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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휴지통

[단편] 초식남의 탄생






  사람을 한 마디로 규정할 수는 없다. 인간은 복잡미묘하다. 이기심과 이타심이 공존하고, 사랑과 증오는 맞닿아 있다. 또한, 변화무쌍하다. 악당이 회개하거나 영웅이 타락하는 이야기는 수없이 많다. 그럼에도 세상은 사람을 규정하고 분류한다.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이다.' 한 마디로 단언한다. 나쁜 사람, 착한 사람, X세대, N세대, 김치녀, 한남충... 종류도 많다.


  학창시절에는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나는 모로 보나 좋은 사람이었다. 훌륭한 성적, 원만한 교우관계, 사려 깊고 친절한 행동, 적당한 존재감... 따지고 보니 그냥 평범한 학생이다. 어쩌면 평범하기에 좋은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딱히 대단한 것도 없고. 그렇다고 흉볼 것도 없고. 그러니 적당히 기분 상하지 않도록 좋은 사람이 된다. 정말 좋다고 생각한다면 좋은 사람이 되지 않는다. 좋아하는 사람이 된다. 좋은 사람이라는 말은 실로 아무 의미가 없다. 그래서... 나는 그 말이 싫다.






  요즘 아이들은 어떤지 모르겠다. 나어린 시절 연애는 언감생심이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공부하는 기계가 되기를 바랐다. 그 기대를 배신할 정도로 용감한 아이는 대부분 머리 나쁜 낙오자였다. 평범한 아이들은 연애를 거부했다. 입시가 우선이었다. 이것이 핑계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누구나 가슴 터질듯한 사랑을 하나씩 품고 있었다. 사춘기란 그런 나이다. 하지만 용기가 없었다. 고백했다가 차일까 두려웠다. 뭐하나 내세울 게 없어서 그랬다. 잘생기고 예쁜 것들은 잘만 연애했다. 그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다. 나는 억지로 사랑을 죽였다. 대신 모의고사 점수를 키웠다.


  무언가 계기가 있다면 혹시 모른다. 달아오른 흥분과 열기가 콩깍지를 씌우면 로맨스는 의외로 쉽게 피어난다. 그래서 인류는 술을 마신다. 하지만 학생에게는 술 또한 언감생심이었다. 술을 대신하는 것으로 축제가 있다. 유럽이나 일본에서는 마을 단위 축제가 열린다. 그곳에서 쏟아지는 무수한 로맨스를 책이나 만화로 접할 때면 부럽기 그지없었다. 우리에게도 학교 축제가 있긴 하다. 선생과 학부모를 위한 재롱잔치에 불과했다. 내 모교는 그마저도 없앴다. 학교는 공부 지옥이었다.


  그런데 축제가 열렸다. 지자체에서 개최하는 특산물 축제 같은 게 아니다. 진짜 축제가 열렸다. 2002년 월드컵은 이 땅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열린 진짜 축제였다. 거리마다 붉은 물결이 넘실댔고, 청춘의 가슴 속에도 빨강이 넘실댔다. 한국 경기가 있은 다음날이면 반마다 커플이 봄날 죽순처럼 솟았다. 그때만큼은 연애가 잘난 것들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꽃 피는 계절은 지나갔건만, 온 학교가 꽃바람에 술렁이고 있었다.


  그 격정의 시절에 나는... 나는 공부했다. 시청 앞 광장에 한 번도 나가지 않았다. 놀러 다닐 여유는 없다. 학생은 공부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나의 이유가 아니었다. 그 아이의 이유였다. 내 가슴에 품었던 아이는 천상 모범생이었다. 성적은 우수하고 집안은 엄격했다. 학우에게 친절하고 말투는 조용했다. 평범한 외모였지만, 유독 하얀 피부 덕분에 인기투표에서도 빠지지 않았다. 그리고 화단을 즐겨 찾았다. 꽃도 좋아했지만, 돌 틈에 피어난 잡초 이름도 잘 알았다.


  끼리끼리 노는 것은 문제아들만이 아니다. 공부 좀 한다는 아이들도 끼리끼리 놀았다. 물론 노는 방식은 달랐다. 주로는 공부 얘기를 했다. 시험 문제라든가, 지원 가능 대학이라든가. 때로는 깊은 이야기도 나눴다. 윤리 책에 나오는 철학가의 사상을 두고 논쟁하기도 하고. 과학 문제로부터 우주의 신비를 고찰하기도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유치한 대화였다. 그러나 교과서 밖을 모르는 우물 안 개구리의 지적 쾌락을 충족시키기에는 충분했다. 그 아이와도 그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에게 그 대화는 소중하고 특별했다.


