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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쌤 윤PD

<용의자>와 <우는 남자> - 한국 액션 영화의 현 주소


  지난 주말 <우는 남자>를 관람했습니다. 저에겐 기존에 볼 수 없었던, 한국 액션의 새 지평을 보여준 영화였습니다. 이렇게 느끼고 보니 얼마전 토크에서 다뤘던 <용의자>가 떠오르더군요. <용의자>도 한국 액션영화의 진일보였는데 말이죠. 그래서 <우는 남자>에 대한 리뷰는 <용의자>와 비교하며 다루고 싶었습니다. 한국 액션영화의 한계를 넓혀준 두 영화에 대해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과하거나 또는 빈곤하거나


  두 영화 모두 내러티브에서 결정적인 단점을 보여주고, 이 때문에 스토리는 망하고 액션은 흥한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부분의 단점이라고는 하나 실수의 방향은 정 반대라고 생각됩니다.


  주변인들의 <용의자>에 대한 불만 중 은근히 많았던 것이 '대사가 들리지 않는다.' 였습니다. 매달린 공유가 구속을 풀고 나오는 장면에선 설명이 부족하다는 평가도 많았습니다. 개인적으론 시퀀스가 시작되는 부분에서 설득력이 떨어지는 장면들이 불만이었구요. 이런 지협적인 구멍들에 대해서는 매우 공감합니다. 


  그러나 스토리가 엉성하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갸우뚱입니다. 찬찬히 뜯어보면 <용의자>의 스토리는 생각보다 복잡하고 탄탄합니다. 의문의 죽음과 그로인해 시작된 추격전, 북진회와 비리공무원, 사냥개의 각성, 마지막 볍씨개량종이라는 작은 반전까지 줄거리를 요약한 글을 본다면 굉장히 흥미있을만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많은 관객들에게 잘 전달되지 못했죠. 이유가 무엇일까요? 


  저는 지나치게 빠른 속도에서 답을 찾고 싶습니다. 속도가 과하다 보니 관객은 스토리를 음미하지 못하고 따라가기 벅찬 것이죠. 대사가 들리지 않는 것도 속도에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해석을 아는 팝송은 가사가 들리기도 하지만, 처음 듣는 팝송은 가사가 안들리죠. 내용 파악하기도 벅찬데 대사까지 휘몰아 치고 극장의 웅웅거림까지 더해지면 대사를 듣기 힘들겁니다.(집에서 보는 저는 돌려봤지만 ^^;) 스토리는 나쁘지 않았으나 액션과 양립하기에는 137분이라는 러닝타임도 부족하다는 느낌입니다. 좀 더 이야기를 줄이고 호흡을 늦췄다면 어떨까 싶습니다.


  이러한 속도조절의 실패는 감독의 속도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된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관객이 불편해하는 이러한 표현방식에 대해 반성하거나 수정할 생각은 없어보입니다. 다음 인터뷰를 보며 앞으로도 원신연의 이러한 불친절이 계속될거란 생각이 들더군요.


신기주 : 감독님 연출의 강점은 역시 어마어마한 속도일 겁니다. <세븐 데이즈>도 정말 빨랐는데 <용의자>는 정신이 없을 정도더군요.

원신연 : (웃음) 그게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에요. 치밀한 설계가 없으면 불가능한 작업이거든요. 전 규격화된 영화에 대한 거부감이 있어요. 그것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그렇게 고민하다 나오는 방식이 속도인 거죠.

신 : ..... <용의자>에서 공유가 목매달리는 장면 있잖아요? 그게 말이 되는 건가요? 팔이 뒤로 꺾인다는 거? 더 흥미로운 건 그렇게 탈출하고 나서 곧바로 거리 장면으로 이어진다는 거죠. 중간이 없어요. 그게 원신연식 연출의 본질인거죠.

