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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행복하자 우리, 아프지 말고

1. 두려움을 마주하다


잘 준비를 하던 중이었는데 잠옷 바지를 입지 않고 멀뚱멀뚱 서 계시는 거예요. 집 안에서도 벗은 몸으로는 절대로 돌아다니지 않는 분이시거든요. 밤 10시쯤, 저도 자러 가는 길에 욕실에 불이 켜져 있는 걸 봤어요. 그러고는 새벽 1시에 깼는데 그때도 불이 켜져 있더라고요. 가 봤더니 엄마가 가만히 서 계셨어요. 방향감각을 잃은 것 같았어요. 어쩌면 밤새 그러고 계셨겠다 싶었죠. 그래서 119를 부른 거예요.

- <나이듦에 관하여>, p79


<나이듦에 대하여>에 등장하는 베로니카의 어머니는 어느 날 밤 이상 행동을 보인다. 베로니카는 걱정되어 급하게 119를 불렀지만, 출동한 대원들은 별일 아니라며 이렇게 대답한다.


"어머니 연세가 여든에, 지금 한밤중이잖아요. 뭘 기대하세요?"



대원들은 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노모의 이상행동을 정상으로 판단한다. 베로니카는 아침 일찍 담당의(책의 저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의사는 끈질긴 문답을 통해 문제의 원인을 유추해냈다. 몇 시간 뒤, 베로니카 어머니의 뇌 스캔 결과에는 검은색 잉크가 잔뜩 쏟아진 것 같은 화면이 떠올랐다. 노모의 뇌가 피를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노인은 출혈성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불행이 두려운 이유는 예고 없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불행이 그런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불행은 닥치고 난 뒤에 보이지 않던 예고를 드러낸다. 뒤늦게 이를 발견하면 후회만 남는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불행은 거의 없다. 하지만 미리 준비하는 지혜를 가진 사람도 별로 없다. 그래서 우리는 불행을 두려워한다. 이러한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편견 없는 자세가 필요하다. 특히 노인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나이듦에 관하여>, 83p



2. 젊은 성인과 늙은 성인은 다르다


무슨 일이야? 안느!

여보, 나야.

안느... 왜 그래?

안느, 대체 왜 그래?

- 영화 <아무르>



어느 날 평소처럼 아침 식사를 하던 중. 남편이 아내를 부른다. 하지만 늙은 아내는 대답이 없다. 눈동자에 초점도 없다. 물수건으로 얼굴을 적셔보지만, 역시나 반응이 없다. 남편은 급한 마음에 외투를 챙겨입는데, 누군가 틀어놓은 수도를 잠근다. 주방에 가보니 아내가 핀잔을 건넨다.


"뭐 하고 있었어? 수도꼭지도 틀어놓고."


아내는 조금 전의 일을 기억하지 못했다. 왜 반응이 없었냐고 물어도, 무슨 소리냐고 황당해한다. 남편은 의사를 찾아가자고 하지만, 아내는 아무 문제 없다며 거부한다. 그렇게 병원조차 가지 않고 끝났을지도 모른다. 뒤이어 아내가 차를 따르려다 바닥에 쏟아버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만약 내가 비슷한 일을 겪었다면 어떻게 대처했을까? 같은 상황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지도 모른다. 엄마가 오늘 좀 이상하시네. 속으로만 말하고 지나갔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실체는 마비 증세를 불러오는 무서운 질병이었다. 모르면 죽음에 이르는 신호도 그냥 지나칠 수 있다. 알아야 막을 수 있다. 


이러한 응급 상황만이 전부가 아니다. 처방전 없이 쉽게 살 수 있는 약도 고령 환자에게는 신부전이나 내출혈을 일으킬 수 있다. 별것 아닌 증상이어도 노인에게는 심각한 징후의 신호일 수도 있다. 노인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다면 제대로 된 치료가 이루어질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편견과 차별의 시선으로 노인을 바라본다. 노인은 으레 그러려니 넘어가고, 우리 삶과 떨어뜨려 선을 긋는다. 그것이 부모님의 미래이고, 또한 자신의 미래인데도 말이다. 


<나이듦에 관하여>, 51p



3. 행복하자 우리, 아프지 말고


2007년에 이르러 알츠하이머는 미국 국민 사망 원인 순위에서 6위에 등극했다... 이런 목록에서 어떤 질환이 몇 등에 올랐느냐에 따라 의학 교육의 내용과 진료과별 예산 분배비는 물론이고 대중의 인식과 정부 정책을 포함해 우리 사회 전체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 <나이듦에 관하여>, p105


현재 우리 사회의 의료 제도는 치료를 시스템의 문제로 파악한다. 시스템은 같은 병을 앓는 환자라면 누구나 똑같은 치료로 효과를 본다고 가정했다. 이게 결정적인 실수였다. 환자에게는 개개인성이 존재한다. 특히 노인은 젊은 성인과 전혀 다른 치료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시스템은 각종 시술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그런 시술 때문에 노쇠한 환자에게 합병증이 발생해도 청구된 의료비를 군말 없이 병원에 지급한다. 그렇게 도움도 안 되면서 비싸기만 한 치료에 막대한 예산을 낭비하고 있다. 



<나이듦에 관하여>는 이러한 문제점을 신랄하게 꼬집는다. 고루한 시스템 안에서 노인들은 만년 2등 시민으로 머문다. 그들을 위한 의료 시스템도 뒷전으로 밀려난다. 정말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는 셈이다. 시스템 밖에서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막대한 돈이 들어간다.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그럴 만한 여유가 없다. 결국, 노인에 대한 인식 개선과 노인의학의 전면적인 개정이 필요하다. 실버 쓰나미는 코앞까지 다가왔다. 대한민국은 현재 가장 빠른 속도로 초고령사회에 돌입하는 국가이다. 


<나이듦에 관하여>, 141p




<나이듦에 관하여>의 저자 루이즈 애런슨 하버드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이자, 푸시카트 문학상 최종 후보에 4차례나 오른 뛰어난 작가이다. 그리고 또한 세계적인 노인의학 전문의이기도 하다. 그녀는 풍부한 의학 지식과 뛰어난 필력으로 노년기의 삶을 파고든다. 노인에 대한 편견, 시스템의 문제, 실질적으로 마주해야 할 두려움의 실체, 그리고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서술한다. 책 전반에 걸친 뛰어난 통찰은 우리에게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음을 경고하고, 그에 필요한 태도를 갖추라고 촉구한다. 초고령사회를 눈앞에 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루이즈 애런슨


나의 부모님은 하루하루 늙어가시리라. 그리고 나 또한 뒤를 이어 나이 들 것이다. 준비하지 못한 채 인생의 3막을 마주한다면, 그곳에는 두려움과 혼란만 가득할 것이다. 나는 우리 가족의 미래가 행복하길 바란다.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부모님도 나도 두려움 없이 늙어가길 바란다. <나이듦에 관하여>는 그러한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최고의 지침서가 되어 줄 것이다. 


잊지 말자. 대부분의 불행은 예고 없이 찾아오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예고를 무시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의 나이듦이 불행이 아닌 행복이 되길 바란다면, <나이듦에 관하여>를 꼭 읽어보길 바란다. 


http://bit.ly/389ESiV



본 콘텐츠는 로크미디어로부터 제작비를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