  대한민국과 포르투갈의 16강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 날. 학교 자습실은 텅텅 비었다. 다른 날이었으면 노발대발했을 야자 감독 선생님마저 대놓고 라디오를 가져와 이어폰을 꽂고 있었다. 공부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대다수 아이들은 저녁 급식을 먹고는 학원이나 집으로 파했다. 그 아이는 마감까지 남았다. 나도 그랬다. 사물함을 정리하러 교실에 들어섰을 때, 밀폐된 공간에는 오직 둘 뿐이었다.

  "다들 응원 갔나 봐. 학교가 다 썰렁하네."

  그 아이가 먼저 말을 건넸다. 아마 그 상황이 어색해서 그랬으리라.

  "내일도 막 커플 생기겠지?"

  "아마도?"

  "난 그런 거 보면 부럽더라."

  나는 그다음 말을 토씨 하나까지 아직도 잊지 못한다.

  "동수는 똑똑하고, 친절하고, 생각도 깊고. 네가 묵묵하니 공부만 하니깐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내가 볼 때 넌 참 좋은 사람이야. 그러니깐 좋은 남자친구가 될 거야."

  광장 근처도 못 가봤는데. 붉은 물결은 내 마음속까지 밀려들어 왔었나 보다. 평소의 나라면 절대 하지 못할 말을 나는 질러버렸다.

  "그럼 나랑 사귈래?"

  목 위까지 단정히 걸어 잠근 교복 블라우스 위로 붉은 입술이 질끈 감겼다. 침묵의 눈빛은 연민에서 경멸로 변해갔다.

  "거봐. 사람 좋아봤자다. 연애는 잘 생긴 놈들이나 하는 거지."

  나는, 마치 농담이라는 듯, 평소보다 야단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호들갑에 말끝이 파르르 떨렸지만, 부디 눈치채지 않기를 바랐다. 내 첫사랑은 그렇게 끝났다.






  대학 가면 연애할 수 있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짝사랑에 끙끙 앓기는 매한가지였다. 되레 더 비참했다. 네 사람이 내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때마다, 심장에 가시가 박힌 것처럼 가슴이 시리고 아팠다. 혹시 내가 나쁜 사람이었다면 네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네 사람은 확실히 나쁜 사람이었다. 너를 두고 바람이나 피우고. 너는 그놈을 안주 삼아 소주를 들이켰다. 형주는 진짜 나쁜 놈이야. 형주가 저번에 그랬다니깐. 형주 새끼 개새끼. 그날 파전집에서 너는 자리에 없는 남자 얘기만 했다. 나는 묵묵히 그 얘기를 들어주었다. 묵묵한 것은 내 장점이었다.


  파전 접시는 벌써 깨끗하게 바닥을 드러냈다. 너는 안주도 없이 연거푸 석 잔을 비웠다. 푹 숙인 고개 때문에 머리카락이 바닥에 닿을까 걱정됐다. 그 상태로 너는 한숨 쉬듯 말했다.

  "나도 확 바람이나 피울까?"

  나는 뭐라 대답해야 할지 고민했다. 내가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에 너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내 휘청거리다 술기운에 무릎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나는 너를 업었다. 네 자췻집까지. 얇은 셔츠 너머로 마시멜로처럼 부드러운 유방이 느껴졌다. 죄책감을 느꼈다. 너를 위해 고생하며 나의 쾌락을 반성했다. 지금 보면 가소로운 청춘이었다.


  네 집 앞에서 그놈을 만났다. 그를 보자마자 너는 내 등에서 내려와 그놈 모가지에 매달렸다. 엉엉. 무릎까진 아이처럼 세상 서럽게 울었다. 그놈은 네 머리를 쓰다듬으며 소리 없이 입술로 내게 말했다. 고.마.워.요. 나는 똑똑해서 즉시 번역해버렸다. 꺼.지.세.요. 너에게 인사도 받지 못하고 나는 발걸음을 돌렸다. 골목을 꺾자마자 무릎이 풀려 주저앉았다. 뭣이 그리 서러운지, 더러운지 눈물이 흘렀다. 그래도 쪽팔린 건 알아가지고 소리도 못 내고. 무릎 사이에 고개를 묻고 끅끅 울었다.






  그해 크리스마스만큼 우울한 날은 없었다. 청춘사업에 실패한 낙오자들이 호프집에 모여 술잔을 기울였다. 술을 못 하는 강우는 벌써 테이블과 진하게 키스 중이었다. 나는 녀석의 어깨를 주물렀다. 인마. 힘내라. 짚신도 짝이 있다잖냐. 강우가 시뻘건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개소리 집어쳐. 너는 짚신하고 사귀고 싶냐?"

  그 말이 맞다. 누가 짚신하고 사귀고 싶겠나. 그 자리에 모인 녀석들은 하나 같이 짚신이었다. 키가 160인 난쟁이 짚신. 얼굴이 대문짝만한 큰 바위 짚신. 포동포동 젖살도 안 빠진 도야지 짚신. 그냥 못 생겨서 짚신인지라 뭐라 댈 것도 없는 나까지. 못난이 짚신들이었다. 우리가 연애를 못 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그리고 강력했다.