원 : 그건 바뀌지 않을 것 같아요. 절대.1)


  그에 반해 <우는 남자>는 스토리의 진행방식에선 불평할 부분이 없습니다. 목욕탕 오열씬을 뒤로 빼낸 연출은 탁월하다고 칭찬해주고 싶을 정도죠. 그럼 뭐가 문제일까요? 뭐긴 그냥 스토리 자체가 빈곤하고 설득력이 없습니다. 따지고 보면 전작인 <아저씨>도 스토리 자체는 평이하거나 단순하다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실상 두 영화의 스토리 전개는 비슷합니다. 주인공들은 '과거의 아픈기억' 때문에 대상에게 '연민 혹은 죄책감'을 갖고 그게 동기가 되어 움직이죠. 그 와중에 배경이 장기밀매와 금융비리로 나뉠뿐, 이후로는 주인공을 막으려는 악당에 대항하는 방식이라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는 남자>와 <아저씨>는 왜 이렇게 상반된 평가가 이어지는 걸까요?


  일단은 복불복이 안통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저씨>에서 차태식의 동기는 설득력이 있었지만, <우는 남자>의 곤의 배신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문제는 <아저씨>가 차태식의 행동에 설득력을 주기 위해 <우는 남자>보다 디테일한 연출을 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심지어 영화에서 차태식의 '옆집 아저씨'라는 대사에 '미친 또라이'라는 만석의 대사를 통해 셀프디스를 시전하기도 하셨죠. 감독님이 <아저씨>에서도 통했으니깐 <우는 남자>에서도 통할거라고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신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땐 운좋게 통했는데, 이번엔 안통한 느낌입니다.


  장기밀매와 금융비리, 폭력조직과 흑사회, 특수요원과 킬러 등 배경 소재들이 <아저씨>에 비해 <우는 남자>가 훨씬 생경합니다. 장기밀매야 시체만 보여줘도 나쁜놈이라는 느낌이 팍팍 나는데, 금융비리는 그렇게 악의가 확 와닿지가 않죠. 흑사회나 킬러라는 소재도 현실성이 떨어지고요. 이러한 리얼리즘의 다운 그레이드가 설득력 부족에 박차를 가해준 셈이 되었습니다. 차태식은 선의였지만, 곤은 배신이라는 점도 더 많은 개연성을 필요로 하기도 하구요. 판타지일 수록 설득력있는 서사가 중요한데 킬러라는 후까시 만땅의 오글거리는 이야기를 하면서 이런 부분에 신경을 못쓴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감독의 실책이자 망스토리라고 평가해야 될겁니다.






  성룡과 오우삼의 계보를 한국에서 잇다


  스토리의 부족함이 안타까운 두 영화지만, 확고한 장점을 가지고 있기에 이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좋은 평가를 내리고 싶습니다. 두 영화 모두 한국 액션을 한단계 발전시켰다고 말해주고 싶을 정도로 훌륭한 액션을 선보이고 있다는 점이죠. 그런데 그  액션에서도 두 영화는 확연히 다른 냄새를 풍기고 있습니다. 


  저번 토크에서 <용의자>의 액션은 블록버스터라고 정의했었죠. 자동차들을 시원하게 박살내는 장면들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통쾌함을 넘어 카타르시스를 느꼈습니다. 그동안의 한국 액션이 자금 사정상 규모면에서 부족한 면을 많이 보여줬는데 그런 안타까움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거든요. 우리나라도 이제 이런 액션을 할 수 있다는 액션광의 한을 풀어주는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죠. 더불어 스케일로 밀어붙이는 무식함이 아닌, 차가 후진으로 계단을 내려오거나, 정면 충돌시 플립을 방지하기위한 감속 같이, 디테일한 부분에서도 완성도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장점들은 <본 아이덴티티>에서 기존의 헐리우드의 물량공세식 액션을 탈피한 장점과 일맥상통합니다. 특수부대 격투술까지 더해져 많은 분들이 <본 시리즈>와의 유사성을 지적하고 계시죠. 허나 저는 <본 시리즈> 보다는 '성룡식 홍콩액션'과 더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특히 자동차를 옆으로 세워서 통과하는 스턴트를 보며 성룡 영화에서 자주 보여주는 아크로바틱 액션의 향취를 강하게 느꼈었죠. 이는 스턴트맨으로 활동했던 감독의 이력과도 연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원신연 : 스턴트맨 출신 감독인데 액션 영화는 <용의자>가 처음이었어요. <용의자>는 생존과 본능에 관한 영화예요. 생존과 본능이라는 단어에 테크놀로지가 결합된 비주얼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생존과 본능은 날것이 어울리죠. 현장에 직접 가서 카메라 앞에 배우를 세워놓고 찍어야 완성된다고 봤어요.

