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던 7월 한창이었습니다. 이런 날에는 주간보다는 야간에 일하는 게 훨씬 쏠쏠합니다. 야밤에 더위를 피해 한강 둔치를 찾는 손님이 많거든요. 목동이나 연희동을 어슬렁거리다 보면 한강 가는 손님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한강에 가면 집으로 돌아가는 손님은 널렸고요. 네. 저는 택시기사입니다.
이제 막 야간 영업이 피크를 찍는 11시 무렵이었습니다. 느닷없이 휴대전화가 의외의 이름을 얼굴에 띄우고는 "빼애애액" 신경질을 냈습니다. 이경필. 고향에 사는 불알친구입니다. 경필이와 연락 안 한 지 몇 년은 되었습니다. 마지막 연락은 고등학교 은사께서 돌아가셨을 때였습니다. 먹고 살기 바쁘다 보니 친구란 경조사 때나 연락하는 존재가 됩니다. 그래도 경조사라도 불러주는 친구가 있어서 돈 버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으로 살 수 있는 거겠죠. 경조사. 경이냐 조냐 그것이 문제입니다. 아마 좋은 일이라면 여유 있을 때 연락이 왔겠죠. 저는 좋지 않은 예감을 손에 쥐고는 통화 버튼을 눌렀습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저 경필 씨 안 사람입니다."
이건 예상하지 못한 전개입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그이가 죽었습니다."
"..."
"교통사고가 났어요. 그이는 그 자리에서 죽고, 대신에 전화기가 살아왔네요. 그이 전화번호부에 저장된 번호가 스무 개가 안 되네요. 그래서... 그래서 이렇게 전화 돌리고 있어요."
"알겠습니다. 연락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빈소는 어디에 있나요?"
"철원 O병원이요."
그날 영업은 거기서 접어야 했습니다.
빈소는 한산했습니다. 경필이는 죽기에는 너무 젊었습니다. 아들은 아직 초등학교도 안 들어갔습니다. 부모님은 예전에 돌아가셨고, 형제도 없었습니다. 부를 사람은 친구나 사촌 정도려나요. 시골에서 돼지 치는 농부에게 지인이 많을 리도 없었죠. 그걸 감안해도 빈소는 휑했습니다. 시간이 시간이니만큼 당장 달려오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직업이 택시기사라 이거 하난 좋네요. 부를 때 당장 달려갈 수 있으니까요. 다만 그 부름이 부고였습니다. 친구의 부모도 아니고, 친구의 장례식장에 가면 뭘 해야 할까요? 철원까지 오는 동안 뭘 도와줘야 하나 고민이 많았습니다. 경필이 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는 밤새 같이 있어 줬었죠. 부조금도 받아주고, 나중에는 상여도 맸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놈아 장례식을 오니 모르는 사람 장례식에 온 기분입니다. 보이는 사람은 거의 와이프 친정분들이었습니다. 그들 중에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뭘 도와드리겠다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질 못했습니다. 빈소에는 영정사진도 없더군요. 경황이 없었겠죠. 저는 위패 앞에 향을 올리고 넙죽, 넙죽 절을 했습니다. 눈물이 안 납니다. 경조사 때나 부르는 불알친구와의 우정은 이렇게 메말라 있었습니다. 어쩌면 실감이 안 나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경필이 와이프에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퉁퉁 부은 눈으로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이더라고요. 저도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절을 하고 돌아 나설 때 드디어 아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경필이와 함께 고향에 남았던 석훈이었습니다. 황망한 표정으로 들어오던 석훈이는 절 보더니 아무 데나 앉아있으라 말하고는 절하러 들어갔습니다. 저는 한산한 장례식장 구석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멀겋게 맛없어 보이는 육개장이 나오더군요. 저는 한 사람 더 올 테니 한 그릇 더 달라 했습니다. 석훈이는 한 그릇 더 나오는 육개장과 동시에 테이블에 도착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먹을 복은 타고난 녀석이었습니다. 여전히 뚱뚱한 얼굴로 뻘뻘 흘리는 땀을 연신 손수건으로 닦아내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농부터 튀어나왔습니다.
