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이라는 게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비평은 평(評)해야 한다. 좋다. 나쁘다. 잘했다. 못했다. 옳다. 그르다. 판단을 내려야 한다. 이는 주관적 판단이다.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여기까지 본다면 비평이 뭐 어려울 게 있나 싶다. 작품을 보고나니 좋았더라. 나빴더라. 신선했더라. 식상했더라. 꿀잼. 노잼. 주관적 판단은 누구나 내릴 수 있다. 문제는 이를 객관적으로 입증해야 한다는 점이다. 즉, 비평이란 객관적 논리와 근거를 가지고 주관적 판단을 주장하는 것이다.
객관적 근거는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까? 대부분은 전통에서 가져온다. 과거의 명작과 비교하여 비평할 작품의 가치를 가늠한다. 어떤 작품은 전통을 잘 따랐을 수도 있고, 어떤 작품은 전통을 뛰어넘어 혁명을 일으키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전통은 비평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다. 따라서 고전을 많이 봐야 한다. 높이 다다르기 위해서는 역사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야 하는 법이다.
비평을 위한 이론을 만들 수도 있다. 작품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데 사용하는 용어, 개념, 분석체계를 세워 이를 바탕으로 작품을 평가한다. 최초의 이론 비평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었다. 이 할배는 안 끼는 데가 없다. 그래도 아인슈타인 할아버지는 이과 밖으로 나가진 않았는데... 현대에 이르면 정신분석 비평, 여성주의 비평, 독자반응 비평, 역사주의 비평, 형식주의 비평, 구조주의 비평 등 다양한 비평 이론이 등장한다.
어렵다. 더럽게 어렵다. 가뜩이나 비평 이론은 완벽한 내적 논리를 추구하기 때문에 대부분 어렵게 쓰였다. 꼬투리 잡히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다. 그런 글을 읽다 보면 도대체 비평이란 무엇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그럴 때면 나는 다시 정의(定義)로 돌아간다. 비평이란 객관적 논리와 근거를 가지고 좋고 나쁨의 주관적 판단을 주장하는 것이다. 사실 이 말도 어렵다. 더 쉽게 설명한다면 비평이란 다음과 같다.
나는 니콜 키드먼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생각한다. 이 문장은 니콜 키드먼의 외모를 평가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주관적 주장이다. 아니 주장이라기도 뭐하다. 취향에 가깝다. 만약 여기서 글을 멈춘다면 돌아오는 대답은 "동의합니다."이거나 "그건 네 생각이고."이다. 무의미한 주장과 무의미한 답변일 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무의미한 문장을 두고 치고받고 싸운다. 절레절레.
그런데 여기에 객관적 근거를 더한다면? 역대 미인들을 묘사한 글이나 그림, 조각, 사진을 취합하여 보편적 미인상을 규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니콜 키드먼의 외모를 평가할 수도 있다. 눈의 크기, 코의 높이, 좌우 대칭, 조화를 이루는 비율을 따져 니콜 키드먼의 외모를 수학적으로 분석할 수도 있다. 그녀의 외모가 얼마나 다양한 역할과 어울리는지 배우로서의 효용성을 따져볼 수도 있다. 이처럼 객관적 근거로 주장을 뒷받침한다면? 그제서야 주관적 판단이 객관적 비평으로 거듭난다.
따라서 비평이 되기 위해서는 설득력 있는 논리와 객관적인 근거가 필수다. 이게 없다면 비평이 아니라 그저 느낌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느낌을 표현하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느낌을 당당하게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다. 어쩌면 이게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주체적으로 판단하지도 못하면서 객관성만 갖춰봤자 가짜에 불과하다.) 영화 블로그를 보면 대강의 줄거리와 스샷 몇 개를 나열한 후 "좋았어요."라며 마무리하는 글이 많다. 좋았다면서 왜 좋은지 논리적으로 풀어내지 않는다. 객관적 근거도 없다. 이건 비평이 아니다. 좋게 말해봤자 감상문이다.
비평의 기본적인 목적에 충실한 글이 바로 리뷰(review)다. 리뷰는 대중을 상대로 영화에 관해 설명하고,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관객들에게 감상 여부를 결정하도록 도와준다. 따라서 결말을 드러내지 않는 편이다. 때로는 배우 이야기나 가십을 다루기도 한다. 이처럼 리뷰는 가볍다. 짧고, 즉각적이다. 그러나 가벼운 와중에도 비평의 기본은 지킨다. 좋다. 나쁘다. 또는 별 3개. 이런 평가와 함께 근거를 제시한다. 단지 깊이 파고들지 않을 뿐이다.
평론(critique)이라 불리는 글은 깊이 파고든다. 스포일러는 신경 쓰지 않고 필요하다면 특정 장면을 상세히 묘사하기도 한다. 주관적 판단의 내용도 사뭇 다르다. 리뷰가 영화의 질적 수준을 판단한다면, 평론은 영화의 의미와 가치를 판단한다. 예를 들어 봉준호 감독의 <괴물>을 보고 "한국 사회의 병폐를 담아낸 풍자극"이라고 판단하는 식이다. 이러한 판단에 시대 정신이나 깊이 있는 철학을 담으면 좋은 비평이 된다. 판단을 끌어내는 논리가 신선하거나 새로운 비평 이론을 세우는 경우도 훌륭한 비평이 된다. 이런 거창한 내용이 없더라도 읽는 사람을 수긍하게 만드는 설득력을 갖춘다면 충분히 좋은 비평이다.
