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팟캐스트 방송에서 <내 아내의 모든 것>을 다뤘다. 이 작품을 다루기로 결정한 것은 옛날이었는데, 녹음날 <나를 찾아줘>를 먼저 보게 되어 리뷰를 쓰는 지금 시점에는 작품이 보다 색다르게 다가오는 것 같다. <나를 찾아줘>가 결혼에 대한 섬뜩한 스릴러였다면, <내 아내의 모든 것>은 같은 소재를 보다 코믹하고 산뜻하게 그린 작품이 아닐까 싶다. 결혼이 도대체 뭔지 ‘결알못’인 총각이 바라본 그들의 생활을 풀어보도록 하겠다.
그의 결혼이 끔직한 이유
솔직히 연정인(임수정)같은 여자, 아니 저런 사람과 같이 사는 것은 확실히 괴로울 것이다. 짜증과 투정이 몸에 베인데다가 똥 싸는데 녹즙 들고 와서 마시라고 하는 폭력적인 모습까지 보여준다. 겉으로 보이는 것은 어여쁜 미모와 훌륭한 요리솜씨지만 짧은 대화만으로 직장 상사 사모님에게 미운털이 박혀버리는 최악 성격의 소유자. 이런 아내에게 이두현(이선균)이 진절머리가 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오직 연정인의 탓일까? 뭐 일단 애당초 이두현(이선균)이 이런 막돼먹은 성격을 알아보지 못하고 결혼을 한 잘못도 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인 셈이다. 오히려 내가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결혼생활을 대하는 두현의 태도에 있다.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인 두현은 정인과의 결혼생활도 소심하게 한다. 그저 그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다. 가장 하이라이트는 섹스를 세금이라 표현한 장면이다. 두현에게 사랑은 소통이라기보다는 의무에 가깝다. 정인을 기분 좋게 만들어줘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히고, 그로 인해 스스로 스트레스에 사로잡혀 있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구제불능의 마초이즘이라고 생각한다. 차라리 장성기(류승룡)의 마초맨 놀이가 애교에 가깝다. 두현은 아내를 자신과 소통할 수 있는 주체가 아닌 행복하게 만들어줘야 할 대상 즉, 남편에 대응하는 아내라는 대상으로만 바라본 것이다. 그러니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아내의 모습에서 벗어난 우아하지 못한 정인에게 고통 받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정인은 두현의 진심, 그의 진짜 욕망은 알지 못하고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도 모른 채 결혼생활을 하게 된다.
<나를 찾아줘>에서 사이코패스 아내(에이미, 로자먼드 파이크)는 남편(닉, 밴 애플렉)의 거짓 인터뷰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남편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다시 집으로 돌아와 위선 속에서 결혼생활을 계속하자는 제안을 한다. 두현에게서 이와 비슷한 모습을 보았다면 너무 비약일까? 그는 이상적인 아내와 아름다운 결혼생활을 원하지만, 진심어린 소통이 없다면 그것은 결국 위선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결혼생활을 계속하려면 서로의 위선을 인정하는 타협을 하던가, 아니면 자신을 올바르게 드러내고 진실한 소통을 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혹시 이러한 위선이야말로 결혼의 진정한 모습일까? 제발 아니기를 바란다.
▲ 싸면서 시집 보는 것보다 더한 위선, 그게 바로 결혼일까?
추억보다는 현재를, 그리고 앞을 보자
영화 속 인상적인 장면 중에 정인과 두현이 춤을 추는 장면이 있다. 여기에서 정인은
“나는 예뻤고, 당신은 멋졌고, 우린 아름다웠잖아?”
라며 연애시절의 추억을 상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차게 식어버린 심장을 녹이기 위해 입김을 불어보지만, 다시 뛰지 않을 것을 알고 있는 관객에게는 짠하고 애처롭게 다가온 장면이다.
누구에게나 결혼의 시작은 행복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선배의 결혼식에서 후배 중 한 녀석은
“형. 이게 다 쇼입니다. 여자를 위한 수천만 원짜리 쇼요.”
라고 했다. 후배의 의도는 다른 곳에 있겠지만, 그렇게 공을 들여 쇼를 할 정도로 결혼식은 행복해야만 하는 순간인 셈이다. 하지만 결혼생활도 행복해야만 할까? 생활은 마냥 행복할 수만은 없다. 힘든 순간도 올 것이고, 때로는 흔들릴 때도 있을 것이다. 늘 좋을 수만은 없다는 점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글로 배우는 연애에서도 ‘사랑은 항상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라고 가르치는데 결혼은 오죽할까? 하지만 사람들은 결혼생활은 행복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행복한 결혼 생활에 대한 강박에 사로잡혀 있다. 그리고 현재의 슬픔을 감추기 위해 과거의 미화된 추억을 끄집어낸다.
