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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한 권의 책으로 통찰과 상식을 동시에 키워보자


  나비의 날갯짓이 폭풍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을까? 이 발상은 1961년 미국의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즈로부터 시작했다. 원래는 날씨 예측의 어려움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말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용어는 그 자체로 나비 효과를 일으켰다. 훗날 물리학에서 말하는 카오스 이론의 토대가 되었으며, 이제는 평범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일상용어가 되었다.


  "작은 요소가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결과로 이어진다."


  이 긴 설명을 우리는 간단히 '나비 효과'라는 말로 쓰고 있다. 나처럼 단문을 즐겨 쓰는 글쟁이는 이것만으로도 로렌즈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일수록 나비 효과라는 말을 자주 언급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현실은 대부분 복잡계에 속한다. 아주 작은 요소라도 기폭제가 되어 예측 불가능한 후폭풍을 일으킬 수 있다. 폭망을 부르는 것도, 대박을 터트리는 것도, 그 시작은 우리가 쉽게 간과하는 사소한 요소일 때가 많다. 


  이는 역사도 마찬가지다. 사실 역사만큼 복잡계가 명백하게 드러나는 분야도 없다. 아주 작고 하찮은 요소 때문에 거대한 제국이 형성되기도 하고, 또한 그 제국이 쫄딱 망하기도 한다. 단편적인 사건만 바라보면 이를 그저 '운'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운이 없게도 뛰어난 정복왕이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거나, 운이 없게도 병사들이 역병에 죽어나간다거나. 하지만 그저 운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사실은 작은 날갯짓이 불러온 결과일 때가 많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아는 순간 우리는 소름이 돋을 수밖에 없다. 



  티모시 와인가드의 <모기>는 그런 소름을 선사하는 책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작은 날갯짓의 주인공은 나비가 아니라 모기다. 오늘도 내 손에 5마리나 처형당한 나약한 모기... 책에서는 이런 모기가 역사라는 복잡계 속에서 얼마나 큰 폭풍을 불러왔는지 설명한다. 폭망과 대박을 가르는 결정적 요소가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존재라는 걸 알고 나면, 당신도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소름을 참기 힘들 것이다. 나비 효과라는 말은 바뀌어야 한다. 모기가 인류에게 끼친 영향력을 고려한다면 모기 효과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 


  책에는 다양한 모기 효과가 등장한다. 특히 16세기 대항해시대부터 현대 미국의 미식축구까지 영향을 끼친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이 모기에 의해 예상치 못한 역사적 흐름을 만들었다는 부분에서는 엄청난 통찰에 완전히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신대륙 발견과 모기의 영향은 너무 방대해서 이 글에서 다루기는 어려울 듯하다. 자세한 이야기는 직접 책을 읽어보길 바라며, 여기서는 맛보기로 역사를 바꾼 치명적인 모기 효과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모기 매개 질병 중에서 가장 악랄하게 인류를 괴롭힌 것이 바로 말라리아다. 그 말라리아에 대항하는 최초의 치료제는 17세기 중반 페루에서 발견되었다. 그 정체는 안데스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희귀하고 재배하기 까다로운 키나나무의 껍질이었다. 이로부터 얻어낸 퀴닌이라는 약물은 엄청난 입소문을 타며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20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노예 해방을 둘러싸고 벌어진 미국 남북전쟁까지 영향을 끼치게 된다. 


1900년 경 네덜란드령 동인도에서 키나나무를 접목하는 모습


  남북전쟁 초기 모기는 남군의 편이었다. 북군은 진격은 모기 매개 질병에 가로막혔다. 병력의 26%가 병에 걸려 싸울 수 없는 상태가 되었고, 심지어 사령관마저도 말라리아로 앓아눕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랜트 장군이 북군의 지휘를 맡으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그는 남군에게 없는 북군의 장점을 파악했는데, 그건 바로 풍족한 양의 말라리아 치료제, 퀴닌이었다. 북군의 해상봉쇄로 인해 남군은 적절한 양의 퀴닌 보급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반면 북군은 퀴닌이 넘쳐나 치료용이 아닌 예방용으로 매일 나누어 줄 정도였다. 전투는 전략으로 이기지만, 전쟁은 보급으로 승리한다. 모기라는 위기에 대응할 준비가 안 된 남군은 결국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 