  어쩌면 우리가 갈구하던 것은 연애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100일 휴가 나온 날. 어제의 짚신들은 그 날도 모여 술을 부었다. 알딸딸하게 기분이 좋을 무렵. 강우가 기겁할 제안을 건넸다.

  "똥집 갈래?"

  처음에는 똥집이 뭔지 몰랐다. 강우는 주먹에 손바닥을 부딪치며 음란한 소리를 냈다. 별로 내키지 않았다. 똥집이란 단어가 주는 어감도 싫었다. 나는 어색한 미소로 고개만 도리 지었다. 그런 나를 보며 강우가 벌게진 얼굴로 역설했다.

  "한 번 해보는 게 중요한 거야. 해보면 별것도 아니야. 괜히 여자 앞에서 벌벌 떨 필요 없어. 언제까지 등신처럼 말도 못 하고 어버버 떨래? 형이 쏜다. 가자."

  나는 그 말에 넘어가 버렸다.


  집창촌의 불빛에서는 야릇한 향기가 났다. 붉은 등불에 화장품 냄새가 섞인 것이 로제 와인 같았다. 나는 강우의 손에 이끌려 어느 가게 통유리 앞에 섰다. 강우는 지갑에서 현금을 두둑이 꺼내더니. 이모. 진짜 얘는 잘 해줘야 해. 돈과 함께 연신 당부의 말을 건넸다. 나는 강우에게 등 떠밀려 어느 방으로 들어갔다. 옷을 벗으라길래 옷을 벗었다. 침대에 누우라기에 침대에 누웠다. 빼빼 마른 여자가 내 위에 올랐다. 몇 초쯤 지났을까. 그녀는 짜증을 냈다. 술을 얼마나 마신 거냐고. 그녀는 언제 꼈는지 기억도 안 나는 콘돔을 벗겼다. 작아진 고추를 입안에서 몇 번 굴리더니 다시 콘돔을 씌웠다. 그녀가 내 위에 오르고 몇 분 지나지 않아서. 나는 사정해버렸다. 어이구 잘했다. 그녀가 내 궁둥이를 툭툭 두들겼다.


  무엇을 잘 한 걸까? 아다를 뗀 것? 되레 겁이 났다. 나는 내 인생의 중요한 무엇가를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타락해버렸는지도 모른다. 심지어 돈을 내고서... 취기까지 겹쳐 머릿속이 엉망진창이었다. 나는 서둘러 방을 빠져나왔다. 떠나는 등 뒤로 그녀가 외쳤다. 내 이름 알지? 또 오면 불러. 그리고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다음날 눈을 떴을 때 나는 강우와 함께 지하철 개찰구 앞 벤치 위에 누워있었다.


  말년 휴가를 나오고 그 가게를 다시 찾았다. 이번에는 혼자. 술 한 모금 마시지 않은 말짱한 정신으로. 카운터의 아줌마가 군인이냐고 물었다.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누구 찾는 사람 있어? 그녀의 이름을 말했다. 방에 가 있어. 선불인 거 알지? 나는 18만 원을 내고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여자가 들어왔다. 내가 알던 그녀가 아니었다. 이름이 맞는지 확인했다. 그 이름 물려받고 반년이 지났단다. 나는 옷을 벗고 자리에 누웠다. 여자가 입으로 빨아주었다. 어느 정도 팽팽해지자 여자가 콘돔을 입으로 씌웠다. 군인이라서 특별히 해주는 거야. 난 그게 뭔지 모르니 감흥이 없었다. 여자는 내 위에 올라 몸을 흔들었다. 수 분이 흐르고. 여자는 힘들다며 자리를 바꾸라 했다. 나는 시키는 대로 했다. 야동을 봐왔기 때문일까? 아니면 유전자에 각인된 본능일까? 나는 누가 가르쳐 준 적도 없는 더러운 율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사정해버렸다. 콘돔을 빼고, 정액을 닦고, 옷을 챙겨 입었다. 가게에 들어갈 때보다 나올 때가 더 뻘쭘했다. 그래도 다시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죄책감이 사라졌다. 무언가 잃어버렸다는 걱정도 사라졌다. 매춘에는 아무 의미도 없었다. 남이 해주는 딸딸이에 불과했다. 그 방에 사람은 나뿐이었다. 그녀는 정액을 짜내는 오나 홀에 불과했다. 그녀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녀에게 나는 사람이 아니었다. 작업 선반이었다. 자리에 눕히고 열심히 몸을 비비면 돈이 나왔다. 집창촌은 섹스 공장이었다. 인간성이 가뭄처럼 말라 비틀어진 곳이었다. 차라리 자위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혼자 하는 자위는 돈도 들지 않으니깐. 그날 이후로 내가 섹스를 구매하는 일은 없었다.