"너는 절 세 번 했다고 땀을 그렇게 흘리니? 운동은 하니?"
"야 인마. 나 여까지 자전거 타고 와서 그래. 마누라가 그저께 친정 갔다가 내일모레 오는데 차 끌고 갔단 말이야."
"아니, 아무리 그래도 농사짓는 놈이 차가 없으면 되냐?"
"경운기 있잖아. 근데 경운기로 도로 탔다간 해 뜰 때나 도착했을걸?"
"그래서 집에서 여까지 자전거를 타고 왔다? 이 야밤에?"
"야. 자전거도 빨라. 여기서 포천까지 2시간이면 갈 걸?"
"와. 너 자전거 많이 타나 보다?"
"그럼. 살 빼야지."
"그렇게 타도 살은 안 빠지나 보네."
"잘 처먹으니깐. 알잖아. 나 먹을 복은 타고났는걸."
그러더니 석훈이는 맛없어 보이는 육개장을 게걸스럽게 먹었습니다. 아마 그 녀석의 먹을 복은 저 스스로 불러온 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석훈이가 먹는 걸 바라보면 없던 허기가 생길 정도거든요. 이놈이 얼굴만 잘생겼어도 대한민국 라면 광고는 다 해먹었을 겁니다.
"야. 넌 그게 맛있냐?"
"난 세상에 맛없는 게 없나 봐. 흐흐. 넌 왜 안 먹어?"
"이 멀건 거 보자마자 입맛이 뚝 떨어졌다. 장례식장 음식은 재사용도 많다 그러고. 별로 먹고 싶지가 않네."
"그래도 한술 떠. 안 먹으면 귀신 들러 붙는다. 귀신 쫓으라고 빨간 거 먹는 건데."
"세상에 귀신이 어딨냐?"
"와... 서울 살더니 문명인 다 되셨네. 아이고 미천한 촌놈이 문명화가 덜 돼서 헛소리를 했습니다요."
푸근한 얼굴로 송곳 같은 소리를 뱉는 것은 석훈이의 트레이드 마크입니다. 얼굴이 착해보여 된 소리를 뱉어도 사람들이 기분 나빠 하질 않았죠. 본인도 이를 아는지 쏘아대는 말을 할 때면 얼굴은 도리어 웃어 보였습니다.
"석훈이 혓바닥 아직도 날카롭네. 혀는 살 좀 안 찌냐?"
석훈이는 대답 없이 육개장만 퍼먹었습니다.
석훈이가 그 맛없어 보이는 육개장을 다 먹을 때까지, 우리가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오지 않았습니다. 친구들이 더 올까 싶어 경필이 이야기는 아끼고 있었는데 말이죠.
"무슨 일 있었는지 물어봤어? 난 경필이 와이프는 별로 만난 적이 없어서..."
"경필이. 말 그대로 비명횡사했다."
"교통사고라던데. 정확히 무슨 일이야?"
"집에 오는 길에 트럭에 치였대. 경필이 차가 무슨 쿠킹포일처럼 찌그러졌다더라. 가해자는 경찰이 조사중이라는데, 아무래도 음주운전 같다고."
우리의 이야기가 길어지자 직원이 소주 한 병을 두고 갔습니다.
"아. 나는 다시 가 봐야 하니깐. 운전해야 해서."
"그래 나만 마실게. 넌 잔만 받아."
석훈이는 술도 맛있게 마시더군요. 술이 들어가자 석훈이가 경필이 근황을 술술 풀어냈습니다. 경필이는 지난번 구제역 파동을 피해 가면서 양돈 사업이 대박이 났고, 설비를 첨단화하면서 동네에서 돈깨나 있는 집안이 되었다네요. 와이프가 사업수완이 더 좋아서 근래에 돈을 쓸어담았다고 합니다. 처자식만 남았어도 별걱정이 없다나요. 이 말을 듣고 저는 아무 생각 없이 다행이라고 말했습니다. 석훈이는 친구가 죽었는데 다행이라니 이런 개 놈 새끼를 봤냐고, 또 웃으면서, 쏘아댔습니다.
