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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나는 그렇게 전문가로 성장했다


  "한라산을 서울로 옮기려면 얼마나 걸릴까?"


  면접 황당 질문을 모아놓은 <국민일보> 기사에 올라온 내용이다. (링크) 기사에서는 한라산의 부피와 이를 퍼 나르는데 걸리는 시간을 계산해서 179만 9980년이라는 답을 내놓았다. 그런데 얼마 전 남성 잡지 <GQ 코리아>에서 연예인 김세정을 인터뷰했는데, 여기서 '기발한' 답변이 나왔다.


  "잘만하면 하루에도 되지 않을까요? 제주도의 행정구역 명칭을 서울로 바꾸는 거예요."


  '캬~ 고걸 몰랐네' 소리가 절로 나왔다. 실로 재치있고 기발한 답변이었다. 톡톡 튀는 신세대 연예인의 참신한 답변에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면접 질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의아함이 피어올랐다.


  '이런 수수께끼를 맞추는 거로 직무 능력을 파악할 수 있는 걸까?'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시사 상식을 모은 참고서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장강명의 르포 <당선, 합격, 계급>은 이러한 지식이 과연 직무 능력과 무슨 상관이 있을지 지적한다. 


  그런데 아직도 그런 책들이 나온다. 언론사와 공기업 입사 준비생들은 아직도 상식 시험을 치른다. 2017년에 나온 참고서만 살펴보자. <최신시사상식 187점>, <SPA 문제상식>, <시험에 강한 에듀월 시사상식>, <에듀월 언론사 기출 일반상식3일끝장>, <한 눈에 쏙! 시사용어사전>... 무슨 단어든 금방 검색해 볼 수 있는 스마트폰이라는 훌륭한 휴대 기기의 국내 가입자가 4000만 명을 넘는 시대에 예비 저널리스트들이 정말 이런 걸 공부해야 할까?... 퀴즈 대회 출전자를 뽑는 것도 아니고, 이걸 잘 외웠다는 게 무슨 관련이 있을까.


  대기업 공채도 다르지 않다. 현대자동차는 2013년 하반기 '글로벌 인재의 핵심 역량은 뚜렷한 역사관'이라는 취지로 역사 에세이를 도입했다. 


  "고려, 조선 시대 인물 중 가장 존경하는 사람과 그의 업적을 설명하고 이유를 쓰시오."


  그러나 역사와 인문 소양을 갖춰야 진짜 창의적인 인재가 되는 걸까? 자동차 회사에 필요한 글로벌 인재는 역사관이 뚜렷한 사람이 아니라, 자동차를 잘 만들거나 자동차를 잘 파는 사람이다. 입사지원자의 창의력을 제대로 살펴보려면 역사 에세이를 물어볼 게 아니라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야 했다. 


  '자율 운행차를 도입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인프라는?'


  '소유보다 공유를 강조하는 문화 속에서 추진할 수 있는 카 셰어링 산업 모델은?'






  이런 폐단이 벌어진 근본적 원인은 '공채'라는 시스템에 있다. 우리나라처럼 대규모 공채로 신입사원을 채용하는 나라는 드물다고 한다. 다른 나라는 대부분 사람이 필요할 때 부서에서 직접 사람을 뽑는 '직무 중심 채용' 방식을 따른다. 물론 공채가 무조건 나쁘고 직무 중심 채용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다. 공채는 많은 인원을 짧은 시간에 선발할 수 있다. 게다가 공정하다. 공채 제도를 처음 도입한 삼성물산공사의 이유도 '학연, 지연, 혈연을 배제하고 공정하게 사람을 뽑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공채는 스페셜리스트를 뽑을 수 없다. 대신 제너럴리스트를 뽑는다. 실력이 아니라 가능성을 보고 뽑는다. 그러나 가능성을 무슨 수로 측정할 수 있을까?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저서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장교 후보생을 평가했던 사례를 소개한다. 그는 '통나무 옮기기'라는 과제를 주고 이를 통해 장교 후보생들을 평가하려고 했다. 그러나...


  결과는 항상 똑같았다. 우리의 훈련 학교 성과 예측 능력은 무시해도 좋은 수준에 불과했다. 눈 감고 하는 추측보다는 약간 더 나은 정도였지만 극도로 미미했다. 인위적으로 조성한 환경 속에서 한 시간 동안 군인의 행동을 관찰해 놓고서, 우리는 그가 다른 훈련과 전투에서 리더로 활약하며 겪을 도전들을 해결하는 능력을 알았다고 느꼈다. 그러나 이 예측은 완전히 잘못되었다.


