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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의사보다 크리에이터가 잘나가는 시대가 온다

19세기에는 노동자 계급이 생겼다면, 다가오는 세기에는 '쓸모없는 계급'이 생길 것이다. 군사적 기능이나 경제적 기능에서 아무 가치도 생산하지 않는 수십억 명이 생겨난다. 미래에는 그들에게 존재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대한 과업이 될 것이다. 따라서 기계로 대체 가능한 무능하고 값비싼 존재가 되는 대신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고유한 가치를 개발하는 데 집중할 때 인간은 삶에서 의미를 찾을 것이다... 누구도 모방할 수 없고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인간이라면 어떤가? 우리가 만든 초효율적인 기계와 경쟁하며 살 것인가? 아니면 만물과 연결된 영적 존재로서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창발적 시스템이라는 인간의 본질에 눈떠야 할까?

<폴리매스>, 185p

오늘날 잘나가는 직업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아마도 대부분 의사, 변호사 같은 전문직을 꼽을 것이다. 전문직은 벌이도 좋고, 안정적이기도 하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2016년 알파고가 이세돌을 4:1로 격파한 이후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할 것이란 두려움이 확산되고 있다. 과거의 자동화 시스템이 블루칼라에 한정되었다면, 알파고로 대표되는 최신 인공지능은 화이트칼라의 영역까지 넘보고 있다. 단순 노동을 넘어 분석과 판단의 영역에서도 기계가 인간을 앞서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의사 같은 전문직도 인공지능의 침략으로부터 안전하지 않음을 뜻한다. 물론 모든 의사가 인공지능으로 대체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의료 활동에 필요한 사람 숫자는 급격히 줄어들 것이다. 특정 분과, 특히 영상의학과의 경우 당장 전문의 양성을 멈춰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5년 안에 인공지능이 영상의학과 전문의를 능가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특히 인공지능과 정면으로 맞붙게 될 우리 아이들을 어떤 방향으로 가르쳐야 할까? 핵심은 인공지능이 대체하지 못하는 능력을 가르치는 것이다. 옥스퍼드대 인류미래연구소의 앤더스 샌드버그는 이렇게 말한다. 


"명쾌하게 규정할 수 있는 일자리는 자동화에 대체될 위험이 크지만, 규정하기 힘든 일자리는 기계로부터 안전한 편이다. 폴리매스는 후자에 해당하는 일을 처리한다. 쉽게 해독할 수 없는 일들을 해결하는 데 능통할 뿐 아니라, 무엇보다 그런 일자리를 창출하는 일에도 뛰어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폴리매스(polymath)는 단순히 '박식가'를 뜻하지 않는다. 저자 와카스 아메드는 폴리매스라는 인종을 이렇게 정의한다.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는 다양한 영역에서 출중한 재능을 발휘하는 사람들. 그는 이 정의마저도 매우 간단하고 포괄적인 정의라 말하며 1장을 통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폴리매스는 전일적 관점에서 사유하고 다차원적 사고를 하는 다재다능한 사람으로 방대하고 종합적인 사고와 방법론을 지녔으며, 이를 통해 연관 없어 보이는 분야들을 연결해서 돌파구를 만들어내는 특징을 지는 사람이다. 폴리매스는 끝없는 호기심과 뛰어난 지능, 놀라운 창의성을 바탕으로 한계를 거부하는 다재다능함을 발휘한다. 그래서 그들은 인간이 본래 지니고 있던 다양한 잠재력을 마음껏 해방하고 자아실현마저 성취하는 충만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마치 레오나르도 다 빈치처럼 말이다. 

<폴리매스>, 8p

현대의 교육은 '전문가'를 양성하거나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노동자를 배출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산업화 시대에나 어울릴 법하게 학생들을 기계의 한 부품이 되도록 가르치고 있는 셈이다. 교육의 목표가 일종의 품질관리처럼 되었다. 과거였다면 이러한 교육이 효과적이었을 수 있다. 분업화와 전문화가 요구되는 사회에서 그에 걸맞은 일꾼을 길러낼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기계적인 교육으로는 경쟁력을 얻을 수 없다. 진짜 기계가 인간을 대체할 수준까지 올라오지 않았는가. 


