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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바닥을 아는 사람만이 튀어 오를 수 있다

  힘들고 외로울 때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영화 <굿 윌 헌팅>에서 로빈 윌리엄스가 맷 데이먼과 상담을 나누는 장면이다. 


"네 잘못이 아니야."

"알아요."

"네 잘못이 아니야."

"안다구요."

"아냐 몰라, 네 잘못이 아니야."

"네 잘못이 아니야."


  주인공 윌은 천재였다. 하지만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가족도 없이 외롭게 혼자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천재성을 알아본 교수의 손에 이끌려 자신의 천재성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윌에게는 화려한 성공만 이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성공을 거부한다. 일부러 삐딱선을 타고, 주먹을 휘두르고, 마치 자기 자신을 일부러 망치고자 애썼다. 왜 그랬을까? 내면에 존재하는 어둠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소위 네임드였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이름을 날린 유명인을 네임드라고 부른다. 나는 글솜씨로 네임드가 되었다. 물론 처음부터 잘나가는 천재는 아니었다. 꾸준히 글을 쓰다 보니 좋게 봐주는 사람이 생겼고, 댓글과 추천이 차곡차곡 쌓이다 보니 어느새 네임드가 되었다. 그때는 내가 글깨나 쓰는 줄 알았다. 특히 영화 글을 꾸준히 썼는데, 나름 사람들의 극장 나들이에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그 덕에 체인지 그라운드에 입사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회사에 들어오고 나서 위기를 맞았다. 도통 글이 안 팔리는 것이다. 그때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글깨나 쓴다고 생각했는데, 이토록 초라한 성적이라니. 뭐가 문제일까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고, 다른 잘 나가는 글하고 비교하며 해답을 찾아보려고 했다. 하지만 도통 모르겠더라. 쓸데없는 걱정이라면 고민하지 않으면 될 일이겠지만, 이것은 내 존재의 가치와 회사의 수익이 걸려있는 중대한 사항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고민은 깊어지고 그럴수록 나는 위축되고 주눅 들었다. 


  거듭된 실패로 자신감은 떨어지고, 자신감이 떨어지자 진짜 쓸데없는 걱정이 스멀스멀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이대로 팔리지도 않는 방구석 작가가 되는 걸까? 회사에서 해고당하는 건 아닐까? 동료들이 나를 무능하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다. 글이 안 팔리는 이유는 실력이 없기 때문이고, 실력이 없으면 공부하고 수련해서 실력을 키우면 될 일이다. 그런데 왜 당시에는 그 생각을 못 했을까? 실력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면 현재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볼 줄 알아야 한다. 그 모습이 아무리 비루하고 추하더라도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먼저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도 어려운 일인 데다가, 그 모습이 미우면 쉽게 고개를 돌려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기 위해 멘토를 찾기도 하고, 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정을 한 권에 해결하는 책이 나왔다. 마이크 베이어가 지은 <베스트 셀프>다. 



  <베스트 셀프>는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찾기 위한 쉽고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진정한 모습에는 밝은 면도 어두운 면도 모두 포함되어 있다. 이를 찾아가는 과정은 유익하기도 하지만 재밌기도 하다. 


  우선 자신이 되고 싶은 최고의 자아를 찾는 것으로 시작한다.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은 무엇일까? 사실 이런 고민을 해본 적이 없어서 막상 상상하려니 어려움에 봉착했다. 상담자 중에 나 같은 사람이 많았기 때문일까? 저자는 친절하게 바람직한 성격 특성을 몇 가지 제시해주었다. 


  - 당신은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동정적인가?

  - 낙관적이어서 항상 밝은 면을 보거나 밝은 전망을 찾는가?

  - 당신에게 상처를 주려고 했던 사람들을 용서하는가?

  - 자신과 다른 사람을 대담하고 강력하게 변호하고 있는가?

  - 상상력이 뛰어나고, 간혹 독창적으로 생각하는가?

  - 지켜보는 사람이 없어도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게 행동하는가?

  - 업무에서 효율성을 발휘하는가?

