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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쌤 윤PD

<차이나타운> - "재미없어?" "아니" "그럼 재밌어?" "아니..."

※ 이 글은 영화 <차이나타운>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지하철 10번 코인 로커에 버려진 아이. 그래서 그 아이 이름은 일영(김고은)이다. 노숙자에게 거둬져 썩은 음식을 주워 먹고 살던 일영은 차이나타운에서 '엄마'라고 불리는 범죄조직의 대모 마우희(김혜수)에게 팔리게 된다. 그리고 그녀 밑에서 악착같이 살아남아 채무자들에게 빚을 받아내며 엄마의 사업을 돕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일영은 채무자였던 석현(박보검)을 만나게 되고, 그의 친절함과 따뜻함에 마음이 흔들리게 된다. 이를 눈치챈 엄마는 일영에게 석현을 죽이라고 명령하게 되고, 일영은 석현을 구하기 위해 엄마의 명령을 거스르게 되는데...





  <차이나타운>의 스토리는 뻔하다?

  <차이나타운>에 대한 여러 평들의 공통점은 뻔하다는 것이다. 이 점은 나도 크게 동감한다. 실상 <차이나타운>의 스토리는 <달콤한 인생>의 스토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범죄조직의 보스(김혜수, 김영철)와 그의 신뢰받는 부하(김고은, 이병헌)가 대립하며, 그 대립의 원인은 팜므파탈(신민아) 혹은 옴므파탈(박보검)에 의해 부하의 마음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두 영화 모두 보스가 부하를 죽음으로 내몰 정도로 분노하게 되는 그 이유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않는다. (<달콤한 인생>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는 부조리가 주제를 관통하는 요소이기도 했다.)

  여기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는데, 바로 일영이 변심하게 되는 이유이다. 그녀가 순수한 석현을 만나 자신의 삶에 죄책감을 느끼고 범죄에서 벗어나려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랬다면 마지막에 일영이 엄마의 자리를 대신한다는 결말과 모순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석현은 팜므파탈에 대응하는 옴므파탈이며 일영의 배신은 석현에 대한 연정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녀가 상처에 신경 쓰고 드레스를 사 입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 볼 수 있다. 

  결국, 성별만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뀌었을 뿐 <차이나타운>의 스토리는 기존 누아르 영화가 보여준 클리셰의 집합이라 할 수 있다. 아니 오히려 퇴화했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80년대 홍콩 누아르만 해도 <첩혈쌍웅>처럼 누아르의 클리셰를 뛰어넘는 구도를 보여주는 작품이 있는 판국에, 21세기의 작품치고는 스토리가 뻔해도 너무 뻔하다. 

  하지만 성별이 바뀐 것만으로도 영화는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우선 엄마와 일영이 가진 카리스마의 정체가 '무력'이 아니다. 남성 중심의 누아르에서 주인공의 카리스마는 보통 그가 가진 힘, 좁게는 싸움 실력에서부터 크게는 권력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그 일당백의 싸움 실력으로 적을 모두 때려 부수며 갈등을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달콤한 인생>, <해바라기>, <아저씨> 등등) 그러나 <차이나타운>의 일영은 여자다. 그녀가 남성을 능가하는 힘을 가진다는 것은 오히려 비현실적이고 만화 같을 것이다.(힛걸?) 대신 일영은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지 않고 납치, 협박, 암기, 급습과 같은 주인공 치고는 꽤나 비열한 방식으로 상대를 제압한다. 

  그러나 일영의 이러한 점이 관객에게 거부감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그것은 그 비열함의 근원이 다름 아닌 생존에 대한 본능이기 때문이다. 코인 로커에 버려지고, 앵벌이를 하다가 버려져도 일영은 끝까지 살아남았다. 먼 길을 돌아와 짜장면 곱빼기를 주문하는 생존력이 바로 일영이 가진 카리스마의 원천이다. 여기에 여성이라는 육체적 나약함이 더해져 일영의 비열함은 악(惡)으로 느껴지지 않게 된다. 오히려 더 비열하고 더 악랄하더라도 살아남기를 바라게 된다. 치도(고경표)로부터 도망치는 일영의 모습이 긴박하게 느껴졌던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엄마의 뒷세계 철학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살아남으려면 쓸모 있음을 증명하라는 그녀의 철학은 누아르 세계의 목표를 어떻게 죽이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느냐로 규정한다. 일영이 엄마를 죽일 수밖에 없는 이유 또한 그러하다. 엄마를 죽여야만 일영이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엄마가 죽기 전 "내가 쓸모가 없어졌네."라고 독백하는 것은 그녀가 자신의 철학을 잃었다는 점을 시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떻게 살아남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죽이느냐에 집중한 순간 엄마가 가진 카리스마는 빛을 잃기 때문이다. 