그래서 미래에는 '폴리매스'가 필요하다. 분업화와 전문화를 뛰어넘어 분야를 뒤섞고, 연결하고, 융합할 수 있는 인재다. 이는 아직 인공지능이 따라오지 못하는 능력이며, 과거부터 세상을 바꾸는 창의력의 원천이기도 했다. 과거에는 '선형적이고, 순응적이고, 표준화된' 사람이 필요했다면, 이제는 '다양하고, 유기적이고, 적응력이 좋은' 사람이 요구된다. 따라서 호기심, 통합적 사고, 창의성을 육성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 나는 위 학원 강사의 말에 해답의 실마리가 들어있다고 본다. 과거의 교육이 공식을 가르쳤다면, 미래의 교육은 공식을 추론할 수 있는 능력을 가르쳐야 한다. 즉, 생각할 줄 아는 능력을 가르쳐야 한다는 말이다. 이때 결정적으로 필요한 것이 자율성과 다양한 분야다. 공부의 틀이 정해지면 수동적인 교육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 교육 현장은 학생들이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도록 격려해야 하고, 나아가 자기 주도 학습을 이어나갈 기본기를 육성할 수 있어야 한다. 


지식 주입이 아니라 지식 탐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호기심을 갖고 다양한 분야를 연결할 능력을 타고난다. 이미 알던 지식이 다른 영역에서 다시 발견됐을 때 쾌감을 느끼지 않는가? 누구나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 쾌감을 배움의 중심으로 가져와야 한다. 단순히 정보를 알려주는 게 아니라, 정보의 바다를 탐험하는 기술과 즐거움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폴리매스>의 저자 와카스 아메드는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16세에서 18세에 해당하는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할 교과과정의 기본 틀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요컨대 전인적인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는 말이다. 교육 현장에서는 수십 년 전부터 '전인교육'을 외쳐왔지만, 이를 제대로 해낸 적이 없다. 어쩔 수 없다. 시스템 자체가 그러한 교육을 지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장 대학 입시라는 틀에 박힌 과제가 주어지고, 이후에도 분업화와 전문화에 길들여진 취업 시장이 펼쳐진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시스템이 붕괴할 것이다. 취업 시장부터 인공지능으로 인해 재편될 것이고, 그에 따라 대학도 바뀔 수밖에 없다. 미래에 가치 있는 인간으로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폴리매스가 되어야만 한다. 


창의적 사고가 자리 잡으면 다양한 분야에서 창의성이 발휘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폴리매스보다는 여러 분야에서 활동한 창작자로 볼 것이다. 다 빈치 역시 자신을 창작자로 규정했으며 그의 안에 있는 창조의 힘은 여러 개의 초를 밝힐 수 있는 성냥과 같았다... 창의성은 경계도 한계도 없으며 모든 것에 적용된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참이 아니다. 요리를 하고 일상적인 활동에 참여하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십중팔구 참된 길이 아니다. 

<폴리매스>, 271p

생각할 줄 아는 능력. 여러 분야를 통합하고 융합하는 능력. 그리고 이를 여러 방식으로 표현할 줄 아는 것. 이런 부류의 대표가 바로 창작자, 다른 말로 크리에이터다. 유튜브가 흥하면서 크리에이터라는 말이 우리 일상에 스며들었다. 그래서 크리에이터라고 하면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 정도로 생각하겠지만, 이는 크리에이터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하지만 유튜버도 다른 크리에이터와 동일한 특징을 갖는다. 그들은 자신이 가진 지식과 재능을 영상 콘텐츠로 표현할 줄 안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전업 유튜버는 오히려 경쟁력이 없다. 반면에 부업으로, 혹은 홍보 수단으로 유튜브를 활용하는 사람들은 승승장구한다. 백종원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요리에 관한 전문가이기도 하지만, 요리만 파고들지 않는다. 경영, 글쓰기, 방송 등 다양한 방면에서 활약하고 있다. 


폴리매스가 꼭 전혀 관련 없는 분야를 따라 여기서 번쩍, 저기서 번쩍할 필요는 없다. 관련 분야를 다양하게 섭렵한다면 그 또한 폴리매스다. 중요한 것은 하나의 우물만 깊게 파고들지 않는 것이다. 전문성을 갖고 있다면, 이를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하고, 나아가 각 분야를 연결하며 새로운 분야를 창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유튜브는 한 분야를 파고들었던 전문가들이 더 넓은 분야로 확장하기 가장 좋은 수단이라고 볼 수 있다. 


미래에는 전인적인 소양을 갖춘 크리에이터가 대세가 될 것이다. 먼 미래에는 이마저도 인공지능에 잠식당할지 모르지만, 다른 분야보다는 가급적 오래 인간의 영역으로 남을 것이라 예상된다. 앞서 인강 강사가 말했듯이 '추론 능력을 키우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어려운 영역에 생존의 길이 있다는 점이다. 아이에게 공식을 가르치겠는가? 아니면 공식을 유도하는 능력을 가르치겠는가? 인공지능 시대에 누가 살아남을지, 그 결과는 너무도 명백해 보인다. '전문가'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 '폴리매스'의 시대가 오고 있다. 

'한 우물만' 파는 시대는 끝났다.

다가올 세기에 꼭 필요한 필독서


※ 본 콘텐츠는 로크미디어로부터 제작비를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