석훈이가 소주 한 병을 다 비웠을 때 시계는 3시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석훈아. 나 이제 일어나볼게."
"그래. 가 봐야지. 그래도 택시기사라 좋네. 바로바로 오고."
"택시기사가 가야 할 곳을 못 가면 그게 택시기사냐."
"야. 그것만 마시고 가라."
"나 차 몰아야 돼."
"그래도 받은 잔은 비워야지. 겨우 한 잔인데 뭘. 너 인마 말술이었잖아."
저는 피식 웃었습니다. 그거야 20대 때 이야기죠. 이제는 밤도 못 새는 저질 체력인걸요. 그래도 한 잔인데 뭐 있겠습니까? 단속 걸려도 멀쩡히 지나갈걸요? 저는 소주를 입에 톡 털어놓고는 일어섰습니다.
"자, 됐지? 그럼 나 간다. 너무 먹지만 말고 가서 일도 좀 돕고 그래."
"뭐, 아는 사람이 없어서... 한숨 잤다가 애들한테 연락이나 해볼게."
"애들 오면 내 안부나 전해줘."
"그래. 왔다가 먼저 갔다고 말해주마."
저는 석훈이의 볼멘소리를 뒤로하고 장례식장을 나왔습니다.
새벽의 시골은 어둡습니다. 3시가 넘어가니 공기도 제법 쌀쌀했고요. <악마를 보았다>에서 살인범이 택시에서 칼부림하던 장면이 생각나더군요. 이런 시간에 이런 장소에서 손님을 마주칠 일은 없겠지만, 혹시나 보더라도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오싹한 느낌에 몸이 부르르 떨려 창문을 닫으려는 찰나였습니다.
"쿵."
무언가 옆에서 튀어나와 차에 치였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 차에서 내려 밖을 살펴봤습니다. 범퍼가 심하게 찌그러졌더라고요. 무언가 묵직한 걸 친 모양입니다. 휴대전화 라이트를 켜고 도로를 두리번거렸습니다. 한참 떨어진 곳에 웬 사슴이 쓰러져 있습니다. 로드킬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어이가 없더군요. 10분만 더 가면 의정부인데 사슴이라니요. 여기가 산골짝도 아닌데 말입니다. 야심한 시각만이 야속할 뿐이었습니다. 다음에는 막막했습니다. 그 자리에 버리고 갈 수도 없고, 어디 신고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저는 사슴을 트렁크에 실었습니다. 그리고 의정부 시내로 달렸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파출소를 찾았습니다. 주차장에 사슴을 내려놓고 경찰을 불렀습니다.
"어디다 신고하는지 몰라서요. 일단 가져왔습니다."
"이거 사슴이 아니고 노루네 노루."
"저는 이제 가도 되죠?"
"차 번호만 적어주시고 가세요. 범퍼 수리도 하셔야 할 텐데 괜히 인명사고로 오인당하면 귀찮잖아요."
"네."
"아니다. 제가 사진을 찍을게요."
순경이 찌그러진 범퍼와 번호판 사진을 찍어갔습니다. 그리고 돌아가려는데.
"혹시 술 드셨어요?"
"아뇨. 술 안 마셨습니다."
"음... 거 말씀하신 구역이 새벽에 로드킬이 종종 나요. 노루가 치인 건 드문 일이지만요. 거 뭐래더라 생태로라던가. 거 나중에 동물 육교 세운다고 그랬으니까요."
"그렇군요."
"혹시나 해서 여쭤봤습니다. 술 자셨으면 파출소에서 쉬고 가시라 할려고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럼 가십쇼. 고생하셨습니다."
"예. 수고하세요."
