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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쌤 윤PD

(약스포) <소셜포비아> - 니들은 이게 재밌냐?

※ 이 글은 영화 <소셜포비아>의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다만 핵심 내용은 노출하지 않았습니다.






  국민적 이슈로 떠오른 한 군인의 자살 소식에 악플을 달며 네티즌의 공분을 산 레나(하윤경). 이에 네티즌들은 레나의 사과를 받아내겠다며 BJ 양게를 주축으로 '현피원정대'를 꾸리게 된다. 경찰공무원을 준비 중이던 지웅(변요한)은 친구 용민(이주승)을 따라 현피원정대에 참가한다. 그러나 현피원정대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랜 선으로 목을 감고 자살한 레나의 싸늘한 시체였다. 결국 레나를 향하던 비난의 화살은 이번에는 현피원정대를 향하게 된다. 그러자 경찰 시험에 불리한 기록이 남을 것을 염려한 지웅과 용민은 사건 현장의 의문점들을 찾아내며 타살 가능성을 제기한다. 레나는 자살한 것일까, 타살당한 것일까? <소셜포비아>는 한 악플러를 죽음으로 몰고 간 씁쓸한 진실을 들여다보는 영화이다.





  불가해의 공포

  단순한 자살처럼 보였던 레나의 죽음은 사건 현장의 의문점들이 떠오르면서 타살 의혹이 제기된다. 여기에 숨어있던 인물이 등장하고, 등장인물들의 실체와 숨겨진 과거가 밝혀지면서 사건은 깊이를 더한다. 이처럼 영화는 '레나는 어떻게, 왜 죽었는가?'라는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착실한 장르극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야기는 진실을 향해 직선으로 달려가지 않는다. 주변을 빙빙 돌며 사건의 실체가 아닌 인물의 실체를 비추며 나아간다. 그리고 거기에서 오는 것은 '왜'라는 의문들이다.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각종 단서의 실체는 드러나지만, 왜 그랬는지 드러나지 않는다. 소설가 게일 린즈는 "미스터리에서는 이미 끔찍한 사건이 초반에 발생하고, 과연 누가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밝혀내는 게 나머지 스토리다. 물론 좋은 미스터리는 '누가' 했느냐에 더해 '왜' 했느냐까지 밝혀내지만 말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소셜포비아>는 '누가' 했느냐는 알려줄지언정, '왜' 했는지 관객을 이해시키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으로 <소셜포비아>를 나쁜 미스터리로 판단할 수는 없다. 바로 그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공포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너 말이 맞다. 절대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했잖아. 난 도저히 이해 못 하겠다."(지웅의 대사) 
  "아! 넌 몰라. 절대 이해 못 해!"(용민의 대사) 
  그들은 왜 악플을 다는 걸까? 왜 허언을 하는 걸까? 그리고 그 악플과 허언에 왜 저렇게 핏대올려 분노하는 걸까? 도대체 왜 저러고 있는 걸까? 영화는 관객에게 그 이유를 시원하게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심지어 그들조차도 자신들의 증오와 허영심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 근원을 알 수 없는 분노의 끝에서 사람이 죽은 것이다. '포비아'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게 된 셈이다.

  "에고는 높은데 지탱할 알맹이가 없는 거지" 
  영화는 그 이유를 다소 조심스럽게 꺼내놓는다. 이러한 의견에 일견 동의가 가는 것도 사실이다. 누군가 절대 타협할 수 없는 인격의 알맹이가 침범당한다면, 마치 역린을 건드린 용처럼 분노가 차오르는 것이 사실이니깐. (그런 마음의 난도질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 것도 인터넷의 특징이 아닐까?) 하지만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는 여기까지이다. 그 알맹이를 넘어서 에고의 키 높이에 맞추기 위한 언어폭력과 허언을 나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 내가 그랬다면 그 간극이 드러날까 두려운 마음에 날마다 가슴 졸이며 살았을 것이다. 그들이 진실의 공포를 뛰어넘어 허영의 허공을 허우적대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어쩌면 용민의 마지막 일갈이 진짜 이유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무섭다. 
  "니들은 이게 재밌냐?"

  이런 생각이 들자 회의감에 빠진 것이 사실이다. 나도 이 커뮤니티에 꾸준히 글을 올리고 있다. 때로는 댓글에서 격렬하게 키배를 할 때도 있다. 도대체 나는 무슨 영광을 위해 이리 핏대를 올리고 있는 걸까? 시궁창 같은 현실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나의 알맹이를 알아달라고 이곳에서 발버둥 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그냥 이게 재밌는 걸까? 그렇다면 나는 인생의 아까운 시간을 재미로 흘려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까지 나의 소중한 알맹이가 현실이란 껍데기에 갇혀 빛을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나니 그 알맹이가 나의 자존감을 받쳐줄 깜냥이 되는지 반성하게 된다.

▲ 얘들은 왜 이러고 있는 걸까? 나는 왜 이러고 있는 걸까?







