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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노화에 대한 상식이 무너지는 순간

모든 생물은 늙는다. 그리고 죽는다. 대부분 이것이 우주의 진리이자 우리의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책 『에이지리스』는 노화에 관하여 우리가 상식이라고 알고 있던 지식들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선사한다. 저자 앤드류 스틸은 이 충격적 사실을 마치 탐정 수사하듯 흥미진진하게 파헤친다. 생명의 신비라는 미스터리 실타래를 아주 작은 과학적 단서로 시작해 풀어나간다.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생물이 있을까? 이것을 만나려면 캘리포니아 화이트 산맥의 일급비밀 보호구역을 찾아가야 한다. 그곳에는 4,850살로 추정되는 브리슬콘 소나무가 있다. 우리는 식물이 조건만 맞으면 영원히 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노화라는 주제로 넘어오면 그러한 사실을 쉽게 간과한다.

 

그럼 동물은 어떨까? 찰스 다윈은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땅거북 하나를 잡아 영국으로 가져갔다. 해리엇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거북이는 2006년까지 살다가 175세라는 고령에 심장마비로 쓰러지고 말았다.

 

그런데 이 거북이에서 진짜 흥미로운 부분은 오래된 나이가 아니다. 진짜 놀라운 점은 그들이 보여주는 '미미한 노쇠'이다. 미미한 노쇠란 나이가 들어도 미미한 정도의 능력만 손실되는 것을 말한다. 나이가 들어도 운동 능력이나 감각 능력에서 별다른 장애가 나타나지 않고, 생식능력에서도 노화로 인한 기능 저하가 보이지 않는다. 해리엇은 170살이 되어서도 30살 때 못지않게 정정했다고 한다. (물론 날렵하진 못하다. 거북이니까)

 

즉 노화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우리 인간이 겪는 노화만이 전부가 아니다. 그리고 같은 인간 사이에서도 노화의 양상은 전혀 다르게 나타나기도 한다. 이쯤 되면 노화란 정확히 무엇인지 지금까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에이지리스』에서는 노화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우리가 늙는 이유를 다음 10가지로 제시한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면 노화에 대한 가장 단순한 최고의 정의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망과 고통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이다."

 

이어서 책은 질병에 걸릴 위험을 높이는 최고의 위험인자가, 흡연이나 비만이 아니라, 바로 나이 드는 것이라고 지목한다. 80세인 사람은 30세인 사람보다 사망 위험이 60배나 높고, 암에 걸릴 위험은 30배, 심장질환이 생길 위험은 50배나 높다.

 

즉, 책에서는 노화를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라 질병의 결정적 원인 혹은 질병 그 자체로 바라본다. 이러한 시각 차이는 노화를 좀 더 구체적으로 정의하도록 도와주고, 나아가 이를 치료하기 위해 고민하도록 만든다.

 

그렇다. 『에이지리스』는 노화를 치료하는 방법까지 파고든다. 실험실에서 발견한 아주 작은 단서로 출발한 연구가 오늘날 어디까지 발전했는지 알려준다. 여기에는 줄기세포, 말단 소체, 미토콘드리아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이 등장하는 방법도 있고, 노쇠 세포, 마이크로바이옴, 후성유전학처럼 연구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생 분야도 있다. 저자는 마치 모든 용의자를 전부 수색하겠다는 형사처럼, 현재 가능성이 보이는 모든 치료 요법에 관하여 이론적 메커니즘과 실험적 증거를 낱낱이 소개한다.

 

여러 동물에서 보이는 아주 확실한 수명 연장 방법이 있다. 바로 식이제한이다. 예쁜꼬마선충이나 실험용 쥐에서 먹이를 제한하면 수명이 수십%에서 많게는 수백%까지 늘어나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인간으로 치면 수명이 30년에서 200년까지 늘어나는 셈이다.

