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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쌤 윤PD

<만추> - 가득한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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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용 감독과 탕웨이의 결혼이 세간의 화제다. ‘도대체 평범남인 김태용은 월드스타 탕웨이를 어떻게 꼬실 수 있었는가‘하는 가십성 호기심으로 접근한 작품이었다. 하지만 보고 난 후 남는 파장은 크고 여운은 길었다.

▲ '어떻게 꼬신거야?' 보기전엔 의문이었지만, 보고나면 당연한 일로 느껴진다






  애나(탕웨이)는 어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교도소에서 특별휴가를 나온다. 3일의 짧은 시간이 지나면 그녀는 다시 교도소로 돌아와야 한다. 훈은 2년 전에 미국으로 건너와 현재는 제비 노릇을 하고 있다. 그러다 마피아의 아내인 옥자(김서라)를 건드려 쫓기고 있는 신세이다. 캐릭터의 기본 설정에서부터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이 암시된다. 시애틀의 늦가을이라는 우중충한 배경 역시 쓸쓸한 기조에 한몫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애나로 하여금 마음을 걸어잠그도록 만든다. 그녀에게 새로운 인간관계는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버스에서 만난 훈이 갖은 추파를 보내도 심드렁할 따름이다. 

  집으로 돌아온 애니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상실감이었다. 엄마는 돌아가셨고, 집은 팔릴 예정이다. 형제들은 장례절차와 유산 문제로 언성을 높인다. 돌아올 집은 사라졌다. 정부였던 왕징(김준성)은 처에게 애나가 중국에서 식당을 운영한다고 거짓말을 한다. 애나는 존재할 곳도 없고, 존재하지도 않는다. 애나는 없는 사람이다. 

  그런 그녀에게 훈이 접근한다. 만남은 우연이었지만 접근은 의도적이었다. 그는 각종 고급 연애기술들을 펼치며 애나에게 추파를 보낸다. 그러나 마음을 닫은 애나는 훈을 무시할 뿐이다. 다시 만난 훈에게 애나는 잠자리를 제안하지만 이는 순간의 호기였을 뿐이다. 그런데 이후 훈이 보여주는 행동이 예사롭지 않다. 목전에서 잠자리를 거부한 애나에게 오히려 사과를 하며 데이트를 제안한다. 우울한 그녀를 끌고 다니며 기분을 풀어주도록 노력한다. 우중충한 날씨 같던 애나에 비하면 훈은 모처럼 개인 시애틀 하늘의 햇살 같은 존재였다. 

  놀이공원에서 범퍼카를 타다가 다른 커플의 말싸움을 보던 두 사람은 마치 사이코드라마처럼 일종의 더빙놀이를 한다. 타인의 모습을 통해 애나는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낸다. 이것은 마치 심리치료처럼 작용하며 닫힌 애나의 마음을 열게 해준다. 이후 아무도 없는 마트에서 애나는 자신을 고백한다. 비록 중국어라서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훈은 되도 않는 대답을 해가며 애나의 말에 귀 기울여 준다. 이렇게 훈은 애나의 마음을 열어주었다.

  장례식을 마치고 교도소로 돌아가는 애나. 훈은 아쉬운 마음에 애나를 따라 나선다. 안개가 짙어 잠시 쉬어가던 휴게소에서 훈은 옥자의 남편을 만나 옥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훈은 순간 충격과 절망에 빠진다.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당황하던 훈은 애나를 찾아간다. 그리고 격정적인 키스를 나눈다. 그것은 ‘너 만은 거짓이 아니었다.’라는 훈의 고백이었다.

  2년 뒤 출소한 애나는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훈과 마지막으로 보았던 휴게소를 찾는다. 그가 오지 않을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기대감은 감출 수 없다. 사람이 드나드는 소리에 눈길이 간다. 그러나 훈은 오지 않고, 애나는 대답 없는 대화를 한다. 그리고 애나는 미소를 짓는다. 실질적으로는 하루밖에 되지 않는 짧은 사랑이었지만 그 순간은 추억이 되어 영원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오늘 애나를 미소짓게 만든 것이다. 사랑은 결국 추억을 선물하는 것이다. 사랑이 영원하게 해달라며 기도하거나 다이아몬드를 사거나 하지 않아도 된다. 그것이 아름답다면 충분히 영원하게 될 테니까.

▲ 이 미소를 보여주기 위해 영화가 존재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 훈의 연애스킬이 김태용 본인의 내공에서 나온 거라면, 김태용은 연애 천재입니다.

※ 가장 인상적인 상징은 시계인데, 영화적으로는 상대방에게 시간을 주었다는 의미로 주제와 결말에 대한 상징과 복선으로 사용됩니다. 그런데 그 시계를 주는 행동은 고급 연애 스킬 중에 하나입니다. 이로써 김태용은 연애질과 감독질 분야를 결합하는 위엄을 보여주게 됩니다. 그저 갓태용이라고 할 수 밖에 없네요.

※ 팟캐스트 방송 [미련한 연애 시네마]에서 <만추>를 다뤘습니다. 좀 더 본격적인 작품에 대한 담론과, 훈으로 드러나는 갓태용의 연애 스킬에 대해서 이야기 나눴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의 많은 청취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