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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쌤 윤PD

<귀향>에 관한 논란을 바라보며 드는 생각

 이동진 평론가가 영화 귀향에 별점 2점과 '역사에 대한 울분. 영화에 대한 한숨.'이라는 한줄평을 남겼다. 해당 별점이 올라온 왓챠(watcha.net)에서는 이것이 논란이 되었고 이에 대한 스샷이 각종 커뮤니티를 돌고 있다.



  위 논란을 바라보며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그 생각들을 적어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이 점을 함께 고민해봤으면 한다.





  감동하면 영알못인가?

  '작품성'이란 도대체 뭘까? 사전적 정의는 '작품이 가지는 그 자체의 예술적 가치'라고 한다. 대충 완성도, 독창성, 주제의식 등이 떠오른다. 정말 세밀하게 따진다면 아마 끝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뭉뚱그려 '작품성'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영화 <귀향>의 작품성은 어떨까? 솔직히 <귀향>의 작품성은 형편없다. 그나마 주제의식은 뚜렷하다. 그러나 완성도가 부족하다. 어색한 연기, 민망하고 촌스러운 연출. 식상한 편집. <귀향>은 만듦새가 지저분한 작품이다. 그래도 사건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서사를 갖추고 예술로서 풀어내려는 노력은 있었다. 그러나 완성도가 떨어지다 보니, 프로의 작품이 아니라 아마추어 혹은 학생 과제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러나 오로지 작품성만으로 이 영화를 저평가하는 것은 조금 억울하다. 이유는 내가 이 영화를 보며 느끼는 바가 컸기 때문이고, 이를 느끼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그 많은 사람을 감동시킨 작품이 그저 형편없는 작품은 아닐 것이다. 역시 <귀향>은 '작품 그 자체가 가지는 가치' 이외의 가치가 존재한다고 보는 게 옳다. 나는 이 가치를 반향이라고 생각한다. 반향은 내가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연재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던 가치였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훌륭한 글보다 다소 부족하더라도 많은 이를 감화시키는 글을 추구했다. 이 점을 가치 있게 생각하는 나이기에 <귀향>이 가진 반향의 가치에 주목하고 싶다. <귀향>은 역사로부터 이어지는 반향, 현실의 부조리에 저항하려는 반향, 실제 피해자들에 대한 연민에서 비롯된 반향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러한 반향은 영화 그 자체에서 생성하지 못한 감동을 만들어낸다. 이 지점에서 감동하는 것은 영화 알지도 못하는 놈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나아가 반향도 외재적인 작품성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어 시간에 문학을 바라보는 내재적 관점과 외재적 관점에 대해 모두가 배웠다. <귀향>에 감동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은 외재적 관점 중 효용론적 관점으로 볼 수 있다. <귀향>을 고평가하는 것에도 비평적 근거가 있다고 할 수있다. (근데 아무리 봐도 '작품성이란 헛된 잣대'라는 말은 좀 오바같은데...)





  비평은 강요가 아니라 설득

  그렇다면 이동진 평론가가 문제일까? 그것도 아니다. 이는 단순히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일 뿐이다. 그는 작품을 내재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평가한 것이다. 어쩌면 그도 외재적 요인들을 고려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좋게 보기 힘든 수준이었을 수도 있다. 반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조차도 흥행작이라고 무조건 좋게 보지는 않는다. <연평해전>이라는 영화가 그랬다. 나에게는 도저히 '영화'라고 부르기 민망한 작품이었다. 그나마 기본적인 형태와 뚜렷한 주제의식이 있긴 했지만... 솔직히 정훈 교육 비디오 수준이었다. <귀향>과의 차이점이라면, <귀향>은 부족한 와중에도 '살풀이'라는 극적 서사를 갖추려 했지만, <연평해전>의 극적 서사는 오로지 신파에, 그마저도 작품의 주제와 어울리지 못했다. <연평해전>은 예술로서 보이고자 하는 노력이 없다고나 할까. 이 지점이 아마도 나의 마지노선일 테다.

  이런 마지노선, 혹은 '부족함을 너그럽게 봐주는 정도의 차이'는 사람마다 다르다. 따라서 작품에 대한 평가는 제각각 달라질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위안부 할머님을 생각하며 눈물짓겠지만, 누군가는 그분들에 대한 연민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저질에 분노할 것이다. 문제는 이 차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 내가 좋게 봤다고 남도 좋게 봐야할 필요는 없다. 내가 나쁘게 봤다고 남도 나쁘게 볼 필요는 없다. 이를 강요하거나 강요 받는다고 생각하니 논란이 되고 문제가 된다. 비평하고 싶다면 내가 좋게 보는 이유, 내가 나쁘게 보는 이유를 설명하면 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 시선의 이유'는 설명하지 않으면서 '네 시선의 부당함'은 열심히 설명하려 한다. 

  이것은 비평이 아니다. 그저 내 시선의 우월함을 과시하려는 것에 불과하다. 또는 내 시선의 초라함을 감추려는 것에 불과하다. 나는 영화평을 쓸 때 '꼬신다.'는 마음으로 쓴다. '이 영화 정~말 재밌는데, 함 보러 갈래?'라는 심정으로 글을 쓴다. (또는 '당신의 소중한 지갑을 지켜드립니다.'라는 심정으로 쓰기도 한다...) 내가 느꼈던 감동을 다른 사람도 느꼈으면 한다. 설득하는 셈이다. 하지만 강요하진 않는다. 나는 설득이 강요가 되지 않도록 항상 주의하려 한다. (그러나 지키기가 마냥 쉬운 것은 아니다. ㅠ.ㅠ) 그래서 나는 평론가를 작품과 관객 사이의 '마담뚜'라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영화가 있다. 작년에 국내 개봉한 영화만 1,205편이다.1) 꼬시기에도 바쁜데 싸울 필요는 없어 보인다.





