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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성공에 이르는 단 하나의 비밀


  "당신은 꿈이 있습니까?"


  이 질문에 제대로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중요한 것은 여기서 말하는 꿈이란 그저 막연히 이뤄졌으면 하는 무언가가 아니라는 점이다. 복권에 당첨되고 싶다든가, 안정된 직장을 얻고 싶다든가 하는 미적지근한 이야기가 아니다. 꿈이란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순간, 경탄을 자아내는 순간, 깨달음에 이르는 순간에 시작된다. 일시적인 관심이나 취미가 아니라 정체성의 핵심을 뒤흔들어야 한다. '이것이 내 꿈이다. 나는 이것을 위해 태어났고, 이것을 위해 죽을 수도 있다.' 이토록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일이 꿈이다.


  하지만 꿈도 먹여 살려야 꿈이다. 아무리 가슴 뛰는 일이라고 해도 먹고사니즘을 해결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 없다. 꿈을 이뤄 훨훨 날아오르면 좋겠지만, 현실이라는 벽 앞에서 잠시 날개를 접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아니면 살면서 한 번도 꿈으로 벅차오르는 고양감을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지 우리는 꿈과 멀리 떨어져 살아간다. 그렇게 현실에서 멀어져 있기에 '꿈'이라고 부르는 게 아닐까?


  그러나 현실에 적응하며 살아가더라도 절대 꿈을 잊지는 못한다. 지루하고 평범한 일상이 회색빛으로 물들어가더라도, 꿈은 종종 무지개처럼 빛나며 가슴을 콩닥거리게 한다. 그리고 처음으로 나의 꿈이 무엇인지 깨달았던 환희의 순간으로 나를 데려간다. 그 계기는 무엇이라도 될 수 있다. 무심코 귓가에 들려오는 음악을 듣다가도, 자기 전에 집어 든 책의 한 구절을 읽다가도, 어느 이름 없는 화가가 벽에 그린 낙서를 보면서도... 그렇게 문득문득 꿈이라는 찬란함이 내 가슴을 흔들어 놓는다. 나에게 <초콜릿 하트 드래곤>은 그런 책이었다. 



  <초콜릿 하트 드래곤>의 주인공 '어벤추린'은 사람이 아니다. 드래곤이다. 날카로운 발톱과 커다란 날개를 가지고 입에서 불을 뿜는다. 그런데 이 드래곤이 빠져든 것은 찬란한 보석도, 최강의 힘도, 막강한 권력도 아니었다. 바로 초콜릿이었다. 우연히 초콜릿을 맛보다 인간의 몸이 된 어벤추린은, 그 황홀한 맛을 잊지 못하고 초콜릿 장인의 도제가 되기로 한다. <초콜릿 하트 드래곤>은 초콜릿을 사랑한 어느 드래곤의 모험을 담은 이야기다. 


나는 조그마한 냄비를 발톱으로 그러잡고 무엇보다도 귀중한 보석을 다루듯 고이 쥐어 들었다. 그리고 조심조심 입가로 가져갔다. 눈을 감고서, 풍미 가득한 뜨거운 액체를 입에 흘려 넣었다.


오오오오!


내 모든 감각에 환희가 흘러넘쳤다. 너무 황홀해서 머리가 어지러웠다. 초콜릿, 초콜릿, 초콜릿... 그리고 내 안의 모든 것이 폭발하더니 세상이 암흑에 잠겼다.

<초콜릿 하트 드래곤> 26p


  어벤추린이 초콜릿을 접했을 때 느꼈던 황홀감이란, 내가 처음으로 나의 꿈이 무엇인지 깨달았던 순간과 너무도 흡사했다. 초콜릿을 향한 어벤추린의 열정을 담아 놓은 문장 하나하나가 꿈을 향한 내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마치 그 시절로 나를 데려다 놓은 것 같았다. 서랍 속에서 오래도록 잊고 살았던 추억 거리를 찾은 것처럼, 아련하게 떠오르는 무언가가 가슴 속에서 끓어올랐다. 그리고 퍼뜩 알아차린다. '그래, 내 꿈은 이거였구나.'



