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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쌤 윤PD

<위플래쉬> - 광기와 광기의 충돌... 그 짜릿함!

※ 이 글은 영화 <위플래쉬>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영화를 보면서 전율했던 것이 언제였을까? 영화를 보며 가슴보다 머리가 먼저 반응하기 시작한 이래 이토록 가슴을 쿵쾅거리게 하는 짜릿함을 선사한 영화가 있었을까? 씹고, 뜯을 새도 없이 숨 막히게 몰아치는 광란에 이성을 잠시 내려놓고 그저 즐길 수밖에 없게 만든 영화. 무결점의 완벽함보다 앞만 보고 질주하는 패기를 보여준 영화. 그야말로 '미쳤다'라는 말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광기의 영화 <위플래쉬>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미친개' 테렌스 플레처(J.K. 시몬스, 이하 '플레처')

  수업 시작이 임박하자 학생들이 각자의 악기를 조율하느라 분주하다. 그리고 1초의 어긋남도 없이 수업시간과 동시에 그가 등장하자 일동은 마치 개장수 앞에 선 강아지 마냥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숨죽이고 있어야 했다. 지휘자라던가 교수라기보다는 폭군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그가 바로 플레처다. 그는 입만 열면 욕설, 그것도 그냥 쌍소리가 아니라 상대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고 칼로 쑤시는 듯한 모욕적인 욕설을 입에 달고 산다. 고함을 지르고, 의자를 던지고, 악기마저도 던지고 발로 찬다. 심지어 템포를 가르친다며 학생에게 싸대기를 날리는, 100년 전 중국의 기예단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교육법을 사용한다.

  플레처를 보면 학창시절 어느 학교에나 한 명쯤 꼭 있었던 '미친개'라 불리던 선생님들이 생각난다. (요즘은 이런 선생님은 없겠죠?) 그들은 애들을 가르치려고 패는 건지, 패려고 가르치는 건지 분간이 안 가는 모습을 보여주다가도, 평상시에는 너무나 말끔하고 멀쩡한 모습을 보여주며 더 소름 돋게 만든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폭력에 대해 교육적으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어 위선적이기 그지없다. 플레처가 찰리 파커를 들먹이며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모습을 보자니 '미친개'가 절로 떠올랐다. 그러면서 친구의 어린 딸에게 "나중에 크면 우리 밴드에 들어오렴."이라고 하는데 웃음이 절로 나오더라.

  플레처의 광기는 폭력, 공포, 억압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영화는 이러한 면모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는데 이 부분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바는 조명과 J.K. 시몬스다. <위플래쉬>는 영화 내내 비교적 어두운 톤을 유지하며 제한적인 조명을 사용한다. 그리고 플레처는 마치 공포영화에서 사이코 살인마가 모습을 드러내듯, 칠흑의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이후에도 항상 검은 옷을 입고 나오며 영화 내내 어둠의 기운을 마구 발산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개인적으로는 검정 티셔츠 밖으로 드러나는 민두와 팔이 마치 그것들만 허공에 떠 있는 듯한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 

  이러한 조명은 J.K. 시몬스와 만나 한층 더 강화된다. 조명을 통해 그의 얼굴에 새겨진 주름과 굴곡은 더욱 도드라지고, 플레처는 더욱 괴기스럽고 광기 어린 모습으로 보여진다. 나는 흡사 가고일을 보고 있다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J.K. 시몬스의 연기도 훌륭했지만, 그의 얼굴에 새겨진 세월의 흔적도 큰 역할을 한 셈이다. 배우에게는 주름마저도 자산이라는 생각이 든다.

▲ 광기의 배우 클라우스 킨스키가 연기한 '노스페라투'가 떠오르기도 한다.






  Out of Control, 앤드류 네이먼(마일즈 텔러, 이하 '네이먼')

  꿈은 '버드'이지만, 현실은 1학년 병아리에 불과한 네이먼. 플레처의 눈에 들어 셰이퍼 컬리지 최고 실력의 '스튜디오 밴드'에 참가하게 된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미친개 플레처. 그들이 처음 음악으로 맞부딪혔을 때 네이먼은 찰리 파커가 '버드'로 거듭났듯이, 병아리에서 광기의 드러머로 거듭난다. Rush or Drag를 윽박질러대며 네이먼의 뺨을 후려치는 플레처의 폭력에, 병아리 네이먼은 눈물을 흘리고 만다. 그러나 플레처는 멈추지 않고 네이먼의 공포를 분노로 승화시킨다. "I am UPSET!" 이때부터 네이먼은 서서히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나게 된다. 