신기주 : 쉬운 길이 있는데.

원 : 유혹은 많죠. 세트에 차 갖다놓고 합성하면 되잖아요. 요즘은 99퍼센트가 그렇게 찍어요. <용의자>를 찍으면선 그러면 생존과 본능이 안 나온다고 봤어요. 다행히 공유란 배우가 거기에 동의했죠. 그래서 몸을 만들기 시작했고.


원 : 일도 많고 실력도 좋았어요. 대역이란 대역은 거의 다 한 것 같아요. 고층 건물에서 떨어지고, 다리에서 뛰어내리고, 차가 오면 부딪히고, 사극에서 수염 붙이고 담 같은 거 넘고, 17대1로 싸우면 제압하고... ...어린 녀석이 그러니까 업계에선 화두였어요. 홍콩에서 성룡의 대역으로 제의가 들어올 정도로. 그런데 전 그때 이미 영화를 만들고 싶어서 독학을 하던 중이었거든요. 스턴트맨이 꿈이 아닌데 홍콩 가서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어요. 안 가기로 했죠.1)


  스턴트맨 출신이라는 점과 날것에 대한 감각, 그리고 무엇보다 쉬운길로 돌아가지 않으려는 장인정신은 앞으로 원신연 감독이 한국 액션영화의 중흥을 이끌 것이라는 강한 기대감을 갖게 합니다. 자금 규모상 헐리우드와는 차별화된 전략은 피할 수 없을 겁니다. 원 감독이 한 씬에서 보여준 아크로바틱 액션을 발전시켜 이제는 힘이 빠진 성룡의 액션을 한국에서 이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우는 남자> 액션의 최대 미덕은 '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총을 시원하게 탄창까지 갈아끼워가며 무차별로 난사하는 영화는 지금까지 국내에 없었습니다. 한 지인은 '탄피가 튀는 소리를 아름답게 잡아냈다.'며 <우는 남자>의 총격전을 칭찬하기도 했습니다. 전작 <아저씨>에서도 말미에 차태식의 앉아쏴 자세를 보며 감독의 총기 액션에 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죠.


Q) 이번 작품에서는 총기 액션이 주가 되는데, 어떻게 준비했나? 

A) 한국에서는 총기가 불법화되어 있다. 그 점을 고민하다 보니 한국이 아닌 외국에서 건너온 킬러의 총기 액션을 고민하게 되었고, 실제 총을 맞는 타격감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미국 특수부대 요원들을 직접 취재하고, 거의 모든 한국의 사격장들을 돌며 총을 쏠 때의 감각을 직접 체험했다. 자료를 모으며 총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면뿐만 아니라 사운드 역시 리얼함을 표현하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2)


  이러한 총기 액션이 가장 좋았던 감독이라면 홍콩 느와르의 최고봉인 오우삼을 꼽아야 할 것입니다. 최근의 리얼리즘 경향과는 거리가 있지만 쌍권총을 난사하는 주윤발의 모습은 남자들에겐 로망이었거든요. 헐리우드로 넘어가 만든 <브로큰 애로우>나 <페이스 오프>등에선 홍콩에서의 겉멋이 줄고 아크로바틱에 가까운 총격씬을 보여주며 어린 관객이었던 저를 흥분시키기도 했죠. <우는 남자>는 이런 오우삼의 계보를 잇는다고 평가해줄 정도로 총기 액션의 미학을 잘 살려냈다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액션 뿐 아니라 전체적인 영화의 톤과 분위기에서도 홍콩 느와르의 향취를 물씬 뿜어냅니다. 언론에선 '감성 느와르'라고 칭하고 있는데, 그 감성의 실체는 과거 홍콩 느와르에 대한 남자의 로망과 향수가 아닐까 싶습니다.


