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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혹시 지금 감시당하고 있진 않습니까?

2007년에 개봉한 〈천공의 눈〉이라는 영화가 있다. 홍콩 경찰에 오로지 ‘감시’만 하는 특별 수사팀이 있고, 이들의 활약으로 비밀 범죄 조직을 추적해 그들을 일망타진한다는 내용이다. 이 작품은 우리나라에서 〈감시자들〉이라는 제목의 영화로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홍콩이나 우리나 마찬가지로, 특별 감시 수사팀은 영웅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그들이 진짜 영웅일까?

 

영화에서 특별 감시 수사팀은 비밀리에 운영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이 하는 일이 합법과 불법의 경계선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감시’만 할 뿐, 검거에 나서지 못한다. 그럼에도 영화는 그들의 활약을 긍정적으로 묘사한다. 하지만 냉정하게 얘기해서 이들의 업무는 국정원 불법 사찰과 별 차이가 없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점이라면, 내가 이러한 감시의 대상이 될 리는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나처럼 평범한 사람을 감시하느라 수십 명이 며칠씩 개고생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개고생하지 않아도 감시가 가능하다면 어떨까?

 

책 《디지털 실크로드》에서는 중국의 디지털 산업 발전과 이로 인한 세계 안보 위협을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충격적인 내용은 중국의 감시 기술에 관한 것이었다. ‘5,000억 개의 눈’이라는 챕터에서는 중국의 비디오 감시 수준이 어디까지 올라왔고, 이를 통해 세계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그 소름 끼치는 실체를 고발한다.

 

중국은 현재 비디오 감시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기술 수준과 양적 수준 모두에서 그렇다. 2020년 말까지 중국은 6억 2,600만 대의 카메라를 설치할 계획인데, 이는 인구 2명당 1대꼴에 해당한다.

 

이러한 감시 체계를 ‘천망시스템’, 영어로는 ‘스카이넷’이라고 부른다. (어? 터미네이터에 나왔던 스카이넷? 스카이넷이 중국이었어…) 이는 도덕경에 나온 ‘천망회회 소이불실’이라는 말에서 따온 것이며, 그 뜻은 ‘하늘이 친 그물은 거대해서 넓게 펼쳐져 있지만, 아무것도 놓치지 않는다.’이다. 원래는 하늘의 도리가 선과 악을 놓치지 않는다는 점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하늘이 무섭지도 않느냐!”와 비슷한 맥락이다. 그런데 지금 중국은 ‘하늘’이 하는 일을 비디오 기술과 AI를 통해 이루려고 하고 있다. 신이라도 될 생각인 걸까?

 

문제는 이러한 감시 체계가 중국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국은 스카이넷을 ‘스마트 시티’라는 이름으로 수출하고 있다. 현재 파키스탄과 케냐가 이들의 시스템을 수입해서 도입 중이다. 과연 이 두 나라가 스카이넷을 시민의 안전과 복지 향상을 위해서만 사용할까? 반체제 인사를 감시하거나, 색출하는 용도로 사용하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

 

중국의 이러한 행보를 두고 독재를 수출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세상에 이보다 아이러니한 일이 또 있을까? 중국이 WTO에 가입했을 때, 빌 클린턴은 이렇게 말했다. “새로운 세기에는 휴대전화와 케이블 모뎀을 통해 자유가 확산될 것입니다. 그게 중국을 얼마나 변화시킬지 상상해 보십시오. 이제 중국은 당연히 인터넷을 단속하려고 하겠지요. 힘내시길! 그건 물컹한 젤리를 벽에 못으로 박아놓으려는 것과 같을 테니까요.” 그런데 중국은 이 말을 비웃듯, 휴대전화와 케이블 모뎀을 통해 독재 사회를 구축해 가고 있다.

 

우리는 이 ‘아이러니’에 주목해야 한다. 디지털 기술은 절대 장밋빛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다. 이는 중국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중국에서 조지 오웰의 《1984》가 펼쳐지고 있다면, 미국이나 한국 같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가 펼쳐지고 있다. 소셜 미디어가 발달할수록 정치적 양극화가 극심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입에 담기도 민망했던 극단주의가 인터넷 여기저기서 판치고 있다. 이제 인터넷이 민주주의의 발전을 불러올 거라는 말에 동의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러한 아이러니가 선사하는 교훈은 명백하다. 결국 디지털 기술은 도구일 뿐이다. 이를 통해 행복한 미래를 만들지, 《1984》나 《멋진 신세계》 같은 디스토피아를 만들지는 우리의 손에 달려있다. 하나 우려되는 점은 이 도구가 너무나도 강력하다는 점이다. 과장 좀 섞어서 말하자면, 인간의 손에 신의 도구가 쥐어진 기분이다. (비슷한 것으로 유전자 가위라던가, 입자가속기 같은 것도 있…)

 

그래서 더욱더 철저하게 감시해야 한다. 감시자들을 감시하지 않는다면, 그 사회는 절대 아름답지 않을 것이다. 관련 정보에 귀를 기울이고 꾸준히 공부해야 한다. 아무것도 모르면, 엄청난 기술에 무방비로 쓸려갈 수도 있다. 그래서 책을 보고 공부해야 한다. 《디지털 실크로드》는 우리가 맞이할 수도 있는 최악의 상황을 알려주는 귀중한 지식을 선사해줄 것이다.

 

디지털 패권을 둘러싼

중국의 행보를 파헤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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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콘텐츠는 제작비를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