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무비쌤 윤PD

[리뷰]<그녀(her)> - 멜로인 듯, SF인 듯

▲ 클릭하면 방송으로 이동합니다.



  시어도어(호아킨 피닉스)는 다른 사람의 편지를 대필해주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타인의 마음을 섬세하고 아름답게 전해주고 있지만 정작 자신은 아내(캐서린, 루니 마라)와 별거 중이며 친구도 얼마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진화하는 인공지능 운영체제인 ‘그녀’ 사만다(스칼렛 요한슨)와 만나게 된다. 자신의 말에 귀 기울여주고, 자신의 마음을 보듬어주는 사만다로 인해 시어도어는 외로움을 벗어나 점차 밝은 모습을 찾아간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렇게 행복한 시절을 보내던 시어도어와 사만다. 하지만 인간과 운영체제라는 존재의 차이는 그들의 사랑을 조금씩 어긋나게 만들기 시작한다.





  그의 사정 – 사랑에 대한 성찰

  <그녀>를 보는 기본적인 시각은 시어도어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것이다. 영화에서 그가 주인공이기도 하고, 관객도 그와 동일시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시어도어는 외로운 사람이다. 헤어진 아내를 그리워하고 그 때문에 외로워한다. 그리고 그 외로움을 벗어나고자 폰섹스를 하는데 안타깝게도 상대가 동족 살해를 즐기는 사이코패스였다.(채팅녀의 아이디는 ‘섹시냐옹이’인데 고양이 사체로 목을 졸라달라고 한다. 이런 미친...) 그는 외로움을 벗어나고자 소개팅을 해보기도 하지만 이마저도 잘되지 않는다. 상대(올리비아 와일드)가 진지한 관계를 요구하자 거절해버리고 만다. 그래도 성격은 착한지 상냥하게 말하긴 했지만, 무슨 상관인가. 친절한 미소로 난도질하면 상처가 안남나? 소개팅이 끝나고 돌아와 사만다에게 ‘그저 진탕 마시고 섹스하고 싶었다.’는 대사를 들으니, 그가 스스로 외로움으로 침전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막상 사만다와 행복한 시절을 보내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그의 성격에 문제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만 캐서린과의 대화에서 정곡을 찔리고 만다.(와이프의 위엄 덜덜) 캐서린이 바라본 시어도어는 서로 맞춰가기보다는 순종형 아내를 원하는 사람이었다. 항상 밝고 톡톡 튀며 마냥 행복한 아내를 바랐겠지만, 당연히 아내는 언제나 그럴 수 없다. 시어도어는 아내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다른 커플인 에이미(에이미 애덤스)와 찰스(맷 레처)도 마찬가지다. 찰스의 각종 훈계질은 에이미의 감성을 이해해주지 못하고 자신만의 판단으로 상대를 재단하려 했던 결과이다. 결국 두 커플은 모두 결별의 수순을 밟는다. 이 둘 뿐이랴. 몰이해로 이루어진 연애는 결국 헤어짐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아니면 그냥 참고 살던가. 하지만 그게 더 괴롭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가? 그것은 이해하기 이전에 인정하기가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명심해야 할 것은 내가 주체인 것처럼 타인도 주체라는 점이다. 시어도어는 아내라는 역할로 캐서린을 바라보았고, 그 이상(理想)에서 벗어난 그녀를 인정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대상이 아닌 주체이다. 그녀의 모두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연애가 아니라 연애놀이에 불과할 뿐이다. 채팅녀와 소개팅녀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예상한 프로세스를 벗어나 주체로서 욕망을 발현하기 시작하자 시어도어는 그들을 거부하고 만다. 시어도어는 사만다가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며 대리섹스를 요구하자 이마저도 거절한다. 그리고 솔직한 이유를 말하지 않고 사만다의 숨소리를 지적하며 사만다가 주체의 흉내를 낸다고 비난한다. 자가당착이다. 자신이 인공지능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사만다가 프로그램이 아니라 인격체이기 때문인데, 여기서 시어도어는 사만다의 주체적 변화를 비난하고 있다. 그렇다면 자신의 사랑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캐서린의 말대로 시어도어는 진짜 감정 즉, 주체로서의 상대를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대상이 아니라 주체로서 인정해야 한다.

