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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2022년 대한민국에 가장 필요한 이야기

2022년 대한민국은 분열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이에 관하여 놀라운 통찰을 제시하는 자료가 있다. 2021년 영국의 설문조사 기관 입소스(IPSOS)에서는 28개 국가의 갈등 상황을 조사했다. 이 조사에서는 종류에 따라 갈등의 정도가 얼마나 심한지 물었는데, 정말 많은 분야에서 대한민국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참고 링크)

 

  • 진보와 보수 사이의 이념 갈등 1위
  • 엘리트와 노동자 사이의 갈등 3위
  • 남녀 갈등 1위*
  • 학력 갈등 1위
  • 정당 지지자 사이의 정치적 갈등 1위
  • 빈부 갈등 칠레와 함께 공동 1위
  • 계층 갈등 2위
  • 세대 갈등 1위*
  • 종교 갈등 1위
  • 도시와 비도시 사이의 갈등 1위

*이 중에서 남녀 갈등과 세대 갈등은 2등과 압도적 차이를 보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고통과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 뉴스를 봐도 댓글창은 보지 않는다는 사람도 많고, 아예 뉴스 자체를 의도적으로 피한다는 사람도 적지 않다. 나 또한 서로 피 튀기게 싸우는 모습을 일부러 찾아서 보고 싶진 않다. 그냥 사는 것도 빡빡한데 말이다.

 

이런 시대에 꼭 필요한 책이 나왔다. 피터 T. 콜먼이 쓴 《분열의 시대,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이다. 제목만 보면 ‘과연 그게 될까?’ 싶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나에게 분열의 시대를 극복할 수도 있다는 희망을 선사했다. 그리고 갈등의 피로에 찌든 이 시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강력 추천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갈등 전문가

 

피터 T. 콜먼의 이력을 보면 ‘세계 최고의 갈등 전문가’라는 타이틀이 절로 떠오른다. 그는 컬럼비아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오랜 세월 동안 직장 생활부터 국제 관계까지 다양한 분야의 갈등을 연구하고 중재해왔다. 이력만 봐도 갈등에 관한 내공이 엄청난 사람이란 느낌이 든다.

 

이러한 느낌은 책을 읽으며 더욱더 강해진다. 그는 갈등을 문과적 관점을 넘어 이과적 관점으로까지 확장하여 분석한다. 특히 수학적 모델링을 활용해 갈등 상황을 분석하고, 이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아낸 점은 감탄을 자아낸다. 피터 T. 콜먼은 갈등을 분석하고 해결하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학문적 경계 따위는 그에게 아무런 걸림돌도 되지 않는 듯하다.

 

더불어 자신의 허물까지 인정하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그는 과거 Ted의 강연에서 갈등에 관한 발언을 했다가, 훗날 이 발언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었다는 내용까지 책에 실었다.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은 꾸준히 발전할 수 있다. 피터 T. 콜먼은 갈등에 관한 자신의 이론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라면 일말의 자존심도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 부분에서 그가 갈등 연구의 최전선에서 지금도 계속 발전해나가는 사람이라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이 정도라면 믿을 만하다.’

 

이것이 저자의 이력를 통해 내가 받았던 느낌이다.

 

차원이 다른 통찰

 

갈등을 이과적으로 바라본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수학적 모델링을 사용하면 이과적 분석이 될까? 《분열의 시대》가 보여주는 것은 그 이상이다.

 

《분열의 시대》는 오늘날 우리가 처한 갈등 상황을 복잡계 문제로 바라본다. 처음에는 ‘사회 문제면 당연히 복잡한 거 아닌가?’라고 생각했지만, 복잡계란 그렇게 단순한 개념이 아니었다.

 

예를 들면, 복잡계의 특징 중 하나는 여러 요소가 서로 영향을 끼치며 피드백 고리를 형성한다는 점이 있다. 한 가지 요소가 한 가지 결과만 끌어내는 함수적 관계가 아니다. 한 가지 요소가 다양한 결과를 끌어내고, 나아가 그 결과가 다시 원래의 요소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로 인해 우리 사회의 양극화가 가속화된다. 원래의 입장이 정보의 선택적 수용(확증 편향)을 낳고, 그것이 다시 원래의 입장을 강화한다. 이런 요소들이 수십, 수백 개가 모이면 갈등을 타협할 수 없는 수준까지 몰아붙인다. 저자는 이런 상황을 양극화의 슈퍼 태풍이라고 말하며, 오늘날 우리가 분열의 시대에 살게 된 결정적 이유라고 지목한다.