Q) 시종일관 어둡고 탁한 조명이라든지, 남자들의 의리라든지, 절제된 대사라든지….누아르 영화의 느낌이 많이 묻어 있다. 

A) 나는 1971년에 태어났다. 우리 세대는 어린 시절 <영웅본색>, <첩혈쌍웅>, <천장지구> 같은 홍콩 누아르 영화를 보고 자랐다. 그렇다고 영화 한 편을 보면 미쳐서 분석하는 마니아적 인간이나 시네마 키드는 아니다. 정말 단순하게 즐기는 관객 중 하나였는데, 당시의 잔상이 지금 만드는 영화에 섞여 나오는 듯하다. 홍콩 누아르 외에 <다이하드>나 <리셀웨폰> 시리즈도 무척 좋아했다.3)


  <비열한 거리>, <달콤한 인생>, <해바라기> 등 기존 한국의 느와르 영화들이 특유의 분위기와 내적갈등에 집중하는 반면, 이정범의 느와르는 액션에도 큰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홍콩 느와르는 전성기를 지나며 <무간도>처럼 액션이 중심이 아닌 느와르로 선회하는 느낌입니다. 오우삼은 헐리웃에서 돌아오더니 블록버스터에 집중하는 모습이구요. 이럴 때 현대적 액션감각을 입은 채 등장한 <우는 남자>가 다시 한번 남자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으면 합니다.






  이정도의 영화가 충무로에서?


  <용의자> 제작비는 75억 입니다. <우는 남자>의 제작비는 100억 이구요. 헐리우드라면 저예산 영화로 분류될만한 제작비죠. 전에 다뤘던 <아티스트>가 150억 짜리 작품인 것을 생각하면, 도대체 충무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냐고 묻고 싶을 정도입니다. (물론 스태프를 저예산으로 갈아넣었을거라 생각되지만...)한국의 시장규모를 봤을 때 100억 이상의 투자를 바라기는 힘들겁니다. 그동안 액션 불모지 였던 만큼 노하우나 기술력이 뛰어나지도 않을 겁니다. 이러한 척박한 상황 속에서 헐리우드에 비견해도 손색없는 영상미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영화 팬으로서 고무될 수 밖에 없더군요.


  물론 두 영화 모두 결점이 있습니다. 특히 한국 영화팬들이 중요하게 보는 스토리와 개연성 부분에서 심각한 약점을 드러내고 있죠. 그러나 이런 단점을 인정하더라도 이들이 뽑아낸 영화에는 열정과 미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좀 더 너그러운 자세로 그들이 구현하고자 했던 액션을 마음 편하게 감상한다면 이 영화들에게서 충분히 매력을 느끼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참조

  1) http://navercast.naver.com/magazine_contents.nhn?rid=1415&contents_id=57373&leafId 

      Esquire 2014년 6월호 피플 비주류 '원신연'


  2) http://navercast.naver.com/magazine_contents.nhn?rid=2810&rid=&contents_id=57443

      네이버 영화 매거진 이정범 감독의 <우는 남자> 비하인드 스토리 촬영 현장 공개


  3) http://www.design.co.kr/section/news_detail.html?info_id=54313&category=000000060002

      럭셔리 2010년 12월호 피플 인터뷰 영화 <아저씨> 이정범 감독


  4) http://www.nocutnews.co.kr/news/4036936

      노컷 뉴스 노컷인터뷰 액션에 녹여낸 한 킬러의 속죄담... "인간성 결핍에 대한 고민"






※ 에스콰이어의 원신연 감독 인터뷰는, <구타유발자들>을 좋아하신다면 꼭 한번 읽어보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이 글을 쓰자고 결심하게 된 계기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