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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쌤 윤PD

<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 - 세계관에 먹힌 작품

※ 이 글은 영화 <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하 <어벤져스2>), <왕좌의 게임>,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이하 <매드맥스>), <미션 임파서블>, <터미네이터2>, <론머맨>, <디지몬 어드벤처 : 우리들의 워 게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어벤져스2> 포스터

정말 깨알같이 박아 넣었다. 포스터가 '좁아ㅠㅠ'

참고로 미국판은 캡틴 아메리카가 맨 앞이다. (참조)
일본판 포스터가 골때린다. (참조)

  <어벤져스2>는 국내에서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arvel Cinematic Universe, 이하 MCU) 작품 중에서 역대 최고의 흥행성적을 거두었다. 하지만 작품에 대한 평가는 흥행성적을 따라가지 못하는 듯하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려다 보니 난잡해졌다는 평도 있고, 페이즈2와 페이즈3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는 평도 있다. 전반적인 평가에 동의하는 바이다. MCU 세계관을 정리하는 크로스오버 형식의 작품이기에 다소의 난잡함은 태생적 한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 정도면 선방했다.'라는 평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하지만 단순히 난잡하다고 하기에는 뭔가 찝찝함이 남는다. '작품의 특성상 어쩔 수 없었다.'는 쉴드성 의견에 공감하면서도 그 쉴드로는 막을 수 없는 껄끄러움이 느껴진다. 태생적 한계를 넘어 작품의 근본적인 부분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어벤져스2>가 표값이 아까울 정도의 졸작은 아니다. 입속에 작은 털이 있는데 뱉어내자니 유난 떠는 것 같고, 삼키자니 찝찝한 상황이다. 어쩌면 나 혼자 신경 쓰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찝찝함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한 마디로 이 글은 글쓴이의 주관적인 헛소리라는 얘기





  왜 안 쫄깃함요?

  내가 액션영화에서 얻고자 하는 쾌감에는 쫄깃함이 있다. 흔히 서스펜스라 하면 알프레드 히치콕이나 추리물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에일리언 1>을 서스펜스라 부르는 경우는 있어도, <에일리언 2>를 서스펜스라 부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동안 엉덩이를 가만두지 못할 정도로 긴장했던 것은 <에일리언 2>였다. 액션에도 분명히 서스펜스는 있다. 그러나 서스펜스라는 단어의 보편화 된 의미로는 액션에서 오는 역동적인 긴장감을 표현하는 데 무리가 있다. 그래서 나는 쫄깃함이라는 말을 선호한다. (게다가 그 어휘가 주는 쫀쫀한 느낌이 아니면 맛이 살아나지 않는다.) 설명이 개떡 같지만, 모두 찰떡같이 알아들으시리라 믿는다. 자주 쓰는 말이지 않은가;;;

  내가 <어벤져스2>에서 가장 아쉬웠던 것이 바로 이 쫄깃함이었다. 아쉽게도 <어벤져스2>는 별로 쫄깃하지 못했다. 영화가 클라이맥스에 다다를수록 손에 땀을 쥐기보다 '빨리 결말이나 보여주고, 떡밥이나 공개해부러~'하는 마음뿐이었다. 그렇다고 <어벤져스2>가 아주 형편없는 수준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묠니르와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가 만들어내는 충격파라던가, 헐크와 아이언맨의 싸움 등 '어벤져스'만이 보여줄 수 있는 매력적인 액션을 감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통쾌할지언정 쫄깃하다는 느낌은 없었다. 액션 자체는 훌륭한데 왜 쫄깃함을 느낄 수 없을까? 높은 수준의 액션이 빛이 바래는 기분이라 실망스럽다기보다는 안타까운 심정이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왜 안 쫄깃한 걸까?





  죽음이 너희를 쫄깃하게 하리라

  가장 먼저 지적하고 싶은 요소는 데쓰'죽음'이다. 죽음은 쫄깃함을 불러온다. 이에 대한 설명으로 <왕좌의 게임> 원작자인 조지 R.R. 마틴의 인터뷰를 보도록 하자.