 

양극화의 슈퍼 태풍

오늘날 많은 전문가가 사회 분열의 이유를 지목한다. ‘남녀 차별 때문이다.’, ‘취업난 때문이다.’, ‘노년층 빈곤 때문이다.’라는 식이다. 물론 이 이유들 모두 사회 분열을 유발하는 원인이 맞다. 하지만 어느 하나만이 오늘의 상황을 만든 것은 아니다. 《분열의 시대》는 모든 것이 물리고 물리는 복잡한 상황이 오늘의 상황을 만들었다. 이렇게 총체적이고 거시적인 관점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분열의 시대》는 기존의 해석과 차원이 다른 통찰을 제시한다.

 

(이처럼 책의 내용이 복잡계에 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두고 있기 때문에,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복잡계에 관한 이해도 높아지게 된다. 복잡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분열의 시대》만큼 훌륭하고 흥미로운 책이 또 없을 것이다)

 

우리는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훨씬 더 많습니다

 

“우리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도록 하자. 물론 내 말이 맞고, 네 말이 틀렸지만.”

 

한때 우스갯소리로 인터넷 명언이라며 돌아다니는 말이다. 우습지만, 대단한 통찰을 담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아마 많은 사람이 경험적으로 세상이 저렇게 돌아간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 또한 그랬고, 그래서 기꺼이 명언이라 불러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분열의 시대》를 읽으며 이 말의 의미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책에는 낙태에 관한 갈등을 다룬 이야기가 나온다. 1990년 보스턴은 낙태를 둘러싸고 찬성 측과 반대 측이 매일 시위를 벌일 정도로 갈등이 첨예했다. 그러다 끔찍한 사건이 벌어진다. 낙태 반대론자가 중절 클리닉을 습격해 총기를 난사한 것이다.

 

이 사건 이후 갈등을 중재해보고자 협상 테이블이 열렸다. 낙태 찬성쪽 리더 3명과 낙태 반대쪽 리더 3명이 회합을 가진 것이다. 당시 갈등이 얼마나 심했냐면, 이러한 행동조차 배신으로 낙인찍힐까 봐 회합 자체가 비밀리에 열렸다. 6명의 리더는 이 모임을 무려 6년 동안 지속했다. 그 결과 그들은 나름의 타협점을 찾게 되었을까?

 

그들은 실패했다. 아무런 타협점도 찾지 못했다. 오히려 낙태에 관한 입장은 더 벌어졌다. 찬성 측은 더 강력히 찬성하게 되었고, 반대 측은 더 강력히 반대하게 되었다. 회합을 진행하면서 각자의 입장이 정리되고 이전보다 논리와 근거가 탄탄해지기만 했다.

 

그런데 서로를 향한 미움은 줄어들었다. 6년을 매주 모여 만나는 동안, 상대가 악마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낙태를 찬성하는 사람은 끔찍한 살인마가 아니었다. 낙태를 반대하는 사람은 구시대적 발상에 머문 적폐가 아니었다. 그들 모두 평범한 이웃이고, 평범한 친구였다. 단지 의견이 다른 것뿐이었다. 그래서 6년이 지난 뒤 이들은 서로의 가족 모임에도 참여할 정도로 끈끈한 사이가 되었다.

 

어쩌면 우리는 영원히 입장 차이를 좁힐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아니, 더 벌어질 확률이 높다. 그러나 서로를 미워할 필요는 없다. 이것이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는 시작이다. 서로를 악마로 보지 않는 것이다.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6년의 회합을 주선했던 수전 포드지바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훨씬 더 많습니다.”

 

《분열의 시대》가 제시하는 통찰은 너무도 매력적이었다. 학문적 경계를 넘나드는 탄탄한 논리와 근거를 갖췄을 뿐만 아니라, 결론이 제시하는 방향이 현실적이면서도 이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차가우면서도 따뜻한 통찰을 보며 이 책을 읽어보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 수밖에 없었다.

 

서두에 밝혔듯 대한민국의 갈등 상황은 심각한 수준이다. 특히 무서운 점은 상대를 악마화하는데 거리낌이 없다는 점이다. 남녀 갈등, 세대 갈등 모두 마찬가지다. 상대를 죽일 놈 취급한다. 《분열의 시대》는 이런 상황을 타개할 놀라운 통찰을 제시한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에게, 2022년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꼭 필요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을 갈등의 피로 속에서 괴롭게 살고 싶지 않다면 《분열의 시대》를 꼭 읽어보길 바란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혐오와 갈등에서 벗어나는

놀라운 통찰을 제시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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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콘텐츠는 제작비를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