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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쌤 윤PD

<폭스캐처> - 인정받지 못하는 자의 슬픔

※ 이 글은 영화 <폭스캐처>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폭스캐처>는 1996년 1월, 세계 3대 화학그룹 듀폰사의 상속자 존 E. 듀폰이 자신이 후원하던 레슬링팀 '폭스캐처' 소속 코치인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데이비드 슐츠를 총으로 살해하여 전미를 경악에 빠뜨린 충격적인 사건을 다루고 있다. 억만장자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살해한 이 전대미문의 사건은 존 듀폰의 살해 동기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아 미궁 속 사건으로 남아있었다. 영화는 이 사건의 전말을 통해 존 듀폰의 살해 이유를 밝히고자 한다.





  존 듀폰이 가지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마크 슐츠(이하 마크)는 그의 훌륭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다소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존 듀폰(이하 존)은 그런 마크에게 정의와 애국심을 호소하며 팀 폭스캐처에 들어올 것을 제안한다. 이때 까지만 해도 존에게는 스포츠를 통해 미국적 가치를 빛내고자 하는 숭고한 목적이 있는 것 같았다. 그의 전폭적인 지원도 순수한 마음의 발로라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마크가 세계선수권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부터 서서히 존의 허영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는 마크가 아니라 자신이 우승한 것처럼 행동한다. 우승 메달을 자신의 트로피 룸에 진열한 뒤 폭스캐처 팀원들에게 연호를 받으며 환한 미소를 짓는 모습은 뿌듯하다기 보다 서늘하게 느껴졌다. 영화 말미에서 마크와의 사이가 틀어졌음에도 코치 자격으로 그의 올림픽 출전에 동행하는 모습은 광기에 가까운 집착이었다. 

  도대체 존은 무엇을 얻기 위해 이렇게 집착했던 걸까? 그 해답은 그의 어머니에게서 찾을 수 있다. 영화에서 존의 어머니는 그다지 자주 등장하지 않는다. 그녀의 대사가 나오는 신도 딱 하나일 정도이다. 그러나 그 하나의 장면을 통해 존이 얻고자 하는 것이 드러난다. 그것은 바로 어머니의 인정이었다. 존이 레슬링 대회에서 1등을 했다고 말하자 그녀는 어차피 네가 후원한 대회 아니냐며 그의 성과를 폄하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장식장에 트로피를 진열하지 말라고 말한다. 나아가 다 늙은 존의 장난감 기차를 처분하는 것까지 시시콜콜 관여하려 한다.(나는 이 장면에서 그녀가 혹시 치매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했다.) 부와 명예를 모두 얻은 자본가이지만, 존은 그의 어머니에게 아직도 하나의 온전한 인격체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다.

▲ 존의 어머니는 그를 인정하지 않는다.






  나는 그가 측은하다

  어머니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존을 보며 나는 <아마데우스>의 살리에리가 떠올랐다. 그가 모차르트의 재능을 시기하게 된 이유 중에는 신에게 인정받지 못한 억울함이 있었다. 신의 영광을 위해 음악을 만들겠다는 살리에리의 순수한 마음은 모차르트라는 망나니를 통해 철저히 짓밟혔다. 살리에리가 십자가를 불태우던 장면에서 나는 그의 분노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존은 살리에리처럼 독한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다. 어머니가 체육관을 들렀을 때, 존은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코치 행세를 한다. 끝까지 그녀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그의 모습이 어딘가 처량하게 느껴졌다. 어머니가 죽은 후, 존은 어머니가 돌보던 말들을 마구간 밖으로 자유롭게 풀어준다. 그녀의 간섭과 몰인정 속에서 억압받았던 그의 마음 어딘가가 탁 풀어져 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말들을 풀어놓는 존의 등에서 나 또한 그처럼 해방감을 느꼈다.

  내가 존과 살리에리의 마음에 공감하는 이유는 나 또한 인정의 결핍에 시달렸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말 하기 좀 쑥스럽지만 어린 시절 나는 공부를 꽤 잘했다. (뭐 그래 봤자 학교레벨이지 전국구급은 아니다;;) 부모님도 그런 나에게 꽤 많은 기대를 하셨다. 그렇지만 그 기대를 충족시켜드린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시험에서 전 과목 올백을 맞은 적이 있었다. 당시에 나는 전학생이었는데, 이 점이 화제가 된 덕분에 아이들과 꽤 친해질 수 있었다. 나는 이 결과를 당당하게 부모님께 가져갔다. 그리고... 두 분이 어떤 반응을 보이셨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잘했다는 가벼운 칭찬이 전부였던 것 같다. 다음날 학교에서 다른 아이가 평균이 80점이 넘었다며 부모님이 잘했다고 만화 『전략 삼국지』 60권 전질을 사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린 마음에 되게 슬퍼했던 기억이 난다. 왜냐면 나도 그 책이 몹시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안 사정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비싼 물건을 사달라고 조를 정도로 철없는 아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 서러움이 가난 때문에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중학교 때 시험 기간이 끝난 날이었다. 가채점 결과 평균이 97쯤 되는데 이 정도면 전교 2등도 노릴 수 있을 것 같은 좋은 성적이었다. (물론 1등은 맨날 하던 녀석이 있었다. 넘사벽;;) 그래서 시험이 끝나고 친구들과 피시방에 가기로 했고, 부모님께 2시간 정도 늦게 들어간다고 전화를 하였다. 하지만 부모님은 '시험 끝났으면 다음 시험 준비해야지. 전교 1등도 못하면서 피시방을 가면 되느냐'며 나를 곧장 집으로 오라고 하였다. 이날 이후로 피시방 갈 때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다녀왔다...