 

이는 식이제한이 자가포식 수준을 끌어올려 우리의 몸에서 노쇠 세포 등을 제거하고 이를 통해 염증을 완화하여 수명을 연장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문제는 인간의 경우 식이제한을 통한 수명 연장 정도가 그리 크지 않고, 또 기껏 몇 년 더 살겠다고 평생을 쫄쫄 굶으며 살 순 없다는 문제도 있다.

 

그런데 만약 힘들게 식욕을 자제하지 않고도 식이제한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면 어떨까? 그래서 등장한 것이 '식이제한 효과 약물'이다. 그 후보 중 하나가 '라파마이신'이다. 라파마이신은 mTOR라는 단백질의 발현을 막아 음식이 풍부할 때 나머지 부분에 신호를 보내지 못하게 막는다. 즉, 양껏 먹어도 굶은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 몸을 속여 자가포식을 유도할 수 있다.

 

문제는 아직까지 식이제한 효과 약물이 상용화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럼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건 결국 식이제한뿐일까? 하지만 이것도 문제가 있다. 식이제한을 할 경우 면역력 감소, 빈혈, 골밀도 저하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또한 추위를 쉽게 타고, 짜증이 늘고, 성욕도 감소했다. 즉, 완벽하게 깨끗한 실험실이라면 모를까, 세균과 바이러스가 득실대는 현실에서는 식이제한이 오히려 수명을 단축시킬 수도 있다.

 

그래서 '간헐적 단식' 같은 대안으로 자가포식을 유도하고자 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 방식을 따르는 이유가 실천에 옮기기 쉽다는 실용적 이유 때문일 뿐, 아직까지 분석하기에는 실험 데이터가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일련의 서술을 보며 이 책이 정말 뛰어난 책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저자는 노화를 치료한다는 파격적인 주장을 하면서도, 이를 매우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다. 특히 유전자 연구와 관련해서는 하나의 유전자가 다양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현재의 항노화 연구가 맞이할 수 있는 어려움도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이외에도 노화를 사망 확률과 연결하는 데서는 통계적 사고를, 자가포식의 한계와 가능성을 모두 드러내는 지점에서는 맥락적 사고를 엿볼 수 있다. 즉, 인간이 그 자체로 복잡계라는 사실을 확실히 주지하고 있는 셈이다. 이를 바탕으로 미래의 희망을 이야기하면서도 침착하고 차분한 설명을 잃지 않는다. 지금까지 읽은 건강과 관련된 책들 중에서 가장 믿음이 가는 문체의 책이었다.

 

노화를 치료한다는 게 꼭 불로불사를 이루겠다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인간에게도 미미한 노쇠가 가능해진다면, 이 또한 노화를 어느 정도 치료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절약하게 될 의료복지 비용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즉, 노화의 치료는 꿈같은 공상과학이 아니라 과학적 근거와 경제적 필요성이 존재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다.

 

마지막으로 노화의 치료가 필요한 이유를 유전자를 통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장수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뉴스에 나오면 으레 달리는 댓글이 '수명은 유전자빨'이다. 하지만 일란성, 이란성쌍둥이를 대상으로 대규모 조사를 진행한 바에 따르면 수명에서 유전자의 영향력은 대략 25% 정도였다고 한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가계도 웹사이트에서 출생 및 사망 기록을 사용해 수명의 유전성을 계산했는데, 10%도 되지 않았다고 한다.

 

단, 초고령자는 예외다. 100살이 넘게 사는 사람들의 경우 수명의 유전성이 증가한다. 그래서 미디어에 나올 정도로 오래 사는 경우를 보면 '유전자빨'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하지만 그처럼 특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수명은 우리의 노력에 의해 바뀔 여지가 더욱더 크다. 즉, 우리에게는 노화의 치료가 필요하다. 당신이 『에이지리스』를 봐야 하는 이유이다.

 

노화를 치유하는

과학 혁명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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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콘텐츠는 제작비를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