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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쌤 윤PD

<스물> - 유치하니깐 청춘이다.

※ 이 글은 영화 <스물>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치호(김우빈), 동우(준호) 그리고 경재(강하늘). 인생의 절반(?)이라는 스물을 맞이하며, 반드시 섹스를 하겠다는 굳은 일념과 함께 세 남자는 청춘의 시절로 들어서게 된다. 그러나 찬란할 줄만 알았던 스물의 날들은 부끄럽고, 부질없고 그리고 힘들기만 한데... 병신 같지만, 게다가 멋있지도 않지만, 그래도 유쾌한 청춘을 그린 영화 스물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오늘의 연애>는 안 되지만, <스물>은 되는 이유

  올 초에 정말 엄청난 영화를 리뷰한 적이 있다. <오늘의 연애>는 시나리오부터 연출과 연기까지 어느 하나 빼 놓지 않고 형편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엄청날정도로 최악의 작품이었다. 그런데 <오늘의 연애>의 각본에 참여한 이병헌 감독이 바로 지금 다루는 영화 <스물>의 감독이다. 때문에 영화를 보기 전 <스물>에 대한 호평이 들려왔지만, 작품에 대한 불안감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나 직접 만나본 <스물>은 꽤나 괜찮은 모습으로 다가왔다. 어떤 점이 같은 해에 개봉한 두 영화를 이렇게 다르게 평가하도록 만든 것일까?

  최종적인 평가는 다르지만 <스물>과 <오늘의 연애>는 꽤나 닮아있고, 비슷한 단점을 공유하고 있다. 비록 다른 감독의 작품이지만 <스물>의 연출도 촌스럽고 억지스러운 면이 많다. 세 사람이 각자의 인생을 나아가기 위해 다짐하는 갈림길 장면은 정말 촌스러웠다. 물론 작품의 초반과 후반에 두 번 등장하면서 스무살의 인생을 효과적으로 상징화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너무나 식상했고, 그런 만큼 촌스러운 장면이었다. 클라이막스의 중국집 결투신 또한 길이조정에 실패하며 민망함이 주는 웃음을 넘어 진짜 민망한 장면을 연출하고 만다. 시나리오 면에서도 과장되고 억지스러운 면들이 많이 있다. 부정적으로 바라본다면 웃기려고 무리수를 둔다고 평가해도 틀린 말은 아니라고 본다. 치호의 입에서 튀어나온 "니 엉덩이에 꼬추 비비고 싶어."라는 대사는 이러한 무리수를 잘 드러내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스물>의 이러한 무리수에 거부감은 들지 않았다. 유치하고 오글거리는 연출도 오히려 유쾌하게 다가왔다. 왜 <오늘의 연애>에서는 짜증을 유발내던 요소가 <스물>에서는 너그럽게 받아들여지는 것일까? 나는 그것이 '스물' 시절의 특권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한심하고 민망한 그 모습이 오히려 <스물>에 어울리는 느낌이다. 누구나 자다가 이불을 차게 만드는 부끄러운 기억이 있을 것이다. 성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그 민망한 기억을, 민망하게 느껴지도록 그려냈기에 거부감이 덜하다는 생각이다. 당장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리더라도 <스물>의 '세 찐따들'보다 나았을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렇게 각자의 스물 시절의 흑역사를 건드리기에 영화 <스물>의 유치하고 오글거리는 모습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으로 다가온다. <스물>은 <오늘의 연애>에는 없는 '스물'이라는 면책 특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니 엉덩이에 꼬추 비비고 싶어."라는 무리수가 짜증으로 다가오기 보다 유쾌함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한다. 

  현실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도 두 영화에 대한 평가를 갈리게 만들었다. <오늘의 연애>를 리뷰하면서 오늘의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한 적이 있다. 그에 반해 <스물>은 진중하진 않더라도 청춘의 현실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영화는 동우라는 캐릭터를 통해 가난 때문에 꿈과 사랑을 포기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여준다. 그치만 이 슬픔에 대해 오바하지 않는다. 웃음을 유발하는 부분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던 과장이 동우의 이야기에서 신파라는 과장으로 또 다시 등장했다면 상당히 거북했을 것이다. 그러나 <스물>은 동우의 비극을 덤덤하게 그려낸다. 이러한 '덤덤한 비극'은 영화 <스물>의 주제이기도 하다. '진짜 슬픈데, 눈물이 나지 않는다.'는 동우의 대사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이것이 눈물조차 말라버릴 정도로 각박하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기 보단 눈물이 나올정도로 절망스럽더라도 꿋꿋이 살아갈 수 있는 청춘예찬으로 다가왔다. 이러한 덤덤한 슬픔 중에서 가장 맘에 들었던 장면은, 동우가 좋아하는 여자를 포기하는 장면이었다. 오열도, 고성도 없이 그저 상대의 카톡 메시지에 답장하지 않는 것으로 처리한 이 장면은 전체적으로 세련미가 부족한 이 영화에서 눈에 띄는 세련된 연출이었다. (이외에도 불륜에 대한 시각, 연애와 섹스에 대한 시각 등 다양한 부분에서 <스물>은 <오늘의 연애>와는 다른 비교적 현실적인 시각을 보여준다.)

