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툭하면 여자한테 차이는 초등학교 교사 준수(이승기). 하지만 그에게는 더 큰 고민이 있었으니, 바로 18년 불알친구 현우(문채원)를 짝사랑 하고 있다는 점이다. 매일 함께 밥 먹고, 손잡고, 업어주는 사이이지만 준수를 친구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 현우 때문에 준수는 그저 답답할 따름. 게다가 현우는 직장 상사 동진(이서진)과 불륜관계인 데다 연하남 앤드류(정준영)와 썸을 타며 준수의 애간장을 태운다. 이렇게 호구 노예 생활을 하고 있는 준수의 사랑은 과연 이뤄질 수 있을까? 아니면 새로운 사랑을 찾게 될까? <오늘의 연애>는 (영화 속 표현을 따르자면) 이런 등신 같은 남자와 그가 사랑하는 쌍년 같은 여자의 유치한 로맨스를 다룬 영화이다.
'오늘'이 없다
<오늘의 연애>를 보면서 가장 의아했던 것은 과연 이 영화에 '오늘'이 존재하느냐는 점이었다. 물론 제목이 '오늘의 연애'가 된 것은 여주인공 현우의 직업이 기상 캐스터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오늘'이라는 타이틀을 붙일 거면 오늘의 감성을 갖추어야 옳지 않을까? 하지만 영화는 그렇지 못했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참기 어려웠던 부분은 시답잖은 개그들이었다. 말 그대로 유치하고 재미없는 개그가 간간이 나오는데 그럴 때마다 오그라드는 손을 펴느라 스크린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만득이 시절도 아니고 쌍팔년도 시절에나 있었을 법한, 어디 등산 동호회 카페에 가면 볼 수 있을만한 개그였다. 감독님(박진표)이 내년이면 50을 바라보는 나이이시니 이런 개그를 연출한 점을 이해해줘야 할까? 천만에! 이건 안일했기 때문이다. 웃기는 게 만만했던 걸까? 개그맨들이 관객을 웃기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과 노력을 하는지를 생각한다면, 이런 시대착오적인 개그는 안일함 그 자체이다. 더불어 시나리오 단계부터 영화가 얼마나 막장이었는지를 가늠케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캐릭터도 구식이다. 현우라는 캐릭터는 <엽기적인 그녀>의 전지현을 떠오르게 하는 발칙하고 톡톡 튀는 'X세대' 형 캐릭터이다. 지금 '응답하라 오늘의 연애'를 찍고 있는 걸까? 이런 캐릭터가 아직도 대중에게 매력을 어필할 것이란 생각을 어떻게 하게 됐는지 정말 의아할 따름이다. 희진(화영)이라는 캐릭터도 마찬가지다. 사실 희진은 상당히 복잡한 캐릭터이다. 거의 화류계에 가까운, 테이블 댄스를 춰주는 바에서 일하는 여성이면서 동시에 교대 학생이자 초등학교로 교생 실습까지 나온다. 잘만 다뤘다면 그녀에게서 '오늘의 연애'를 하는 여성의 감성을 끌어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는 이런 복잡한 상황을 그저 '요즘 젊은 애들은 이렇게 발랑 까졌다네.'라는 단순한 시각으로 평면화 시킨다. 결국, 희진은 스쳐 지나가는 소모적 캐릭터로 전락하고 만다.
<오늘의 연애>는 '오늘'의 감성과 어울리지 않는다. 많이 봐줘야 90년대. 어쩌면 80년대 감성이라는 생각도 든다. 더욱 분개할 점은 이런 구닥다리 시선으로 '오늘'의 캐릭터를 재단한다는 점이다. 그야말로 '꼰대스러움'이 넘쳐난다고 할 수 있다. '요즘 애들은 이렇게 연애한다며? 이걸 썸이라고 하던가?' 이런 생각으로 시나리오를 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늙다리 감성도 문제이지만 현실 파악을 못한다는 점에서 이성적인 부분에서도 심각함이 엿보인다. 오늘이 어떤 시대인가? 사람들은 오늘의 청년들을 가리켜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라고 일컫는다. 하지만 <오늘의 연애>에 등장한 인물들은 이러한 고민이 없다. 준수는 초등학교 교사이고, 현우는 잘 나가는 기상캐스터이다. 결국, 영화는 삶을 고민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의 배부른 연애 투정이 될 수밖에 없다. <오늘의 연애>라는 제목을 가져다 쓸 것이라면, 최소한 오늘날 연애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말았어야 했다.
▲ 설마 저 책이 『만득이 시리즈』나 『최불암 시리즈』는 아니겠지?
'연애'도 없다
영화가 오늘의 현실을 외면한다는 비판에 대해 혹자는 굳이 그런 점을 비판할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어차피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는 리얼리티 보다 판타지를 다루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의 연애>는 '연애'를 잘 다루고 있을까? 대답은 '아니올시다.' 이다.
로맨틱 코미디가 관객에게 어필하는 지점은 어디일까?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감성은 역시 달달함일 것이다. '나도 해보고 싶은' 사랑스러운 장면들이 있었기에 로맨틱 코미디는 꾸준하게 사랑받는 장르로 자리해왔다. 그러나 <오늘의 연애>에는 그런 장면이 없다. 뭐 하나 따라 해보고 싶은 장면도 없고,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장면도 없다.
