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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쌤 윤PD

[리뷰]<명량> - 묵직한 역사의 감동


  올 여름 극장가는 사극 열풍이 불고 있다. 지난 주 개봉한 <군도>, 오늘 개봉한 <명량>, 다음 주에 개봉할 <해적>까지 100억 이상을 쏟아 부은 사극 대작 들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 주 <군도>에 다소의 아쉬움을 느꼈기에  <명량>에 더 많은 기대를 품은 것이 사실이다. 오늘 기다리던 <명량>을 만났다. 그리고 기대한 만큼의 만족을 느낄 수 있었다. <명량>에는 묵직한 힘이 실려 있었다.





  역사가 가지는 힘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와우 이야기를 해야겠다. 필자는 오픈베타 시절부터 시작하여 불타는 성전까지 와우를 즐겼다. 와우를 하면서 크게 감동을 받았던 부분은 RTS로 플레이 했거나, 이야기로만 들었던 장소를 내가 직접 걸어서 다닐 수 있다는 점이었다. 스톰윈드나 오그리마를 들어설 때의 감동은 가슴을 벅차오르게 만들었다. 와우에 비교 한다는 것이 묘하긴 하지만 <명량>을 보면서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책이나 교과서로만 들어온 이야기를 스크린을 통해 접하게 됐을 때, 가슴 깊숙한 곳에서 묵직하게 올라오는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영화라는 매체만이 가질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글로 읽는 것과 눈과 귀로 느끼는 것은 감성에 주는 영향력의 크기가 다르다. 
“살고자 하는 자는 필히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다.”
이 대사를 들었을 때 일어났던 울컥한 마음은 그 역사를 알고 있기에 우러나온 것이다. 혹자는 ‘국뽕’ 이라며 폄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애국주의에 기대지 않아도 역사의 현장에서 전해지는 감동은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신화나 전설에 열광하는 마음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 반대로 영화로 이순신을 접하고 이 동상을 보러오면 기분이 어떨까?






  전쟁이 가지는 힘

  사극의 특징으로 해체와 재구성을 들 수 있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새로운 극을 창조하여 그 시대에 있었을법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 사극이다. 어쩌면 판타지와 그 미덕이 일치한다고 볼 수도 있다. 다만 그 배경에 역사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명량>이 가지는 미덕의 종류는 다르다. 앞서 언급했듯이 ‘역사가 가지는 힘’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역사가 사극의 배경으로써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내용의 전면에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충실한 고증이 필수적이다. 역사의 현장에서 전해지는 감동은 그 현장을 설득력 있게 구현해야만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명량>은 이를 위해 전쟁을 구현해야 했다. 문제는 기존의 한국 사극들은 ‘싸움’을 그려냈을지언정 ‘전쟁’을 그려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지난주에 개봉한 <군도>의 액션을 필자가 식상하다고 한 이유도 이와 통한다. 그나마 국가 간 첩보전을 그렸던 <신기전>이 전쟁과 가까운 모습을 보여줬으나 이 또한 전략이나 전술이 없는 막싸움에 불과했다. 그러나 <명량>은 다르다. 명량의 전투에는 전략전술이 있고, 심리전이 있다. 더불어 고증에도 신경 써서 당시 조선군과 일본군의 주력 전술의 차이도 극명하게 보여준다. 감히 진정한 한국 최초의 전쟁 사극이라고 칭하겠다. 

▲ 전쟁이라는 그 규모만으로도 쾌감이 있다.






  최민식의 힘

  <명량>은 역사구현과 전쟁 액션에만 공을 들인 탓인지 인물에 대한 묘사가 평면적이다. 입체적 인물은 거의 없다. 특히 연기력을 인정받는 류승룡이 너무나 평면적인 모습만 보여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다른 인물들도 역사에 남은 개괄적인 평가에서 벗어나지 않는 모습이다. 그나마 드라마가 있더라도 캐릭터는 단순하다. 단 한명, 오직 이순신만이 살아있다. 성웅의 모습에서 노쇠한 인간의 면모까지 놓치지 않고 보여준다. 하지만 연출과 시나리오의 측면에서 이를 살려준다고 보긴 어렵다. 영화의 대부분, 특히 전투장면은 성웅 이순신에게 할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 이순신의 고뇌와 괴로움을 드러내는 것은 전적으로 최민식에 의한 것이라 하겠다. 연기 대가의 복잡한 표정과 미묘한 대사처리는 평범한 장면들에서도 이순신의 다양한 면모를 느끼게 해준다. 특히 시나리오 상 인간 이순신을 보여주는 유일한 장면에서 놀라운 연기를 보여주며 이순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자 노력했다. 최민식은 인터뷰에서 “가공의 영혼이 아니었기에 이순신 장군의 표정은 어땠을까, 내가 맞게 표현한 걸까? 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정말 외로웠다. 많은 스트레스 속에서 작업을 했다." 라며 이순신을 표현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음을 내비쳤다. 최민식의 힘이 아니었다면 이순신이란 인물을 이 정도까지 보여줄 수 없었을 것이다.

