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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평

[짤평] <소수의견> - 뉴스보다 현실적인 픽션

※ [짤평]은 영화를 보자마자 쓰는 간단한 감상문입니다. 스포일러가 없는 게시물이므로 댓글에서도 스포일러가 없도록 부탁드리겠습니다. 










  1. 영화를 관람하기가 불편합니다. 사건을 파헤치는 이야기의 흐름도 빠르고, 이를 설명하는 대사도 빠릅니다. 최근 한국영화에서 많이 보이는 발음이 뭉개져 무슨 대사인지 알아듣기 힘든 문제도 보입니다. 가뜩이나 잘 들리지도 않는데 법률 용어나 그들만의 은어가 나오다 보니 앞뒤 맥락에 집중해야만 합니다. 잠깐 한눈팔면 이야기의 흐름을 놓치기 십상입니다. 빠른 진행이 몰입감은 주겠지만, 그랬다면 녹음이나 편집 등 세심한 부분을 신경 쓰는 배려가 필요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2. 빠른 진행에 어떤 유의미한 가치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딱히 대답할 거리가 없어 보입니다. 미칠듯한 진행속도를 보여준 <용의자>와 <세븐데이즈>의 원신연 감독의 경우 전개 속도를 올리기 위해 맥락마저 쳐내는 모습까지 보여주며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구축하기도 했죠. 하지만 <소수의견>의 빠른 진행은 그저 할 이야기가 많았던 것뿐이라는 느낌입니다.

  3.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 힘 들 뿐 이야기 자체는 꽤 재밌습니다. 실화를 밑그림으로 픽션의 상상력이 맛깔나게 채색된 좋은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클리셰와 리얼리즘을 적절히 넘나드는 것도 훌륭합니다. 이야기는 원작 소설의 것이겠지만 이를 각색한 김성제 감독의 '이야기를 엮는 능력'은 인정할 만합니다. 

  4. 그러나 기막힌 트릭이나 심리전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서스펜스나 미스터리를 강조하는 면도 없습니다. 이 영화가 대한민국의 현실을 고발한다는 정치색이 없다면 과연 볼만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그래도 영화 속의 부조리를 현실에서 마주하는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영화에 감정 이입하는 것이 어렵진 않을 겁니다.

  5. 영화도 마지막신에서 작품이 정치적이라는 점을 명백히 시사합니다. 하지만 그 표현이 노골적이고, 다른 장면과의 연결성이 부족하다 보니 <해적 : 바다로 간 산적>의 마지막 장면처럼 다소 뜬금없었습니다. 그래도 살짝 비트는 화법 덕분에 촌스럽다는 느낌은 겨우 면하더군요.

  6. 배우들의 연기가 볼 만합니다. 중년 배우들의 연기는 정말 좋았습니다. 이경영씨는 피를 토하기 직전의 끊어질 듯한 목소리를 들려주는데, '단장의 슬픔'이라는 말이 절로 떠올랐습니다. 김의성씨는 악역이 정말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이 말은 칭찬인지 욕인지... 크크크) <관상>의 한명회가 생각나는 서늘한 독사 같은 캐릭터를 완성했습니다. 젊은 배우 중에는 오연아씨의 연기가 정말 좋았습니다. 상당히 인상적으로 재수 없는 캐릭터를 보여주시더라고요. (아무리 예뻐도 저 애랑은 안 사귀겠다 싶을 정도로...) 김옥빈씨는 그동안 특유의 매력을 날것으로 뿜어내는 연기를 보여줬는데 (특히 <박쥐>), 이 작품에서는 김옥빈이 아닌 공수경을 연기합니다. 완전히 다른 타인을 연기하는 것은 이 작품이 처음이지 않나 싶던데, 조금 어색한 모습은 있지만 그래도 자기 것으로 잘 소화했다고 생각됩니다.

  7. 정치적 입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의 정의가 큰 집의 눈치나 봐야 하는 현실이 답답한 사람이라면 영화와 함께 분개할 겁니다. 하지만 고위층의 비리를 당연하게 생각한다거나, 이 모든 부조리가 다 나라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라면 정말 재미없을 영화가 될 겁니다.

  8. 마지막 장면까지 다 보고나니 애국과 파시즘에 과연 무슨 차이가 있을지 생각해보게 되더군요.

  9. 저는 세상사를 배우는 데에는 뉴스보다 소설이 낫다고 이야기합니다. 뉴스는 요약된 사건일 뿐, 그 사건이 벌어진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으니까요. <소수의견>은 그 이야기를 상상으로 채웠습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세상을 비추는 픽션의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다만 그 힘이 없었다면 작품 자체만으로 지금의 가치를 만들어내지는 못했을 것 같습니다.





  한줄평

  뉴스보다 현실적인 픽션. "대한민국이 원래 이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