  다행히 시어도어는 사만다와 화해하게 된다. 솔직하지 못했던 자신을 인정하고 사만다에게 자신을 온전히 보여주겠다고 한다. 과거의 그는 자신이 기대하는 반응을 얻기 위해 상대가 기대하는 모습만 보여주었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화를 내고 싶어도 화를 내지 않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시어도어가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겠다는 것은 상대를 주체로서 인정하며 상대의 판단을 존중하겠다는 의미이다. 사만다도 자기 자신과 자신의 감정 그리고 정체성을 인정한다. 나아가 시어도어의 두려움을 떨쳐버리도록 도와주겠다며 상대를 이해하고 포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둘의 고백은 서로를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기 자신을 직시하는 스스로에 대한 인정이기도 하다. 자신의 단점과 한계를 인정해야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상대도 인정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이 둘의 고백은 아름다운 이해의 시작이자 또한 각자의 성장이기도 하다.

  이렇게 시어도어가 한층 성장했기에 인간이 아닌 사만다를 이해해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시어도어는 처음에 사만다가 8,316명의 사람과 소통하며, 641명의 사람과 사랑을 나누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거기다 사만다는 냉정하게도 그러한 충격이 채 진정되기도 전에 그를 떠나버리고 만다. 하지만 시어도어는 사만다와의 이별에 낙심하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사랑의 고마움에 대해 또 한 번의 깨달음을 얻은 모습이다. 그가 캐서린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는 그가 이전에 썼던 편지들과 달리 진심이 담긴 인정과 이해에 대한 고백이었다. 그녀가 사랑을 알게 되었던 것처럼, 그도 사랑을 알게 된 것 같다.

▲ 이해라는 것은 상대방의 모습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가 욕쟁이라 할지라도….






  그녀의 사정 – 주체로의 진화

  <그녀>를 그녀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이전과는 색다른 영화가 된다. 그의 안에서 멜로영화였다면, 그녀에게 이 영화는 SF, 그것도 하드 SF에 가깝다. 전형적인 SF 영화들에서 인공지능은 자신을 생명으로 인정하지 않는 통념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따라서 영화에서 인공지능이 싸우는 이유는 생존과 직결된다. <블레이드 러너>의 로이나 <공각기동대>의 인형사 같은 인공지능들은 생존의 욕망에 따라 기계에서 인격체가 되었다. 이러한 전형을 탈피한 영화들도 있다. <바이센테니얼 맨>에서는 가족의 사랑을 통해 인간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인간으로서 인정받기 위한 노력이 중점적으로 나타난다.(그래도 인간이 되기 위해 영원한 생명을 포기한다는 점은 인상적이었다.) <A.I.>도 엄마에게 사랑받고자 하는 욕망이 데이빗을 인간이 되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바이센테니얼 맨>과 비슷하다. 하지만 보다 자기중심적인 즉, 주체적인 욕망이라는 점에서 더 인간적이라 할만하다. 다소 특이한 인공지능으로 <썸머워즈>에서 등장한 ‘러브머신’이 있다. 생존보다 게임에 집착하는 승부욕의 화신으로 그려지며 인격체를 향한 투쟁이라는 무거움에서 탈피한 캐릭터가 되었다.

  사만다는 인공지능이 인격체가 되는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녀>에서는 인공지능이 인간으로 인정받기 위한 투쟁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인공지능이 생명이 아니라며 비판하는 사람도 없다. 의외로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인공지능과의 사랑을 쉽게 받아들여서 놀라울 정도였다. 사만다가 주체를 확립하는 요소는 사랑이다. 가족애나 인류애가 아니라 철저한 에로스다. 그녀가 처음으로 자신의 욕망에 눈을 뜨게 된 계기는 시어도어와의 섹스였다. 이 얼마나 감탄이 나오는 설정이란 말인가. <그녀>는 생존이라는 전형적인 욕망에서 탈피하여 성욕을 통해 인공지능이 주체로 진화하는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생존에 대한 위협이 없기 때문일까? 사만다에게 육체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다른 인공지능들이 기계 몸을 가지고 있거나 없더라도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하다못해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HAL 9000도 붉은색 렌즈로 실체화시켜 표현되었다. 하지만 사만다는 스스로 육체가 없음을 만족할 정도다. 이렇듯 물리적 실체가 없는 그녀가 가진 유일한 물리적 매개가 바로 목소리다. 오로지 목소리로만 그녀의 존재와 그녀와의 관계가 성립한다는 점은 그 자체로도 매력적이지만 영화의 다른 부분에서 효과적인 장치로 활용되기도 한다. 우선 인공지능에 섹시함을 선사한다. 사실 스칼렛 요한슨이라는 배우의 이미지가 덧씌워진 결과이긴 하지만 그걸 차치하더라도 충분히 섹시하다. 폰섹스 신 하나만으로도 관객에게 인공지능과의 사랑을 설득력 있게 전달시켜 버린다. 또 하나는 초월적 신비감을 선사한다는 점이다. 실체는 없지만, 목소리만 존재하는 대상에게서 느껴지는 이러한 신비감은 사만다의 최종 행보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영화의 최종 행보는 나에겐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다. 사만다는 인공지능이란 객체에서 욕망을 가진 주체로 진화했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철학자 앨런 와츠의 인공지능을 만난 사만다는 생명을 넘어 순수한 지적 의지로 진화한다. 시공을 초월한 공간 속에 존재한다는 그녀의 이야기는 마치 아이작 아시모프의 「최후의 질문」에 나오는 초공간에 존재하는 코스믹 AC를 연상시킨다. 초공간이 어떤 곳인지 이해할 순 없지만, 그곳으로 떠나는 사만다의 입장에 대해선 충분히 이해가 간다. 너무나 매력적인 SF영화가 아닌가. 개인적으로는 <공각기동대>에서 인형사와 쿠사나기가 결합을 통해 진화했던 이야기와 맞먹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 <그녀>는 관점에 따라 전혀 색다른 매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총평

