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베가 극성이던 시절, 나는 전투 의지가 불타올랐다. 일베의 주장을 옹호하는 사람들과 키배도 뜨고, 얼굴 맞대고 설전도 벌였다. 그런데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그럴까? SNS에서 메갈을 옹호하는 지인을 봐도 그저 심드렁하다. 아마 그 시절에 깨달았기 때문이리라. 아무리 열변을 토해봤자 일베 유저의 생각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긴 이렇게 증거자료가 많이 돌아다녀도 못 알아먹는 사람이 나 따위가 떠드는 소리에 생각을 바꿀 리가 없다. 애당초 개방적이고 말랑말랑한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내가 뭐라 하기 전에 사태를 올바르게 볼 것이다. 내가 용쓰며 부르짖어봤자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걸 알게 되니, 다른 사람과 설전을 벌이기가 꺼려진다. 전투 의지가 샘솟지 않는다.
싸우면 이길 수는 있나? 논리에서 밀리면 "정신승리"가 등장한다. 증거를 가져와도 안 믿으면 그만이다. 법이라는 권위가 판결을 내려도 궤변과 합리화가 등장하는 게 현실이다. 그야말로 말이 통하지 않는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이길 수가 없다. (누가 맞든지 틀리든지) 서로를 바라보며 "나는 맞고 너는 틀렸다."를 시전할 수밖에 없다.
싸우기는 싫고, 이길 수도 없고, 이겨봤자 남는 것도 없고, 그렇다고 헛소리를 계속 보기도 싫고... 남은 선택은? 차단이다. 안 보면 그만이다. SNS에서 지인과 핏대 올리고 싸우며, 집단에서 골칫덩이 취급받느니 그냥 안 보게 된다. 일베니 메갈이니 어차피 인터넷 찻잔 속 태풍이다. 뭔 놈의 정의를 찾겠다고 부르짖어봤자 인터넷 폐인 취급밖에 안 된다. 그냥 조용히 차단하고 만다.
정말 우습지 않은가? 한때는 정보통신의 발달이 가져올 유토피아를 꿈꾸던 시절도 있었다. 더 많은 소통과 이해와 화합을 꿈꾸었다. 기술의 발달로 인간관계가 단절된다는 비판에, 인터넷으로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관계의 확장이 이뤄진다며 항변한 적도 있다. 나에게 인터넷은 무한한 연결(Link)의 공간이었다. 젤다 꺼져.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연결은 유유상종에 머물 뿐이다. 다른 생각 사이의 연결은 약해지고, 같은 생각 사이의 연결만 강해졌다. 소통, 이해, 화합은 꿈 같은 소리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차단을 하기에 이르렀다. 정말 웃픈 현실이다. 인터넷의 가장 쓸만한 기능이 차단이라니...
일베가 등장했을 때 알았어야 했다. 일베가 인터넷의 미래라는 것을. 극단적이고 선동적인 메시지를 바탕으로 끼리끼리 뭉쳐 단절하고 증오하는 게 연결의 종착역이었다. 정의와 올바름은 아무 소용 없다. 설득과 이해는 판타지일 뿐이다. 차라리 생각 맞는 사람, 알아주는 사람 모아서 따봉이나 받고 글이나 파는 게 이득일지도 모른다. 이건 돈이라도 되니깐. 아마 조중동은 일찍이 이를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이젠 한경오도 깨달았겠지. 페미니즘은 돈이 된다니깐.
한 때 손석희의 뉴스룸을 칭찬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믿을 만한 언론이라 생각했었다. 그런 나에게 어제의 보도는 상당한 충격이었다. 배신감 따위가 아니다. Communications 자체에 회의감이 든다. 그리고 오늘 SNS에서 메갈 논리를 펴는 지인을 차단했다. 아마 상대는 내가 차단한 줄도 모를 것이다. 뭐 알아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소중한 사이가 아니니깐. 그런데도 차단을 누르는 내 심정은 너무나 비통했다. 세상에 굴복한 기분이다. 나의 차단도 인터넷 유유상종이겠지. 그렇지만 그냥 차단하고 말았다. 이런 게 나이 먹는 것일까? 오늘 나는 내 청춘의 일부를 버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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