최근에는 리뷰와 평론을 굳이 구분하지 않는다. 리뷰인지 평론인지 헷갈리는 글도 있다. 리뷰면 어떻고, 평론이면 어떤가. 꼭 평론을 쓸 필요는 없다. 모든 영화가 쓸만한 의미와 가치를 담고 있는 것도 아니다. 되레 <해적 : 바다로 간 산적> 같은 오락 영화를 두고 "백성과 국가의 길항적 관계를 품었다."는 의미를 끌어내봤자 억지로 보일 뿐이다. (참조) 억지로 있어보이는 글을 쓰진 말자. 자기가 느끼고 생각한 바를 쓰면 된다. 그게 작품의 호불호를 논하면 리뷰가 되고, 의미와 가치를 논하면 평론이 될 뿐이다.
좋은 비평이면 그걸로 족하다. 객관적인 근거를 갖추면 그때부터 비평이 된다. 철학적인 평론을 쓰거나, 새로운 비평 이론을 세우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설득력 있는 비평은 누구나 쓸 수 있다. 사람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면 좋은 비평이 된다. 자신의 생각을 바이러스라고 가정하면 좋다. 사람들에게 나의 생각을 전염시킨다고 상상해보자. 어떻게 하면 더 빠르게 전염시킬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전염된 생각에 사로잡혀 몇 날 며칠이고 떨어지지 않게 만들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다 보면 좋은 비평이 나온다. (단, '내 생각'을 전염시켜야 한다. 전염성이 높아 보인다고 내 생각과 다른 글을 쓰면 가짜일 뿐이다.) 누군가 그러더라. 비평이란 그럴듯한 헛소리라고. 주관적 판단이란 때로는 헛소리처럼 황당할 수도 있다. 그 황당한 생각을 그럴듯하게 만들어 전염시키면 된다. 그게 비평이다.
지금까지 비평은 어떻게 써야하나 읊어보았지만, 다소 원론적인 이야기였다. 비평을 처음 시작하는 분이라면 앞선 내용을 읽어도 여전히 부담을 느낄 것이다. 특히나 커뮤니티처럼 공개된 공간에 글을 올리려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그런 분들을 위해 몇 가지 구체적인 조언을 드리고자 한다.
1. 장단을 모두 다루자.
세상에 완벽한 영화는... 몇 편 있다. 나머지 영화는 모두 장단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영화 글을 보면 어느 한쪽만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그런 글이 인기 있다. AVGN이나 앵그리죠 같은 리뷰어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작품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보다 얼마나 찰지게 까는지 겨루는 것처럼 보인다. 나름대로 비평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라면 편향적인 리뷰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이제 막 비평에 입문하는 사람에게는 독이 될 거라 생각한다. (나도 아직 그 레벨이라고 생각한다.) 영화가 좋았더라도 단점을 찾아보자. 영화가 나빴더라도 장점을 찾아보자. 그렇게 영화를 보다 보면 자기 나름대로 판단의 기준이 생긴다. 비슷한 작품임에도 기분에 따라 좋았다, 싫었다 하면 절대 좋은 비평을 할 수 없다.
장단을 모두 다룰 경우 얻게 되는 장점이 하나 더 있다. 그나마 글이 덜 터진다. 키보드 배틀의 피로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아무리 그지 같은 영화라도 좋은 점을 찾아내 주도록 하자. 그 영화가 맘에 들었던 사람에게 작은 위로 정도는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2. 무엇이, 어떻게, 왜
장점이나 단점을 말할 때 중요한 것은 '무엇이', '어떻게', '왜'이다. "<라라랜드>는 좋은 영화입니다."라고만 적으면 안 된다. "<라라랜드>는 영상이 좋습니다." 라고 무엇이 좋은지 밝혀야 한다. "<라라랜드>의 영상은 황홀합니다." 라고 어떻게 좋은지 구체적으로 말하면 더 좋다. 그리고 이유를 들어야 한다. 이게 가장 중요하다. "<라라랜드>의 영상은 황홀합니다. 화려한 색감과 역동적인 카메라 워크는 뮤지컬의 낭만을 선사합니다. 명암을 활용하는 방식은 <위플래시>를 연상시킬 정도죠. 심지어 빛의 뉘앙스를 끌어내는 놀라운 모습까지 보여줍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짤평의 모든 문장은 이를 바탕으로 쓰였다. 그래서 짧은 평이라는 주제에 주절주절 말이 많았다.
3. 참 좋은데 뭐라 설명을 못 하겠다면?
그냥 조용히 있자. 어떻게 좋은지 설명하는 게 비평의 목적이다. 설명을 못 하겠다면 남이 설명해주길 조용히 기다려보자. (사실 기다릴 필요도 없다. 영화 비평은 레드오션이다. 인터넷에 리뷰가 바글바글하다.)
- "이야기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라." 비트겐슈타인 <논리철학논고> 中
4. 쉽게 쓰자.
간혹가다 보면 당최 무슨 소리인지 알 수도 없게 어려운 글을 만난다. 물론 내용 자체가 어려울 수도 있다.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을 아무리 쉽게 쓴다 한들 내가 알아먹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일부러 어렵게 쓸 필요는 없다. 같은 내용이라면 쉽게 써야 한다. 어려운 글은 전염 속도를 떨어트릴 뿐이다. 나는 항상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제1 독자로 둔다. 당신의 글을 당신의 부모나 아이에게 보여준다 생각하고 써보자. 그러면 글은 쉬워질 것이다.
그리고 현학적인 비평은 유행 지났다. 키노 망한 거 봐라. ㅜ.ㅜ
5. 맞춤법 검사기를 활용하자. http://speller.cs.pusan.ac.kr
어떤 글이라도 맞춤법이 틀리면 글의 무게가 확 떨어진다. 어쩌다 한두 개라면 오타라고 생각해 주겠지만, 읽는 족족 맞춤법이 틀리면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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