  더불어 누아르의 주인공이 여성이라는 점 때문에 꽤 흥미로운 변주가 등장하기도 한다. 일영은 주인공이고 석현이 옴므파탈이었지만, 영화 중간에 일영은 팜므파탈로 역할이 순간 바뀐다. 그 지점은 일영을 죽이려는 홍주(조현철)를 막으려다 우곤(엄태구)이 목숨을 잃게 되는 장면이다. 만약 주인공이 남성이었다면 주인공과 옴므파탈을 넘나들 수 없었겠지만, 일영은 여성이었기에 주인공과 팜므파탈 사이를 거부감 없이 오갈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뻔한 스토리지만 여성이었기에 힘의 싸움을 생존의 싸움으로 바꾸거나 역할의 변주가 등장하는 등 섬세한 부분에서 차별화를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특징이 별로 부각되지 못했다는 기분이다. 의도적으로 후벼 파야지만 차별성이 드러난다고나 할까. 원래 <차이나타운>의 제목은 '코인 로커 걸'이었다고 한다. 오히려 제목을 그렇게 하고 '코인 로커'와 '엄마'라는 존재의 상징성을 부각하였다면 깔쌈하고 간지 넘치는 남성 누아르와는 다른 생존 누아르의 면모를 보여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결론적으로 내러티브 면에서 <차이나타운>은 애매한 영화가 되어버렸다. 추천하기에는 너무 뻔해 보이고, 그렇다고 뻔하다고만 하기에는 나름 볼 만한 구석이 있다. 이러다 보니 차라리 뻔한 전개라서 거부감 없이 다가와 어떻게든 영화를 끝까지 보게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 재밌느냐, 재미없느냐가 50:50을 맞추기도 쉽지가 않은데... 어찌 보면 참 용하다;;

  (하나 더 언급하자면, 치도의 부하들이 왜 배신을 했는지, 차이나타운 뒷세계 심지어 경찰까지 포섭하는 엄마의 무기는 무엇인지, 쏭은 왜 자살하는지 등등 여기 적은 것 이외에도 풀리지 않는 떡밥이 둥둥 떠다니는 모습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한 평가는 뒤로 미루겠다.)

▲ "이 영화 재밌어?" "그래...", "뭐 반응이 그래? 그럼 재미없어?" "그래..."






  누아르는 도대체 무엇인가?

  <차이나타운>은 여성 누아르를 표방하고 있다. 하지만 누아르는 그 정의가 매우 모호한 개념이다. 그래서 영화의 누아르적 특징에 대해 논하기 전에 누아르란 무엇인지 생각해보고자 한다. 본격적으로 누아르에 대해 이야기 하기 전에 영화의 체계에 관해 살펴보자. 영화는 크게 형식체계와 스타일체계로 구분되며 형식체계는 내러티브 혹은 비내러티브로 구성되며, 스타일체계는 미장센, 촬영, 편집, 음향 등의 요소로 구성된다.1)

영화 = 형식체계(내러티브 + 비내러티브) + 스타일체계(미장센 + 촬영 + 편집 + 음향 등)