그렇게 이상한 하루는 마무리되는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일은 다음 날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찌그러진 범퍼를 고치기 위해 정비소에 들렀습니다. 정비소 사장님은 범퍼가 심하게 찌그러져 교체가 불가피하다고 하셨습니다. 평소 잘 아는 사이라 사장님과 사무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노가리를 까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차고에서 "으앗"하는 비명이 들렸습니다. 차고에 가보니 떼어낸 범퍼에 벌레들이 우글우글했습니다. 바퀴벌레, 콩 벌레, 꼽등이뿐만 아니라 지네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벌레가 많이 옴닥거리는 건 태어나서 처음 봤습니다. 범퍼 안에 벌레가 들어갈 수 있냐고 물었더니, 아마 찌그러지고 나서 들어갔을 거라고 합니다. 하룻밤 사이에 저렇게나 많이 들어갈 수 있을까요? 사장님은 내일 오전 중에 교체 끝나면 바로 연락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내일 아침에 제일 먼저 손 봐 놓을게. 장사하는 차니께."
"사장님밖에 없어요. 매번 고맙습니다."
"아, 그리고 접때 말했던 점집은 생각 없어? 자네도 장가가야지. 아주 용하다니깐. 만나면 반년 안에 장가간다니께."
"에이. 무슨 점쟁이가 마담뚜도 아니고, 점 본다고 장가를 가요."
"어허. 이 사람이 사람 말을 안 믿네?"
"사장님 말씀을 안 믿는 게 아니라, 그냥 제가 무속은 안 믿어서 그래요. 장가갈 생각도 없고요."
"혹시 생각 있으면 말혀. 알았지? 내가 잘 얘기해 둘 테니께."
"예.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뵐게요. 아, 그리고 혹시 차에 벌레 더 없나 한 번만 봐주세요. 괜히 이상한데 벌레 꼬여서 고장 날 수도 있잖아요."
"아, 그거야 우리가 항상 살피지. 걱정 하덜마."
"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차고에서는 벌레를 쓸어담느라 야단이었습니다. 직원은 불살라 버려야 한다고 어디서 토치를 가져오더군요. 우글거리는 모습을 보니 소름이 돋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떨떠름한 기분을 남긴 채 집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날은 영업을 날려 먹은 관계로 집에서 영화나 보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보고 싶었던 영화들을 잔뜩 다운 걸어놓고, 동네 치킨집으로 갔습니다. 직접 찾아가면 할인해 주거든요. 돌아오는 길에 맥주도 사고, 집 앞에서 담배도 한 대 피고 들어왔습니다. 영화는 다 받아졌더군요. 그런데 전부 다 뻑갔습니다. 재생이 안 되는 것도 있고, 재생되더라도 이상한 노이즈가 있더라고요. 화면에 그을린 듯 거무튀튀한 것들이 벌레처럼 움직였습니다. 멀쩡한 파일은 딱 하나 있더라고요. <팔로우>라는 공포영화였습니다. 기분이 영 께름칙했지만 그냥 보기로 했습니다. 한참 영화를 보고 있는데, 초인종이 울렸습니다.
"배달이요."
무슨 배달일까요? 나가보니 아까 들렀던 치킨집에서 배달이 왔습니다.
"저 아까 가게에 직접 가서 사 왔는데요."
저는 이미 반쯤 먹은 치킨을 상자째 보여줬습니다.
"어? 그러게요. 아까 오신 거 봤는데. 주문 착오였나 봅니다. 죄송합니다."
배달부는 머쓱한 표정을 짓더니 그대로 돌아갔습니다. 저는 다시 영화를 보기 위해 모니터 앞에 앉았습니다. 영화를 다시 재생시켰는데 뭔가 이상합니다. 이미 봤던 장면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제가 실수로 되감기를 했을까요? 저는 귀찮은 마음에 그냥 거기서부터 다시 보기로 했습니다. 한참 보고 있는데 맥주를 많이 마셔서 그런지 소변이 마렵더라고요. 잠시 재생을 멈추고 화장실을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또 아까와 같은 장면으로 되감겨 있었습니다. 멀대같은 귀신이 여주인공을 덮치는 장면이었습니다. 순간 옆머리 털들이 쭈뼛 서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더는 영화를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먹다 남은 치킨을 치우고 곧장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침대에서 보니 멀티탭 전원을 끄지 않아 모니터의 전원 LED가 파란 불빛을 깜빡거렸습니다. 저는 컴퓨터 근처에 가기가 꺼려져 그냥 돌아누워 버렸습니다.
