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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과 유혹

언제 고백할 것인가?

영화를 보면서 늘 궁금했던 게 있다. 영화에는 많은 커플이 등장하지만, 그들 사이에 고백하는 장면이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고백하는 장면이 나오면 십중팔구 차이는 경우였다. 영화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고백이라고 일컬어지는 <러브 액츄얼리>의 스케치북 고백도 뻥 차이는 결말을 보여줄 뿐이다. (옜다 뽀뽀나 먹고 떨어져)



이처럼 미디어에서는 고백을 그다지 로맨틱하게 그리고 있지 않지만, 현실에서는 많은 사람이 고백을 두고 심각하게 고민한다. 고백해도 될까? 어떻게 고백해야 할까? 언제 고백해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고백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실패다. 그런 고백은 절대 로맨틱하지 않다. (이러면 고백이 얼마나 낭만적인데 그러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에 대한 대답은 읽다 보면 나온다) 


지금부터 고백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도록 하자. 비즈니스의 협상이나 전쟁이라고 생각해보자. 고백했다 차이면 협상 결렬 혹은 패배한 것이고, 고백해서 사귀면 거래 성립 혹은 승리라고 하자. 이렇게 바라보면 고백이 얼마나 멍청한 짓인지 알게 될 것이다.



1. 고백은 리스크가 큰 제안이다


고백은 일종의 제안이다. 고백하는 사람은 그 제안이 받아들여지도록 상대를 설득해야 한다. 세상에는 많은 설득의 기술이 존재하지만, 설득을 성사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설득의 내용, 즉 제안 그 자체다. 만약 누군가가 당신에게 5만 원짜리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상품에 투자하라고 제안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벌이가 없는 학생이나 백수라면 망설일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는 5만 원도 큰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직장인이라면 5만 원 정도야 잃어도 괜찮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리스크가 커지면 설득은 힘을 잃는다. 아무리 성공 가능성이 크더라도 몽땅 잃을 가능성이 있다면 1억을 투자하라는 제안에 선뜻 나서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럼 고백은 어떨까? 고백은 리스크가 매우 높다. 우선 고백을 받아들일 경우 다른 사람과 연애할 가능성이라는 기회비용을 잃게 된다. (물론 안 그러고 양다리, 세다리, 문어 다리 하는 사람도 있지만...) 게다가 기간의 문제도 있다. 아무리 짧아도 3주는 사귀는 게 보통이다. 그럼 그 3주의 시간을 잃어야 한다. 게다가 깨지고 나서 날름 다른 사람과 연애하면 세상의 시선이 곱지 않다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사실상 고백을 받아들이면 최소 2달의 시간을 상대에게 투입해야 한다. 웬만한 확신이 없다면 받아들이기 힘든 리스크 높은 제안이라는 말이다. 



2. 미리 이기고 싸워라


만약 고백이 전쟁이라면 어떨까? 손자병법에서는 최상의 승리란 미리 이기고 싸우는 것이라 했다. 그런데 고백하는 사람의 9할은 고백(싸움)을 통해 승리를 거머쥐려 한다. 예전에 다른 글에서 언급했지만,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사람 마음이다. 아무리 전략을 잘 짜고, 철저히 준비해도 개인의 마음은 통제할 수 없다. 즉, 고백으로 연애를 성사시키겠다는 것은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려는 시도에 불과하다. 이런 걸 바보짓이라고 한다. 사실상 운에 맡기는 것과 하등 차이가 없다. 


이를 반대로 생각하면 언제 고백해야 할지 답이 나온다. 미리 이기고 싸우면 된다. 즉, 상대방이 무조건 받아들이는 상황에서 하는 게 고백이다. 아니면 이미 사귀고 나서 하는 게 고백이다. 달리 말하자면 고백은 일종의 세레모니인 셈이다. 이미 상호 간에 합의를 마치고 나서 의례적으로 하는 게 고백이다. 요즘 벌어지는 변질된 프러포즈를 생각하면 딱 이해할 수 있다. 이제 결혼을 허락받기 위해 프러포즈하는 경우는 없다고 한다. 이미 결혼 준비를 다 마치고 나서 여자친구의 기분을 좋게 하려고 프러포즈라는 세레모니를 준비한다고 한다. 나 같은 실용주의자가 보기에는 뻘짓거리에 다름없건만, 그거 안 해주면 여자친구가 심하게 삐진다며 열심히 준비하던 친구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난 안 할 거다)


사실 모든 세레모니는 낭만적인 법이다. 하지만 진짜로 상대의 대답을 바라는 고백은 절대 낭만적이지 않다. 그런 고백을 듣는 순간 상대는 세레모니를 즐길 여유가 없어진다. 미간에 주름만 늘어날 뿐이다. 게다가 대답이 결렬 혹은 패배라면? 세레모니가 거창하면 거창할수록 주름이 깊어질 것이다.


그럼 어떻게 상대방이 무조건 받아들일지 알 수 있을까? 이때 필요한 것이 눈치나 비언어적 소통 즉, 보디랭귀지다. 고백을 바라는 사람이 언어라는 노골적 수단을 통해 의사를 전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무수히 많은 비언어적 신호를 보낸다. 그 신호를 파악해서 고백해야 할 타이밍을 읽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그 신호를 보내는 대상의 90%는 여자다. 남자는 그 신호에 맞춰 고백이라는 춤을 추는 무희에 불과하다. (문제는 남자 새끼들이 그 신호를 못 알아차린다는 거다) 이렇게 봐도 고백은 여전히 세레모니에 불과하다.



3. 바람둥이는 고백하지 않는다


손자병법에서 미리 이기고 싸우는 것보다 더 뛰어난 승리라고 말하는 것이 있다. 바로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다. 고백도 마찬가지다. 진짜 고수는 고백하지 않는다. 고백하지 않고 사귄다. 우리가 많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고백하지도 않고 사귀면 상대방 입장에서 불안한 게 사실이다. 진지한 만남을 원한다면 더욱더 그렇다. 그래서 거창하지 않아도 고백이라는 세레모니가 필요하고, '오늘부터 1일'이라는 낯간지러운 선언을 하게 된다. 


그런데 바람둥이는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언제든 다른 사람에게 다가갈 여지를 남겨 두고 싶어한다. 그래서 고백이라는 족쇄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치명적인 매력으로 상대방에게 연인 수준의 친밀함을 끌어낸다. 갖가지 호의를 받는다. 그리고는 다른 사람에게 '저 사람 누구야?'라는 질문을 받으면 이렇게 대답한다. 


"응. 아는 동생이야."


뭐 거짓말은 아니다. 사귀자는 말은 안 했으니까. (진짜 못됐다) 당신이 바람둥이가 되고 싶다면 절대 고백하지 마라. 가장 큰 이익을 취하는 방법이다. 그게 아니라 진지한 만남을 이어가고 싶다면 늦더라도 고백하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