  내러티브는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흔히 "그 영화 스토리가 뭐야?"라고 할 때 그 '스토리'를 의미한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시간과 공간 속에서 발생하는 인과 관계가 있는 사건들이 연결되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따라서 내러티브는 이야기를 단순히 순서에 따라 나열하지 않고, 인과 관계가 드러나도록 재배열하고 상징화한다. 전자에 해당하는, 이야기의 순서에 따른 나열이 보다 엄격한 의미의 '스토리'이며, 인과 관계를 중심으로 시청각적으로 재구성한 것이 '플롯'이다. 그러나 관객들은 영화를 보며 스토리와 플롯을 따로 구분하지 않는다. 관객들이 보는 것은 '플롯'이며 이를 통해 역으로 자기 나름대로 '스토리를 재구성'하게 된다. (이에 반해 비내러티브는 다큐나 전위 영화처럼 이야기가 중심이 아닌 영화들을 말한다. 하지만 마이클 무어의 작품처럼 다큐멘터리이면서도 내러티브적 구성을 통해 극적인 재미를 선사하는 영화도 있다.)

  장르는 바로 이러한 내러티브의 관습화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특정 장르의 영화는 그 장르에 어울리는 예정된 혹은 암묵적으로 약속된 구성을 따르게 된다. 따라서 관객은 어떤 장르의 영화라 한다면 마땅히 그 장르에 포함되어야 할 요소들을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장르를 구분하는 기준은 실로 모호하다. 통일된 기준에 따라 분류되기보다는 제각각 다른 기준에 의해 규정되는 편이다. 시대적 배경에 따라 SF, 사극 등으로 나뉘기도 하고 스토리의 유형에 따라 코미디, 멜로, 스릴러 등으로 구분되며, 심지어 주인공의 캐릭터에 따라 사무라이 영화, 히어로 영화 등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따라서 장르 구분은 객관적이기 보다 직관적일 수밖에 없으며 실상 장르가 '이거다, 저거다'하고 싸우는 것은 상당히 쓸모없는 짓이라고 할 수 있다.(그렇지만 엄청 재미있는 짓이다 ^^;;)

  스타일체계는 실제 촬영과 관련된 요소로서 화면 속에 드러나는 촬영, 편집, 사운드, 미장센의 공통된 특징을 일컫는다. 롱테이크 촬영을 애용한다면 그것이 그 감독의 스타일이 되는 식이다. (최근 작품 중에 스타일이 강조된 영화로는 웨스 앤더슨 감독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꼽을 수 있다) 형식체계가 영화가 가진 사상을 보여준다면 스타일체계는 미적 가치와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형식체계와 스타일체계는 따로 놀지 않는다. 두 체계는 서로 호응하여 시너지를 발휘하고 그 시너지의 효과가 높을수록 관객이 느끼는 감동은 커지고, 영화의 예술적 가치는 더욱 높아지게 된다. 다만 강조하고 싶은 것은 스타일체계는 형식체계와 맞먹는 영화의 중요한 부분이며 영화를 형식체계 즉, 내러티브의 좋고 나쁨으로만 평가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둘 다 훌륭하면 좋지만 때로는 한 쪽에 집중하였기에 훌륭한 작품이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자, 그럼 누아르는 무엇일까? 누아르를 장르 즉, 관습화된 내러티브라고 하기에는 규범화된 특징이 없다. 실상 독립적인 장르로 구분되기보다는 범죄 느와르, 갱스터 느와르, SF 느와르 등 기존 장르에 얹혀가는 형국이다. 그렇다고 어떤 스타일이라고 하기에는 영향을 끼치는 범위가 너무 넓다. 특유의 우울하고 어두운 분위기뿐만 아니라 누아르라면 반드시 등장하는 전형적인 캐릭터가 있을 정도로 관습화된 내러티브의 모습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폴 슈레이더가 1972년에 쓴 그의 논문 「필름 누아르에 대한 단상(Note on Film Noir)」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그는 이 논문에서 누아르의 특징이 되는 일곱 가지 스타일을 정리하였으며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2)
  1. 대부분의 장면이 밤이어서 조명을 활용할 여지가 많으며, 대부분 부분 조명을 사용한다.
  2. 수평선보다 사선이나 수직선이 많이 활용된다. 방으로 스며드는 빛은 다양한 기하학적 형태로 나타난다.
  3. 그림자가 배우의 얼굴을 반쯤 가릴 때가 많으며, 이것은 숙명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4. 배우의 실제 액션보다는 카메라에 의한 화면 구도가 관객을 압도한다.
  5. 물에 대한 강박적 집착이 있다. 밤거리는 어제 내린 비로 반짝이기 마련이다.
  6. 돌이킬 수 없는 과거, 정해진 운명 등을 드러내기 위해 회상 구조나 내레이션이 종종 사용된다.
  7. 직선적인 이야기 구조보다는 복잡하게 뒤엉킨 구조가 선호된다. 