이후로도 이상한 일들은 계속됐습니다. 내비가 엉키거나, 지갑을 잃어버리기도 했죠. 머리를 감다가 단수에 걸린 적도 있었습니다. 그날은 단수 예고도 없었고, 단수가 난 집도 우리 집뿐이었습니다. 쥐가 돌아다니는지 밤이면 천장에서 드드득 소리가 들리고, 밤이 되면 트렁크에서 덜커덩거리는 소리가 나기도 했습니다. 노이로제 걸릴 것 같더라고요. 보는 사람마다 왜 이렇게 말랐느냐고 걱정을 했습니다. 그렇게 사고로부터 1주일이 지났을 때, 저는 제가 무엇에 휘말렸는지 직접 목격하게 됩니다.
그날은 비가 와 야간 손님도 없어 새벽 1시쯤 집에 들어왔습니다. 샤워하고 잠깐 컴퓨터를 하다 잠자리에 들었죠. 설핏 잠이 들었을 때 천장에서 또 드드득 거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래서 눈을 뜨고 천장을 바라봤는데, 누군가 거꾸로 매달려 있었습니다. 산발한 사람인데 팔이 4개, 다리가 4개였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 소리치려 했지만,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습니다.
'가위에 눌렸구나.'
그리 생각하니 별로 무섭지는 않았습니다. 어차피 가위는 꿈이니까요. 그런데 천장에 매달린 사람이 제 머리 위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꿈이라지만, 이건 좀 무섭더군요. 산발한 머리 사이로 번뜩이는 안광을 부라리며, 비쩍 마른 8개의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천장을 기어왔습니다. 팔을 움직일 때마다 관절이 뒤틀리듯 드드득, 드드득 거리는 소리를 냈습니다. 괴물은 제 머리 위로 오더니 저를 쳐다보며 시시덕거렸습니다. 뾰족한 이빨 사이로 메롱 하듯 혀를 내밀며 재밌다는 듯이 저를 쳐다봤습니다. 저는 깨어나고 싶었습니다. 정신을 집중하고 발가락을 움직여보려 했죠. 그때 괴물의 앙상한 팔이 주욱 늘어졌습니다. 길고 더러운 손톱이 달린 중지를 말아쥐더니 제 코를 딱 하고 쳤습니다. 그렇게 저는 꿈에서 깼습니다. 온몸은 땀에 흠뻑 젖었죠. 세수하러 화장실을 갔는데 세면대에 받아놓은 물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습니다. 코피가 나더라고요. 비릿한 핏내가 입안으로 스며들었습니다. 저는 뭔가 된통 걸렸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해가 뜨자마자 정비소에 들렀습니다. 한 시간을 기다려서야 사장님을 만나 뵐 수 있었죠.
"사장님. 전에 말씀하셨던 그 용하다는 점쟁이. 그 사람 좀 소개시켜주세요."
"허허. 왜? 생각이 바뀌었어?"
"저 뭔가에 걸린 것 같아요. 심각합니다."
"무슨 일인데?"
"요즘 이상한 일만 일어나고요. 어젯밤에는 귀신도 본 것 같아요."
"미신은 안 믿는다더니, 귀신은 믿나 보네?"
"저 진짜 심각해요. 사장님 그 점쟁이 좀 소개시켜주세요."
사장님은 한참을 놀려먹고 나서야 주소를 하나 알려주셨습니다.
"전화 같은 거 없으니깐 여기로 바로 찾아가야 돼."
"저... 복비는 얼마나 준비해가야 할까요?"
"처음 갈 때는 그런 거 없어도 되니께 그냥 가. 나중에 달라는 대로 주기만 하면 돼. 아마 달라는 대로 주게 될 거여."
