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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쌤 윤PD

[리뷰]<제보자> - 왜 아직도 정의는 부르짖어야만 하는가


  황우석 박사의 연구 조작은 과학자로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당시 겨우 2학년이었던 학부생은, 한편으론 해당 분야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하지만 실상은 후.... 새드.... 그나마 무슨 말인지 몰라서 게시판에서 입 다물고 있어서 다행이었....) 시간이 지나 황우석 스캔들이 흘러간 역사가 되어버린 지금, 이 이야기는 한 편의 영화로 돌아왔다.





  가까이서 보면 비극

  줄기세포 스캔들을 당시 사건을 파헤쳤던 PD의 시점에서 바라봤다는 것만으로도 영화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정의를 위해 국민 영웅을 나락으로 떨어뜨려야 했던 윤민철 PD(박해일, 이하 ‘윤 PD’)에게 세상은 욕설과 담배만 늘어나는 암울한 곳이다. 가장 분개하게 만드는 대상은 이장환 박사(이경영)다. 실력도, 통솔력도 없지만, 정치력 특히 언론플레이 만으로 대한민국 생명공학의 선두주자가 된 그의 모습은 보면 볼수록 화가 치밀게 하였다. 진실을 밝히려는 윤 PD를 언론과 권력을 앞세워 압박하고 겉으로는 멀쩡한 척하는 위선의 극치를 보여준다. 마지막에 방송 중지를 위해 정치적 거래를 하려는 모습에서는 미드 <하우스 오브 카드>의 프랜시스 언더우드(케빈 스페이시)를 떠올리게 하였다. 이처럼 영화는 이장환 박사에게 저항하는 윤 PD의 답답함과 분노를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해준다.

  사라져 버린 정의를 바라보는 심정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 언론의 자유가 가로막힌다는 것은 그것 자체로 비극이다. 사장의 퇴근길을 가로막으며 언론윤리강령(?)을 부르짖는 윤 PD의 모습은 <변호인>에서 송우석 변호사(송강호)가 헌법 제1조를 부르짖던 장면을 연상시켰다. 그래도 이번에는 그 부르짖음이 허공으로 사라져 버리지 않고 정의라는 메아리로 돌아왔다는 점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또 다른 진실을 위해 힘차게 걸어가는 윤 PD의 모습은 꽤 희망적으로 보였다. <변호인>과 달리 30년 동안 세상이 어느 정도 좋아지기는 한 것일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들의 뒷이야기를 자막으로라도 보여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점이다. 정의를 되찾아준 그들의 행복이 없다면 좋아졌다고 말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 21세기에도 정의는 왜 부르짖어야만 하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멀리서 보면 희극

  윤 PD에 이입하여 바라본다면 답답하고 화가 나는 이야기지만, 조금만 떨어져서 바라본다면 씁쓸하기 그지없는 블랙코미디 영화가 된다. 황우석 스캔들에 대해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갖고 있다면 이장환 박사의 가증스러운 표정과 말들은 분노와 동시에 씁쓸한 헛웃음을 유발시킬 것이다. 특히 사회적 약자(어린이, 장애인)를 내세우며 착한 척하는 장면들은 나에게 자괴감 가득한 냉소를 머금게 하였다. 이것이야말로 임순례 감독의 힘이자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전작 <남쪽으로 튀어>에서부터 보이는 반권위주의와 권력혐오가 <제보자>에 이르러 덜 노골적이고 훨씬 세련되게 변모하였다. 툭툭 던져지는 등장인물들의 대사들에서 임순례의 냉소가 차가운 송곳처럼 다가온다. 가장 백미는 NBS 사장(장광)을 찾아온 국정원장(한기중)의 분장이 사건 당시 대통령이었던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외형을 연상시켰던 점이었다. 애국주의라는 광기에 나라 전체가 눈이 멀었던 상황을 이처럼 점잖고도 세련되게 돌려 깐다는 점에서 연출의 원숙미가 느껴졌다.

  오랜만에 영화에서 세련된 유머를 만났다. 꼭 정치적인 소재를 사용했기 때문만은 아니다.(애시당초 이 사안을 정치적 사안으로 만든 한국 정치계가 노답....) 부조리한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치환하지 않고 그대로 보여주면서도 냉소를 유발한다는 점에서 그녀의 연출, 특히 몽타주 활용이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는 기분이다. 더러운 거래 제안 이후에 배치된 훈훈한 장면은 기가 차는 헛웃음을 유발했다. 이러한 유머의 텐션을 말미에 심야택시기사(김원해)를 통해 빵 터뜨려주는 센스까지 발휘해주시니 그녀의 유머감각에는 그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 수밖에 없다. 말초적이고 직관적인 ‘유해진 스타일’의 개그도 좋아하지만, 이처럼 유연하게 돌려 까는 운영형의 유머를 더 많이 보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 앞서서 나온 ‘더러운 거래’는 이 훈훈한 장면을 씁쓸한 블랙코미디로 전환시켰다.






  총평

  그때의 광기에 대한 냉소와 반성도 중요하겠지만, 언론이 언론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현실을 상기하며 왜 이 영화의 제목이 <제보자>인지 생각해본다. 처음엔 ‘진실과 국익’의 갈등을 이야기하지만 진짜 핵심은 ‘모든 것을 걸었던 사람’과 ‘모든 것을 버리고 온 사람’의 열정과 희생에 있다. 정의를 잃어버린 사회가 얼마나 막장으로 치닫는지 바로 얼마 전에(어쩌면 지금도) 목도하지 않았는가. 그렇기에 우리에게 정의를 찾아준 그 제보자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본다. 그를 위한 헌정이기에 이 영화의 제목이 <제보자>가 아닐까 한다.





  한줄평

  그때 우리는 조금 미쳐있었달까? 쿠쿠쿡 ★★★★





※ 등장인물의 뒷이야기를 전해주지 않는 점이 아쉽긴 하지만, 어쩌면 제보자를 보호하고 싶은 영화 <제보자>의 배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에 아쉬움을 참아봅니다.

※ 배우들의 연기도 매우 좋습니다. 박해일은 특유의 반골삐딱선 이미지를 잘 살렸고, 후배기자 김이슬을 연기한 송하윤도, 연기력은 조금 아쉽습니다만, 매력 넘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가장 칭찬하고 싶은 것은 역시 이경영입니다.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까지 위선적인, 위선의 끝을 연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