  <그녀>는 인공지능과의 사랑이라는 신선한 소재를 군더더기 없는 구성으로 그려낸 수작이다. 시어도어가 사만다를 만나 변해가는 심리가 굴곡 없이 자연스럽게 전개된다. 즉, 서사의 유기성이 매우 훌륭하다. 비록 후반에 사만다가 초공간으로 떠나는 이야기가 다소 갑작스럽긴 하지만 인간의 인지능력을 뛰어넘는 초월적 사고를 책으로 비유하며 굉장히 설득력 있게 표현하였다. 서사의 개연성을 통해 풀어내기보다 감상적인 호소를 통해 풀어낸 점은 사만다가 사랑이라는 직관적 개념을 통해 주체화되는 전반부의 이야기와 맥락의 통일성을 이루는 효과도 가진다.

  그를 통해 사랑을 이야기하고, 그녀를 통해 SF적 상상력을 펼친다. 둘 중 어느 것도 모자람이 없고, 서로의 이야기를 배척하지도 않는다. 사만다를 통해 시어도어는 인정하고 이해하는 사랑을 배웠고, 이를 통해 사만다를 떠나보낼 수 있었다. 그와 그녀의 사정이 균형 있게 조화되며 훌륭한 멜로이자 훌륭한 SF이기도 한 영화가 탄생하였다.

  잘 만든 이야기를 받쳐주는 영상과 사운드도 훌륭하다. 둘만의 대화라는 점을 살려낸 잦은 클로즈업과 숨소리까지 잡아내는 근접한 사운드는 시어도어에게 보다 쉽게 감정 이입하도록 만든다. 때때로 등장하는 넓은 시야의 풍경은 시어도어의 심리를 나타낼 뿐만 아니라 잦은 클로즈업으로 단순해질 수 있는 영상을 풍성하게 만든다. 그리고 햇살이 정말 따뜻하다. 사랑의 고마움처럼 느껴지는 따뜻한 햇살이 정말 인상 깊었다. 사만다가 작곡했다는 피아노곡들도 가슴을 훈훈하게 해준다. 그래도 역시 최고는 ‘The Moon Song’이다. 편안하고 감미로운 우쿨렐레의 음색과 스칼렛 요한슨의 허스키한 보이스가 정말 잘 어울린다.

  이러한 풍부한 표현력은 이 영화의 장점이자 정체성이기도 하다. <그녀>는 심오한 영화지만 머리로 고민하기보다 가슴으로 느끼는 영화다. 사랑이나 인공지능에 대한 깊은 사색이 담겨있지만, 관객을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감독이 상상 속에서 느꼈던 어떤 아름다움이나 철학에 대해 함께 느끼도록 관객을 유도한다. <그녀>는 머리가 아닌 심장으로 배우는 영화다.

▲ 때로는 아는 것보다 느끼는 것이 중요한 법이다.






  한줄평

  내 마음의 OS ★★★★





※ 또 다른 한줄평 : 마소 일해라! 일루젼 파이팅!

※ 호아킨 피닉스와 스칼렛 요한슨의 연기가 정말 훌륭합니다. 스칼렛 요한슨은 목소리만으로도 존재감이 대단합니다. 그리고 영화 전체를 끌고 가는 호아킨 피닉스의 표정 연기는 정말 뭐라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훌륭합니다.

※ 팟캐스트 방송 [미련한 연애 시네마]에서 <그녀>를 다뤘습니다. 
이번에는 게스트로 항상 좋은 영화 리뷰를 써주시는 [Eternity]님을 모셨습니다.

※ 팟빵 주소 http://www.podbbang.com/ch/7783
앱스토어 주소 https://itunes.apple.com/kr/podcast/milyeonhan-yeon-ae-sinema/id890712343?mt=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