저는 주소를 내비에 찍고, 곧장 점쟁이를 찾아갔습니다.
도착한 곳은 다락원이라는 의정부 근처의 허름한 동네였습니다. 주변이 죄다 밭이라 수도권이라 부르기엔 생경한 풍경이었죠. 주소가 가리키는 곳은 파란 기와를 얹은 집이었습니다. 여기저기 페인트가 벗겨진 녹색 철문이 비스듬히 열려있었습니다. 저는 불쑥 들어가려다, 그래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낡아 비틀어진 철문을 두들겼습니다.
"계세요. 안에 계세요."
안에서 카랑카랑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거 누구요."
"어... 소개받고 온 사람입니다."
"들어오슈."
문을 열고 들어서자 50 중반쯤으로 보이는 노인이 계셨습니다. 양손에 빨간 고무장갑을 낀 채로 나물 비스무리한 걸 다듬고 계셨습니다.
"잠깐만 마루에 앉아 기다리슈. 이거 다 끝나면 가리다. 금방 끝나요."
저는 마루에 앉아 노인이 하는 일을 물끄러미 쳐다봤습니다. 1분쯤 나물을 다듬던 노인이 갑자기 벌떡 일어서더니 주변을 두리번거렸습니다. 그리고는 저를 바라보더니 성큼성큼 다가왔습니다.
"어휴... 뭘 달고 다니는데 냄새가 이리 고약해. 썩은 내가 진동을 하잖아."
"네?"
"어휴... 이걸 어째. 여깄다간 나물에 냄새 다 배겄어. 자네 저어기 방에 들어가. 들어가면 향 피우는 자리가 있을 거야. 거기에 향 하나 피워놓고 조용히 앉아있어요. 내 10분 안에 들어가리다."
노인의 말에 저는 소름이 돋았습니다. 바짝 얼어붙은 채 그가 시키는 대로 했죠. 방은 영락없는 무당집이었습니다. 뒤에는 이상한 그림이 그려져 있고, 그 앞에 제단에는 향로와 타고 남은 향 심지가 보였습니다. 저는 향을 피워 올리고 방석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습니다.
딱 10분이 지났을 때 노인이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거기 내 자리야."
"아. 예. 죄송합니다."
"저쪽에 앉아."
저는 자리를 고쳐 앉았습니다. 노인은 상을 하나 가져왔습니다.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쌀을 몇 톨 꺼내더니 상위에 대충 던졌습니다.
"친구가 죽었네? 얼마 전에. 냄새는 시취구만. 시귀가 붙은 게야."
저는 그저 묵묵히 듣기만 했습니다.
"자네 상복도 안 입고, 가서 음식도 안 먹고, 절만 하고 온 게야?"
"부조금은 내고 왔지요."
"거 묻는 말에나 대답해."
"네. 별로 식욕이 없어서 아무것도 안 먹었습니다."
"예(禮)라는 게 말이야. 괜히 있는 게 아니야. 자네 교회 다니는 감?"
"아닙니다."
"자네 그렇게 살 거면 교회라도 다니게. 하느님 아부지가 힘이 엄청 세거든. 잡귀 따윈 안 들러붙을 게야."
무당이 전도를 하더군요. 그런데 이런 일을 겪을 바엔 교회를 다니는 게 낫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시귀는 원래 힘이 별로 없어. 원한이 있으면 원귀가 되고 원한 산 놈에게 붙지. 시귀는 그냥 재미로 그러는 녀석들이야. 본래 멀쩡한 사람이라면 이렇게 심하게 들러붙지 못해. 혹시 죽은 친구랑 원한 관계인가?"
"아니요. 불알친구입니다. 최근에는 연락도 뜸했고요. 원한이라고 할 만한 일은 없었어요."
"이상하단 말이야... 혹시 들러붙은 귀신 본 적 있어?"
저는 가위눌렸던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직 다행이네. 꿈에서나 보이는 거면. 나중에 꿈도 아닌 데 보이기 시작하면 자네는 끝이네. 그리 알게."
저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습니다.
"장례식장에 간 날, 또 무슨 일이 있었어?"