  - 다른 사람들에게 성실하고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가?

  - 자식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가?

  - 창의적이어서 시시때때로 창의력을 발휘하는가?

  - 길에서 쓰레기를 보면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줍는가?

  - 갈등이 생기면 해소하려고 노력하는가? 


  이 외에도 긍정적으로 생각되는 특성을 표로 제시하여 자신이 가진 최고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찾아갈 수 있도록 안내해주었다. 그렇게 나에게 어울리는 성격 특성에 동그라미를 치다 보면 내가 가진 장점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감을 잡게 된다. 



  그렇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성격 특성을 파악하고 나면, 이를 활용하여 캐릭터를 창조하라고 한다. 즉, 최고의 자아라는 상상 친구를 만드는 것이다. 조금은 오글거린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심지어 그 캐릭터를 그림으로 그려보라고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난 뒤에는 그림을 그려본 적이 없어 어색하고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막상 그림을 그려보니 재밌었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구체적이었다. 살면서 나의 긍정적인 모습을 이토록 생생하게 접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림은 남PD님이 그려주셨다. 고마워요~)


이름은 충달. 말이 유창하고 글도 잘 쓴다.

그는 모든 것을 알고 싶어하며, 

지식을 구하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한다. 

새로운 것을 찾으면 눈을 반짝이고, 

언제나 창의적인 생각을 하기 위해 생각을 이리저리 뻗친다. 


  최고의 자아를 그렸으니 다음은 나를 부정적으로 만드는 모습, 반자아를 알아볼 차례다. 반자아를 찾는 과정도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먼저 자신의 성격에서 결함이라고 생각되는 특성을 적는 것으로 시작한다. 


  - 당신은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비관용적인가?

  - 당신은 성급하게 화를 내는가?

  - 당신은 고의로 불건전한 선택을 하기도 하는가?

  - 당신은 작은 자극에도 짜증을 내는가?

  - 당신은 무엇이든 다 아는 사람처럼 행동하는가?

  - 당신은 목표를 성취하기 전에 포기하는 경우가 잦은가?

  - 당신은 충분히 훌륭하지 않다고 생각하는가?

  - 당신은 사람들이 함부로 대해도 반발하지 않는가?

  - 당신은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은가? 


  여기에 부정적 성격을 모아놓은 특성표를 제시하여 반자아 목록을 완성하도록 도와준다. 다음은 내가 체크한 나의 어두운 면모들이다. 



  최고의 자아를 찾는 과정은 마냥 즐거웠지만, 반자아를 찾는 과정은 다소 마음이 무거웠다. 아무래도 자신의 어두운 면을 직시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 고통을 수반하는 것 같다. 게다가 내가 생각지도 못한 결함까지 예시와 표를 통해 구체적으로 들추게 한다. 저자가 조금은 잔인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럼에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살면서 이토록 생생하게 나의 부정적인 면을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완성된 반자아 캐릭터는 다음과 같다. 


이름은 품바. 매력이 없고, 뚱뚱하고, 못생겼다.

땀을 많이 흘려서 매일 목욕해도 냄새가 난다.

그래서 사람들이 싫어할까봐 겁낸다.

주변 사람의 눈치를 많이보고

반응이 좋지 않으면 주눅들어 산다.


  이렇게 최고의 자아와 반자아를 모두 만들고 나니, 내가 어떻게 변해야 할지 알 것 같았다. 우선 나는 타인의 시선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을 필요가 있었다. 심지어 최고의 자아를 보면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탐구하는 모습이 보인다. 남의 시선을 신경 쓰고, 그것 때문에 주눅 드는 모습은 내가 피해야 할 반자아의 모습이었다. 


  자기 비하와 자기 파괴를 멈출 필요도 있었다. 실패하면 어떡하지? 다 망쳐버리면 어쩌지? 버림받으면 어쩌지? 이런 생각에 휘둘리며 정작 해야 할 것을 못 하고 타인의 인정을 구하기 위해 땀을 뻘뻘 흘리는 모습은 피해야 했다. 