▲ 죽음에 대한 마틴의 철학

하지만 이런 협박을 하는 걸 보면 단순히 살육을 즐기는 망상형 사이코패스일지도... (참조) (참조)

  나에게 마틴의 주장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주인공이 죽을 수 있다는 점도 새삼스레(?) 깨달았지만, 가장 중요한 깨달음은 죽음이 쫄깃함을 가져온다는 점이었다. 마틴의 철학 덕분에 <왕좌의 게임>은 매회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조마조마하며 바라볼 수밖에 없다. 나에게는 에다드 스타크의 죽음이 가장 충격적이었다. 그 이후에는 위기의 순간이나 죽음의 복선이 등장할 때면 그 대상이 누구든지 간에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몰입하기 때문일까? 정 붙이던 등장인물이 죽을 때의 아쉬움도 다른 작품보다 크다. 하지만 조프리가 죽을 때는 너무너무 좋더라. 덩실덩실. *^^*

  <왕좌의 게임>처럼 이야기를 통해 죽음을 효과적으로 드러낸 작품으로, <어벤져스2>와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매드맥스>를 꼽고 싶다. 사실 <매드맥스>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맥스가 아닌 퓨리오사다. 그리고 영화의 중심 이데올로기는 퓨리오사가 상징하는 구원(또는 혁명)이다. (참조) 맥스가 상징하는 생존의 이데올로기가 <매드맥스>의 중심 주제는 아닌 셈이다. 하지만 생존의 이데올로기는 죽음에 대한 공포로 이어지며 영화에 쫄깃함을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 <매드맥스>는 초반 탈출 시퀀스부터 임모탄의 여인 중 한 명인 스플랜디드의 죽음을 보여준다. (심지어 임신부라 2명이 죽은 셈이다.) 후반의 귀환 시퀀스에서는 부발리니 할머니들의 죽음을 보여준다. 이들의 죽음은 혁명의 목표를 '쟁취하라!'에서 '살아서 쟁취하라!'로 바꾼다. 한 사람, 한 사람 희생될 때마다 혁명에 대한 간절함은 더욱 증폭된다. 그리고 이 간절함은 눅스의 죽음으로 절정을 맞는다. 그저 무찌르는 것이 목표였다면 이러한 간절함은 없었을 것이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존의 이데올로기가 간절함을 불러온 것이다. <매드맥스>는 이러한 생존의 이데올로기를 드러내기 위해 영화 곳곳에 죽음에 대한 공포를 배치했다.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관객은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한다. 죽음이라는 내러티브적 요소가 영화를 더욱 쫄깃하게 만들어 준 셈이다.

  아쉽게도 <어벤져스2>에서는 죽음의 위협을 느낄 수 없었다. 영화는 클라이맥스까지 어떤 인물의 죽음도 보여주지 않는다. 엑스트라는 사람도 아니냐! 이러다 보니 치고받고 싸워봤자 결국에는 어벤져스가 무난히 승리할 거라 예상하게 되고, 이야기는 김이 빠져 버린다. 이래서 삼성이 어벤져스와 콜라보를! 어차피 올해도 삼성이 우승하겠지...

  그런데 히어로에게 죽음의 쫄깃함을 요구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일일까? 캡틴 아메리카나 아이언맨 같은 인간형 히어로라면 모르겠지만, 헐크나 토르같은 초인형 히어로라면 죽을까 봐 걱정하는 것이 되려 이상하게 느껴진다. 설령 인간형이라 하더라도 시리즈를 쌓아오며 모아온 팬들의 성원 때문에 손쉽게 죽이기도 어렵다. 콜슨이 죽었을 때 팬들의 반응을 기억하는가? 오바마 미국 대통령까지 나서서 콜슨을 살리라는 트윗을 남기기도 했다. 하물며 사이드킥의 죽음에도 이 정도의 반향이 일어나는데 주연급 인물이면 어떻게 될까? 디즈니랜드에 시위대가 올지도 모를 일이다. 히어로는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고, 죽이고 싶어도 죽일 수 없는 존재다. 이런 히어로에게 <왕좌의 게임>을 들이대며 죽음을 종용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일지도 모른다. 아마 감독도 죽음의 부재와 그로 인한 쫄깃함의 상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기에 눈물을 머금고 아무도 죽지 않는 이야기를 그려냈을 것이다. 당연히 그렇게 이해해 줄 수 있었다. 퀵실버가 죽기 전까지는 말이다.