"돌아오는 길에 노루를 치었습니다. 그래서 인근 파출소에 맡겼습니다."
"아이고. 노루는 영물이야. 작은 산에서는 산신 노릇도 해. 그걸 치어죽였네. 시귀가 그때 노루 기를 빨아먹고 이리 컸구만."
"그게 어쩔 수 없었어요. 갑자기 훅 튀어나와 가지고. 저는 아무 잘못도 없습니다."
"거짓말."
"네?"
"자네 거짓말을 하고 있어. 이건 점쟁이가 아니라도 알겠네. 뭘 묻지도 않았는데 주절주절 변명이야."
저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습니다.
"자네 뭔가 구린 짓을 했어. 그러니깐 귀신이 신나서 들들 볶는겨. 자네가 떳떳하면 귀신이 아무리 해코지하고 싶어도 못해. 마음에 틈이 생기니깐 귀신이 들러붙는 게야. 권선징악이라는 게 그렇게 흘러가는 거라네. 삼라만상의 조화가 다 그런 거야."
"그... 장례식장에서 소주를 딱 한 잔 했습니다."
"그러고선 차를 몰다 노루를 치어죽였네."
"네."
"사람 치어 죽이면 합의금이 보통 얼마인가?"
"... 1억 정도입니다."
"금수도 소중하지만 사람보단 못한 법이야. 그거 딱 10분지 1만 쓰게."
"선생님께 드리면 되나요?"
"날 줘서 어쩌게. 나한테 줄 필요 없고. 노루 치었던 부근 산에 가져가 태우게."
"네? 현찰을 태워요?"
"그래. 활활."
"아니. 뭐 굿 같은 건 안 하나요?"
"굿을 하면 귀신을 쫓아내는 게 아니라 죽여야 해. 살굿은 위험해. 천만 원으로는 택도 없지."
"그럼 돈을 태우면 귀신이 도망가나요?"
"마땅한 대가를 치르면 산신이 다 알아서 하실 거야. 죄를 지었으면 죗값을 치러야지. 그러면 족하네."
"네. 알겠습니다. 저... 그럼 복비는..."
"나중에 귀신 떨어지면, 태운 돈의 10분지 1만 가져와. 안 가져오면 뭐.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이번에 잘 봤을 테니 알아서 하리라 보네."
저는 곧장 은행으로 갔습니다. 적금을 깨고 천만 원을 인출했습니다. 전세 구하고 모은 돈이 반 토막이 났죠. 이 돈을 태울 생각을 하니 착잡하더군요. 5만 원권 지폐로 뽑아 놓으니 고작 한 움큼밖에 안 되어 더 서글펐습니다. 저는 사고가 났던 곳 근처 산에 올랐습니다. 땅을 고르고 돌을 주워 둥글게 둘렀습니다. 낙엽과 잔가지 몇 개를 쌓은 뒤 불을 붙여 작은 모닥불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천만 원을 모닥불에 던졌습니다. 처음에는 불이 잘 안 붙었습니다. 지금이라도 당장 꺼내면 쓸 수 있어 보였습니다. 처자식도 없는 제가 그렇게 고생하며 애지중지 모아온 돈인데. 이렇게 태워버려야 한다니. 저는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요. 저는 천만 원이 다 타고, 남은 장작도 다 타고, 불씨가 다 사그라질 때까지 자리를 지켰습니다. 금가루 마냥 천만 원이나 하는 재 위에 먹다 남은 생수를 쏟아붓고 대충 흙으로 덮어버렸습니다. 돌아오는 발걸음이 침통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 와중에 햇빛은 또 왜 그리 찬란하던지요. 저는 눈물인지 땀인지 모를 것을 뚝뚝 흘리며 산에서 내려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지난번에 들렀던 파출소를 찾았습니다. 대가를 온전히 치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아니, 어쩌면 이 사연을 그저 누구에게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파출소에 들어가 그날 사진을 찍어간 순경을 찾았습니다.
"저기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
"무슨 일이시죠?"