  나는 중학교 특별활동 시간에 '영화감상반'에 들어갔다. 지금이야 어떨지 모르겠지만, 20년 전 대한민국의 특별활동 수준이야 별거 없었다. 교실에 비치된 TV로 선생님이 틀어주시는 비디오를 보는 게 전부였다. 편성 시간도 1시간밖에 안 되어 영화를 온전히 관람할 수도 없었다. 그래도 담당 선생님께서 어떤 사명감이 있으셨는지, 흔하게 볼 수 없는 좋은 영화를 많이 볼 수 있었다.


  그중 한 영화 덕분에 눈이 뜨였다. 바로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터>였다. 당시에는 일본 문화 개방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 영화는 어느 곳에서도 만날 수 없는 작품이었다. 1시간의 특별활동 시간 동안 절반도 안 되는 분량만 볼 수 있었지만... 나는 <러브레터>에 매료되었다. 단순히 재밌다는 감상이 아니었다. 이야기를 엮어 놓은 방식, 이를 어떻게 영상으로 표현하는지, 그리고 그 표현이 극에 달하는 어느 찬란한 순간까지... 다른 아이들이 수다 떨 거나 잠을 자는 순간에도 나는 조그만 브라운관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내가 느낀 바를 다른 아이들과 공유하고 싶었지만, 또래 아이들은 그런 것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관심을 두더라도 이해하지 못했다. 왜 그 장면이 아름다운지, 왜 그 대사가 중요했는지 내 설명에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그 순간 영화는 머리를 넘어 심장까지 닿았다. 귀에서 환희의 찬가가 울리고(베토벤 그거 맞다), 눈앞이 온통 빛으로 가득 차는 것 같았다. 영화야말로 나의 소명이라고 생각했다.


<초콜릿 하트 드래곤> 112p


  <초콜릿 하트 드래곤>을 읽으며 그때 그 순간을 떠올릴 수 있었다. 희미하게 바래가던 꿈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퍼져나갔다. 나도 그런 때가 있었는데. 가슴이 뛰고, 머리가 어지럽고, 보고만 있어도 행복했던 시절... 그러다 퍼뜩 현실로 돌아와 생각한다. '내 꿈은 어디로 갔을까?'




  만약 <초콜릿 하트 드래곤>이 무턱대고 성공만 그려냈다면, 나는 별 재미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요즘 웹 소설에는 먼치킨이니, 사기 캐릭터니, 막강한 능력으로 뭐든지 헤쳐나가는 주인공이 등장하곤 하는데... 그런 이야기는 매력적이지 않다. 잠깐의 쾌감은 존재하겠지만, 결국 반복되는 승리에 지루함만 넘쳐난다. 다 읽고 나서도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래서 양판소니, 불쏘시개니, 비하하는 평가가 등장한다.


  그러나 어벤추린의 이야기는 성공보다 실패가 많다. 단순한 우여곡절 수준이 아니다. 그녀의 꿈을 짓밟고, 날개를 꺾고, 고개를 땅에 처박는 끔찍한 실패를 보여준다. 왜 작가는 자기 소설의 주인공을 이토록 가혹하게 괴롭히는 걸까? 애석하게도 그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꿈은 환희에 가득 찬 고양감을 선사하기도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시궁창에 코를 박는 것 같은 실패를 선사한다.


<초콜릿 하트 드래곤> 207p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영화를 사랑하고, 그것에서 느낀 바를 글로 풀어내길 좋아한다. 대학 시절까지도 글쓰기 실력이 좋다는 칭찬도 종종 받았다. 자신 있었다. 나만큼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도 없거니와, 나만큼 글을 잘 쓰는 사람도 없을 테니까. 그래서 영화 비평을 쓰기 시작했다. 결과는? 처참했다. 얼마나 처참했냐면, 차라리 악플이라도 달렸으면 좋겠다고 느낄 정도였다. 처참한 조회수, 무플, 철저한 무관심... 이런저런 공모전에도 도전해봤다. 역시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 순간 깨닫게 된다. 아... 나는 재능이 없구나. 영화 보는 눈도, 글 쓰는 재주도, 전부 교실 안에서만 빛나는 우물 안 개구리일 뿐이구나...


  그렇게 실패의 쓴맛을 맛보고, 현실의 벽이 얼마나 높은지 깨닫게 되면, 대개는 체념하고 살아간다. 꿈은 잡을 수 없기에 꿈이라고 말하면서, 현실에서 아등바등 살아가기 바빠서, 가슴 뛰는 일을 저버리고 세상을 잿빛으로 물들이며 살아간다. 어벤추린도 그렇게 드래곤의 자긍심을 잃고 평범한 시골 소녀가 되었을까?