▲ 인터뷰에서 느껴진 최민식의 고뇌는 허세가 아니었다.






  다큐멘터리인가 사극인가

  역사와 재현이 가지는 힘이 강한 만큼 극으로서의 가치에 대해선 재고해야 될 듯하다. 앞서도 말했지만 사극의 미덕은 해체와 재구성에 있다. <명량>은 다른 가치를 내새웠다고 했지만, 이는 ‘극적인 재구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도 된다. <명량>의 시나리오는 그저 역사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보여줄 뿐이다. 연출도 비슷하다. 영화는 시종일관 기본적인 영상문법을 보여줄 뿐이다. 연출력을 드러내는 부분이 적다. 따라서 감독이 전하고자 했던 의도도 잘 드러나지 않는다. (없는 것은 아니다.) 이런 식이면 다큐멘터리를 만들라고 핀잔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연출과 진행은 묵직함으로 다가온다. 대부분의 한국 사극은 유머와 감동을 넘나들며 희로애락을 모두 녹이려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명량>에는 일체의 유머가 없다. 아니 없어야 한다. 12척으로 330척을 상대해야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유머를 녹이려 했다면 오히려 쌍욕을 던져줬을 것이다. 전설이 되었던 역사는 그 자취를 지긋이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을 준다. 극으로서 가치가 낮다던가, 국뽕에 불과하다고 비판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그 묵직한 감동을 필자는 분명하게 느꼈다.

  게다가 신선하지 않은가? 지금까지 전쟁을 <명량>처럼 규모 있고 충실하게 구현한 한국 영화는 없었다. <킹덤 오브 헤븐>이나 <마스터 앤드 커맨더>같은 영화가 충무로에서 나온 셈이다. 게다가 그 이야기가 우리가 알고 있던 역사이기 때문에 매니아 층만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힘이 있다. 상업영화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지 않은가?

▲ 포격부터 백병전까지 모든 전투가 훌륭했다.






  총평

  필자는 중국의 전쟁영화들이 부러웠다. <공자>라던가 <적벽대전>같은 작품을 보면 규모의 전투 즉, 전쟁을 느낄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명량>은 전쟁을 보여줬다. 무쌍도 없고, 비밀병기도 없다. 전략과 전술 그리고 심리전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를 묵직하게 그려냈다. 스크린으로 바라본 역사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을 줬다. 드라마 <정도전>을 통해 정통사극의 매력을 느낀 분들이라면 <명량>도 충분히 재밌을 것이라 생각한다. 





  한줄평

  묵직한 역사의 감동 ★★★★



※ 글의 통일성을 위해 본문에는 적지 않았으나 감독의 메시지와 관련하여 몇 마디 덧붙이겠습니다. 감독이 <명량>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은 ‘전쟁과 백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에선 탐망꾼과 그의 아내, 죽은 장수의 아들, 대장선을 구하는 백성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그리고 전투가 끝난 후 전투병이 아니라 노 젓는 병사들의 대사를 들려주었죠. 이순신의 대사에서도 충의의 방향이 백성이란 언급이 나오고, 그것이 보답 없는 ‘의리’라는 통찰을 보여주죠. 이것이 참 애매합니다. 뭐랄까 잘 섞이지 않는 기분이에요. 그래도 중요한 부분에서 울컥하게 만들기는 했지만 신파이상으로 다가오진 못했습니다. (그나마 개연성을 갖추고 있기에 극딜 하진 않았습니다만...)  뭐 그래서 ‘연출력’이라는 부분에 있어선 별로 좋은 평가를 못주겠습니다. <명량>이 성공한다 해도 김한민의 가치가 높아질 것 같진 않습니다.