  진영논리가 비평의 기회를 뺏는다

  강요가 싸움으로 번지면 결국 진영논리가 된다. 그리고 진영논리가 되면 내재적 평가이건, 외재적 평가이건 다 쓸모없어진다. 서로는 서로에게 죽일 놈일 뿐이다. 왜 좋은지, 왜 싫은지 그 이유에 관해서는 설명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이런 측면에서 저평가 받는다고 생각하는 영화가 <국제시장>이다. 천만 관객의 영화임에도 평가가 별로 좋지 못하다. 그러나 나는 이 작품이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릴 자격이 있다고 본다. 이에 대해서는 우리 어머니의 한줄평으로 대신한다. 그녀는 "어쩜 우리가 겪었던 굴곡들을 이렇게 조목조목 짚었을까..."라고 하였다. <국제시장>은 추억을 부르고, 그 추억 속의 아픔을 꺼내보게 하고, 그 아픔을 보듬어 주는 영화였다. 사는 게 바빠서 감상에 젖지 못했던 세대를 감상에 젖도록 해준 영화였다. 더불어 극장을 자주 찾지 않는 세대를 아우르기 위한 전략적 구성도 뛰어났다. <국제시장>의 초반 '흥남부두 시퀀스'는 훌륭한 촬영으로 규모 있는 볼거리를 보여주었다. 작중 내내 긴장감이 느슨해질 때면 적절한 눈요깃거리 장면을 배치하기도 했다. 이런 면면은 이 영화가 충분히 흥행 자격이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국제시장>은 정치 논리까지 개입하며 철저히 진영논리로 평가되었고, (대통령까지 여기에 한몫하셨다) 진보적 시각이 많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그저 형편없는 작품이 되었다. 그리고 영화의 흥행에 대해 언급하면 스크린 독점의 성과로 이야기된다.2) 이 영화가 가진 가치를 살펴보고자 하는 노력이 없어져 버렸다.

  이런 측면에서 가장 궁금하게 다가오는 작품이 바로 <디 워>다. 도대체 이 영화는 왜 흥행했을까? 애국 마케팅이라고 하지만, 소위 국뽕에 거부감을 가진 나로서는 이런 평가가 선뜻 와 닿지 않는다. 도대체 <디 워>의 어떤 장면이 애국심을 자극하는 걸까? 그리고 이게 어떻게 흥행과 연결되는 걸까? 국뽕이 흥행을 이끌지언정, 재미까지 가져다 주는 것은 '인지 부조화' 아닌가? 이에 대한 차분한 설명은 영화 마니아들 사이에선 이뤄지지 않는다. 이유는 <디 워>에 대한 평가는 '영잘알'과 '영알못'의 진영논리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소위 영잘알들은 <디 워>를 무시하기에 바빴지, 이 영화가 왜 흥행하는지 고찰하지 않았다. 영알못들은 영잘알의 지적 허영을 지적하거나 국뽕을 칭송할 뿐, 자신이 왜 이 영화를 사랑하는지 설명하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디 워>는 내가 입대했던 해에 개봉했다. 관련 논란이 다 지나간 후에 남겨진 잔해에는 진영 논리만 뚜렷이 새겨져 있었다. 

  이러다가 <귀향>도 마찬가지가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위안부의 설움에 관한 투박하지만, 직설적인 묘사들이 온전히 평가받을 기회를 잃을 것 같다. 한(恨)의 정서가 아직도 이어진다는 점을 그려 내려 한 노력이 평가받지 못할 것 같다. 영화를 사랑한다면, 이 영화를 즐겁게 봤다면 내가 즐겁게 본 지점과 이유를 설명하도록 하자. 남의 평가가 맞네 틀리네 싸우지 말고...






  2) 매주 꾸준하게 극장을 가본 경험에 의하면 스크린 독점이 천만 관객의 이유는 될지 모르나, 흥행 자체는(대략 500만 이상?) 영화의 만듦새에 달려있다. 애당초 흥행 기미가 없으면 독점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대부분 영화는 수, 목요일에 개봉한다. 그리고 해당 주차 스크린 일정은 보통 월요일이나 화요일에 나온다. 예매 관객도 있으므로 예정된 스크린을 마구 변경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즉, 개봉 주 주말 일정은 영화의 흥행 여부를 알기 전에 정해진다. 나는 개봉 주부터 독점하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간혹 그런 경우도 있다) 물론 독점이 좋다는 말은 아니다. 영화가 흥행하는 이유가 스크린 독점의 결과가 아니라는 말이다. 선후 관계가 잘못되었다. 흥행하니 독점하는 것이지 독점해서 흥행하는 것은 아니다.





※ 이 외에도 <귀향> 보면서 팝콘을 먹네 마네 하는 논란도 있던데, 이건 주체성이 결여된 것인지, 신격화에 특화된 것인지 헷갈린다. 영화 보기 전에 삼배라도 해야하는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