  가장 강력한 감정증폭기

  앞서서 영화가 미스터리라는 장르적 특성을 착실히 따라가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전혀 통속적이지 않다. 경찰지망생이 주인공이지만 그들은 전통적인 수사방식을 따르지 않는다. 진실을 위해 증거를 뒤지는 것이 아니라 SNS를 뒤진다. 작은 단서를 포착하면 이것이 가리키는 타겟을 공격한다. 결국, 끊임없는 음모론과 마녀사냥이 이어질 뿐이다.

  이런 마녀사냥식 수사로 사건이 전개된다는 점은 씁쓸한 웃음을 자아낸다. 우습지 않은가? 의문을 제기한 쪽이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결백을 증명해야 한다. 결백을 증명하지 못하면 다수라는 권력이 사정없이 목덜미를 물어뜯는다. 뭐 이런 사례가 SNS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선거철만 되면 '아니면 말고'식의 흠집 내기가 정치권과 언론에서 연일 다뤄지니 말이다.

  이런 비상식적인 일들이 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여론 혹은 다수라는 이름의 권력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셜포비아>의 등장인물들은 그 권력의 편에 서기 위해 끊임없이 타겟을 찾는 일종의 정치놀이를 하는 셈이다. 그리고 이러한 다수라는 권력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바로 익명성이다. 내가 누군지 알 수 없으니(하지만 사실 캐면 누군지 다 나온다;;;), 책임질 필요도 없어진다. 책임질 필요가 없다면 인간은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다.1) 여기에 다수라는 권력은 혹시나 들지 모를 일말의 죄책감마저 분산을 시켜준다.

  물론 SNS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악랄함과 무지함이 유용한 도구를 흉기로 탈바꿈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그 도구가 너무나 강력하다는 걱정이 든다. 괴벨스보다 강력한 선동력을 지녔고, 땡전뉴스는 비할 바 없는 왜곡력을 가졌다. 역사상 가장 강력한 감정증폭기인 셈이다. SNS 자체를 비난할 순 없지만, 이 도구를 악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억제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딱히 효과적인 방안이 떠오르진 않는다. 물론 언론 통제의 형태로는 절대 안될 것이다.)

▲ 누군지 모른다고 마음껏 욕해도 되는 건 아니다.






  흥미로운 소재, 탁월한 전개, 살짝 아쉬운 연출

  <소셜포비아>는 소재에서부터 먹고 들어가는 작품이다. SNS라는 일상과 밀접한 소재가 죽음을 몰고 왔다는 시놉시스만으로도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이를 미스터리라는 장르와 결합하여 극을 전개한 점도 높이 사고 싶다. SNS를 중심 소재로 삼는 참신함과 미스터리라는 정형화된 장르가 결합하여 신선함과 안정감 모두를 놓치지 않았다. 특히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는 도구로 다시 SNS를 사용한 것은 정말 탁월했다고 말하고 싶다.

  변요한과 이주승이라는 두 젊은 배우의 연기도 만족스럽다. 변요한의 연기는 폭발적이지는 않지만, 관객이 감정 이입하는 여지를 주는 절제된 연기를 보여줬다는 생각이다. 그에 반해 이주승은 마치 실재하는 누군가가 스크린에 들어간 듯한 착각을 보여주는 놀라운 연기를 보여준다. 그의 사실적인 대사 톤과 몸짓은 평범한 그의 외모를 단점이 아닌 리얼함이라는 장점으로 승화시키며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다만 이런 이미지가 굳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들기는 하다. 그가 더 큰 배우가 될 기회를 꼭 가졌으면 한다.

  소재와 전개방식 그리고 주제는 매우 훌륭한 데 반해 연출 면에서는 살짝 아쉬움이 남는다. 영화 초반에 등장한 SNS 내용을 화면에 뿌리는 연출이나 인터넷 방송을 보다 적극적으로 어필하는 연출을 극 후반까지 쭉 이어갔다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그러지 못한 것이 감독의 역량이 아닌 외부적 요인의 한계라는 점이 예상되기에 힐난하고 싶지는 않다. 

  독립영화이지만 작년의 화제작 <족구왕>같은 B급 매력을 뽐내는 영화는 아니다. SNS라는 현실에 진지하게 접근하는 영화다. 그렇다고 재미가 없는 것도 아니다. 미스터리라는 장르 특유의 재미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재미가 역대급 흥행작이 될 정도는 아니긴 하다. 영화적 완성도가 미흡해 보이는 부분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관람을 방해할 정도로 거슬리지는 않는다. 뭐랄까... 쩌는 영화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노잼영화도 아니다. 옛날이었으면 비디오로 나오면 꼭 보라고 했을 것 같은 영화다.





  1) 스탠리 밀그램의 실험이 이러한 인간의 심리를 설명할 수 있는 대표적 사례이다. 권위자에 의해 결과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면제 되었을 때 인간은 비인간적 행위마저도 서슴없이 하게 된다. 





※ 주중에 조조로 관람했는데 영화관에 저랑 여친 단 둘만 있더군요... 후후... 집에서 티비 보듯이 욕하면서 보는 재미가 쏠쏠하더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