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가 계속 알바인 건 알바 수준의 일만 하기 때문이다. 알바 수준을 뛰어넘는 일을 해내면 더는 알바에 머물지 않는다. 제대로 된 리더라면 그런 사람을 정직원으로 채용하고, 핵심 인력으로 키우고자 한다. 하지만 말단에 있으면 많은 것을 해내기 어려운 법이다. 책임이 적은 만큼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일도 적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말단의 자리를 뛰어넘는 일을 해낼 수 있을까?
미국의 어느 비누 공장에서 골치 아픈 일이 발생했다. 포장기계가 오작동하여 가끔 비누가 안 들어간 빈 케이스가 나왔던 것이다. 불량품을 확인하기 위해 모든 포장을 일일이 열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불량품을 팔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경영진은 외부 컨설팅을 받아 X-레이 투시기를 포장 공정에 추가하기로 했다.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컨설팅비 10만 불, 기곗값 50만 불, 인건비 1년에 5만 불...
그런데 X-레이 투시기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몇 달 동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불량률이 제로가 된 것이다. 경영진은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부랴부랴 현장을 찾았다. 해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최근에 새로 입사한 말단 직원이 집에서 선풍기를 가져와 라인에 흐르는 빈 케이스를 날려 보내고 있었다. 불량률을 제로로 만드는 데 들어간 비용은 고작 선풍기 한 대 값 50불에 불과했다.
일을 잘한다는 것의 의미는 간단하다. 들어간 자원 대비 더 많은 이익을 얻어내면 된다. 방법은 2가지다. 똑같은 자원으로 더 많은 이익을 내거나, 더 적은 자원으로 똑같은 이익을 내면 된다. 이를 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일 잘하는 핵심이다. 그래서 모든 기업이 인재의 필수 소양으로 창의력을 부르짖는다. 신입사원을 뽑을 때면 참신한 아이디어를 쏟아내는 젊은 감성이 수혈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창의력은 그저 젊다고 발휘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선풍기를 가져온 말단 직원의 창의력은 어디에서 온 걸까? 알고 보니 새로 뽑은 직원이 스티브 잡스 뺨치는 혁신적 두뇌의 소유자였던 걸까? 물론 그 직원이 선풍기를 가져온 아이디어는 충분히 획기적이었다. 하지만 그가 천재라서 벌어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말단 직원은 라인에서 나오는 불량품을 직접 만져볼 수 있다. 가끔 운이 좋으면 직접 손으로 불량품을 골라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빈 케이스는 가볍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경영진은 책상 앞에만 있느라 그 사실을 몰랐겠지만) 여기에 지극히 당연한 지식이 더해진다. 선풍기가 가벼운 종이를 날릴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말단 직원은 이 두 가지를 연결했다.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라인 옆에 선풍기 한 대를 갖다 놓았다. 그렇다. 창의력의 핵심은 연결이다.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두 지식을 연결한 것만으로 수십만 불의 비용을 절약할 수 있었다.
따라서 창의력을 키우고 싶다면, 연결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연결을 읽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우선 연결할 거리가 있어야 한다. 한 분야만 파고드는 게 아니라 여러 분야를 깊고 풍부하게 알아야 한다. 그래서 남독, 즉 다양하게 읽는 것이 필요하다. 창의성은 낯선 것들의 연결이며, 남독은 낯선 경험을 선사하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다. 하지만 단순히 많은 분야에 능통한 것으로는 연결을 이룰 수 없다.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이 된다고 세상을 바꾸는 혁신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저 따로 떨어진 외딴 섬을 많이 가진 것에 불과하다. 연결은 그 섬 사이에 다리를 놓는 일이다. 많이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연결 그 자체도 중요하다. 다리를 이으려면 다리를 건설할 방법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연결을 읽는 눈을 키우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나는 단연코 역사라고 말하고 싶다. 역사는 결론이 정해진 미스터리다. 이미 지나온 일이라 우리 모두 결말을 알고 있지만, 결말까지 이르는 과정은 세월 속에 묻혀 있다. 그래서 진실을 파내기 위한 치열한 연구가 이어진다. 소국 마케도니아의 왕자 알렉산드로스는 어떻게 동서양을 아우르는 영웅이 되었을까? 15살에 노예로 팔릴 뻔한 테무친은 어떻게 역사상 가장 큰 제국의 지배자 칭기즈칸이 되었을까? 그 시작과 끝이 어떻게 연결되었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단편적인 증거를 바탕으로 창의력, 때로는 상상력을 발휘하여 연결을 읽어야 한다. 그래서 같은 결말에 이르더라도 각양각색의 의견이 쏟아져나온다. 역사만큼 연결 그 자체를 공부하기 좋은 분야가 없는 셈이다.
