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무비쌤 윤PD

삶의 정수(quintessence)를 찾아서

※ 이 글은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제목 드럽게 기네.





  사실 나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를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제목부터 별로였다. 주연과 감독을 맡은 벤 스틸러도 기대감을 낮추는 데 한몫했다. 벤 스틸러는 <박물관이 살아있다>, <미트 페어런츠> 등 주로 코미디 영화의 주연을 맡았었다. 나는 <월터...>가 뻔한 애덤 샌들러 류의 영화라고 생각했다. 적당히 재밌고, 적당히 감동적인 영화라고 생각했다. 평단의 평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개봉 시기가 지나자 <월터...>는 내 관심 밖으로 조용히 밀려났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케이블을 통해 <월터...>를 볼 수 있었다. 최근에는 심심하면 나오는 듯. 첫인상은 예상과 다르지 않았다. 예상과 다른 점이 있다면 노골적인 저질 개그가 없어 생각했던 것 보다 덜 재밌다는 정도였다. 편집은 전형적인 할리우드 방식이라 인상을 주지 못했다. 영상은 화려한 CG와 광활한 자연을 담았지만, 맥락과 이어지지 않아 따로 노는 느낌이었다. 이야기도 뻔했다. 미스터리와 어드벤쳐를 적절히 배합했으나 어느 쪽의 재미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상상 장면은 자잘한 웃음을 선사했지만, 대부분 중심 플롯과 이어지지 못했다. 마치 과제에 쫓기는 학생이 분량을 채우기 위해 억지로 이야기를 늘린 기분이었다. 갖가지 모험은 몽상보다 더 몽상적이었다. 의미는 없고, 그저 대리만족을 선사할 뿐이었다. 월터가 찾아 해매던 25번 사진이 월터의 어머니에게서 나왔을 때는 맥이 빠졌다. 뻔한 <파랑새> 클리셰였다. 게다가 사진의 행방은 찾아도 정체를 알려주진 않았다. "그럼 그렇지. 삶의 정수라는 게 그리 쉽게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깐." 나는 사진이 맥거핀이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더불어 <월터...>를 적당한 유머와 적당한 감동을 섞은 시시한 코미디 영화라고 생각했다. 마지막 장면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난 내가 스물이 되면
빛나는 태양과 같이
찬란하게 타오르는 줄 알았어.

  자우림의 가사처럼 난 내가 어른이 되면 원대한 무언가를 이룰 거라 생각했다. 과학자가 된다면 우주의 비밀을 풀고, 예술가가 된다면 불후의 명작을 남길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린이의 망상은 나이가 들며 깎이게 마련이다. 중학생만 되어도 꿈과 망상을 구별하게 된다.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대부분의 물리학자는 17세가 되면 두각을 나타낸다."라는 말을 들었다. 난 내가 원대한 무언가를 이루지 못할 것이라고 직감했다. 아마 그때부터 <아마데우스>의 살리에리를 좋아했던 것 같다. 살리에리는 원대한 무언가를 이루진 못했지만, 원대한 무언가에 끝까지 부딪히는 오기를 가졌었다. 나는 그 오기를 동정하고 동경했다.

▲ 살리에리. 평범한 사람들의 챔피언.


  나도 살리에리처럼 운명에 저항하고 있다. 평범한 재능이라도 갈고닦아 무언가 보여주리라 다짐했다. 비록 이 꿈에 올인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 삶의 한 축을 걸었다. 그러나 꿈이 이뤄지리란 기대조차 하지 않는다. 이 꿈이 이뤄지는 건 일종의 요행이라고 생각한다. 운을 바라며 꾸준히 손에서 놓지 않을 뿐이다. 안타깝지만 이게 현실이다. 모두가 천재나 영웅이 될 수는 없는 법이다. 평범한 사람은 평범하게 살다가 평범하게 죽는다. 때로는 평범하게 사는 것조차 버거울 때도 있다. 나이가 들수록 꿈은 작아진다. 열심히 살아봤자 세상의 부속품이 머문다. 챗바퀴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면 결국에는 죽음이 마중 나올 것이다. 원대한 무언가도 이루지 못하고 평범하게 살다가는 삶이란 얼마나 슬픈가. 이런 생각이 들 때면 삶이 시시하다고 느껴진다.

▲ 삶은 상상에 비하면 시시한 법이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시시한 영화가 아니었다. 마지막 장면을 보는 순간 나는 생각을 고칠 수밖에 없었다. 삶의 정수를 담고 있는 25번 사진의 정체는 월터였다. 월터가 일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었다. 시시한 사람의 시시한 일상이었다. 하지만 Life의 정수를 담고 있었다. (중의적 표현이다. 삶 그리고 Life지) 나는 벤 스틸러에게 따귀를 맞은 것 같았다. "정신 차려."라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삶은 나 따위가 시시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아직 한참 어렸다. 나는 사진에 담긴 삶의 정수가 무어라고 콕 집어 말하지 못하겠다. 아직 나에게는 그만한 지혜가 없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25번 사진에 삶의 정수가 담겨있다는 점은 알 수 있었다. 그만큼 울림이 큰 사진이었다.

▲ Life지 폐간호 커버를 장식한 25번 사진.


  사진을 보는 순간 큰 위로를 받은 기분이었다. 사진은 월터가 천재나 영웅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특별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월터가 아름답다고 말한다. 비록 우리의 삶은 평범하고 시시하지만, 그럼에도 삶은 아름다웠던 셈이다. 그 아름다움을 포착한 사진작가의 시선이 고마웠다. 예의상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을 담아 "수고하셨습니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사진이 몹시 훈훈하게 다가왔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예술적으로 훌륭한 영화는 아니다. 아마 역대 최고의 영화 리스트를 꼽는다면 절대 순위에 들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영화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월터..>를 추천하겠다. 나는 영화를 다시 보는 경우가 별로 없다. 그런데 <월터...>는 간간이 다시 본다. 삶이 시시하다고 느낄 때면 나는 월터를 찾는다. 훌륭하진 않지만, 분명 좋은 영화다. 고마운 영화다.






※ Walter Mitty는 사전에도 등록되었습니다. 몽상가, 자기를 대단한 영웅으로 꿈꾸는 소심자라는 뜻이라고 하네요.

※ 셰릴이 월터에게 "Space Oddity"를 불러주는 장면이 있습니다. 마지막 장면과 함께 최고의 명장면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