  인정받고 싶은 대상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다. 다 큰 어른이 된 지금이야 그냥 옛날 이야기이자 어린애 투정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아직도 그때를 기억하면 가슴이 살짝 시리다. 이런 아픔을 겪었기 때문일까, 나는 존이 가엾고 불쌍하다. 그의 광기는 가질 수 없었던 어머니의 인정에서 발로한 것이다. 자신을 낳아준 존재에게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다. 그렇다고 그의 살인을 정당화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불쌍한 건 불쌍한 거고, 죄는 죄인 법이다.

  나는 내가 겪었던 이 아픔을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 연장으로 연애에서 칭찬과 아부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설파하고 있다. 진심으로 기뻐하는 모습만큼 연인에게 큰 선물이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내가 아빠가 되었을 때 내 아이들에게도 같은 선물을 줘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나의 이런 노력에 기뻐하는 친구들과 연인이 있었기에 그런 기억 속에서도 나는 올바르게 자랄 수 있었다. 존에게도 친구가 있었다면 그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 존에게서는 인정받지 못하는 자의 슬픔이 느껴진다.






  왜 존 듀폰은 데이비드 슐츠를 죽였는가

  소설가 올더스 헉슬리는 '픽션의 문제점은 그게 너무 말이 된다는 점이다. 반면 현실은 결코 앞뒤가 맞지 않는다.'라는 말을 했다. 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현실의 '존 듀폰 사건'에서는 마크의 은퇴와 데이비드 슐츠(이하 데이비드)의 피살 사이에 7년의 기간이 존재한다. 하지만 영화 <폭스캐처>는 마크의 상실을 존의 살해 동기로 설명한다. 왜냐하면, 그래야 말이 되니까. 비록 사실을 왜곡하였지만, 나는 이 왜곡이 사건의 본질을 보다 잘 설명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폭스캐처>의 진정한 주인공은 존 듀폰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이해할 수 없었던 그의 살인을, 말이 되는 픽션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존은 인정받고자 하는 존재(어머니)를 잃었고, 인정받기 위해 열정을 쏟았던 존재(마크)마저도 잃었다. 그리고 그나마 위안이 되었을 다큐멘터리에는 기대했던 데이비드의 인터뷰가 실리지 않았다. 데이비드로 인해 그의 노력은 흉내 내기로 폄하 당한 것이다. 모든 것을 잃었다는 상실감과 자신이 부정당하는 데서 오는 굴욕에 대한 분노가 존의 손가락이 방아쇠를 당기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것만이 정답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영화는 그 속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는가에 대해 철저히 관객의 주관에 맡기는 담담하고 객관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다. 나는 존에게서 슬픔을 보았지만 다른 사람은 다른 인물에게서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왜 존은 데이비드를 죽였을까?"

  이 질문에 대한 각자의 대답이 각자의 비평이 되는, <폭스캐처>는 그런 영화다. 





※ 익스트림 롱 쇼트, 고요한 사운드, 느린 호흡 등이 장면마다 관객의 감정을 충분히 뽑아내도록 합니다. 이러한 연출이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인물들의 내적, 외적 갈등에서 오는 긴장감이 지루함을 느낄 겨를을 주지 않더군요.

※ 세 주연 배우의 연기가 전부 환상적입니다. 가장 먼저 놀랐던 점은 채닝 테이텀(마크 슐츠 역)과 마크 러팔로(데이비드 슐츠 역)의 레슬링 연기였습니다. 진짜 레슬링 선수를 보는 듯한 날렵한 몸놀림을 보여줍니다. 진정한 메소드 연기란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스티브 카렐(존 듀폰 역).... 그동안 주로 코미디 영화에 나왔었는데, <폭스캐처>에서 우울함과 광기를 섬찟하게 보여줍니다. 레슬링 영화라서 몸짓에 더 집중했기 때문이었을까요? 표정뿐만 아니라 몸짓에서 그러한 감정이 더 팍팍 느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말들을 풀어주는 장면에서 그의 등에 맺힌 해방감이 너무나 인상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