  이런 점들을 종합해볼 때 누아르는 장르와 스타일의 복합적 성격을 띠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장르보다는 스타일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아르의 조건은 작품이 가진 내용보다는 어둡고 음습한 분위기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금 타협적으로 정의하자면 누아르란 '어둡고 음습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스타일과 그에 호응하는 내러티브를 가진 작품'인 셈이다. (이러한 정의대로라면 대표적인 누아르 영화로는 <비열한 거리>, <달콤한 인생>, <아저씨> 등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내러티브의 치밀함을 강조한 <신세계>나 뚜렷한 주제의식을 갖고 있는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같은 영화도 있다. 따라서 장르로서는 '범죄 영화'와 '갱스터 영화'로 구분하기도 한다.)





  <차이나타운>은 좋은 누아르인가?

  <차이나타운>의 촬영을 보면 누아르에 대한 감독의 큰 애착이 느껴진다. 비 오는 밤, 지하 주차장의 기둥에서 보이는 수직적 구도, 사진관에 스며드는 햇빛의 모습, 다이나믹한 카메라 무빙(일영이 엄마를 죽이는 장면의 촬영은 정말 훌륭했다.), 코인 로커로 상징되는 과거 등 위에 언급한 폴 슈레이더가 정리한 필름 누아르의 특징을 빠짐없이 구현했다. 여기에 '차이나타운'이라는 배경을 구현하는 독특한 미장센과 잔인함을 꺼리지 않는 과감한 표현도 훌륭한 편이다. 여기에 여성이라는 요소가 포함되면서 정장 입고 다니는 남성 누아르와는 다른 음습하고 위태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스타일적인 측면에서 <차이나타운>은 누아르에 어울리는 굉장한 분위기를 뿜어내는 셈이다. 이렇게 스타일에 방점을 찍는 영화라면, 흔히 회수되지 못한 떡밥으로 대표되는 스토리의 엉성함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다소 너그럽게 봐주는 편이다. 그런 부분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게 된달까?

  하지만 앞서 지적했듯이, <차이나타운>의 내러티브에 있어 치명적인 단점은 차별화된 요소를 제대로 부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단점은 스타일과 내러티브가 제대로 호응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기도 하다. <차이나타운>은 고전 누아르의 스타일적 특징을 정말 충실히 구현했지만, 딱 그것에 그쳤다. 분위기는 그 자체로만 존재할 뿐 그것이 <차이나타운>의 차별적 요소와 전혀 호응하지 못한다. 그러니 누아르의 특징을 충실히 구현했음에도 '이 영화는 누아르 영화다.' 말고는 아무런 주장도 하지 못한 셈이다. 

  좋은 누아르라면 그 어두운 분위기가 작품의 내러티브를 끌어올려 줘야 한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약장수>가 리얼리즘이라는 스타일을 통해, 현실을 직시하는 내러티브를 강조했던 것처럼 말이다. 분명 25억이라는 메이저 영화치곤 최저급 예산을 가지고 이 정도의 미장센과 촬영을 구현한 점, 그리고 그를 통해 인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었다는 점은 칭찬할 만하다. 하지만 그렇게 만든 분위기가 그저 분위기로만 남는다는 점은 한준희 감독이 반드시 해결해야 할 숙제일 것이다. (참고로 <약장수>는 제작비가 4억이다...)

▲ 스틸컷을 보면 때깔은 참 좋은데, 보고나니 때깔만 좋더라.






  김혜수랑 김고은 없었으면 어쩔 뻔?