티모시 와인가드의 <모기>는 역사를 이해하기 위한 독특한 다리를 제공한다. 이 책은 철저히 전지적 모기 시점에서 서술되었다. 문명의 건설, 대제국의 성립, 야만족의 침입까지 그 모든 사건을 '모기'와 '질병'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바라본다. 이 독특한 시선만으로도 굉장한 재미를 선사하는 책이다. 원래 역사라는 분야에 흥미를 느꼈지만, 이 책만큼 빠져들어 읽었던 책은 드물었다. 게다가 재미를 넘어 훌륭한 통찰을 제공하기도 한다. 모기와 질병, 이 위험한 쌍둥이에 주목하면 우리가 미처 몰랐던 또 하나의 연결고리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전쟁의 향방을 결정짓는 것은 뛰어난 전략, 전술이라고 한다. 이런 생각을 퍼진 데는 미디어, 정확히는 이야기의 영향이 크다. 신출귀몰한 전략, 전술로 큰 승리를 거두는 이야기는 사람들을 매료시킨다. 그 이야기는 오랜 세월을 이어오며 더욱 극적으로 변하고, 끝내는 위대한 영웅의 전설로 남게 된다. 대표적으로 영화 <300>을 들 수 있다. 영화는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와 그의 충성스러운 부하 300명이 테르모필레 협곡에서 지리상의 이점을 살려 40만 명의 페르시아 대군을 막아낸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물론 레오니다스의 영웅담은 충분히 칭송받을 가치가 있지만, 그것이 전쟁의 향방을 결정지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군대의 전진을 잠시 저지했을 뿐, 레오니다스를 격파한 페르시아는 여전히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럼 무엇이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을까?
여기서 책 <모기>는 의외의 요소를 제시한다. 바로 전염병이다. 모기가 퍼뜨린 질병은 레오니다스의 영웅담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많은 페르시아 병사를 궤멸시켰다. 페르시아 지상군은 늪지대를 횡단하면서 습지로 둘러싸인 그리스 도시를 포위 공격했다. 그리고 모기들은 자신의 영역(습지)을 침범한 외국인 병사들을 용서치 않았다. 모기가 옮긴 말라리아와 이질은 무려 40%에 달하는 페르시아 병사를 집어삼켰다. 결국, 마구잡이로 흩어진 페르시아군은 기원전 479년 플라타이아 전투에서 산산조각났으며 이로써 페르시아는 다시는 그리스를 넘볼 수 없게 되었다. 모기는 그리스의 가장 강력한 아군이었고, 페르시아에는 최악의 적이었다.
모기와 질병이 영향을 끼친 것이 고대의 전쟁뿐이었을까? 아니다. 모기는 인류 역사 전반에 걸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것은 단지 전쟁에 머물지 않았다. 경제와 정치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절망과 희망의 다리를 연결했다. 현대까지도 살충제와 치료제에 면역을 키워가며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따라서 그 존재를 염두에 두는 것만으로도 지금, 이 순간 적용할 수 있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출석률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저소득 국가일수록 교육이 중요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나라일수록 출석률이 높지 않다. 그래서 MIT 교수인 마이클 크래머와 레이첼 글레너스터는 아프리카 케냐에서 출석률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다. 교과서, 좋은 시청각 자료, 더 많은 교사, 장학금, 좋은 교복, 심지어 출석하면 현금을 주겠다는 파격적인 방법까지 시도했지만, 거의 모든 아이디어가 유의미한 효과를 내지 못했다. 그런데 압도적으로 아이들의 출석률을 높이는 방법이 하나 있었다. 바로 기생충 약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출석한 아이들에게 기생충 약을 제공하자 결석률은 25%나 줄어들었으며 출석 일수는 2주가 늘어났다. 종합적인 연구 결과 1,000달러를 썼을 때 늘어난 출석 연수를 계산해보니, 현금 지급은 0.2년, 성적 장학금은 3년, 교복 제공은 7년이었다. 기생충 구제는 무려 139년에 달했다. 똑같은 자원으로 훨씬 많은 이익을 얻어내는 방법이다.
이토록 기발한 아이디어를 어떻게 끌어낼 수 있을까? 나조차도 출석률을 극적으로 끌어올릴 방법은 현금 지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방법은 교복보다도 효율이 떨어졌다. 만약 내가 좀 더 일찍 <모기>를 읽었으면 어땠을까? 질병이 인류 역사에 끼친 막강한 영향력을 이해하고, 현재도 가장 많은 목숨을 앗아가는 치명적인 살인마가 모기였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나도 기생충 약을 제공한다는 아이디어를 내놓았을 수도 있다. 이처럼 질병과 인류 사이의 연결고리를 아는 것만으로도 기발한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다. 창의력은 천재의 전유물이 아니다. 핵심은 언제나 연결에 있다.
어떤 환경에서도 일을 더 잘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연결을 읽는 눈을 갖는 순간, 세상은 무한한 가능성으로 바뀐다. 맥락과 맥락의 접점을 찾아 이어주기만 하면, 누구도 생각지 못한 기발한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올 것이다. 그 능력을 갖추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역사라는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것이다. 같은 결말에 이르는 다양한 시각을 살펴보며 연결을 파악하는 사고의 유연성을 기를 수 있다. 특히 독특한 관점에서 사고의 확장을 불러올 수 있는 <총 균 쇠>나 <사피엔스>, <대항해시대> 같은 책이면 더욱 좋다. 티모시 와인가드의 <모기>도 마찬가지다. 전지적 모기 시점으로 역사를 바라볼 때 우리는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갖추게 될 것이다. 연결을 읽는 눈을 갖고 싶다면 꼭 <모기>를 읽기 바란다. 창의력의 시작이 바로 이 책에 있다.
※ 본 콘텐츠는 로크미디어로부터 제작비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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