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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가장 현실적인 인류 멸망 시나리오 9가지

인류 멸망 시나리오는 공상 과학에서 즐겨 찾는 소재다. 거대한 스케일의 연출이 가능하기 때문에 블록버스터 영화에서도 잊을만하면 등장한다. 이처럼 많은 사람이 흥미와 관심을 보이는 소재이지만, 흥미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를 매우 진지한 관점에서 접근한 책이 있다. <사피엔스의 멸망>은 다양한 인류 멸망 시나리오를 제시하며, 동시에 다음 100년 안에 이러한 시나리오가 실제로 벌어질 확률을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계산해냈다. 다음은 책에 등장하는 주요 멸망 시나리오와 그 확률들이다.

 

1) 소행성이나 혜성과의 충돌 (확률 0.0001%)

소행성 충돌은 이미 과거에 벌어진 적이 있다. 1억 년의 공룡 지배를 끝낸 게 바로 소행성 충돌이었다. 따라서 충돌이 벌어진다면 매우 높은 확률로 인류가 멸망할 수 있다고 예측할 수 있다. 충돌 자체로 인한 충격뿐만 아니라 대기가 먼지로 뒤덮이면서 기나긴 겨울이 이어져 전 세계적인 멸절을 초래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충돌할 확률 자체는 그리 높지 않다. (사진 : 영화 <딥임팩트>)

 

2) 슈퍼 화산 폭발 (확률 0.01%)

1,000세제곱킬로미터 이상의 암석을 뿜어내는 거대한 화산을 '슈퍼 화산 폭발'이라고 부른다. 이 경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원뿔 형태가 아니라 거대한 웅덩이처럼 분화구가 형성되는데, 이를 '칼데라'라고 부른다. 가장 유명한 옐로스톤 칼데라는 63만 년 전에 마지막으로 폭발했다. 슈퍼 화산이 폭발하면 소행성 충돌과 마찬가지로 대기가 먼지로 뒤덮여 기나긴 겨울이 이어지고 그로 인해 전 세계적인 멸절을 초래할 수 있다. 소행성 충돌보다 일어날 확률은 훨씬 높지만, 인공적인 위험에 비하면 확률은 낮은 편이다. (사진 : 영화 <2012>)

 

3) 항성 폭발 (확률 0.0000001%)

태양을 비롯한 모든 항성은 중심으로 모이는 중력과 바깥으로 밀어내려는 압력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 이 균형이 깨지면 항성이 수축하다 초신성 폭발이 일어날 수 있다. 또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인해 다량의 감마선을 분출할 수도 있다. 이러한 항성 폭발이 지구에 치명적인 환경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 오존층이 파괴되거나 아니면 엄청난 복사열로 지표면이 그대로 불타버릴 수도 있다. 이러한 위협은 사전에 발견하기 어렵지만, 일어날 확률도 극히 낮다. (사진 : 영화 <노잉>)

 

4) 핵전쟁 (확률 0.1%)

전 세계 핵무기가 지구를 여러 번 파괴하고도 남을 만큼 많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하지만 핵전쟁으로 인한 낙진 피해, 대규모 폭발로 대기가 먼지로 뒤덮이는 핵겨울 등이 인류 멸망을 초래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특히 핵전쟁이 무서운 이유는 지난 20세기에 실제로 핵전쟁이 벌어질 수 있었던 일촉즉발의 순간이 존재했다는 점이다. 소행성 충돌처럼 확실한 절멸을 초래한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발생 확률은 그 어느 멸망 시나리오보다도 높다. (사진 :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5) 기후변화 (확률 0.1%)

기후 변화는 현재 진행 중인 가장 실재적인 위험이다. 바닷물이 끓어 올라 온실 효과 피드백이 발생하는 '탈주 온실효과'의 가능성이 언급되기도 하지만, 다행히 이러한 극단적인 위협은 벌어질 가능성이 높지 않다. 그럼에도 영구동토층과 메탄 하이드레이트가 기화할 수 있는 등 예측 불가능한 변수도 있어서 주의가 요구된다. 아니면 그저 우리 인류가 너무 많은 탄소를 대기 중에 배출할 수도 있다. 이로 인해 절멸 수준의 재앙이 오진 않더라도 인류 문명에 심각한 피해를 입힐 거라는 예측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사진 : 영화 <투모로우>)

 

6) 자연적으로 발생한 전염병 (확률 0.01%)

전염병은 자연적 위험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과거의 전염병 위험은 하나의 대륙 이상으로 영향을 끼치기 어려웠다. 하지만 오늘날 전 세계가 긴밀하게 연결되면서 진정한 의미의 전 세계적 유행이 가능해졌다. 도시 이주에 따라 인구 밀집도가 높아졌고, 교통이 발달해 먼 거리를 빠르게 이동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로 인한 결과는 코로나19로 직접 겪고 있기도 하다. (사진 : 영화 <컨테이젼>)

 

7) 인공적 전염병 (확률 3.33%)