  <스물>은 무리수도 있고, 전체적으로 아쉬운 느낌이 많지만 그래도 불편하지 않고 유쾌하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이었다. 최소한 오늘의 청춘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오늘의 연애>와는 확실히 다르다고 말하고 싶다. 

▲ [<오늘의 연애>와는 다르다. 얘들은 찌질한 걸 넘어서 좀 챙피하다...






  다뤄지지 않은 청춘과 다뤄지지 않는 청춘에 대한 아쉬움

  <스물>에서 섹스는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뭐 나만 해도 그 시절엔 군대가서 비명횡사하기 전에 반드시 섹스를 하고야 말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스물>의 묘사는 상당히 적절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그 중요한 섹스를 마치 맥거핀 처럼 흘려버린 기분이다. 그 시절이 지나가버린 나에게는 섹스에 대한 맥거핀적 해석이 오히려 그럴듯하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그래도 조금은 진지하게 다뤄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게 배드신이 없다고 징징대는 그런 것은 아닙니다. 정말이라고요!)

  섹스에 대해 진지하지 못하기 때문일까? 극 후반부에 치호의 대사가 개인적으로 많이 거슬렸다. 경재가 치호의 전 여자친구와 사귀게 되자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치호가 "친구랑 떡친 여자랑 떡치니깐 좋냐?"는 식으로 비아냥 거리는 장면이다. 물론 상황상 많이 삐져있는 치호의 마음을 드러내는 대사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너무 나간 느낌이 있다. 연애에 있어 섹스가 갖는 의미와 가치는 보여주지도 않은 채 이 대사 한방으로 그 가치를 훼손하기만 하였다. '섹스'를 '떡'으로 격하하는 이러한 연출은 마땅히 비판받아야 할 부분이라고 본다.

  또 하나의 아쉬운 점은 여성에 대한 시각이다. <스물>에는 여러 여자 조연들이 등장하지만, 어느 캐릭터도 깊이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남자 주인공과 커플로 맺어지는 세 조연의 경우 모두 각자의 감성을 드러낼 수 있는 이야기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그저 전형적으로 쓰여지고, 그들의 목소리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치호의 전 여친이었던 소민(정소민)의 심정이 궁금했는데, 그녀의 심정에 대해서는 전혀 다뤄주지 않았다. 단지 치호의 떡징징만 있었을 뿐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한국의 청춘영화들은 여성의 청춘을 다루는 것에 인색하다는 말을 들었다. 처음 들었을 때는 많이 공감이 갔다. 청춘과 여자의 교집합에는 발랑까지고 당돌한 <엽기적인 그녀>의 이미지만이 선명할 뿐이었으니깐.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자니 한국 영화계에서 여성의 청춘만 찾아보기 힘든 것이 아니었다. 남성의 청춘 또한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또한 <비트>의 우수에 찬 정우성의 이미지가 머리 속에 크게 자리잡고 있었다. (실상 <이유없는 반항>에 나온 제임스 딘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 영화계에서 대부분의 청춘영화들은 청춘의 탈을 쓴 로맨스물인 경우가 많다. 차라리 청춘이란 시점에 대해 나름의 깊이를 보여주는 쪽은 <마이블랙미니드레스>나 <내 깡패 같은 애인>처럼 남성보다 여성이었던 경우가 최근에는 많았던 것 같다. 

  그렇다면 왜 청춘은 찾아보기 힘들까? 우선은 국내 영화 시장의 변화를 생각해보고 싶다. <광해 : 왕이 된 남자> 이후로 사극 열풍이 일기도 했고, <설국열차>로 대표되는 100억 이상의 거대자본 블록버스터나 <도둑들>같은 멀티캐스팅 무비의 붐도 있었다. 이런 기획력이 강조되는 장르영화 중심의 시장 판도에서 청춘영화가 설 자리는 다소 비좁게 느껴진다. 그렇기에 독립영화라는 형태로 성공적인 청춘영화를 완성한 작년의 <족구왕>의 존재가 더욱 고무적으로 느껴진다.

