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가 없다고 말씀드렸지만, 영화 소개 방송이나, 공식 홈페이지, 포털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정도의 영화 정보는 담겨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조차 접근하고 싶지 않은 분들이라면 본 리뷰는 개봉 후에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팟캐스트 방송을 함께하는 준PD님 덕분에 오늘 시사회로 <인터스텔라>를 만났다. 많은 제작사들의 투자 러시, 아카데미에서 연기력을 인정받은 매튜 맥커너히 주연, 그리고 <다크나이트>, <인셉션>으로 연타석 홈런을 날린 놀란 감독. 기대감을 한껏 드높이고 있는 작품이었던 만큼 시사회장으로 가는 발걸음은 흥분으로 인해 조급할 수밖에 없었다.(실은 차가 막혀서 그랬지만...) 화제의 작품 <인터스텔라>, 과연 역대급 명작이 될 수 있을까?
놀란의 영화다. 장점도, 단점도...
개인적으로 놀란의 연출력에 대해서는 무조건 극찬을 보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분명히 칭찬해야 마땅한 부분이 있으니 바로 아이디어다. 놀란은 항상 신선한 아이디어를 영화로 구현해왔다. <메멘토>의 단기기억상실증에서부터 <인셉션>의 드림머신까지. 이러한 아이디어는 그 자체만으로도 커다란 의미로 다가오는 훌륭한 장치들이었다. <인터스텔라>도 이러한 장점은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디스토피아의 상황부터 흥미롭다. 이후 본격적으로 우주가 배경이 된 이후에 나오는 웜홀, 새로운 행성, 블랙홀 등은 구현된 내용뿐만 아니라 구현하는 방식에서도 격찬을 아낄 수 없는 훌륭함을 보여준다. 지구 궤도에 머물렀던 <그래비티>보다 훨씬 방대한 우주를 구현하고 있다. 더불어 그것에 투자한 과학적인 노력을 생각한다면 우주 SF의 측면에 있어 감히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와 견줄만한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감독으로서 놀란의 연출력에 엄지손가락을 들어주는 것에 대해서는 망설이게 된다. 뭐 그렇다고 ‘신의 손과 원숭이의 뇌’*라고 평가할 정도로 실망스러운 정도는 아니다. 사실 놀란 혼자만 놓고 보자면 이러한 혹평은 과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대가들과 비교하면 2% 부족함이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편집이나 구성에선 사족으로 느껴지는 플롯들이 존재하는데, 최근 개봉한 핀처의 <나를 찾아줘>가 버릴 장면이 하나도 없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확실히 부족함이 느껴진다. 타란티노처럼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구현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묵직한 삶의 가치를 풀어내는 면에 있어서는 여타의 거장들에 비해 세련됨이 부족하기도 하다. 평면적인 인물과 이야기, 탄탄하지 못한 구성, 다소 희미한 스타일까지 <인터스텔라>는 지금까지 내가 품어온 놀란의 단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그대로 가져온 영화였다.
물론 과거에 비해 놀란은 분명하게 발전하고 있는 감독이다. <메멘토>라는 충격적인 장편 데뷔 이후 소포모어 징크스 같았던 <인썸니아>의 지루함과 <프레스티지>의 황당함에 비하면, <다크나이트>이후 놀란의 영화는 추천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는 훌륭한 영화들뿐이다. <인터스텔라>도 마찬가지다. 날이 선 비평의 메스로 해부하고자 한다면 아쉬움이 드러날 테지만, 너그러운 태도로 관객으로서 즐기기에는 영화적 완성도는 크게 문제가 된다고 생각지 않는다.
▲ 우주 구현은 정말 환상적이다.
흥행은? 호불호가 갈릴 것
언급한대로 연출력의 아쉬움은 영화를 즐기기에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다. 더구나 SF적 상상력과 구현에 있어서는 열변을 토해가면서 극찬을 하고 싶을 정도였기에 SF 덕후인 나에게는 그야말로 최고의 영화였다. 태양계 스케일이 아니라 interstellar급 스케일이라는 점에서 확실한 강점을 가진 영화이다. 그러한 스케일에 걸맞은 충실한 과학적 구현은 하드 SF 팬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이다.
그리고 이러한 다소 어려운 과학적 배경에 비해 인간적인 가치를 다룬 주제는 쉽고 직관적으로 다가온다는 점에서, SF 덕후가 아니더라도 영화를 충분히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항성간이라는 거리에서 오는 애틋함은 신카이 마코토의 <별의 목소리>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하지만 확실히 과학적 소재가 쉬운 편은 아니다. 일단 중심이 되는 이론이 ‘상대성이론’인데, 이게 일상적인 영역에서 직관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학문 분야임을 생각한다면 접근에 있어 어려움을 겪는 관객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우주의 신비를 표현한 것들이 관점에 따라 ‘뛰어난 상상력과 충실한 구현’이 되거나, ‘개연성 없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되거나, ‘소귀에 경 읽기’가 될 가능성이 있다. 이 점이 호불호를 가르는 첫 번째 요소이다. (물론 나에게는 ‘뛰어난 상상력과 충실한 구현’으로 다가왔다.)
호불호를 가르는 두 번째 요소는 3시간(정확히는 169분)에 가까운 상영시간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구성에 있어 연출력이 아쉬운 부분들이 존재한다. 이 점이 긴 상영시간과 맞물려 전체적으로 꽉 채워졌다기보다는 밀도가 낮다는 느낌이다.
(앞서 올라온 리뷰에서는 호흡이 느리다고 하셨는데, 호흡이 느리다기보다는 사족에 가까운 플롯이 많다고 생각됩니다. 호흡은 마블 무비등과 비교하면 확실히 느리지만 대다수의 작가주의 감독들에 비하면 비슷하거나 빠른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보는 눈이 깐깐한 관객이라면 쉽고 직설적으로 풀어내는 주제가 촌스럽게 다가올 수도 있다. SF 부분에 있어서는 극찬을 하는 나이지만, 이 부분에 있어서는 확실히 세련미가 떨어진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이 점이 불편하게 다가온다면 영화가 상당히 느끼하고 투박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 이 분이 등장하면 일단 골치가 아프다. 내 학부생활의 주적...
총평
공돌이 부분에 있어서는 최고인데 반해, 문돌이 부분에 있어서는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다. 놀란이 제임스 카메론이나 알폰소 쿠아론(<그래비티>의 감독)같은 공돌이과의 감독이 아니라 문돌이 소속의 감독이었다는 점에서 훌륭한 작품임에도 그의 연출력에 대한 평가가 높아지지는 않을 것 같다.
어쨌든 개인적으로는 화제에 어울리는 훌륭한 재미를 선사해준 작품이었다. 더불어 영화 관람을 망설이는 사람들에게는 적극적으로 추천해주고 싶다. 집에서 보기보단 큰 스크린에서 관람하는 것이 더 좋은 작품이다.
한줄평
영화라는 매체에 있어 우주의 스케일을 한 단계 확장시켰다 ★★★★
* ‘신의 손과 원숭이의 뇌’ : 이 평가는 과거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어둠속의 댄서>에 대해 뛰어난 영상에 비해 이야기가 터무니없이 빈약하다며 오동진 평론가가 날린 멘트입니다. 핵심을 찌르는 촌철살인의 평론이라고 생각합니다.
※ 영화 보시기 전에 꼭 화장실 다녀오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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