※ 역사에 대한 조예가 깊진 못하나 제가 열심히 주워들었던 명량해전의 전투를 비교적 잘 구현했다고 봤습니다. 만약 영화 속 전투가 매우 사실적이라 한다면 이순신은 정말 전쟁의 신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전략적 위치 선정은 물론, 물길이라는 주변 환경의 변화를 이용할 뿐만 아니라 그 변화 타이밍에 맞춰 군의 사기를 끌어올리죠. 전략과 전술 그리고 그것을 한 대 묶는 심리전이라니!! 어떤 RTS에서도 이런 건 못 느낄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상대 장수한테 심리전을 거는 게 아니라 아군한테까지 심리전을 쓴 셈인데, 군중 심리전이라니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이 점도 대단하지만 이를 스크린에 구현했다는 점도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명량>은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 <명량>에 대한 여론을 바라보며 (추가사항)

대중적으로는 애국심을 자극하고, 고증에 있어서도 전투에 공을 들인 만큼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평가가 이루어 질거라 예상했는데, 현재 반응들이 극과 극으로 나뉘는 느낌입니다. 긍정쪽은 그나마 통일된 의견이 보이는 데 반해 부정적인 평가들은 그 내용이 서로 전혀 반대의 이야기인 경우도 있어서 꽤나 흥미롭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보아온 부정적 평가들에 대해 보충과 반론을 서술하고자 합니다.



1. 내러티브의 취약함.

댓글에서 온니테란님도 '스토리가 없는 느낌'이라고 언급하셨죠. 확실히 <명량>은 고전적 내러티브를 따라가지 않는 영화입니다. 일단 주인공을 중심으로한 갈등구조가 취약합니다. 이순신의 내적갈등, 왜 장수들간의 견제 같은 갈등 요소가 등장하기는 하나 이는 서브 플롯에 해당할 뿐입니다. 이순신과 구루지마의 갈등이 존재하지 않죠. 결국 극적 긴장감이 부족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재난 영화 등에서 자주 나오는 취약점과 동일합니다. 이순신에게 명량해전은 대립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마치 자연재해처럼 극복할 '난리'에 불과할 뿐이죠.

소설 <삼국지>는 적벽대전에서 이러한 극적 취약함을 제갈량의 이간질로 만회했습니다. 조조의 시 <동작대부>의 마지막을 '이교(二喬)를 동남에서 데려와서 아침저녁으로 함께 즐기리라'라고 바꿔 주유에게 전달하죠. 이를 통해 양쪽 사령관이 여자를 두고 개인적 갈등을 끌어올리도록 합니다. 허구와 사실의 간극이랄까요. 현실은 절대 극적이지 않은 법이죠.

이 취약함의 가장 큰 원인은 이순신입니다. 한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그렇기에 모두가 아는 인물을 다루는데 허구를 강화할 순 없는 노릇이죠. 개인적으론 이러한 진행과 연출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봅니다. 해당 내용은 본문에도 있으니 평가에 관한 것은 본문에서 확인해주시길 바랍니다.



2. 왜군이 너무 약하다. 대장선 혼자 무쌍하고 있으니 현실성이 떨어진다.

이 비판에 대해서는 절대 동의할 수 없습니다. 다른 시각이 아니라 틀린 시각이니까요. 실제 역사는 영화보다 더 일방적이었으며 사상자는 5명 밖에 되지 않습니다.(이것이 대장선만의 사상자인지 전체 사상자인지는 불명) 영화적 재미를 위해 일본군이 실제보다 훨씬 잘싸웠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현실을 픽션이 따라가지 못해서 생긴 사태라 하겠습니다.



3. 탐망꾼과 그의 아내, 백성들의 전투 가담

저도 이 부분은 <명량>의 최대 오점이라고 봅니다. 본문의 추가 부분에 언급했습니다.



4. 고증의 부족함

역사를 잘 모르는 저의 경우에는 전투를 잘 다뤘다고 생각했는데, 고증면에서 불만을 가진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전체적으로 큰 얼개는 지켜지고 있으나 디테일에서 오류가 많다는 지적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http://rigvedawiki.net/r1/wiki.php/%EB%AA%85%EB%9F%89/%EA%B3%A0%EC%A6%9D%EA%B4%80%EB%A0%A8)
이 의견을 피력하신 분의 말씀 중에 재밌었던 것이 "일본군이 너무 쎄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누구는 약하다고 하고, 누구는 강하다고 하고 ㅠ,ㅠ
극의 측면에서 변명을 해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의 기획과 연출 의도가 치밀한 전투 구현에 있었던 만큼 재미를 위해 고증을 거스른 점은 영화 자체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이라 보기에 마땅히 비판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