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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휴지통

뭔가 시험공부를 하는 사람들에게

  공무원이든, 고시든, 토익이든, 자격증이든, 인적성이든... 뭔가 시험을 준비하는 청년들이 많은 요즘이다. 수험생활 하는 사람을 보면 항상 불안과 걱정에 휩싸여 있다. 하긴 불안하겠지. 세월은 하릴없이 흘러가는데, 붙는다는 보장은 없으니깐. 자신감은 갈수록 줄어들고, 시험에 떨어질까 봐 불안해한다. 아주 열심히 불안해한다. 밥 먹고 식후 땡 하는 시간마저 자책할 정도로 불안해한다. 어떤 교수가 그랬다더라. "유리병이 바위와 모래로 가득 차 있어도, 그 안에는 커피 한 잔을 담을 공간이 있습니다. 즉, 아무리 삶에 여유가 없어도 친구와 커피 한잔 할 여유는 있다는 말이죠." 담배 한 까치도 맘 놓고 피우지 못하는 수험생을 보면, 그 교수는 뭐라 말할까? 담배 연기를 담아두기에 수험생의 유리병은 너무 작은 거다. 화장품 샘플만 하달까...

  근데 그렇게 불안해할 필요가 있을까? 자랑은 아니지만... 시험에 열라 많이 떨어져 보니깐. 뭐 시바 별거 없드라. 시험 떨어지면 늘상대로 시궁창 상태 그대로일 뿐이다. 이것은 전혀 걱정할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지지리 궁상 속에서 계속 잘 살지 않았는가. 지지리 궁상 좀 더 길어진다고 뭐 달라지겠는가. 그냥 돈 버는 시기가 늦춰진다 생각하면 된다. 결혼하는 시기가 늦춰진다 생각하면 된다. 시험에 떨어져 봤자, 뭐 그냥 별거 없다.

  차라리 시험에 붙어야 뭐 별 게 있지. 공무원 시험 붙는다고 생각해보자. 일단 면접을 준비해야 한다. 면접 보러 갈 옷도 사고. 면접 스터디도 하고. 예상 질문, 예상 답변 준비하고. 그래 봤자 못난이 얼굴이지만 피부 관리도 받아야 하고. 그렇게 면접까지 붙으면 할 일이 더 많아진다. 정장은 너무 과하니깐 출근복으로 적당한 세미 정장도 사야 하고. 직장 근처에 살 곳도 구해야 하고. 살 곳을 구하면 작더라도 가구도 사야 하고. 식기도 사야 하고. 하다못해 전기밥솥까지 사야 한다. 그리고 나 같은 등신 뭐가 좋다고, 지가 찼으면서 지가 다시 사귀자고 했던, 예쁜 옷 한 벌 사 줘본 적 없는, 사랑하는 그녀에게 명품백은 아니더라도 백 하나쯤은 사줘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무릎이고, 허리고 다 나가고, 이제는 냉장고 한 칸을 약봉지로 다 채우신 부모님께 안마의자 하나쯤 사드려야 하지 않을까? 시험 붙으면 이렇게나 걱정거리가 많다. 아마 골이 빠개질 거다.

  그러니깐 떨어질까 봐 불안해하지 말자. 떨어진다고 뭐 큰일 나는 게 아니다. (차라리 붙으면 그게 큰일이다) 길 가다 넘어지면 그냥 털고 일어나면 된다. 혹 피 좀 났다고 해서 죽지 않는다. 그러니깐 쫄지 말자. 시험 좀 떨어진다고, 인생 좀 고꾸라졌다고, 완전 끝장나는 건 아니다. 차마 다 잘 될 거라는 소리는 안 할란다. 솔직히 "알이즈웰(All is well)"은 구라다. 노오오오력 해도 안 되는데 잘 되긴 개뿔. 근데 안 된다고 좆되는 건 아니니깐. 안 되면 다음에 또 하면 된다.

  다만 뒤처지긴 하겠지. 근데 그래서 뭐? 뒤처지면 뭐 나락으로 떨어지나? 뒤에서 티라노사우르스라도 쫓아오나? 그냥 느리면 느린 대로 살면 된다. 남보다 앞서간다고 그게 행복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마흔에 결혼하면 그건 장가 아닌가? (근데 정말 그때서야 하는 건 아니겠지? 덜덜;;) 물론 닦달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다. 뒤처지면 안 된다고, 인생에는 때가 있다고, 언제 할 거니? 언제 할 거니?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을 거다. 그냥 무시해버리자. 뭐 내 인생 지들이 살아줄 것도 아닌데 뭐...

  그러니깐 뭔가 시험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걱정하지 말자. 떨어져도 뭐 없다. 넘어져도 안 죽는다. 그러니깐 쫄지마 시바!






※ 여담인데 '쫄지마'라는 말을 공석에서 쓴 것은 김어준보다 내가 먼저다. 대학생이 막 되었을때 고등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수련회를 하는 데 후배들한테 조언 한 마디 해주라고. 그래서 연단에 서서 공부를 이렇게 저렇게 하라는 얘기는... 하나도 안 했다. 대신 입학시험/면접 보러 갔을 때 쫄지 말라고 그랬다. 뭐 교수도 사람인데 별거 없다고. 억지로 잘할려고 하면 주눅들 뿐이라고. 그러니깐 면접 가서 쫄지말고 마음껏 지르라고 했다. 고등학교 선생님들 절반은 좋아하셨고, 절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셨던 걸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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