  죽음이 사라진 평안 속에서 지루함을 끌어안고 결말을 향해가던 영화는 느닷없이 퀵실버의 죽음을 보여준다. 실로 황당한 죽음이었다. 사망 복선 좀 보여준다고 이따위 죽음이 정당화되진 않는다. 죽는 이유도 억지스럽지만 가장 큰 불만은 따로 있다. 바로 퀵실버가 죽는 타이밍이다. 왜 하필 그 타이밍에 죽는단 말인가? 어벤져스의 갈등은 비전의 탄생으로 (일단은) 봉합된 상태였다. 스칼렛 위치도 호크아이에게 세례를 받고 어벤져스로 각성한 후였다. 덕분에 퀵실버의 죽음은 어벤져스에게 아무런 의미도 주지 못했다. 개죽음. 콜슨의 죽음이 어벤져스를 하나의 팀으로 거듭나게 했던 전편과는 많은 차이가 난다. (이번에는 퀵실버 살려내라고 아우성치는 사람도 없다.) 퀵실버를 20세기폭스와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반드시 죽여야 했다면 그 타이밍을 좀 더 일찍 잡았어야 했다. 그랬다면 그의 죽음을 스칼렛 위치의 각성과 연계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 관객에게 '히어로도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심을 수 있었다. 그랬다면 <어벤져스2>도 조금은 쫄깃해지지 않았을까? 기승전퀵실버

▲ 질주하는 퀵실버

호구아이로부터 호구 자리를 물려받았다.
잘 죽는 것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by김동준(롤 챔스 해설, 이렐 까는 미남)





  'Mission : Impossible'의 부재

  꼭 죽음만이 쫄깃함을 불러오는 걸까? 쫄깃함을 선사하는 또 다른 요소가 있다. 바로 '불가능한 임무'다. 여기 죽는 사람 없이도 최고의 쫄깃함을 선사한 장면을 소개한다. 바로 <미션 임파서블>의 줄타기 신이다. 이거? 이 장면의 쫄깃함은 해당 신에서만 완성된 것이 아니다. 영화는 임무에 돌입하기 전부터 이 임무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꼼꼼하게 설명하며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그리고 실제로 맞닥뜨린 임무는 상상한 것 이상의 어려움을 보여준다. 임무가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주입되면, 관객은 이를 성공하기 위한 노력에 더욱 몰입하게 된다. 그리고 위기의 순간마다 엉덩이를 들썩이게 하는 쫄깃함에 빠져들게 된다.

<미션 임파서블> 中 줄타기신

  '불가능한 임무'가 영화의 캐릭터로 치환되는 경우도 있다. <터미네이터2>의 T-1000은 죽일 수 없는 존재다. 액체 금속으로 이루어진 T-1000은 아무리 파괴해도 원상 복구된다. 총을 맞아도, 차에 치여도 멀쩡하다.  죽일 수 없는 존재를 죽여야 한다는 점에서 '불가능한 임무'라고 할 수 있다. 액체다 보니 얼려버린다는 창의력을 발휘하기도 하지만 이마저도 수포로 돌아간다. 결국, 최후의 최후에 이르러서야 용광로에 밀어 넣음으로써 물리치게 된다. 

▲ <터미네이터2> 中 T-1000의 응고 신

일명 얼음땡신
Hasta la vista, baby!

  이런 '불가능한 임무'는 성공에 대한 간절함을 불러온다. 그 어려움이 클수록, 불가능하다고 느껴질수록 간절함은 커진다. 그리고 그 간절함에 비례하여 쫄깃함도 커진다. 실패할 것만 같은 아슬아슬한 상황이 관객에게 쫄깃함을 선사하는 것이다. 따라서 좋은 액션 영화는 '불가능한 임무'를 제시할 줄 알아야 한다. 반대로 너무 쉬운 목표가 제시된다면 영화는 맥이 빠져 버린다. (최근 게임들이 너무 쉽다고 아쉬움을 표하는 매니아들의 발언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어벤져스2>에도 불가능한 임무가 존재한다. 바로 영화의 최종 목표인 울트론의 제거가 그것이다. 울트론은 인공지능이기 때문에 육체를 파괴해도 언제든지 새 육체로 갈아탈 수 있다. (새로운 육체가 기존의 육체를 찢어버리며 등장하는 장면이 이를 잘 보여준다.) T-1000에게서 느꼈던 막막함을 울트론에게서도 느낄 수 있다. 여기까지 보면 울트론이라는 캐릭터는 '불가능한 임무'에 매우 적당해 보인다.