  나는 유흥을 즐기지 않지만, 강우가 했던 말에는 동의한다. 한 번 해보는 것은 중요했다. 예전의 나는 시정마였다. 어떻게든 해보려고 애쓰다가 끝내 암컷의 뒷발에 차이는 못난이였다. 해본 후에는 달라졌다. 어떻게든 해보려고 애쓰지 않았다. 아니다. 애는 써도 흉하게 껄떡거리진 않았다. 태도가 변하자 삶도 변했다. 나는 연애에 성공했다. 대단한 과정이 아니었다. 그저 소개팅하고 두 번의 애프터 이후 사귀자고 말 한 게 전부였다. 다만, 예전처럼 어버버 떨지 않았다. 성급하게 사귀자고 몰아붙이지 않았다. 나는 해봤으니깐. 너 아니어도 해봤으니깐. 경험은 나에게 여유를 선사했다.


  연애도 해보니 별 것 없었다. 나는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몇 번 만나서. 함께 밥을 열 끼 먹고. 영화를 세 번 보고. 유원지에 한 번 가고. 몸을 섞었다. 그리고 다시 함께 밥을 열 끼 먹고. 영화를 다섯 번 보고. 동물원에 한 번 가고. 그사이에 일곱 번 배를 맞댔다. 섹스를 빼면 나머지는 솔직히 귀찮았다. 밤마다 전화해서 귀찮았다. 까탈스러운 입맛을 맞춰주느라 귀찮았다. 신촌 사는 내가 잠실까지 바래다주기가 귀찮았다. 게다가 돈에 쪼들렸다. 데이트는 돈이 많이 들었다. 스위트 룸이 일반 객실로. 스테이크가 파스타로. 택시가 버스로. 얇아지는 지갑 따라 데이트 코스는 비루해졌다. 나는 예전처럼 초조해졌다. 사귀지 못하든 이별 당하든 차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는 다시 뒷발에 차일까 봐 겁먹은 시정마가 되었다. 주말 알바 땜빵 뛰느라 데이트를 취소한 날. 나는 헤어지자는 문자를 받았다. 문자를 보고 나는 그만 안심해버렸다.


  이 짓거리를 일 년에 한두 번씩 하다 보니 어느새 서른을 넘겼다. 이제는 돈에 쪼들리지도 않건만, 올해는 한 번도 연애하지 않았다. 귀찮은 일까지 기꺼이 하기에 나는 너무 늙어버렸다. 고생을 감수할 만큼 섹스가 고프지도 않았다. 어제는 15년 만에 몽정했다. 주기적으로 빼줘야 하는데. 바빠서 신경을 못 썼다. 일이 바빴다. 이 빌어먹을 나라는 야근이 늘수록 임금이 싸졌다. 회사는 세 사람이 할 일을 두 사람에게 몰아넣고 어찌하면 한 사람으로 때울지 늘상 고민했다. 사십 줄에 퇴직하는 선배를 보면 미래가 깜깜했다. 이 와중에 결혼? 아무리 생각해도 미친 짓이다.


  혼자가 좋다. 자유가 좋다. 방종도 좋다. 휴가를 받으면 치킨을 사와 온종일 뜯으며 영화도 보고, 게임도 하고, 그러다 졸리면 잤다. 이렇게 게으를 수 있는 방종을 허락해 줄 마누라가 과연 있을까? 이런 내가 결혼할 수 있을까? 그러고 보니 결혼이라는 단어가 입에 붙었다. 나는 결혼과는 거리가 먼데도. 어느새 섹스보다, 연애보다, 결혼이라는 단어가 위에 섰다.


  내 나이에는 결혼을 이야기한다. 내 또래 애들이 다 하니깐. 그랬다. 남들이 다 하니깐. 월드컵 때문에 너도나도 사귀니깐. 대학에 들어가면 다들 연애하니깐. 스물다섯 전에는 아다를 떼야 마법사를 면하니깐. 서른 즈음에는 결혼해야 하니깐. 그래서 나도 해야 한다고. 그 강박이 나를 키웠다. 내 삶의 로맨스는 실상 눈치 보기에 불과했다. 더는 남을 좇아 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연애를 관뒀다. 결혼을 포기했다. 혹시 가슴 끓게 만드는 사람을 만나면 모를까. 흥미도 없는 누군가와 귀찮게 사랑하는 척하기 싫었다. 나는 나 대로 살련다. 나만 생각하면서. 내 편한 대로. 내 욕망 따라.


  그런 나를 세상은 초식남이라 부른다. 내 멋대로 살겠다는데도 기어코 꼬리표를 붙인다. 나는 고기가 좋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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