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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쌤 윤PD

<예기치 못한(Unexpected)> - 예기치 못한 임신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

※ 이 글은 영화 <예기치 못한>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서울국제여성영화제(SIWFF)를 통해 <예기치 못한>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예기치 못한>이 언젠가 꼭 정식수입이 이뤄지기를 바랍니다. 






  폐교를 앞둔 고등학교의 교사 사만다 애벗(코비 스멀더스)은 어느 날 예기치 못한 소식을 듣게 된다. 그녀가 임신했다는 것이다. 아직 결혼도 못 했고, 새로운 직장도 구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그녀는 임신소식을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그리고 자신뿐만 아니라 학교의 우등생인 재스민(게일 빈)도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같은 상황에 처한 스승과 제자는 예기치 못한 임신을 맞아 서로를 의지하며 우정을 쌓아가게 된다. 하지만 취업과 대학진학을 꿈꾸는 두 여자에게 임신은 꿈을 가로막는 현실의 장벽이 되어버리고 마는데...





  임신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일전에 지인에게 여성에게 첫 경험이란 무엇이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분은 이에 대해 '공포'라고 대답하였다. 연애를 하다 보면 상대가 섹스를 요구할 것이고, 언젠가는 관계를 갖게 될 테지만 그 결과에 대한 책임, 임신에 대한 리스크를 짊어져야 한다는 점에서 두려움이 앞선다고 하였다. 내가 섹스를 남성성의 증명이자 존재의 사명처럼 여겼던(후...) 20대 초반이었다면 이러한 생각에 전혀 공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이 공포에 적극적으로 공감한다. 덕분에 내 핸드폰에는 생리주기 어플이 깔려있고, 이제는 콘돔을 사는 것에 거리낌을 느끼지도 않는다. 임신은 더 이상 여성만의 공포가 아니다. 준비되지 않은 남성에게도 임신은 두려워해야 하는 일이다. 

  <예기치 못한>은 사만다가 테스트기를 통해 임신 사실을 확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처음에 사만다는 테스트기의 오작동을 의심하기도 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아마도 임신을 맞이하는 대부분의 미혼 여성들의 반응이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영화는 임신을 받아들이는 사만다의 심경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같은 상황에 처해있거나 혹은 그 상황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이렇게 혼란에 빠진 사만다를 다독여주는 것은 남자친구이자 동거남인 존(앤더스 홈)이다. 임신을 계기로 존은 사만다에게 청혼하고, 사만다는 "이런 식으로 청혼받고 싶지는 않았다."고 말하면서도 그의 청혼을 받아들인다. 예기치 못한 임신을 맞아 서로를 의지하고 다독여주는 사만다-존 커플의 모습은 임신이라는 막연한 두려움을 녹여내는 훈훈함을 선사한다. 

  하지만 임신이 언제나 훈훈할 수는 없는 법이다. 사만다와 존의 갑작스러운 임신과 결혼에 대해 친정엄마는 실망하는 기색을 내비친다. 게다가 입덧마저 심해져 수업시간에 구토를 하기도 한다. 임신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이 들 무렵, 사만다는 학교의 우등생인 재스민의 임신소식을 듣게 된다. 재스민의 상황은 사만다보다 심각했다. 그녀는 아직 고등학생이고, 부모도 없고, 집안 형편도 넉넉하지 못했다. 그런 재스민에게 사만다는 입양이나 낙태의 다른 선택도 있다는 것을 말하지만, 재스민은 자신이 직접 아이를 키우겠다는 뜻을 내비친다. 그리하여 '대학 입시를 앞둔 미혼모'라는 위기 상황에 맞서 사만다와 재스민은 의기투합하게 된다. 최악의 상황이라 생각되는 재스민의 임신이었지만, 그녀에게 힘이 되어주는 사만다의 존재 덕분에 안도할 수 있었다. 또한, 사만다도 재스민을 도우며 자신감을 되찾게 된다. 같은 위기를 겪는 두 사람은 이렇게 서로에게 위로가 되며 우정을 쌓아가게 된다. 

  사랑과 우정을 통해 임신의 어려움을 헤쳐온 사만다와 재스민이었지만, 현실에는 그들의 꿈을 가로막는 장벽이 존재하고 있었다. 사만다는 폐교 후 재취업을 위해 박물관에 지원하였고, 면접을 보러오라는 소식을 듣는다. 그러나 첫 출근 시기와 출산 시기가 겹치면서 사만다의 취업은 성사되지 못한다. 재스민은 일리노이 대학교에 진학하고자 했었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 지낼 수 있는 학교 지원 아파트는 대학원생에게만 허락되는 것이었다. 이렇게 두 사람은 어찌할 수 없는 현실에 좌절하게 되고, 그들의 우정마저도 흔들리게 된다. 

  시간이 흘러 출산을 앞둔 재스민을 위한 축하 파티가 열리고, 한동안 서로를 만나지 않았던 사만다와 재스민은 파티장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그 사이 사만다는 아이를 낳아 전업주부가 되어 있었고, 재스민은 집과 가까운 대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임신이 그들의 꿈을 좌절하게 하였지만,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장난 것은 아니었다. 영화는 앞에서 임신한 여성이 겪는 사회적 장벽을 현실적으로 드러냈으나, 결말에서 이 문제에 대하여 강경한 목소리를 내거나, 일과 육아의 딜레마를 해결하는 묘수(혹은 판타지)를 제공하지는 않았다. 그저 개인적 차원에서 실현 가능한 현실적인 선택을 보여줄 뿐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공감되고, 더 위로가 되는 결말이었다.