  김혜수의 연기는 안정적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타짜>의 정마담 이미지가 <도둑들>, <관상>에 이어 <차이나타운>에서도 반복되고 있는 기분이지만, 그런 만큼 안정적이다. 그리고 딱히 김혜수를 대체할 배우가 떠오르지 않는다는 문제도 있다. 비슷한 나이에 김희애나 전도연 같은 연기본좌들이 있지만 마우희 역을 맡기에는 선이 가늘고 덩치도 작다. 분위기상 김해숙씨가 잘 어울리는데 나이 차이가 많이 난다. (이럼 엄마가 아니라 할머니...) 어쩌면 김혜수의 자기 복제가 앞으로도 계속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분장도 언급하고 싶은데, 영화 보면서 나에게는 유일하게 거슬렸던 부분이다. 몸은 아줌마인데, 얼굴이... 딸보다 예쁘다. 얼굴에 깨 좀 뿌린다고 김혜수 클래스가 어딜 가겠는가. 김혜수의 눈가가 촉촉해졌던 순간, '45살 아줌마의 눈망울이 저렇게 예쁠 수도 있구나' 라고 느꼈다. 정말 분장에 신경 쓰고 싶었으면 <몬스터>의 샤를리즈 테론처럼 눈썹도 밀고, 얼굴 분장도 과감하게 해서 좀 더 망가졌으면 어떨까 싶다. 

  김고은에게 <차이나타운>은 자신만의 독보적 클래스를 입증하는 영화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90년 이후 출생한 여배우 중에서 감히 누아르를 넘볼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티켓 파워를 생각하면 심은경이나 박보영이 아직 우위에 있지만, 이들의 캐릭터는 더 깜찍하고, 더 귀여운 후배들이 나온다면 자리를 비켜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일영 같은 캐릭터는 아직은 김고은만 소화할 수 있다. 어쩌면 김혜수가 대체 불가능을 이유로 자기복제가 반복되듯이, 김고은도 같은 이유로 비슷한 배역만 맡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긴 하다. 그래도 어쩌랴. 정말 잘하는 걸...

  마지막으로 석현을 맡은 박보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박보검의 연기가 좋다 나쁘다를 따질 필요도 없다.(사실 그 정도면 뭐 별로 나쁘진 않은걸로...) 박보검은 미스 캐스팅이었다. 물론 그가 나보단 훨씬 잘생기긴 했지만, 그저 잠깐 얼굴을 비치는 것만으로도 여심을 사로잡을 정도는 아니다. 석현이라는 캐릭터도 친절하긴 하지만 마음이 혹하진 않는다. 누아르 영화의 팜므파탈은 그 시절에 가장 이쁜 여배우가 누구인지를 가늠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미모가 아니라면 영화 자체가 성립되지 못하기도 한다. 샤론 스톤이 없었다면 <원초적 본능>은 존재하지 않았을 거다. 그런 맥락에서 옴므파탈이라면 옴므파탈에 어울리는 배우를 쓰는 것이 어땠을까? 석현의 매력에 공감이 안 되면 일영의 배신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반대로 석현의 매력적이라면 당연한 일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수상한 그녀>에서 단 1분 출연한 것만으로 인상을 남겼던 김수현 정도의 매력을 가진 배우였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작년 말 전역한 유승호가 맡았으면 정말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한다. 뭐 이게 박보검이 비난받아야 할 일은 아니니깐. 그저 아쉬울 뿐이다. 

▲ 누가 나이가 깡패래? - 김혜수, 45세






  기본기만 좋은 영화

  <차이나타운>은 누아르라면 갖춰야 할 조건을 갖춘 영화다. 하지만 그 이상을 보여주진 못했다. 그래도 그 분위기를 살려낸 실력은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배우들의 호연까지 더해졌기에 보고 나서 돈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영화는 아니었다. 하지만 뚜렷하게 인상을 남기는 그 무엇을 갖추지 못한 기분이다. '코인 로커 걸'이었다면 좀 더 나았으려나? 그래도 <차이나타운>이란 제목이 어느 정도 어울린다는 생각도 든다. 영화를 보고 나니 짜장면이랑 고추 잡채랑 고량주가 급 땡기더라.(파스타 즐)





  참조

  1) 영화미학과 비평입문. 이효인. 한양대학교 출판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