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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내가 35살에 돈 공부를 하는 이유


  "나도 비트코인 사볼까? 그런데 비트코인이 도대체 뭐야?"


  작년 초 가상화폐 가격이 폭등하자 아는 형이 이렇게 물었다. 문과 출신이라 가상화폐가 뭔지도 모르겠다며 공대 출신인 나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던졌다. 블록체인 기술이 뭔지, 그게 어떻게 화폐의 가치를 갖는지 내가 아는 한에서 최대한 설명해 주었다. 하지만 상대는 가상화폐의 원리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들어가야 돼? 말아야 돼? 투자 가치가 있는 거야? 아니면 투기에 불과한 거야? 이렇게 물었을 때, 나는 대답을 회피할 수밖에 없었다. 


  "글쎄... 나도 경제는 잘 몰라서..."


  지금이야 비트코인이 위험하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것이 투기라고 단언할 수 없었다. 왜냐면 투기가 뭔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도대체 투기란 뭘까? 투자와 투기는 어떻게 구별해야 할까? 그런데 얼마 전 한 책에서 다음 문장을 보게 되었다.


  "가격상승이 새로운 매수자를 부르는 것은 전형적인 금융 투기다."


  이 말 그대로였다. 비트코인이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가치를 보고 투자하는 사람은 없었다. 미칠 듯이 폭등하는 가격을 보며 거래 차익을 노리고 뛰어드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작년에 이 책을 보았다면, 비트코인 때문에 고민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역시 사람은 공부해야 한다. 나를 경제 공부에 입문하도록 만들어준 이 책의 이름은 바로 <돈의 역사>다. 





  돈을 통해 역사를 이해하다


  흔히 역사를 암기 과목이라고 여겨 지루하다고 생각하곤 하는데, 오히려 역사는 암기보다 이해가 중요한 과목이다. 시대의 흐름을 이해하면 역사적으로 굵직한 사건들이 갑자기 튀어나오는 게 아니라 인과관계에 따라 필연적으로 발생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인과관계를 이해하면 굳이 암기하지 않아도 외워야 할 사건을 저절로 기억하기 마련이다. 


  <돈의 역사>는 그중에서도 돈의 흐름을 집중적으로 파헤친다. 역사적인 대사건 뒤에는 언제나 돈의 문제가 깔려 있었다. 영국의 이순신이라 불리는 넬슨 제독의 트라팔가르 해전을 살펴보자. 영국 해군은 강력한 전투력을 바탕으로 단 한 척의 배도 잃지 않고 나폴레옹의 프랑스-스페인 연합군을 격파한다. 그 배경에는 영국의 탄탄한 금융 제도가 존재했다. 어떻게 금융제도가 전쟁의 승패에 영향을 끼쳤을까? 영국의 국왕 윌리엄 3세는 즉위하면서 네덜란드의 선진 금융제도를 도입했고, 그 결과 저금리 국채를 발행하며 막대한 국방비를 확보할 수 있었다. 덕분에 훈련 때도 실제 화약을 사용하는 등 다른 국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전투 경험을 쌓게 된다. 트라팔가르 해전의 대승은 당연한 결과였던 셈이다. 



  전 세계에 악몽으로 남은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이유도 돈의 흐름으로 이해할 수 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승전국은 독일에 1,320억 마르크라는 막대한 배상금을 부과한다. 이로 인해 극심한 인플레이션이 등장하며 독일 국민의 삶은 갈수록 궁핍해졌다. 이때 강력한 독일을 주장하며 배상 책임의 부당함을 역설하는 정치인이 등장하는데 그가 바로 히틀러였다. 그렇게 역사의 괴물은 독일 국민의 투표 아래 민주적으로 총통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극심한 인플레이션은 국가와 기업에는 이익으로 작동했고, 그 결과 강력한 군사력을 갖춰 정복 전쟁에 나서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처럼 역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 돈의 흐름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돈의 흐름을 이해하는 순간 우연이나 기적처럼 느껴졌던 사건들이 필연적으로 연결되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순간 역사는 지루한 암기 과목으로 남지 않는다. 원인과 결과가 촘촘하게 엮인 장대한 드라마가 펼쳐진다. <돈의 역사>는 그 재미를 깨닫게 해주는 책이었다. 


▲ 영국 국채금리 하락(좌) 독일 하이퍼 인플레이션(우)




  역사를 통해 돈을 이해하다


  돈을 통해 역사를 이해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역사를 통해 돈을 이해할 수도 있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 어떻게 금융이 개인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지 이해하려면 '돈의 역사'를 살펴보아야 한다. 단적인 예로 '일본의 잃어버린 10년'과 '우리나라의 IMF 외환 위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닉슨 쇼크'로 대표되는 금본위제의 역사를 이해해야만 했다. 


  과거에는 금과 화폐를 일정 비율로 고정하는 금본위제를 시행하고 있었다. 미국 돈 '35달러를 금 1온스'와 연동하고 다른 나라의 화폐를 달러와 연동함으로써 금과 화폐 사이의 환율 제도를 완성한 것이다. 그런데 로버트 트리핀이라는 사람이 달러 기준 금본위제의 치명적인 문제를 거론한다. 