  문제는 울트론이 더 강력해지기 위해 육체를 가지려 했다는 점이다. 성공적으로 비브라늄 육체를 얻게 된다면 최강의 존재로 거듭나겠지만, 그의 계획은 실패하고 대신 비브라늄 육체를 통해 비전이 탄생한다. 응애 응애. 이 부분부터 슬슬 맥이 풀리기 시작한다. 적이 원하던 최강의 힘을 아군이 얻게 되니 긴장되기는커녕 안심이 된다. 게다가 비전은 울트론의 가장 중요한 능력마저 봉쇄해버린다. 지구 네트워크상의 모든 울트론에 자신을 덮어씌워 울트론을 완전히 삭제시켜 버린 것이다. 이 공격 덕분에 울트론은 필멸자가 되어버린다. <어벤져스2>에서 '불가능한 임무'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쫄깃함을 간직하고 싶었다면 울트론의 불멸성을 최후의 순간까지 유지했어야 했다. 따라서 비전의 탄생을 클라이맥스로 삼거나, 하다못해 네트워크 공격만이라도 최후의 순간으로 미루어야 했다. 특히 네트워크 공격이 너무나 쉽게 이루어진 점이 아쉽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론머맨>이나, <디지몬 어드벤처 : 우리들의 워 게임!>의 표현이 훨씬 나아 보인다. 하지만 MCU를 위해 비전은 태어나야만 했고, 울트론은 필멸자가 되었으며, 감독은 네트워크 공격에 별다른 고뇌가 없었다. 덕분에 최후의 소코비아 전투는 규모만 요란할 뿐 어떠한 쫄깃함도 선사하지 못했다.

▲ <론머맨> 中 엔딩신

B급 SF 호러의 숨겨진 명작.
어릴 때 보고서는 사이버 섹스신에 큰 충격을 받았다. 한번 해보고 싶다. 오큘러스 리프트는 언제 출시 되는 거지?

▲ <디지몬 어드벤처 : 우리들의 워 게임!> 中 엔딩신

진심 <어벤져스2>보다 훨씬 쫄깃하다.
'울트론=디아블로몬', '비전=오메가몬', '핵미사일=인공운석'으로 묘하게 짝이 맞는다.
그냥 이 신을 통째로 베끼는 게 나을 뻔했다.





  세계관에 먹힌 작품

  일전에 마블 작품을 평가하며 MCU를 극찬한 적이 있다. MCU의 장점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다양한 작품을 출시하면서도 등장인물 간의 힘의 균형을 맞출 수 있다. 독립적이면서도 시리즈 연계성을 갖출 수 있기도 하다. 무엇보다 MCU라는 탄탄한 세계관이 있기에 히어로 무비의 전형에서 벗어나더라도 안정감 있는 전개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어벤져스>시리즈는 이러한 MCU의 장점을 기반으로 태어난 작품이다. 

  그런데 이번 <어벤져스2>는 MCU를 너무 의식한 것 같다. 작품 자체의 전개보다 MCU의 전개에 무게중심을 두었다. 그 결과 독립작품으로서는 아쉬운 이야기를 보여주고 말았다. 퀵실버나 비전의 분량은 MCU를 생각하면 적절하다고 봐 줄 수도 있지만, <어벤져스2>라는 독립작품으로서는 너무 과했다. (퀵실버의 경우 <엑스맨 : 데이즈 오브 퓨쳐 패스트>와 비교하면, 보여주는 것도 없으면서 분량만 더 챙겨가는 느낌이다.) 퀵실버의 늦은 퇴장과 비전의 빠른 등장이 쫄깃함을 빼앗았다. 액션의 절정인 쫄깃함을 끌어내기에는 전희가 부족했던 셈이다.

  세계관은 작품을 뒷받침 하는 데에 머물러야 한다. 작품이 세계관의 눈치를 심하게 보면 이야기는 지루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도 세계관에 무게를 둔 만큼, MCU 시리즈가 진행됨에 따라 <어벤져스2>의 평가는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지금으로써는 아쉽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요약
  1. 퀵실버가 너무 늦게 죽었다.
  2. 비전이 너무 일찍 태어났다. (하다못해 네트워크 공격만이라도 제대로 다뤘어야 했다.)
  3. 덕분에 마지막 전투가 매우 지루해졌다.
  결국, 퀵실버는 존재감이 없고, 울트론은 하나도 안 세 보였다는 얘기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은 글에 불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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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팟캐스트 방송 [미련한 연애 시네마]에서 <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을 다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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