<모기>, 487p


  아이러니하게도 모기가 질병의 원인이라는 사실은 남북전쟁이 끝나고 20년이 지난 뒤에야 발견되었다. 남북전쟁 당시 사람들은 말라리아가 정확히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그 치료제로 퀴닌을 사용했던 것이다. 실로 퀴닌의 발견은 우연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우연한 발견이 200년을 지나 노예 해방이라는 후폭풍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치명적인 학살자 모기가 있었다. 모기 효과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순간이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나는 2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첫째, 누구도 결과를 예측할 수는 없다. 역사는 결말이 정해져 있다. 그래서 모기 효과가 당연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의 사람들에게도 그랬을까? 모기라는 보잘것없는 존재 때문에 수십만 병사가 죽어 나가고, 한 나라가 망하기도 한다. 그 결과를 누가 예측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역병이라는 요소를 디폴트로 놓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아마 그랬다면 아예 전쟁을 벌이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모두가 시작할 때는 장밋빛 미래를 꿈꾼다. 싸워보기도 전에 모기 때문에 병력의 절반이 죽어 나갈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심지어 그 병마에 자신이 희생당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령관은 더더욱 없었을 것이다. 다들 자기가 신에게 사랑받는다고 주장했으니까....


  그렇다면 결과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바로 적응이다.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을 예측하려 애쓰기보다는, 벌어진 결과에 빠르게 적응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그런데 발 빠른 적응을 보여준 것은 우리 인간이 아니라 모기였다. 1939년 살충제 DDT가 개발되면서 모기 매개 질병이 빠르게 정복당했다. 모기에게는 예측할 수 없는 재앙이었다. 하지만 고작 30년도 지나지 않은 1956년에 DDT 내성 모기가 발견되었다. 모기의 적응은 이렇게나 빨랐다. 역시 1억 5천만 년 동안 살아 온 모기 어르신의 짬밥에 비하면 아직 인간이 가야 할 길은 먼 것 같다. 



  둘째, 위기를 극복하면 기회가 찾아온다. 남북전쟁 당시 북군의 진격을 비난하는 기사가 쏟아졌다. 모기 매개 질병 때문에 병사들이 싸워보지도 못하고 무덤에 들어갈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북군은 충분한 양의 퀴닌을 확보하고 있었다. 그 결과 모기는 위기가 아니라 기회가 되었다. 모기가 기승을 부렸지만, 북군은 피해를 입지 않았고, 남군은 질병에 초토화되었다. 전쟁의 결과는 그렇게 정해졌다. 


  예측이 불가능한 복잡계이지만, 그럴수록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대응하여 극복하는 순간 위기가 기회로 바뀌기 때문이다. 특히 위기가 환경적 요소에 해당한다면 이는 더할 나위 없는 기회가 된다. 나뿐만 아니라 적에게도 똑같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단지 전쟁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더욱 극적으로 작동한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때 폭망을 예측한 사람들이 큰돈을 번 이야기가 <빅쇼트>라는 제목의 영화로 개봉했다. (이 영화 강추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IMF라는 위기를 기회로 바꾼 <국가부도의 날>이라는 영화가 개봉했다. (이건 노잼이다) 위기는 대비하면 기회가 된다. 그러니 빠르게 적응하거나, 예측했다면 철저히 이용해야 한다. 폭망이 대박으로 바뀌는 기적이 탄생할 수 있다.


영화 <빅쇼트>


  한 권의 책에서 이 정도의 통찰을 읽어내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모기>는 이외에도 무궁무진한 교훈을 끌어낼 수 있다. 사실 이것이야말로 역사를 읽는 참맛이라고 할 수 있다. 말 그대로 시야가 넓어진다는 느낌을 책장을 넘기는 동안 계속해서 느낄 수 있다. 여기에 다양한 역사적 상식까지 쌓을 수 있다는 덤까지 선사한다. <모기>를 읽고 나면 어디 가서 아는 체 좀 할 수 있다. 아마 올해 읽었던 책 중에서 가장 남는 게 많았던 책이 아닐까 싶다. 통찰과 상식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싶다면 티모시 와인가드의 <모기>를 꼭 읽어보길 바란다. 두께가 만만치 않아서 걱정할 수도 있겠지만, 절대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견딜 수 없는 책은 또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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