“그때 우린 예쁘고 멋졌는데, 그때 우린 아름다웠었는데...”
이 대사가 애잔하게 다가오는 이유이다.
하지만 지금도 아름다울 수 있지 않을까? 20대에는 20대의 아름다움이 있었다면, 30대와 40대에는 그 연배에 어울리는 아름다움이 있는 법이다. 신혼부부의 풋풋함도 아름답지만, 중년 부부의 여유로움도 아름답다. 지금의 나도 예쁘고, 지금의 당신도 멋지다. 지금의 우리는 여전히 아름답다. 아니, 여전히 라기보다는 새로운 아름다움이다. 과거가 아니라 지금의 우리를 아름답게 만들고 사랑하라는 것. 이것이 이두현, 연정인 부부에게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나는 꽤 자주 사랑은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사랑의 시작에도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것을 유지하는 데에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도 빼 놓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시점에 필요한 것은 단편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꾸준한 나의 말과 행동 그리고 그것으로 이루어지는 사랑하고 있는 나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사랑의 모습은 당연히 변할 것이다. 그러나 변하더라도 여전히 사랑스러울 수 있도록, 변했더라도 사랑스럽게 바라볼 수 있도록, 사랑받기 위해, 사랑하기 위해 계속 노력한다면 행복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 아닐까?
▲ 사실 너희 둘은 예쁘고 잘생겼잖아 -_-
총평
아내를 유혹하라고 의뢰한다는 발칙한 전개. 두현과 정인의 현실감 넘치는 결혼생활. 특히 정인의 톡톡 튀는 대사에서 드러나는 깨알 같은 디테일의 유머까지. 로맨틱 코미디로서 심하게 빠지는 구석 없는 괜찮은 연출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여기에 감정선의 밸런스를 유지하는 이선균, 개성 넘치고 귀여운 악처의 임수정, 그리고 아직까지 CF계의 러브콜을 끌어내고 있는 ‘더티 섹시’ 류승룡. 이 세 배우는 캐릭터의 가능성을 120%까지 끌어올리는 훌륭한 연기 앙상블을 보여준다. 이들의 매력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게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다. 다만 연출에서 사족으로 느껴지는 장면들이 존재하고, 딱히 감독의 색깔이 드러나는 부분이 없다. ‘내진설계’를 끌어와 부부관계를 설명하려 한 점은 꽤 괜찮은 비유이긴 했으나 다소 국내 정서와 맞지 않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기에 작품성이 훌륭한 영화라고 평가하기에는 아쉬움이 남는 것이 사실이다.
<내 아내의 모든 것>은 지금 불꽃을 태우는 연인들에게는 즐거움을 선사해줄 것이다. 위기를 맞은 부부들에게는 결혼의 의미를 되새기는 기회를 줄 수도 있다. 사랑과 결혼에 대한 사람들의 철학은 모두 다를 테지만, 이 영화를 통해 그 의미를 찾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유쾌함과 즐거움을 놓지 않았기에, 사랑에 대하여 소크라테스가 말했던 ‘등애’와 같은 작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꼭 별 5개짜리 작품만이 의미 있게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한줄평
사랑, 기억하지만 말고 하시기 바랍니다. ★★★
※ 팟캐스트 방송 [미련한 연애 시네마]에서 <내 아내의 모든 것>을 다뤘습니다. 나오미님이 개인사정으로 불참하셔서 항상 좋은 글 써주시는 Eternity님이 참석해 주셨습니다. 덕분에 남탕이 되어 버려서 꽤나 수위 높은 이야기들이 오고 갈려고 했지만, 피잘러들이 모이다 보니 결국...
※ 팟캐스트 방송 [미련한 연애 시네마]에서는 청취자의 연애 상담이나, 영화에 대한 궁금한 점 등을 메일로 받고 있습니다. 혹시 방송을 들으시고 관심 있으신 분은 sillylovecinema@gmail.com으로 메일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팟빵 주소 http://www.podbbang.com/ch/7783
앱스토어 주소 https://itunes.apple.com/kr/podcast/milyeonhan-yeon-ae-sinema/id890712343?mt=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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