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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휴지통

호구론






  호구. 범의 아가리. 바둑돌 석 점에 둘러싸여 한쪽만 비어있는 모양. 여기서 유래된 또 다른 의미. 어수룩해서 이용하기 좋은 사람. 사기꾼과 타짜에게 털어 먹히기 위해 죽을 곳에 제 발로 뛰어드는 사람. 범의 아가리에 갇힌 자. 호구.

  털어 먹힌 것도 억울한데, 왜 사람들은 굳이 호구라고 부르며 아픈 곳을 후벼 파는 걸까? 왜냐면 멍청해 보이니깐. 들어가면 죽을 수에 제 발로 들어가는 것만큼 멍청한 짓도 없다. 하지만 죽을 곳인 줄 알았으면 제 발로 들어갔을까? 전문 사기꾼의 설계는 매우 치밀해서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속임수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아니, 도리어 똑똑할수록 파악하기가 힘들다. 스스로 어리숙하다고 생각해서 욕심부리지 않고, 뭐든지 열심히 찾아보려는 사람은 사기당하지 않는다. 스스로 똑똑하다 생각하여 자만하는 사람, 그래서 욕심이 뿜어나오는 사람이 호구가 되기 쉽다.

  꼭 사기꾼에게 억 소리 나게 털려 먹히는 사람만 호구라고 불리는 것도 아니다. 일상적인 인간관계에서도 호구는 등장한다. 특히, 연애 관계에서 자주... 상대방에게 아낌없이 퍼주었는데 나중에 배신당하거나 차이는 사람도 호구라 불린다. 솔직히 좀 억울하다고 생각한다. 그저 열심히 사랑한 것뿐인데, 상대에게 최선을 다한 것뿐인데 호구라고 불려야 하나?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게 이성적인 일은 아니지 않은가? 상대가 인간말종이라도 내 심장이 사랑하면 사랑하는 건데. 그래서 잘 해줬는데. 이게 왜 멍청한 짓인가? 이게 왜 호구 짓인가?

  하지만 호구 소리를 들어 싼 경우도 있다. 연애하겠다고 빚까지 지고, 모아 놓은 재산 털리고, 자신의 피와 살을 깎아가며 사랑하는 사람들. 설령 배신당하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이들은 호구다. 사랑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치라고들 하지만, 사랑보다 소중한 게 있다. 그게 바로 너다. 너 자신은 사랑보다도 세상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다. 건강 잃어가면서 돈 많이 버는 게 바보짓이듯, 자기 인생 버려가면서 사랑하는 것도 멍청한 짓이다. 세상에 너보다 중요한 가치는 없다. 자기 배부르자고 남을 등쳐먹어서는 안 되겠지만, 어떤 고귀한 가치도 네가 살아남는 것보다 소중하진 않다. 그러니 자기 삶을 망쳐가며 사랑하는 것은 호구 짓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왜 자신을 망쳐가면서까지 사랑에 목매는 걸까? 욕심이 많아서 그렇다. 심해진 욕심은 두려움이 된다. 사랑이 거절당하는 것이 두렵고, 헤어지는 것이 두렵고, 미움받는 것이 두렵다. 두려움에서 해방되고 싶으면 욕심을 버리면 된다. 조금만 여유를 가져도 호구 되는 일은 없다. 연애하다 헤어질 수도 있다. 세상에 사귈 사람은 차고 넘친다. 사랑받고 싶은 욕심을 조금만 줄이자. 어차피 사랑받고자 노력한다고 사랑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사람들은 좋아하는 사람한테 잘해주지, 잘해주는 사람을 좋아하진 않는다. 아예 연애를 포기하고 다른 일에서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도 있다. 솔직히 요즘은 연애도 포기하는 시대인지라, 연애 호구도 별로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결국, 호구를 만드는 것은 욕심이다. 그런데 욕심이 나쁜 건가? 사랑받고 싶어서 노력하고, 성공하고 싶어서 발버둥 치는 게 잘못인가? 호구 잡히지 않겠다고 무소유 청빈 하는 스님이 될 수는 없다. 그렇다. 모든 욕심이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럼 무엇이 좋은 욕심이고, 무엇이 나쁜 욕심일까? 이것을 가르는 요소는 바로 '통제'다. 당신이 다룰 수 있는 분야에서는 욕심내도 좋다. 더 좋은 성과를 내고 싶은 욕심,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은 욕심, 더 좋은 몸매를 갖고 싶은 욕심. 이런 욕심은 좋은 욕심이다. 우리를 발전시키고 성장시키는 욕심이다.  

  그러나 통제할 수 없는 분야에서 욕심내는 것은 무의미하고 고통스러울 뿐이다. 더 사랑받고 싶은 욕심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 다른 사람 마음은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투자로 떼돈을 벌겠다는 욕심은? 주식도 가상화폐도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니다. 그래서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에 욕심내는 일은 무의미하다. 욕심이 결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바라는 대로 되지 않으면 마음만 아프다. 이런 욕심은 버려야 한다. 안 그러면 호구 잡히기에 십상이다. 

  멍청해서 호구가 되는 게 아니다. 나쁜 욕심을 가져서 호구가 된다. 어쨌든 호구가 제 발로 들어가는 일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호구 되기 싫으면, 욕심에도 지혜를 발휘할 줄 알아야 한다. 한 번쯤 찬찬히 생각해도 좋을 일이다.

  당신은 지금 무엇에 욕심내고 있는가? 무엇을 욕망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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