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똑.
"총무님."
총무. 그렇다. 나는 총무다. 고시원 총무. 시급은 1,920원, 월 45만 원. 최저시급의 사각지대, 그중에서도 가장 열악한 급여를 자랑한다. 그나마 이것도 형편이 나아진 결과다. 이전 사장이 있었을 때는 휴일도 없었다. 명목상 한 달에 두 번의 휴일이 있긴 했다. 그러나 주간 총무가 쉴 때는 야간 총무가, 야간 총무가 쉴 때는 주간 총무가 대타를 서야 했다. 결국, 휴일은 없는 셈이었다. 그러다 한 달 전쯤 고시원이 팔렸다. 새 사장은 젊은 사람이었다. 30대 중반. 나하고 나이 차이도 다섯 살밖에 안 되었다. 나이가 젊은 만큼 생각도 젊었다.
"아... 제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아요. 기본적인 직원 복지는 챙겨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는 일주일에 한 번 쉬고, 대타는 없는 거로 해요."
나는 이미 벗어날 수 없을 정도로 헬조선의 노예가 된 것 같다. 그렇게 작고 당연한 권리를 하사받고는 속으로 "나이스"를 외쳤더랬다. 그래도 고마운 게 사실이다. 고시원 총무란 이 정도를 고마워해야 하는... 그런 직업이다.
"총무님. 정말 죄송한데요."
암. 죄송해야지. 한창 공부 중이었는데 이렇게 흐름을 끊어놨으니. 사실 고시원 총무가 해야 할 일은 별것 없다. 아침에 출근해서 청소하고, 밥통에 밥 안치고, 떨어진 비품을 체크한다. 빠르면 30분. 넉넉히 잡아도 두 시간이면 족하다. 나머지 시간에는 총무실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 돈 받고 독서실 다닌다고 생각하면 딱히 억울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어찌 일상적인 업무만 있으랴. 방 보러 오는 손님도 안내해야 하고, 방 빠지면 공실도 청소해야 하고, 이런저런 잡무도 처리해야 한다. 요즘처럼 빠지는 방이 많을 때면 공부할 시간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았다. 오늘도 일과 외에 쌀 열두 가마를 옮기고, 공실마다 설비 점검을 돌아야 했다. 겨우 업무를 마치고 자리에 앉았더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지난 밤 느지막이 글을 쓰다 잠든 바람에 수면 부족이 머릿속을 콕콕 찔러댔다. 그래도 나는 공부해야 했다. 언제까지 연봉 540짜리 일이나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아프든, 쌩쌩하든, 공부는 해야 했다. 그렇게 한 시간쯤 집중하고 있을 때 어떤 여자애가 총무실 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총무님. 정말 죄송한데요. 제가 지금 세탁기를 돌리고 있는데, 저 세탁기 쓰는 사람 많을까요?"
그런 걸 도대체 왜 물어보는 걸까? 그래도 나는 친절한 총무니깐 성실히 대답했다.
"별로 밀리는 일은 없어요. 그런데 이미 돌리고 있다고..."
"아. 그게. 지금 세탁이 15분 정도 남았는데 제가 나가봐야 하거든요."
"그런 경우가 있을까 봐 제가 세탁기 옆에 빨래 바구니 두 개 마련해놨어요. 빨래가 다 되면 거기에 꺼내놓고 돌리라고 전해 놨습니다. 바구니 깨끗이 닦아놨으니깐 걱정하지 마세요."
"아... 네..."
기대하던 대답이 아니었나 보다. 그녀가 말끝을 흐렸다. 머릿속에서 여자어 사전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오호라. 그런 뜻이었구나. 하지만 나는 능청스럽게 정답을 피해갔다.
"됐나요?"
"네... 수고하세요."
그녀는 별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문을 닫았다. 문이 닫히자 다시 고요하고 평화로운 한 평짜리 독서실이 개장했다. 나는 책에 코를 박고는 중얼중얼 문장을 외우기 시작했다. 고작 한 문장을 외웠을 때였다.
똑똑똑.
"총무님 저엉말 죄송한데요."
암. 저엉말 죄송해야지. 그렇다고 내가 방해받았다며 화낼 리는 없겠지만, 발린 말이라도 죄송하다고는 해야지. 참으로 예의 바른 입실자와 예의 바른 총무였다.
"저기 그... 세탁기에서 빨래 꺼내는 사람들 손이 깨끗할까요?"
이 아가씨가 아직 미련을 못 버렸나 보다. 그런데 어쩌랴. 세탁 서비스까지 해주기에는 내 시급이 너무 저렴하구나. 차마 이 돈 받고 네 빤쓰까지 챙겨주고 싶지는 않구나.
"어... 그래도 여기는 여자만 쓰시니깐. 빨래 꺼내시는 분들도 다 여자분이실 텐데. 저보다는 깨끗하지 않을까요?"
'너도 나처럼 두꺼비같이 생긴 아저씨가 빤쓰 만지는 걸 바라지는 않겠지?'라는 말을 돌려 건넸다. 그녀는 잠시 눈알을 굴리더니 소리 나지 않게 피식 웃고는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녀가 대놓고 부탁했으면 들어줬을라나? 아마 다른 구실을 붙여 거절했겠지.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퇴근 시간이 지나버렸다. 아직 공부하던 챕터가 조금 남아있었다. 나는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기로 했다. 누가 또 총무실 문을 두드리기 전에 도망치듯 퇴근해버렸다.