자연적 전염병보다 인공적 전염병이 더 위험할 수 있다. 최근 생명공학 연구 비용이 대폭 감소하면서 위험한 생물재해가 발생할 위험이 매우 높아졌고, 게다가 그런 위험을 가로막을 보안 대책도 충분하지 않다. 실제로 영국에서는 2001년에 심각한 수족구병이 발생해 가축 600만 마리가 살처분됐는데, 실험실에서 유출된 병원균이 그 원인이었다고 한다. 이 경우는 '실수'라고 볼 수 있지만, 연구 비용 감소로 인해 악의를 가지고 생물재해를 유발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사진 : 영화 <컨테이젼>)

 

8) 비정렬 인공지능 (확률 10%)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범용 인공지능의 등장은 이제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다만, 그러한 인공지능이 언제 출현할 것인지에 관해서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인류 멸망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인간을 뛰어넘는 인공지능이 과연 인류에게 위협이 될 수 있을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 만약 인공지능이 인류를 해하거나 혹은 인류를 보호하겠다고 과도한 억압을 펼치면 어떻게 될까? 문제는 인공지능이 윤리적 가치에 따라 행동하는 게 아니라 보상 체계에 따라 움직인다는 점이며, 이 보상 체계가 인류의 발전과 나란히 가지 않는다면, 즉 비정렬 인공지능이 출현한다면 인류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힐 수도 있다. (사진 : 영화 <아이 로봇>)

 

9) 디스토피아 시나리오

인류에게 심각한 피해를 주는 것이 꼭 대규모 사망이나 심각한 파괴에 의해서만 일어나지는 않는다. 예를 들면, 전 지구를 지배하는 독재 정권이 출현할 경우 그로 인해 인류가 발전할 기회가 완전히 가로막히면 이 또한 인류의 존재 위협이 될 수 있다. 과거 제국주의 전제 정권이 그러한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최근에는 기술 발달을 통한 감시 체계의 발달로 새로운 형태의 독재정권이 탄생할 거란 예측도 나오고 있다. (사진 : 영화 <1984>)

 

인류 멸망을 생각해야 하는 이유 1) 지식>지혜

 

<사피엔스의 멸망>를 쓴 토비 오드는 이러한 멸망 시나리오들을 종합했을 때 앞으로 100년 동안 인류가 멸망할 확률이 무려 1/6에 이른다고 경고한다. 생각보다 높은 수치다. 물론 인류가 망하지 않을 확률이 5/6로 더 높다. 그럼에도 토비 오드는 우리가 멸망에 관하여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핵심 이유 중 하나는 인류가 너무 큰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핵무기 개발, 기후 변화 등 이제 인류의 힘은 지역적 한계를 넘어서 전 세계에 커다란 영향을 끼칠 정도로 막강해졌다. 하지만 윤리적, 사회적 합의는 그러한 수준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지식은 늘었으나, 지혜가 이를 따라잡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도덕혁명을 일으켜야 한다는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지혜을 얻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도덕은 소수의 엘리트가 순식간에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와 폭넓은 교양 교육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지금 당장 시작해야만 한다. 우리가 지금 이 순간 멸망을 생각해야만 하는 이유이다.

 

인류 멸망을 생각해야 하는 이유 2) 사고의 확장

 

인류 멸망은 굉장히 거대하고 장기적인 사고다. 이러한 접근을 추구하면 기존과 다른 사고의 확장을 이룰 수 있다. 실제로 책을 보면서 생각의 범위가 넓어지는 기분을 여러 번 느낄 수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효율의 우선순위를 따지는 방법이다.

 

인류 멸망을 막기 위해 우리는 무엇부터 신경 써야 할까? 가장 발생 확률이 높은 일부터 대비해야 할까? 이는 옳지 않다. 어떤 위험은 좀 더 쉽게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무시 정도가 심한 일이라면 적은 자원과 관심만으로도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저자는 비용 효율을 다음과 같이 계산했다.

 

비용 효율 = 중요성 x 해결 용이성 x 무시 정도

 

이는 인류 멸망뿐만 아니라 우리 삶에서 우선순위를 정할 때도 활용할 수 있다. 아무리 중요성이 높아도 해결 용이성이 높지 않다면 우리는 전략적으로 해당 문제의 우선순위를 뒤로 미룰 수 있다. 이러한 발상은 시간과 자원이 제한될수록 빛을 발한다. 인류 멸망과 같은 치명적이고 거대한 문제에서 얻을 수 있는 지혜인 셈이다.

 

오늘날 우리는 멸망의 가능성이 인류 역사 중에서 가장 높은 시기에 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우리가 힘을 합치고 지혜를 모으면, 멸망의 위기를 극복했을 때 더 큰 발전을 이루는 토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근시안적인 사고를 벗어나 거대하고 장기적인 사고, 즉 멸망을 대비하는 사고를 한 번쯤 해보길 바란다. 책 <사피엔스의 멸망>은 그러한 사고의 확장을 가져오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덧. 책과 더불어 이 글에서 사진으로 참고한 SF영화를 본다면, 더 재밌고 깊이 있게 인류 멸망에 관하여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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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콘텐츠는 제작비를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