  각 기업 인사담당자들의 인터뷰를 봐도 상황은 비슷하다. 삼성그룹에서 26년 근무한 인사전문가는 '면접장 들어서는 순간 당락의 80%가 결정된다'라고 말한다. (링크) 이따위로 사람을 뽑으니 결국에는 '요즘 애들은 영 시원찮다', '실력있는 신입 사원이 없다' 같은 소리가 나온다. 가능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오로지 개인의 주관 그 이상은 없는 셈이다. 






  그래서 스펙이라는 괴물이 탄생했다. 가능성을 객관적인 지표로 나타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학교 간판, 학점, 외국어 점수, 각종 자격증... 이 모든 것들이 의미하는 게 무엇인가? 단지 '이 정도 스펙을 갖출 정도의 능력이 있으니, 회사 일도 잘할 수 있겠지...'라고 유추할 뿐이다. 스펙이 높으면 일을 잘할까? 모르는 일이다. 학점이 4.0을 넘겼다고, 토익 점수가 900점을 넘었다고 일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일을 잘하는지 못하는지는 그 일을 직접 해보기 전에는 모르는 법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스펙에 목을 맨다. 스펙 이외에는 가능성을 판단할 근거가 없고, 공채 이외에는 경력을 쌓을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도 나도 스펙이라는 괴물에 시달린다. 학점 따느라, 외국어 공부하느라, 뭐라도 이력서 한 줄 채우기 위해 별 의미도 없는 자격증을 따려 한다. 자동차를 만드는 데 한자 자격증이 필요하겠는가? 컴활 자격증이 없으면 엑셀을 못 다루나? 그래서 다들 스펙만 따지는 더러운 세상이라며 한탄하고 분노한다. 하지만 그렇게 스펙을 증오하면서도, 우리는 스펙에 얽매여 있다. 나는 그 사실을 다음 영상에서 깨달을 수 있었다. 



  영상을 보고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나는 취업을 위해 무엇을 준비했었나? 솔직히 아무 생각이 없었다. 남들이 다 하니까 따라서 스펙을 쌓았다. 속으로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도 외국어 시험을 치고,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느라 고생했다. 그토록 스펙이 싫었다면 한 번쯤 고민해봐야 했다. 


  '만약 스펙이 없다면 나는 내세울 게 있을까?'







  신영준/고영성의 공동 에세이 <뼈 있는 아무 말 대잔치>에서는 이러한 모순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나도 스펙에만 매달리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취업에 실패했고 기나긴 백수 생활이 이어졌다. 그나마 글을 쓴다는 꿈을 찾았고, 정말 열심히 글을 썼다. 다행히 실력은 쑥쑥 자랐고, 3년쯤 되었을 때 '어디 가서 글 쓴다는 소리 정도는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등단한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 실력을 키우고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준은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5년째 되던 해 글쓰기로 취업에 성공하게 된다.  


  나름 명문대를 나왔고, 갖춰야 할 스펙 정도는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취업하는 데 있어 그것은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 솔직히 내 전공을 가지고 어디서 돈 받을 자신 있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글쓰기라면 자부심이 있다. 웬만한 언론사에서 올라오는 허접한 기사에 비하면 훨씬 좋은 글을 쓸 자신이 있다. 그렇다. 나를 취업에 성공시켜 준 것은 스펙이 아니라 실력과 그에 따른 자부심이었다. 



  우리 사회도 슬슬 스펙의 문제점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럴수록 실력에 집중해야 한다. 기업은 실력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한라산을 옮기는 방법' 같은 되도 않는 질문이나 던져서는 안 된다. 개인은 어딜 가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춰야 한다. 그런 실력을 기업이 알아주지 못한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런 기업이라면 얼마 안 가 망할 게 뻔하다.


  특히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 싶다면 더더욱 실력에 집중해야 한다. 스펙으로 취업에 성공한다 한들, 실력이 없으면 도태될 뿐이다. 승진하거나, 이직하거나, 아니면 창업하거나. 더 나은 대우를 받고 싶으면 필사적으로 실력을 키워야 한다. 이 점을 명심하자. 입사는 스펙으로 될 수 있겠지만, 퇴사는 실력에 달려있다. 







  "스펙보다 실력!"


  이것이 <뼈아대>를 통해 배운 세상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다. 이제는 취업에 성공해서 월급을 받고 있지만, 절대 안주해서는 안 된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질문해야 한다.


  "나는 오늘 실력을 키우기 위해 무엇을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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