  반면 최고의 자아가 되기 위해 멈추지 않고 꾸준히 공부하는 자세가 필요했다. 나는 공부하는 게 좋고, 새로운 지식을 알아가는 게 기쁘다. 그럼에도 조금이라도 편하고 싶은 게으름에 공부를 등한시했다. 내 삶을 기쁘게 하는 게 무엇인지 알았으니 힘들어도 도전해야 한다. 배워서 얻는 기쁨은 누워서 얻는 편함에 비할 바 없는 행복이기 때문이다.



  최고의 자아와 반자아를 찾는 과정을 통해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나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최고의 자아뿐만 아니라 반자아도 인정하고 포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타인의 시선이 나에게 스트레스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때로는 기쁨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내가 쓴 글이 추천을 받고 잘 읽었다는 댓글이 달렸을 때, 나는 진심으로 기뻤다. 이런 모습을 두고 관심종자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뭐 관심종자면 어떤가? 사람들이 보내는 관심과 칭찬이 내가 글을 쓰게 하는 원동력이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사실 안 팔리는 글을 쓸 때 나를 비난하는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회사에서도 그랬다. 사람들이 나를 비난하고 미워할 거라 생각한 것은 반자아가 만들어 낸 끔찍한 망상에 불과했다. 오히려 사람들은 내가 실패했을 때 다음을 기약하며 응원해주었다. 그렇다. 이번에 못 했으면 다음에 잘하면 된다. 계속 도전해서 언젠가는 칭찬과 관심이 쏟아지는 글을 쓰면 될 일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노력하고 도전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한때 글깨나 썼다고 아무 노력 없이 슬럼프를 벗어날 거라고 생각한다면 아무런 발전도 이룰 수 없다. 나는 새로운 영역에 들어왔고, 그 영역에 맞는 새로운 지식을 탐구해야 했다. 다행히 우리 회사는 직원들의 성장을 적극 지원하는 곳이었다. 잘 팔리는 글을 쓰기 위해 다양한 책을 공부하도록 지원했다. 그때 공부했던 <컨테이져스>, <스틱!>, <생각이 돈이 되는 순간> 같은 책은 나에게 인생 책으로 남았다.


  그렇게 공부하다 보니 나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내 글쓰기 실력은 한참 멀었다. 특정 커뮤니티의 분위기에 맞는 글은 쓸 수 있었겠지만, 불특정 다수의 대중을 향한 글을 쓰려면 더 높은 실력을 갖춰야 했다. 이를 위한 기술과 감각을 연마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그래서 독서 모임 씽큐베이션을 시작하면서 '잘 팔리는 글쓰기'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내가 공부했던 내용을 나눔과 동시에 나도 다시 공부하는 기회를 얻기 위해서였다.



  "네 잘못이 아니야."


  <굿 윌 헌팅>의 대사가 나에게는 이렇게 다가온다.


  "네가 숨기고 싶은 모습도 인정하자. 그것이 잘못은 아니니까."


  누구에게나 높이 튀어 오를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러나 튀어 오르려면 먼저 바닥이 어디인지 알아야 한다. 아무것도 딛지 않으면 튀어 오를 수 없다. 흔히 바닥인 줄 알았는데 그 밑에 지하실이 있었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바닥이 어딘지 살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어둠을 진실하게 마주했을 때, 우리는 삶의 바닥이 어디인지 확인할 수 있다. 그렇게 바닥을 아는 사람만이 튀어 오를 수 있다. 


  내가 튀어 오르고 싶은 곳이 어디인가? 이를 위해 내디뎌야 할 바닥은 어디인가? <베스트 셀프>는 이 모든 것을 알려주는 인생의 길잡이 같은 책이다. 삶을 극적으로 바꿀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전혀 어렵지 않다. 때때로 즐겁게 다가오기도 한다. 캐릭터를 만들고 그림을 그리라는 주문이 어색하게 다가올 수도 있지만, 뭐 어떤가? 남에게 보여줄 것도 아니지 않은가? 한번 무작정 따라 해보면 어떨까? 분명 당신이 걸어갈 길이 무엇인지 밝혀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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