  자신의 몸조차 돌보지 않는 피 흘리는 연습. 그리고 가족과 연인마저 등돌리게 만드는 성공에 대한 집착. 네이먼의 광기는, 마치 초사이어인이 상처가 회복된 후 급격히 전투력이 증가하는 것처럼, 연주 때마다 그의 실력을 일취월장하게 하였다. 그리고 끝내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코어 드러머의 자리를 스스로의 힘으로 차지하게 이른다. 여기까지는 아직 훈훈한 모습이었다. 살짝 엇나간 모습도 있었지만 아직은 예술에 대한 열정의 테두리 안에 있다고 할만하다. 스스로 구원하는 자 만큼 가치 있는 것은 없는 법이니깐.

  그러나 인생은 우연과 사고의 연속이었다. 예기치 못한 교통 장애로 인해 경연장에 늦게 된 네이먼은 불안과 초조 속에 서서히 이성의 한계를 벗어나기 시작한다. 플레처에게 대드는 모습까지 보이며 폭군의 손아귀를 벗어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충격의 사고... 그러나 사고의 부상도 네이먼을 막지 못했다. 집착과 광기로 경연장에 도착했지만 네이먼은 연주를 하지 못한다. 여기에 쏟아지는 플레처의 폭언. "넌 끝났어." 그 순간 네이먼은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고 플레처를 덮치고 만다. (이 장면에서 J.K. 시몬스의 갈비뼈가 부러졌다고 한다.)

  경연장에서의 폭력사태로 인해 퇴학을 당하지만, 혼자 죽을 수는 없는 법, 네이먼은 플레처를 고발하는 증언을 하고 플레처는 셰이퍼에서 쫓겨나게 된다. 이후 우연히 재즈바에서 만난 두 사람. 음악과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기에 아쉬운 과거는 묻어두고 다시 의기투합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때의 공감은 위선에 불과했다. 공연 날, 플레처는 자신의 커리어에 흠집을 내는 것을 감수하면서, 네이먼이 듣도 보도 못한 곡을 선곡하며 네이먼에게 제대로 빅엿을 날린다. 재즈바에서의 모습이 다시 어른거린다. 그러나 그 모습은 공감이 아니라 타짜의 포커페이스가 되어있었다.

  플레처의 선빵에 좌절에 빠진 네이먼. 그러나 이 순간 다시 한번 그는 통제를 넘어선다. 지휘자의 사인을 무시한 채 멋대로 곡을 시작하며 플레처에게 빅엿을 시전하기 시작한다. 플레처의 통제를 벗어나 곡을 지배하기 시작한 네이먼은 곡이 끝나도 연주를 멈추지 않는다. 이 순간 지휘자도, 악보도, 관객의 시선까지도, 어느 것도 네이먼을 말리지 못했다. 네이먼은 광기를 폭주하며 극한을 향해 달려나간다. 플레처는 그런 네이먼에게 '버드'의 냄새를 맡게 되고, 둘은 예술의 극한에서 적의를 넘어선 진정한 소통을 이룬다. 그리고 네이먼은 보는 이의 심장을 폭발시키는 쾌감을 선사한다. 미친 듯이 한계를 향해 달려나가는 폭주기관차. 네이먼은 그야말로 통제 불능, Out of Control의 화신이었다.

▲ 일그러지는 네이먼의 얼굴이 인상적이다.






  달리는데에 필요하지 않다면, 버린다.

  <위플래쉬>를 보며 묘하게 다가온 부분은 스토리였다. 스승과 제자가 합심하는 것이 아니라 죽일 듯이 달려든다는 '음악 스릴러'의 개념은 인상적이었지만, 전체적으로는 드럼 천재의 각성을 따라가는 통속적인 면모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며 식상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 이유는 바로 속도다. <위플래쉬>는 통속을 뛰어넘기 위해 깊이를 더하기 보다, 그런 느낌을 감지하지도 못할 정도의 미칠듯한 속도로 관객을 몰아붙인다.

