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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휴지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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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작가지망생 오십 원짜리 갈비에 분개하던 시인은자기가 모래알보다 작다고 한탄인데나는 뭐가 그리 잘났길래모니터 뒤에서 키보드를 부여잡고세상이 어떠네, 예술이 어떠네좆문가 식견을 걸레 짜듯 토하고충달님 글 너무너무 좋아요이 말에 헤벌쭉 흘러나온 웃음이셋 평짜리 원룸에 메아리친다 오십 원이라도 벌어봤다면그 돈 버느라 쎄빠지게 고생했다면나라도 기름 덩어리 갈비를 두고 화를 내겠지그런데 내 글은십 원짜리 한 장 벌어보지도 못하고책을 내야 작가가 될 터인데딱 오백만 원 내면 글 한 편 실어준다고그러니깐 내 글의 고료는 마이너스 오백만 원 오십 원짜리 갈비에 분개하던 시인은자기가 모래알보다 작다고 한탄인데나는 마이너스 오백만 원 주제에그 돈조차 없어서나를 뭘로 보냐고 화도 못 내고셋 평짜리 원룸에 돌아와모니터 뒤에서 키보드를 부..
"여성 없는 천만 영화" 기사를 보고 여성 신문은 "여성 없는 '천만 영화'"라는 제목의 카드 뉴스를 발행했다. (링크) 언론사가 '알탕'이라는 혐오 용어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 그러나 그저 무시할 내용만 적힌 것은 아니다. 이 기사에서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 이에 관한 생각을 정리하고자 글을 쓴다. 모순이거나, 오판이거나 혐오 용어를 단순히 참조한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이미 위 기사는 언론의 자격이 없다. 그러나 그 이전에 언론의 자질조차 없어 보인다. 이 짧은 카드 뉴스 안에서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여성 없는 '천만 영화'" 中 ▲ 참조 : 통계청 블로그 "좀비부터 옹주까지, 극장행 이끄는 한국 영화 내가 알기로 국내에서 극장가 큰 손은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다. 흥행하려면 ..
[단편] [기담] 귀(鬼) 감나무 베던 날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다음 날. 엄마는 매일 화장했다. 손님 받지 않거나 밖에 나가지 않아도 화장했다. 그런데 감나무 베던 날에는 화장도 안 하고 머리도 안 빗었다. 한 번도 입지 않은 새하얀 속적삼에 속곳을 입고 종일 벽만 쳐다봤다. 배고파 엄마한테 밥 달라 했는데 엄마는 암말도 안 했다. 심심하고 배도 고파 광수네 놀러 갔다. 광수 애미가 광수 없다 그랬다. 댓돌에 광수가 자랑하는 고무신 있는데 집에 없다 그랬다. 그래서 돌아 나오는데 배가 너무 고팠다. 그래서 철쭉 따 먹고 있었는데 영감님이 지팡이로 때렸다. 나는 영감님 싫다. 영감님 맨날 나만 보면 혼냈다. 다른 애들은 안 혼냈다. 정가리가 무슨 말인지 모르는데 정가리 하라 그랬다. 나는 엄마 말도 잘 듣고, 이도 꼬박꼬박..
혐오의 시대를 지나며 작년에 이어 올해도 페미니즘은 각종 게시판을 불태웠다. 혹자는 인터넷에서만 시끄러운 '찻잔 속 태풍'이라 말한다. 내 생각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오프라인에서 메갈이나 워마드 이야기를 들을 기회는 없었다. 일베가 활개 칠 시절에는 대학에 몸담고 있었다. 일베 관련 이슈를 오프라인에서 쉽게 접할 수 있었다. 오프라인에서 메웜(메갈+워마드)의 악명을 접하지 못한 것은 내가 그만큼 늙었기 때문이리라. 이제 내 주변은 일베나 메웜보다는 코스피와 비트코인과 부동산을 이야기한다. 어쩌면 내가 메웜 이슈를 잘 안다는 것은 그만큼 철이 없다는 방증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메웜 이슈에 관심이 간다. 인터넷 이슈가 현실 정치의 일기예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베가 무섭게 세를 불리던 MB 시절에는 그들이 현실 정치에..