"살다 보면, 과거에 실패한 경험에 눈이 가려서 그 너머는 안 보일 때도 있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그 실패가 불쑥 튀어나와 내 앞을 가로막는 거지. 하지만..."


나를 보는 그녀의 눈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그렇다고 해서 더 이상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건 변명조차 안 돼! 우리 <초콜릿 하트>가 망한다면, 뭐 어때? 그럼 다시 시작하면 되지. 또 다른 나라들을 다섯 군데쯤 걸어 다녀서라도 새로운 터전을 찾으면 돼. 내가 그렇게 쉽게 포기할 줄 알았어?"

<초콜릿 하트 드래곤> 236p


  다행히 어벤추린에게는 좋은 친구가 있었다. 사람 다루는 데는 도가 튼 소녀 실케, 초콜릿 가게의 지배인 호르스트, 그리고 그녀의 초콜릿 선생이자 인생 멘토 마리나까지. 그들은 어벤추린이 실패에 굴복하게 놔두지 않았다. 꺼져가는 열정의 재에 숨을 불어넣어 다시 불꽃이 타오르게 도와주었다. 최악의 실패, 이를 극복하도록 도와주는 동료 그리고 다시 주먹 쥐고 일어서는 주인공. 솔직히 이 정도면 치사한 수준이다. 이런 이야기라면 무조건 재미있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저 재미난 이야기는 아니다. 이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어떻게 이렇게 말할 수 있냐고? 나도 똑같은 일을 겪었으니까. 내가 어느 정도 영화 글로 명성도 얻고, 나름 글쓰기에 자신감도 붙었을 때였다. 문제는 그렇게 글을 써도 돈 한 푼 안 된다는 점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꿈도 먹여 살려야 꿈이다. 그 순간 나는 펜을 꺾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나를 붙잡아 준 사람이 바로 여자친구다. 무슨 일이 있어도 계속 쓰라고, 언젠가는 빛을 볼 거라고, 최소한 나를 위해서라도 써달라고, 재밌게 보고 있다고. 그가 아니었으면 나는 글쓰기를 그만두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고, 이렇게 지금도 이 글을 쓰고 있다. 




  <초콜릿 하트 드래곤>은 재밌는 소설을 넘어 좋은 소설이다. 왜냐하면 꿈과 열정에 관한 모든 것을 담아냈기 때문이다. 사탕발림 같은 성공 스토리가 아니라 시궁창 냄새나는 실패가 담겨 있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는 희망과 용기를 보여준다. 이를 절절하게 느끼도록 만드는 필력은 정말 최고다. 꿈을 깨달은 순간의 환희와 실패에 무너지는 암담함과 이를 극복하는 희망과 용기. 그 모든 순간이 마치 내 삶의 흔적처럼 생생하게 다가온다. 그러면 내 꿈이 무엇이었는지 떠올릴 수밖에 없다. 그렇게 주먹을 불끈 쥐고 가슴을 몇 번 두드리고는 콧김을 후욱 내뱉으며 마음속으로 외친다.


  "그래, 그래 내 꿈은 이거였어. 아직 늦지 않았어. 나도 할 수 있어."


  당신은 꿈이 있는가? 혹시 살기 바빠 그 꿈을 잠시 서랍 속 어딘가에 묵혀두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초콜릿 하트 드래곤>을 보길 바란다. 그리고 케케묵은 서랍 속에서 꿈을 꺼내 색 바랜 먼지를 털어보자.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일. 실패에도 굴복하지 않고 계속해서 온몸으로 부딪히고 싶은 일. 그런 일을 다시 떠올려보자. 당신이 그 일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그것이 위대한 성공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노숙자에서 억만장자 CEO가 된 기업가 크리스 가드너는 이렇게 말했다.


"성공에 이르는 비밀은 너무 하고 싶어서 다시 해가 뜰 때까지 기디리기 힘든 일을 찾는 겁니다."

- 크리스 가드너, 홀딩스 인터네셔널 CEO


  그러니 당신도 믿어보자. 가슴이 뜨거워지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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