  "세계 경제가 성장하려면 충분한 통화의 공급이 필요하고, 그만큼 달러를 많이 찍어내서 전 세계에 공급해야 한다. 그런데 달러를 많이 찍어내면 달러의 가치가 떨어져 아무도 달러를 받으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달러 가치를 유지하려고 조금만 찍어내면 국제 거래에서 달러가 부족해진다."


  미국은 국제 거래를 위해 보유한 금보다 많은 달러를 찍어냈다. 당연히 달러의 가치는 떨어졌지만, 금과의 교환 비율은 여전히 '35$=1온스'로 고정돼있었다. 이에 프랑스의 샤를 대통령은 지속해서 달러를 금으로 바꿔 달라고 요구한다. 달러의 가치는 떨어졌으나 금의 가치는 그대로니, 고정된 환율로 교환만 하더라도 이익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닉슨 대통령은 금과 달러의 교환을 정지함으로써 금본위제를 폐지하기에 이른다. 



  금본위제라는 족쇄를 벗어던진 중앙은행은 이후 본연의 역할을 다하게 된다. 인플레이션이 강할 때는 금리를 높여 물가를 잡고, 디플레이션이 발생하면 화폐를 풀어 경기 부양을 촉진한다. 금본위제가 존재할 때는 금리를 내렸다가 자금 유출이 발생하는 위험이 존재했지만, 금본위제가 폐지되면서 경기 부양에 대한 가능성이 부각되며 자금 유출이 발생하지 않게 되었다. 금리와 환율을 조정함으로써 경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수단이 마련된 셈이다. 


  그런데 80년대 후반 일본은 금리를 인상해야 할 타이밍을 놓치고 만다. 이후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버블이 출현했다. 넘쳐나는 자금 때문에 수요가 없는데도 공급이 넘쳐났고 당연히 자산 버블은 붕괴를 맞이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일본은 또 타이밍을 놓친다. 디플레이션이 우려되는 상황이라 금리를 인하하고 경기를 부양해야 했는데 이 기회를 놓친 것이다. 결국 일본은 장기 불황에 빠져들었고, 그 시절을 '잃어버린 10년'이라 부르고 있다. 


  우리나라가 'IMF 외환 위기'를 맞이한 것도 결국 금리와 이어진다. 당시 우리나라는 고정환율제도를 시행하고 있었는데, 이 경우 수출이 급격히 줄어들어 외환 공급이 줄어들면 제대로 대처하기 어려워진다. 금리를 인상하는 방식으로 대처할 수도 있었지만, 당시 미국에서도 금리를 인상하고 있어 금리 인상 효과를 거두기 어려웠다. 고정환율제도 때문에 우리나라에 대출하는 것보다 미국에 대출하는 것이 이익이기 때문이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시장에서 돈을 빼는 것은 당연한 처사였다. 



  이처럼 많은 국민을 고통으로 몰아넣었던 장기침체를 이해하려면 돈의 역사를 이해해야만 한다. 그저 지나가는 소나기라고 생각했던 불황이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데, 아직도 그 원인을 모른다는 것은 자신의 삶에 무책임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을 이해하고 싶다면 돈을 이해해야 하고, 돈을 이해하고 싶다면 돈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홍춘욱 박사의 <돈의 역사>는 불황을 겪고 있는 이 시대 사람들을 위한 필독서라는 생각이 든다.


▲ 일본의 금리정책 실패(좌), 한국의 통화정책 실패(우)




  인터넷이나 유튜브 덕분에 지식 습득이 더 쉬워졌다고 하지만, 경제 분야만큼은 오히려 어려워진 기분이다. 투기를 부추기는 가짜 정보와 허무맹랑한 소리가 난무하기 때문이다. 그럼 무엇으로 경제 공부를 시작해야 할까? 경제를 하나도 모르는 사람은 어디서부터 배움을 시작해야 할까? 


  어떤 분야를 처음 접할 때, 그 분야의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학문의 발전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아무리 복잡한 개념도 역사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높은 산에 헬리콥터를 타고 갑자기 오르면 고산병에 걸린다. 하지만 맨 아래부터 차근차근 오르면 고산병 없이 오를 수 있다. 경제라는 학문은 배우기 어려운 높은 산이다. 그럴수록 역사의 시작부터 차근차근 따라 올라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가짜 뉴스'라는 고산병에 시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돈의 역사>는 경제서이지만 역사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내어 쉽고 흥미롭게 접근할 수 있다. 역사에 관한 배경지식이 있다면 더 즐겁게 읽을 수 있다. 나 같은 경제 초보가 공부를 시작하기 위한 가장 좋은 입문서였다. 경제 공부를 위한 최고의 입문서 <돈의 역사>를 적극 추천한다. 





본 콘텐츠는 로크미디어로부터 제작비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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