거짓말 표절 소설 는 국정원 여론조작 사건에서 모티브를 따온 소설이다. '팀-알렙'이라는 바이럴마케팅 업체가 비밀 권력 조직으로부터 의뢰를 받아 인터넷 여론을 조작한다는 내용이다. 그들은 진보 성향 커뮤니티와 진보 지식인을 공격하고, 나아가 청소년 사이에 보수 성향의 슬로건을 유행시킨다. 그 과정이 매우 그럴듯하다. 실제 인터넷 여론 조작을 모티브 삼은 에피소드가 있어, 커뮤니티 활동을 해 본 사람이라면 "아~ 그때 그일!"하며 가물가물한 기억을 끄집어낼 것이다. 그러다 막히면 나무위키를 켜겠지. 그중에서 내가 가장 또렷하게 현실의 원형을 떠올린 것은 바로 다음의 이야기였다. 임상진 그렇군요.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시죠. 찻탓캇 뭐, 예. 제가 올린 글은 '저는 영화산업 노동자 OOO이라고 합니다'라고 시작하는 게시물..
이해의 종말 이해란 무엇인가?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1. 사리를 분별하여 해석함. 2. 깨달아 앎. 또는 잘 알아서 받아들임. 3. 남의 사정을 잘 헤아려 너그러이 받아들임. 사리, 분별, 해석, 깨달음, 사정, 헤아림. 정의를 보자면 이해는 이성적 활동이다. 머리가 하는 일이다. 그래서 무례한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는 자를 멍청이 취급한다. "어떻게 이해하지 못할 수가 있죠? 난독이시네요. 공부 좀 더 하고 오세요." 텅텅 빈 머리가 잘 돌아가지도 않는다고 요리조리 돌려 말한다. 하지만 이해는 이성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전적 정의에도 쓰여있다. "너그러이 받아들임." 이성적 활동이 이해의 시작이라면, 이해의 끝은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는 감성적 활동이다. 가슴이 하는 일이다. 아무리 머리로 헤아려도 가슴..
[단편] 초식남의 탄생 사람을 한 마디로 규정할 수는 없다. 인간은 복잡미묘하다. 이기심과 이타심이 공존하고, 사랑과 증오는 맞닿아 있다. 또한, 변화무쌍하다. 악당이 회개하거나 영웅이 타락하는 이야기는 수없이 많다. 그럼에도 세상은 사람을 규정하고 분류한다.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이다.' 한 마디로 단언한다. 나쁜 사람, 착한 사람, X세대, N세대, 김치녀, 한남충... 종류도 많다. 학창시절에는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나는 모로 보나 좋은 사람이었다. 훌륭한 성적, 원만한 교우관계, 사려 깊고 친절한 행동, 적당한 존재감... 따지고 보니 그냥 평범한 학생이다. 어쩌면 평범하기에 좋은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딱히 대단한 것도 없고. 그렇다고 흉볼 것도 없고. 그러니 적당히 기분 상하지 않도록 좋은 사람이 된다..
[단편] [기담] 정전 버스 막차는 전혀 한산하지 않았다. 다들 뭐가 그리 다망한지 빈자리 하나 없었다. 오늘은 일찍 들어갔어야 했다. 하지만 박 차장이 물고 늘어졌다. 이 대리 한 잔만 하고 가자. 딱 맥주 한 잔만. 외면하기 어려웠다. 정 과장은 아내가 만삭이고, 나머지 사원은 전부 여자다. 그렇다고 박 차장이 부장님께 엉겨 붙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만만한 게 나다. 그래도 오늘은 일찍 들어갔어야 했다. 왜 일찍 가야 하는데? 박 차장이 다그쳤을 때 나는 이유를 기억하지 못했다. 뺑기 부리지 말고 가자. 그렇게 딱 한 잔만 하자던 술자리는 3,000cc 세 피처를 채우고야 말았다. 더 주문하려는 박 차장을 겨우 말려낸 구실이 바로 이 버스 막차였다.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져있다 보니 어느새 동네에 버스가 당도했다. 씹던 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