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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지저분한 그 운동화가 너무나 뿌듯해서 흙을 털어내고 싶지 않았다

주최 측은 마무리 인사를 하면서 걷기에 참여한 사람들과 자원봉사자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축구장을 떠나려는 다비덴코의 운동화에는 붉은 흙먼지가 잔뜩 묻어 있었다. 하지만 다비덴코는 지저분한 그 운동화가 너무나 뿌듯해서 흙을 털어내고 싶지 않았다.

<움직임의 힘>, 123p

위 문장을 보면서 소름이 쫙 돋으며 잊었던 추억이 떠올랐다. 2013년의 더운 여름날, 나는 친구와 함께 록 페스티벌에 놀러 갔다. 자칭 록빠였지만, 콘서트를 자주 보러 가진 못했고 (비싸...) 그마저도 대부분 실내에서 있었던 공연이었다. 그래서 야외에서 펼쳐지는 록 페스티벌이 어떨지 궁금했는데... 완전 핵 고통이었다. 날씨는 푹푹 찌는데, 공연장과 공연장 사이는 더럽게 멀었다. 강조 표현이 아니라 정말 더러웠다. 전날 비가 와서 습도는 높았고, 바닥은 진흙투성이였다. 학교 축제도 이 정도로 빡세진 않았다. 진짜 죽을 맛이었다.


하지만 공연이 시작되고 찢어지는 기타 리프와 심장을 두드리는 드럼 소리가 울려 퍼지면 그때는 뭐 더럽건 말건 신경 쓸 필요가 없어진다. 그냥 방방 뛰고, 또 뛰고, 달리고, 소리치고. 그러고 나면 소스가 잘 버무러진 짜장면처럼 온몸이 진흙투성이가 된다. 한 마디로 거지꼴이 따로 없다. 하지만 나는 그 모습이 너무도 뿌듯해서 사진으로 남겼고, 심지어 한동안 프로필 사진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이 더러운 사진은 뭐냐고, 딴 거로 바꾸라고 말하면 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씨익 보여주곤 했다. 


캘리 맥고니걸의 책 <움직임의 힘>은 우리의 삶에서 '고양'이란 감정을 끌어내는 방법을 알려준다. 고양! 얼마나 멋진 감정인가! 이 단어 하나만으로도 여러 가지 긍정적인 단어를 떠올릴 수 있다. 몰입, 행복, 희망, 친밀감, 용기까지. 이 모든 것을 끌어내는 마법 같은 단어가 바로 고양이다. (냐옹) 책에서 제시하는 고양을 끌어내는 방식 중 나에게 가장 인상적인 것은 바로 '동기화된 움직임'이었다. 


격렬한 신체 활동과 음악이 집단적 즐거움에 기여할 수는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요소는 결국 동기성이다. 우리는 흔히 엔도르핀 분출을 고강도 운동과 연관시킨다. 하지만 동기화된 차분한 동작, 심지어 앉아서 하는 몸짓도 통증 내성과 사회적 친밀감을 높여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움직임의 힘>, 102p

나는 바로 얼마 전에 이와 같은 일을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 회사에서 수백 명의 사람에게 개별적으로 택배를 보내야 할 일이 있었다. 보내야 할 물건을 따로따로 포장하고 주소 라벨까지 붙여야 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별것 아닌 단순 노동이지만, 단순 노동만큼 사람을 쉽게 지치게 하는 일도 없다. 잔뜩 쌓인 물건을 보면 일단 한숨부터 나오기 마련이고, 해도 해도 끝이 없으니 지치게 마련이다. 


그런데 일을 하다 보니 묘한 감정이 솟아올랐다. 각자 업무를 분담해서 속지를 끼고, 포장을 하고, 라벨을 붙이는데, 일이 착착 맞아떨어지는 느낌이 마치 우리가 하나의 컨테이너 벨트 기계처럼 느껴졌다. 업무가 오가는 리듬감을 느낄수록 고통은 줄어들었고, 신뢰와 협동심이 높아졌다. 그렇게 서서히 고양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음 일이 없었다면 그 고양감을 감격스럽게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겨우 포장을 마치고 우체국으로 갔는데... 젠장... 거기서 분류작업을 다시 해야 했다. 배송 스티커를 나눠주더니 사람에 맞춰서 전부 붙이라는 게 아닌가. 지금까지 계속 그 짓을 하고 왔는데, 의자도 없이 사람 북적이는 우체국에서 그 짓을 또 하라고? '에라 모르겠다' 싶은 마음이 절로 들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사무실에 있던 동료 직원들을 호출하게 되는데...


그들이 우체국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딱 위 사진 같았다. 체인지그라운드 어셈블! 이게 바로 구원자구나 싶은 느낌이었다. 함께했던 순간 쌓이던 고양감이 떨어졌다 합류하는 순간 임계점을 뚫고 폭발해버렸다.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동료들이 우체국 출입문을 열고 들어오던 광경이 생생하게 기억날 정도다. 사무실에서 작업하던 것보다 훨씬 힘든 환경이었지만, 우체국에서 힘들다는 소리 한번 없이 일할 수 있었다. 나는 당시 분명히 고양돼있었다.


운동이 긍정적 감정을 가져다준다는 연구 결과와 이를 거론하는 책은 이미 많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것을 한층 끌어올려 고양에 이르는 길을 제시하고, 또한 이에 해당하는 과학적 근거를 충실하게 가져온 책은 <움직임의 힘>이 처음이었다. 모든 페이지와 모든 사례마다 활기가 흘러넘치고, 책을 읽을수록 당장 뛰어나가고 싶은 충동에 엉덩이가 들썩일 정도다. 


몰입, 행복, 희망, 친밀감, 용기... 당신의 삶을 이러한 긍정적 감정으로 가득 채우고 싶다면 꼭 <움직임의 힘>을 읽어보길 바란다. 보통은 읽고 난 내용을 꼭 삶에 적용하라고 첨언하지만, 이 책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읽고 나면 당신도 당장 아무거나 걸치고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을 것이다. 나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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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콘텐츠는 로크미디어로부터 제작비를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