"총무님."
총무. 그렇다. 나는 총무다. 고시원 총무. 시급은 1,920원, 월 45만 원. 최저시급의 사각지대, 그중에서도 가장 열악한 급여를 자랑한다. 그나마 이것도 형편이 나아진 결과다. 이전 사장이 있었을 때는 휴일도 없었다. 명목상 한 달에 두 번의 휴일이 있긴 했다. 그러나 주간 총무가 쉴 때는 야간 총무가, 야간 총무가 쉴 때는 주간 총무가 대타를 서야 했다. 결국, 휴일은 없는 셈이었다. 그러다 한 달 전쯤 고시원이 팔렸다. 새 사장은 젊은 사람이었다. 30대 중반. 나하고 나이 차이도 다섯 살밖에 안 되었다. 나이가 젊은 만큼 생각도 젊었다.
"아... 제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아요. 기본적인 직원 복지는 챙겨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는 일주일에 한 번 쉬고, 대타는 없는 거로 해요."
나는 이미 벗어날 수 없을 정도로 헬조선의 노예가 된 것 같다. 그렇게 작고 당연한 권리를 하사받고는 속으로 "나이스"를 외쳤더랬다. 그래도 고마운 게 사실이다. 고시원 총무란 이 정도를 고마워해야 하는... 그런 직업이다.
"총무님. 정말 죄송한데요."
암. 죄송해야지. 한창 공부 중이었는데 이렇게 흐름을 끊어놨으니. 사실 고시원 총무가 해야 할 일은 별것 없다. 아침에 출근해서 청소하고, 밥통에 밥 안치고, 떨어진 비품을 체크한다. 빠르면 30분. 넉넉히 잡아도 두 시간이면 족하다. 나머지 시간에는 총무실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 돈 받고 독서실 다닌다고 생각하면 딱히 억울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어찌 일상적인 업무만 있으랴. 방 보러 오는 손님도 안내해야 하고, 방 빠지면 공실도 청소해야 하고, 이런저런 잡무도 처리해야 한다. 요즘처럼 빠지는 방이 많을 때면 공부할 시간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았다. 오늘도 일과 외에 쌀 열두 가마를 옮기고, 공실마다 설비 점검을 돌아야 했다. 겨우 업무를 마치고 자리에 앉았더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지난 밤 느지막이 글을 쓰다 잠든 바람에 수면 부족이 머릿속을 콕콕 찔러댔다. 그래도 나는 공부해야 했다. 언제까지 연봉 540짜리 일이나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아프든, 쌩쌩하든, 공부는 해야 했다. 그렇게 한 시간쯤 집중하고 있을 때 어떤 여자애가 총무실 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총무님. 정말 죄송한데요. 제가 지금 세탁기를 돌리고 있는데, 저 세탁기 쓰는 사람 많을까요?"
그런 걸 도대체 왜 물어보는 걸까? 그래도 나는 친절한 총무니깐 성실히 대답했다.
"별로 밀리는 일은 없어요. 그런데 이미 돌리고 있다고..."
"아. 그게. 지금 세탁이 15분 정도 남았는데 제가 나가봐야 하거든요."
"그런 경우가 있을까 봐 제가 세탁기 옆에 빨래 바구니 두 개 마련해놨어요. 빨래가 다 되면 거기에 꺼내놓고 돌리라고 전해 놨습니다. 바구니 깨끗이 닦아놨으니깐 걱정하지 마세요."
"아... 네..."
기대하던 대답이 아니었나 보다. 그녀가 말끝을 흐렸다. 머릿속에서 여자어 사전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오호라. 그런 뜻이었구나. 하지만 나는 능청스럽게 정답을 피해갔다.
"됐나요?"
"네... 수고하세요."
그녀는 별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문을 닫았다. 문이 닫히자 다시 고요하고 평화로운 한 평짜리 독서실이 개장했다. 나는 책에 코를 박고는 중얼중얼 문장을 외우기 시작했다. 고작 한 문장을 외웠을 때였다.
똑똑똑.
"총무님 저엉말 죄송한데요."
암. 저엉말 죄송해야지. 그렇다고 내가 방해받았다며 화낼 리는 없겠지만, 발린 말이라도 죄송하다고는 해야지. 참으로 예의 바른 입실자와 예의 바른 총무였다.
"저기 그... 세탁기에서 빨래 꺼내는 사람들 손이 깨끗할까요?"
이 아가씨가 아직 미련을 못 버렸나 보다. 그런데 어쩌랴. 세탁 서비스까지 해주기에는 내 시급이 너무 저렴하구나. 차마 이 돈 받고 네 빤쓰까지 챙겨주고 싶지는 않구나.
"어... 그래도 여기는 여자만 쓰시니깐. 빨래 꺼내시는 분들도 다 여자분이실 텐데. 저보다는 깨끗하지 않을까요?"
'너도 나처럼 두꺼비같이 생긴 아저씨가 빤쓰 만지는 걸 바라지는 않겠지?'라는 말을 돌려 건넸다. 그녀는 잠시 눈알을 굴리더니 소리 나지 않게 피식 웃고는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녀가 대놓고 부탁했으면 들어줬을라나? 아마 다른 구실을 붙여 거절했겠지.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퇴근 시간이 지나버렸다. 아직 공부하던 챕터가 조금 남아있었다. 나는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기로 했다. 누가 또 총무실 문을 두드리기 전에 도망치듯 퇴근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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