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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가끔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자

고개 숙인 사람들



요즘 사람들을 보면 하나 같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손안의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이게 무슨 큰 잘못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누군가는 시시껄렁한 동영상을 보고 있을 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착실하게 공부하며 자기계발하고 있을 수도 있다. 손안에 든 게 스마트폰이 아니라 책이어도 고개를 숙이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글도 보고, 사진도 보고, 동영상도 봐야 한다. 봐야 할 게 너무도 많다. 그래서 사람들은 고개를 숙인다. 쏟아지는 정보를 쉬지 않고 탐닉한다.


하지만 온종일 책만 본다고 똑똑한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인풋(input)이 배움의 전부가 아니다. 읽은 것을 소화하며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생각한 것을 다시 토해내는 아웃풋(output)도 필요하다. 그 내용을 사람들과 나눌 필요도 있다. 정보의 홍수 속으로 과감히 뛰어드는 것도 좋지만, 때로는 흘러가는 물결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길 여유가 필요하다. 



하늘에 그려진 이야기


그러니 가끔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자. 인생에도 띄어쓰기가 필요하다. 공백이 필요하다. 공백은 상상의 시작이다. 모든 이야기에는 공백이 있다. 아무리 드라마틱한 이야기라도 먹고 자고 싸는 자잘한 일상까지 들려줄 수는 없다. 그래서 이야기는 사이사이 공백을 둔다. 그 공백은 짧으면 며칠, 길게는 몇 년, 때로는 몇만 년을 아득히 뛰어넘기도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공백을 자신만의 이야기로 채운다. 그렇게 이야기의 역사가 흐른다.


하늘은 공백으로 가득하다. 얼핏 텅 비어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태양이 서쪽으로 숨으면, 무수히 많은 반짝임이 떠오른다. 우리는 이를 '별'이라고 부른다. 만약 하늘이 별들로 빼곡하게 차 있었다면 너무 밝아서 별이 존재하는지도 모를 것이다. 하지만 별들은 대부분의 공간을 공백의 어둠에 양보했다. 그 대가로 반짝이는 아름다움을 얻었다. 상상할 여유를 얻었다. 고대의 사람들은 이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별과 별 사이의 공백을 이으며 수많은 이야기를 창조했다.



<하늘에 그려진 이야기>는 하늘의 공백을 가득 채웠던 그리스인들의 별자리 신화를 다루고 있다. 요즘 같은 과학 만능 시대에 과연 신화로부터 어떤 가치를 얻어갈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요즘 같은 시대일수록 하늘에 그려진 이야기가 더욱 반짝인다고 생각한다.



이야기의 뿌리를 찾아서


<하늘에 그려진 이야기>, 44p


먼 옛날 우리 선조들은 하늘 아래 우뚝 서서 우리가 보는 것과 똑같은, 희미하게 빛나는 별을 때로는 놀라면서 때로는 두려워하면서 쳐다보았고 이어 깊은 생각에 잠겼다. 2천 년 전에 살았던 어떤 한 사람은 시대를 초월하여 모든 사람을 대변하는 이런 말을 했다. "하늘의 빛은 인간의 시선을 위로 향하게 했다. 그들은 어두운 밤에 나타난 기이한 빛에 놀랐고, 인간은 정신력을 기울여 신성의 원인을 찾아내려 했다."

<하늘에 그려진 이야기>, 4p

고대 그리스인들은 밤하늘의 별을 보며 우주를 명상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으뜸가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별자리라 불리는 별 무리를 만들었고, 그것에 갖가지 이야기를 부여했다. 그리스인들은 별자리가 인간에게 영감을 주기 위한 신의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야기의 역사는 그 말 그대로 이어졌다. 하늘의 공백에서 시작된 상상은 인류의 문화와 정신에 뿌리 깊게 자리 잡았다. 오늘날에도 무수히 많은 새로운 이야기가 태어나지만, 그 모든 이야기가 저절로 뚝딱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그 이야기의 뿌리를 찾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고대 그리스인들의 별자리 신화를 만나게 된다.


오늘날에도 그리스 신화는 다양한 영감을 제공하고 있다. 실제로 많은 콘텐츠가 그리스 신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스타워즈>는 그리스 신화의 비극을 적극 차용했다. 비극적 예언을 피해가려고 애쓰지만, 결국 예언은 이루어지고 만다. 그리스 신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전개다. 마블의 히어로는 그리스 신화의 신들과 영웅을 연상시킨다. 헐크는 괴력의 영웅 헤라클레스, 호크 아이는 활의 신 아폴론, 캡틴 아메리카는 전쟁의 신 아레스를 떠올리게 한다. DC의 히어로도 마찬가지다. 원더우먼은 지혜와 전쟁의 여신 아테나, 아쿠아맨은 바다의 신 포세이돈을 닮았다. 


아쿠아맨과 포세이돈



가끔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자


<하늘에 그려진 이야기>, 220p


18세기에 천문학은 더욱 과학적이고 냉철한 학문으로 발전했다. 그리하여 천문학은 초창기 천체 관측의 특징이었던 인간적 면모를 대부분 잃게 되었다. 현대에 들어와서 별자리의 이미지들은 자주 무미건조한 추상적 도형으로 대체되었다. 문제를 더 심각하게 하는 건, 최근에 들어와 더 이상 고대 사람들처럼 별자리를 묘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늘에 그려진 이야기>, 218p

지식의 발달은 삶을 풍요롭게 하지만, 때로는 상상할 자유를 빼앗기도 한다. 우주는 더 이상 대중의 관심을 자극하지 않는다. 처음 달에 착륙한 아폴로 11호는 전 세계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그 이후로 몇 번이나 달에 착륙했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폴로 12호, 14호, 15호, 16호, 17호 총 5번이다) 우주는 모험과 상상의 세계에서 벗어나 천문학자들만의 세계가 되었다. 


어쩌면 이 또한 지식의 저주*일지 모른다. 많이 안다고 생각하면, 그만큼 상상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실제로는 많이 아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우주에 관해 아는 것은 전체의 5%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아직도 비밀에 싸여 있다. 그럼에도 공백이 선사하는 영감을 외면하고 있다. 상상과 이야기를 뒤로하고 지식과 정보만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본래 지식의 저주란 '지식을 알고 난 후 모르던 상태를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인지 편향'을 말한다. 이는 전문가가 초보자의 의사소통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그러니 가끔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자. 지식을 탐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공백의 여유를 감상할 필요도 있다. 지식이 우리 삶을 편리하게 한다면, 상상은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한다. 그러니 가끔은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보고, 별을 노래하자. <하늘에 그려진 이야기>를 따라가 보자.


http://bit.ly/31ZySa5



본 콘텐츠는 로크미디어로부터 제작비를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