  다른 이유로는 각박한 현실을 들 수 있겠다. 사실 요즘에는 남녀를 불문하고 청춘이 사라져버렸다는 느낌이다. 대학 1학년인지, 고교 4학년인지 구분이 안되는 시간을 보내는 지금의 청춘들이니, 여성의 청춘 이전에 청춘 자체부터 되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근래의 청춘이 패기있는 모습보다 자조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주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 한병철은 『피로사회』에서 문화적 성취의 근원으로 '깊은 심심함'을 꼽았다. 지금의 청춘에게 이러한 '심심함의 여유'를 돌려주지 못한다면 10년 후에도 청춘은 주목도 받지 못하고, 발전하는 모습도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깊은 심심함'을 생각하니 군대시절이 떠오른다. 어쩌면 그 시절은 '깊은 심심함'을 강제로 부과하던 시기가 아니었을까? 물론 모든 사람이 군 시절을 통해 성숙하는 것은 아니고, 그 시절을 겪어야지만 성숙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가끔(정말 아~~~주 가끔) 그 시절이 그립다고 느껴지는 것은 '깊은 심심함'을 가질 수 있었던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어두운 경계근무지에서 밤하늘의 별을 쳐다보며 사색할 수 있는 그런 여유말이다. 군대라는 갇힌 공간이 아니라, 군대 밖의 열린 공간에서 남녀를 불문하고 모든 청년들이 걱정없이 문화를 향유하고, 어설픈 패기를 발산할 수 있는 그런 '심심한' 사회가 이뤄지기를 바란다. 

▲ (왼쪽부터) 소민(정소민), 은혜(정주연), 소희(이유비). 이들의 이야기도 듣고 싶다.






  깔아준 멍석 위, 잘 노는 배우들

  마지막으로 <스물>의 잘 노는 주연 3인방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물론 캐주얼한 이야기의 한계가 있기에 이들의 연기가 대가급으로 압도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잘 어울리는 옷을 입은 것처럼 자연스럽고, 거부감 없는 연기를 보여준다.

  많은 사람들의 김우빈의 매력을 언급한다. 확실히 기럭지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력을 감출 수가 없는 느낌이다. 그냥 서 있어도 멋있다는 기분이 들더라. 그치만 폼만 잡지 않는다. 부모에게 용돈 달라고 떼 쓰는 장면이 정말 좋았다. 오히려 분위기 잡으며 화를 내는 장면보다 떼 쓰는 장면이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는 점에서 아직 아이의 마음이 많은 청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나는 김우빈보다 동우를 연기한 준호의 연기가 더 좋았다. 2PM 출신이라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할 외모(응?)와 연기력을 갖추고 있었다. 영화의 주제와 연결되는 '덤덤한 슬픔'을 말 그대로 덤덤하게 표현한다. 특히 '슬픈데 눈물이 나지 않는다.'라는 대사가 설득력을 갖게 되는 데 준호의 연기력이 큰 역할을 했다고 보기에 배우 중에 가장 큰 수훈을 올렸다는 생각이다. (그의 연기가 불편하고 어색했다면, 영화의 주제가 설득력을 잃었을거다.)

  가벼운 치호와 무거운 동우 사이에서 경재를 연기한 강하늘은 이야기의 균형을 잡아준다. 완전히 다른 영역의 두 캐릭터를 이어주는 존재로서 무리하지 않고 무난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더불어 구토 열연 등 웃음을 주는 역할도 톡톡히 해낸다. 세 주연 배우 중에서는 가장 연기력의 짬이 느껴지는 안정된 연기를 보여준다. (하긴 연극/영화/드라마 등 모든 영역에서 위 배우들과는 짬차이가 난다)

  이 세 배우가 깔아놓은 멍석위에서 잘 뛰어논다는 느낌을 준다. 각자 따로 있었다면 이토록 유쾌하진 못했으리라. 낄낄거리며 뭉쳐다니는 애들을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들의 앙상블도 훌륭하지만, 이들이 이렇게 뛰어 놀도록 만들어준 감독의 역할도 중요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감독이 촬영현장의 분위기를 띄워주는 분위기 메이커였다고 하는데, 이런 유쾌함이 이들이 잘 놀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닐까?

▲ 이병헌 감독은 인터뷰에서 "일반인인걸 고려하면 이 넷중에 내가 제일 잘생겼다"라고 했다. 이분 좀 웃긴듯;;






  <스물>, 나쁘지 않다.

  세련되지 못한 연출, 한국 대중영화에서 고착화 되어가는 전형적인 에피소드 나열식의 전개, 몇몇 배우의 아쉬운 연기(사실 민효린 한 명인듯), 민망한 액션까지... <스물>은 까려고 한다면 정말 가루가 되도록 깔 수 있을 만큼 아쉬운 부분들이 많은 영화다. 하지만 그런 단점들이 불편하게 다가오진 않았다. 촌스럽고 오글거리고 민망한 장면들은 '스물'이라는 시절과 꽤나 잘 어울리는 듯 하다. 너그러운 자세로 본다면 유쾌하게 2시간을 즐길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가 감독의 메이저 장편 데뷔작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 정도의 대중성을 확보했다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결과라고 생각한다. 훗날 이러한 감각을 살려 더 좋은 작품, 깔게 없는 작품으로 돌아와주기를 이병헌 감독에게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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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팟캐스트 방송 [미련한 연애 시네마]에서 <스물>을 다뤘습니다. 

※ 팟캐스트 방송 [미련한 연애 시네마]에서는 청취자의 연애 상담이나, 영화에 대한 궁금한 점 등을 메일로 받고 있습니다. 혹시 방송을 들으시고 관심 있으신 분은 sillylovecinema@gmail.com으로 메일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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