가 좋은 영화를 넘어서 마스터피스가 되려면 그 영화에 철학이 담겨야 된다고 생각해. 지난번 <어바웃 타임>은 감독특유의 철학은 있으나, 답을 다 말해주는 연출 때문에 그 철학을 잘 살려내질 못했어. 근데 <연애의 온도>는 이미 수천 년 동안 인류가 겪어온 식상한 사상이 담겨있고 더불어 식상한 연출로 표현하기도 했지만, 이 영화를 보고서 관객이 고민하고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어바웃 타임>과 정 반대의 방식으로 삶을 다루고 있다고 생각돼. 감독이 영화에서 이야기에 담긴 철학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능력은 있다고 보기 때문에 폴 토마스 앤더슨처럼 무겁고 진중한 이야기를 맡더라도 다룰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
 
존리 : 아직 젊으니깐 후일을 기대해봐야겠지.
 
충달 : 극에서 나오는 생각과 고민과 철학을 자연스러운 시나리오 안에서 관객의 마음속에 생각의 씨앗을 심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야. 근데 그걸 아주 잘 해냈거든. 다만 그걸 해냈지만 거의 역사의 시작과 비슷할 정도로 묵힌 소재다 보니깐 명작이라는 칭호를 붙이기는 부족하다고 봐. 그래도 그걸 잘 표현했다는 점에서 확실히 칭찬하고 싶어.
 
존리 : 그러니깐 원래 명작이 될 생각이 없었던 거지.
 
충달 : 영화가 시류만 잘 탔으면 300만까진 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존리 : 확실히 180만은 좀 적다.
 
충달 : 더 흥행할 만한 값어치는 있는 영화야.
 
존리 : 영화보고 깨지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 게 아닐까 크크.
 
충달 : 이 영화를 연극 무대로 옮겨도 좋을 것 같아. 김민희씨가 고대로 배역을 맡아서 코앞에서 김민희의 연기와 오오라를 느끼고 싶다는 욕심이 들더라고.


 
 
 
  한줄평
 
충달 : 지속 가능한 연애를 위한 영화 ★★★☆
 
존리 : 우리 모두의 찌질한 연애담 ★★★☆




※ 팟캐스트 방송 [미련한 연애 시네마]에서 이번 영화인 <연애의 온도>를 다뤄 봤습니다. 영화속 연애이야기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신 분들의 많은 청취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