"혹시 그 노루 어떻게 처리하셨나요?"
"야생동물 협회에 연락해서 가져가라 했습니다. 아마 알아서 잘 처리했겠죠. 그거 물어보러 오신 거예요?"
"저기... 실은 그 날 제가 음주운전을 했습니다."
"역시. 살짝 술 향기가 나더라고요. 제가 술 귀신이라 딱 알아챘다니까요."
귀신이라는 말에 괜히 심장이 벌렁거렸습니다.
"자수... 하려고요."
"왠지 느낌이 그래서 사진을 찍어놨는데 결국 써먹게 되네요. 앉으세요. 조서 써야죠."
저는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순경은 이름, 나이, 주소 등을 물었습니다. 사고 경위를 말하라 했을 때, 저는 그날 받았던 전화부터 이야기를 풀어냈습니다. 나중에는 파출소 사람들이 전부 모여 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제가 천만 원을 태운 사실을 끝으로 울먹이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마치자 순경이 말했습니다.
"지금 와서 음주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자백뿐인데, 말씀하신 대로 소주 한 잔이라면 위법은 아니에요. 아마 혈중알코올농도가 기준치 미만일 겁니다. 사람을 친 것도 아니라 자수하실 일은 아니네요. 뭐 나름 죗값도 치르신 것 같고."
순경은 건수를 놓쳤다는 표정을 지으며 작성하던 조서를 부욱 찢었습니다.
"왜 하필 저한테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어떻게 모은 돈인데... 그렇게 먼지가 되어버렸어요."
제가 이 말을 하자 뒷자리에서 묵묵하게 이야기를 들으시던 한 노인께서 입을 여셨습니다.
"왜 하필 이라니. 야 이놈아. 네놈이 노루를 치었으니깐 천만 원만 날라갔지. 사람을 치었으면 어떡할 뻔했어. 썩을 놈이 술 먹고 운전한 주제에 꼴랑 천만 원 태워 먹은 게 뭐가 억울하다고 피해자인 척하고 있어. 억울해할 게 아니라 고마워해야지. 사람 치었어 봐. 어쩔 거여? 죽을 사람 대신 노루가 죽어줬다 생각하고 살어. 꼭 사람을 치어 죽여야 살인이 되는 게 아니야. 세상에 잠재적 범죄가 성립하는 유일한 죄가 있다면 아마 음주운전일 거다. 네놈이 치어 죽였을 누군가를 대신해서 노루가 죽어준 거야. 그렇게 생각하고 착하게 살아."
저는 그 말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천만 원을 아까워하던 자신이 몹시 부끄러웠습니다. 그때 찢은 조서를 휴지통에 처박으며 순경이 말했습니다.
"아이고. 영감님은 그래서 맨날 술 먹고 경운기 몰아요?"
"야 이놈아. 경운기가 차냐? 내 달리는 것보다 느린데."
"아 일없으면 어여 집에 들가세요. 왜 맨날 여 와서 죽치고 있어요."
저는 자리에서 일어나 순경에게 허리 굽혀 인사를 건네고 파출소를 나왔습니다. 어느새 해는 서산 너머에 걸쳐 있었습니다. 저는 몹시 허기를 느꼈습니다. 근처 국밥집에 들러 밥 한 사발을 말아먹었습니다. 가게 안 손님 중에는 소주를 반주 삼아 드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아마 저 중에선 별거 아니라는 듯이 운전대를 잡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귀신이 들러붙을 거라 말했다가는 미친놈 소리나 들었겠죠. 저는 그냥 제 국밥이나 열심히 퍼먹었습니다. 색깔도 빨갛게 다데기 왕창 넣고 말이죠.
'생각휴지통'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잊을 수 없는 얼굴 (0) | 2016.09.22 |
---|---|
차단의 비통함 (0) | 2016.07.29 |
이유는 없어, 그냥 좋아! (1) | 2016.06.23 |
어느 30대 취준생의 하루 (3) | 2016.06.08 |
[단편] 쓰레빠 (0) | 2016.05.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