  전임 코어 드러머의 악보는 누가 감추었을까? 네이먼이 각성하는 심리는 어떤 것이었을까? 전 여친은 JVC 페스티벌을 보러 왔을까? 마지막 공연 이후 네이먼과 플레처는 어떻게 되었을까? 영화는 회수되지 않는 떡밥들이 산재하고, 그로 인해 엉성해 보이는 듯하기도 하다. <버드맨>의 이냐리투나, <나를 찾아줘>의 데이빗 핀처가 보여주는 완전무결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이런 것에 신경쓸 여지를 주지 않는다. 그리고 신경 쓸 필요도 없어 보인다. 멈추지 않는 열차에 올라탄 관객은 <위플래쉬>의 폭주에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빈틈이 보이지만, 영화는 의도적으로 이런 것을 만들어낸 기분이다. 플레처와 네이먼의 폭주에 필요없는 것에는 일절 신경 쓰지 않고, 그 속도에 필요치 않은 것은 가차없이 쳐낸다. 오로지 한계를 돌파하는 것에만 집중하는 <위플래쉬>의 내러티브는 엉성함을 분석할 틈조차 주지 않으며 관객을 몰아붙였다. 그리하야 나에게 남은 것은 터질듯한 심장과 뇌가 날아가는 듯한 충격뿐이었다. 마지막 심벌소리가 끝난 뒤, 관객석에서 쏟아진 박수갈채는 찬사라기보다 관객들의 터질 듯이 격양된 감정을 몸으로 표현하는 것 같았다.





  귀 뿐만 아니라 눈도 호강하는 영화

  <위플래쉬>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역시 연주이다. 대역을 거의 쓰지 않고, 배우들이 직접 연주를 하는 열연을 보여주며 예상을 뛰어넘는 현장감을 제공해 주었다. 하지만 나는 연주를 통한 귀 호강 보다 눈의 호강이 더 인상 깊었다. 

  앞서 언급한 조명을 활용하여 플레처의 광기를 부각한 점도 훌륭하지만, 더 눈길을 사로 잡은것은 카메라 무빙과 편집이었다. 영화를 보던 와중에 나지막이 감탄이 나온 장면이 있다. 스튜디오 밴드의 첫 연습에서 곡의 시작을 알리는 플레처의 지휘가 그것이다.

  카메라는 플레처의 손을 중심으로 크게 돌아 포커스를 네이먼에게 맞춘다. 그리고 다시 포커스를 플레처의 손끝에 집중한다. 긴장감의 증폭과 함께 네이먼과 플레처의 대립구도를 성립하기 시작하는, 나도 모르게 '키아~' 소리가 튀어나오게 만드는 컷이었다.

  영화 전체적인 면에서 볼 때 음악과 호응하는 편집이 일품이었다. BGM의 멜로디에 호응하듯이 음악에 맞춰 화면 전환이 일어난다. 물론 이런 연출이 <위플래쉬>만의 독보적인 것은 아니겠지만, 과하지 않게 영화에 자연스레 녹아들며 영상의 템포를 맞춰나간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마지막 연주에서 플레처와 네이먼을 번갈아 잡아주는 부분이다. 컷을 나누지 않고 카메라의 이동만으로 화면 전환을 이뤄내며, 이것이 연주곡 'Caravan'과 호응하며 쾌감을 증폭시킨다.


  <나를 찾아줘>를 제치고 아카데미 편집상을 거머쥔 것에 대해 조금의 불만이 있긴 하지만, <위플래쉬>의 장면 전환은 상을 거머쥘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심장을 멈추지 않고 펌프질하게 만드는 느낌의 영상이었다.





  짜릿하다. 미칠정도로 짜릿하다.

  광기와 광기의 충돌, 그로 인해 한계를 향해 달려가는 폭주를 보여주며, 보는 내내 심장을 쫄깃하게 만들어준 영화였다. 머리로 분석할 틈을 주지 않은채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나는 작년 말과 올해 초까지 <나를 찾아줘>, <보이후드>, <버드맨>까지, 관객을 생각하게 만드는 군더더기 없는 무결점의 영화들에 매우 흡족하였다. 하지만 머리가 아니라 직접적으로 가슴을 울리는 <위플래쉬>보다 더 큰 감흥을 주었던 영화는 없었다. 

  뭐랄까... 미쳤다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최근 1년 내에 본 영화 중에서 가장 추천하는 영화다. <위플래쉬>의 드럼 비트가 당신의 심장도 쿵쾅거리게 만들기를 바란다. 꼭 이 영화를 만나길 바란다.





※ 정말 오랜만에 격양된 감정으로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 Caravan 전에 나온 업스윙윙의 멘붕도 정말 대단했습니다.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를 활동하는 친구는 이 장면을 차마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 대학시절 밴드 합주를 하던 추억이 떠올라서 좋았습니다. 합주가 정말 잘 될때면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서로가 눈빛만으로 호응하는, 정말 기분좋은 느낌을 받습니다. 하지만 영화 중간에 '실력이 없으면 락밴드 드러머나 되겠지'라는 문구가 등장했...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