  <예기치 못한>은 준비되지 않은 임신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준비되지 않은 임신이 생각보다 끔찍한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이 다 잘되는 마냥 행복한 일이 아니라는 것도 보여준다. 그런데 이러한 중립적인 묘사 덕분에 임신에 대한 두려움이 많이 해소된다. 오히려 지나치게 미화했다면 이러한 감정을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예기치 못한 임신이 닥치더라도 우리의 삶이 계속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중간중간 나오는 유머들도 임신을 바라보는 긴장된 시각을 누그러뜨리는 역할을 한다. <예기치 못한>은 나처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임신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마음의 준비를 하도록 만들어준다. 

  영화에서 임신의 위기를 맞이한 사람들이 주변과 서로에게 의지하며 어려움을 헤쳐나간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혼의 상태로 임신하고, 어디에 말도 못한 채 혼자서 고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인터넷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영화는 이러한 어려움에 빠진 사람들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들에게는 남자친구도 있고, 가족도 있고 친구가 된 서로가 있다. 실제로 그들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될 수 있는지는 미지수다. 때로는 사만다의 엄마처럼 속이나 긁고 방해만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혼자가 아니라는 그 사실이 큰 위로가 된다. 함께하는 것으로 위기를 극복한다는 점이 이 영화를 따뜻하게 만들어 준다.

▲ <예기치 못한>은 따뜻하고 다정한 영화다.






  Know your enemy

  영화는 훈훈한 장면으로 마무리되지만, 그들이 처한 상황을 생각하면 마냥 훈훈할 수만은 없었다. 그나마 재스민은 처한 상황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작은 성공을 이루어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만다는 임신 때문에 원하던 직업을 가질 수 없었다. 그리고는 어쩔 수 없는 그 현실을 그냥 받아들인다. 물론 육아도 충분히 보람된 일이고, 전업주부도 마냥 녹록지 않은 일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직업을 포기해야만 하는 그 상황을 그저 묵묵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은 순순히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재스민의 입학을 가로막는 일리노이 대학교의 정책도 답답하게 느껴진다. 아이를 가진 학부생의 어려움을 모를 리가 없지만, 그를 위한 지원책은 전혀 마련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그렇게 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음에도 말이다. 하지만 사만다와 재스민은 '학부생은 받아들이지 않고, 예외도 없다.'라는 한 마디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발걸음을 돌린다. 

  그들의 이런 모습이 무기력하게 느껴졌다면 너무 가혹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일까?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더 싸울 수 있는 여지가 남아있어 보였다. 내가 사만다였다면 업무가 바쁜 시기만이라도 남편이나 부모에게 육아를 부탁했을 것이다. 재스민의 경우라면 보다 격렬하게 투쟁할 수 있다. 미혼모의 입학을 가로막는 학교의 정책을 규탄하고, 학생과 지역사회의 여론을 모아 학교를 압박했을 것이다. 그다지 비현실적이지도 않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일도 아니다. 그러나 영화는 이러한 투쟁의 길을 완전히 외면한 채 그저 받아들이기만 한다.

  물론 <예기치 못한>은 투쟁보다 공감에 초점을 둔 영화다. 대부분 사람들이 조용히 삶에 수긍하듯 사만다와 재스민도 그들을 가로막는 현실의 장벽에 묵묵히 수긍한다. 말도 안 되는 판타지를 보여주는 것보다는 이러한 수긍이 보다 현실적이고 공감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영화가 '여성영화'로서 정체성을 가지려면 단순히 공감에 그쳐서는 안 된다. 더구나 그 주제가 '일-육아 딜레마'라는 여성인권의 최전선에 해당하는 문제라면 더욱 그러하다. 완벽한 해답을 보여주지는 못하더라도 어디에 목소리를 내어야 하는지는 보여줘야 했다. 무엇에 저항하고,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지를 보여줘야 했다. 손발이 묶였다고 고개 숙이고 있으면 안 된다. 소리라도 질러야 하지 않겠는가?

  <예기치 못한>이 해답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훌륭한 문제 제기를 보여준 것이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일-육아 딜레마'는 문제 제기로 삼기에는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문제이다. 임산부에 대한 직장 내 반감, 워킹맘의 고충, 나아가 가정의 피폐함까지... 그 고통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임신한 여성은 사회적 불이익에 고통받고 있습니다.'라고 외쳐봤자, '그래서 어쩌라고'말고 뭐라 답할 수 있겠는가! 

  <예기치 못한>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남성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지 않은 점은 분명 칭찬하고 싶다. 그녀들의 꿈을 막는 것은 이 남성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들은 현실의 장벽을 부술 때 함께 어깨를 부딪쳐야 하는 동지들이다. 그렇다면 영화는 함께 연합하여 싸워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 알려줘야 했다. 이를 보여주지 못했기에 <예기치 못한>은 적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순진함이라는 한계를 갖게 된 셈이다.

  단 한 편의 영화로 견고하게 틀어막힌 사회의 장벽을 일거에 허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장벽을 이루는 관습적 합의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는 낼 수 있다. 어디에 소리를 질러야 하는지, 싸워야 하는 대상이 무엇인지 알려줘야 한다. 영화는 사회를 바꾸는 힘을 가지고 있다. <예기치 못한>은 훈훈함만을 바라보다 그 힘을 잊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큰 위로는 되었지만, 울림은 작았다. 이 영화는 <노마 레이>나 <Sicko>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 착한 것이 능사는 아니다.






※ 영화의 주연을 맡은 코비 스멀더스는 영화 촬영 당시 실제로도 임신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 코비 스멀더스는 쉴드의 그분 맞습니다.


※ 여성영화로서 아쉬움이 남을 뿐 훈훈함이 강점인 매력적인 영화입니다. 

※ 연인들을 위한 최고의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결혼을 생각한다면 꼭 같이 봤으면 하는 영화입니다. 

※ 영화 보여줘서 고맙다는 소리를 오랜만에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