이런 문제가 발생한 첫 번째 원인은 역시 시나리오이다. 달달한 장면 하나 만들기가 그렇게 어려웠을까? 하다못해 <나를 찾아줘> 같은 사이코패스 치정 물에서도 '설탕 키스'라던가 '인터뷰 청혼' 같은 달달한 장면이 나온다. 스릴러 전문 감독도 저만큼 하는데, 로맨틱 코미디 영화가 달달한 장면 하나 만들지 못했다는 것은 무능하다는 것 외에는 달리 평가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두 번째 원인은 연출이다. 사실 영화는 문학이 아니기에 별것 아닌 이야기라도 구성하는 방법이나 영상화하는 방법에 따라 감동적인 연출이 가능하다. (<어바웃 타임>이 그런 연출을 참 잘했었다.) 그러나 <오늘의 연애>는 어찌어찌 감정선을 끌어올린 시나리오마저 연출이 깎아 먹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나마 감정선이 고조되었던 준수와 현우의 키스신을 살펴보자.
괴로워하는 현우를 위로하기 위해 준수는 막춤을 자처하며 현우에게 웃음을 찾아주려 애쓴다. 아! 이 얼마나 감동적인 상황인가! 하지만 막춤은 절제를 몰랐고, 장소와 BGM마저 미처 날뛰다 보니 정작 둘의 키스신이 전혀 달달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연출을 가미하지 않고 배우들을 상황에 던져 놓은 채 그들의 연기력과 개인기에 의존하다 보니 감정의 편향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뜬금없어 보인다고나 할까? 그나마 이 장면은 분석적으로 비벼볼 만 하지만, 마지막 자이로드롭 고백신쯤 되면 감독이 연출을 포기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엉성한 연출이 그들의 사랑에 공감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이건 준수의 심정이 아니라 관객의 심정이었다...
연기력에 대한 아쉬움?
<오늘의 연애>는 이승기의 스크린 데뷔작이라고 한다. 이 점 때문에 꽤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모양인데, 솔직히 이승기의 연기력은 그저 그런 수준이다. <더킹 투 하츠>나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때보다 발전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때나 지금이나 가수가 연기한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도 정준영에 비하면 (이름 그대로) 준수한 편이다. 정준영이 예능에서 무뚝뚝한 모습을 자주 보여줘서 그나마 덜 어색하긴 했지만, 솔직히 연기라고 부르기 민망한 수준이다. 혹자는 정준영의 어설픈 연기 덕에 영화가 컬트 무비로 탈바꿈할지도 모른다고 평한다. 뭐 장수원도 잘 나가는데 정준영이라고 그러지 말란 법은 없다.
그나마 문채원과 이서진이 연기라고 부를 만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이마저도 평면적인 캐릭터의 한계와 조잡한 연출에 빛이 바랜다. 사실 연기력은 배우 홀로 입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시나리오와 연출이 뒷받침해주어야 연기가 빛이 날 수 있다. 그렇기에 <오늘의 연애>에 나오는 아쉬운 연기에 대해 무작정 배우를 비난하기가 조심스럽다. 하다못해 이승기와 합을 맞추는 배역에 베테랑 배우 하나만 넣어줬어도 (특히 단골 술집 친구 역이라던가) 그의 연기가 조금은 나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뭐 <변호인>의 송강호처럼 배우가 작품을 캐리하는 경우도 있긴 하다. 하지만 그건 송강호 얘기고, 그 정도 수준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그나마 화영이 꽤 괜찮은 모습을 보여줬다. 직선적인 눈빛과 과감한 의상으로 본인의 매력을 확실하게 어필한다. 어쩌면 문채원보다 화영이 더 예쁘게 나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총평
<오늘의 연애>에는 오늘도 없고, 연애도 없다. 제목에선 두 가지를 놓쳤다고 했지만 뭐 아무것도 건진 것이 없는 셈이다. 어르신이 바라본 썸이란 어떤 것인지 표현한 영화라고나 할까... (그래서 그렇게 순결을 강조한 건가?) 주 타깃은 20~30대가 아니라 50~60대거나 (어머님 아버님. 요즘 아이들 이렇게 연애 잘하고 있습니다!) 아예 초등학생이 아닐까 싶다. (근데 극중 초등학생도 <건축학개론>을 본다던데, 초딩이라고 이 영화를 좋아할까?)
이런 망작이 나오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다. 배우 소속사의 입김이라던가, 제작사의 입김이라던가... 이런 것들이 연출권을 침해하며 망해온 영화가 꽤 많다. 출연 배우들의 스타성을 생각하면 이런 문제도 충분히 있었을 거라 예상된다. 하지만 그 이전에 안일함이 문제라고 본다. 안일한 시나리오와 연출이 이런 되도 않는 영화를 만들었다. 그렇기에 각본과 연출을 맡은 박진표 감독에게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이 분이 <죽어도 좋아>와 <너는 내 운명>을 연출한 분입니다...)
한줄평
오늘도 연애도 없는 <오늘의 연애> ☆
※ 팟캐스트 방송 [미련한 연애 시네마]에서 <오늘의 연애>를 다뤘습니다. 영화에 대한 분노와 캐릭터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게스트로 팟캐스트 [젊은이의 양기]를 방송하시는 '월미도 이씨'님을 모셨습니다.
※ 팟캐스트 방송 [미련한 연애 시네마]에서는 청취자의 연애 상담이나, 영화에 대한 궁금한 점 등을 메일로 받고 있습니다. 혹시 방송을 들으시고 관심 있으신 분은 sillylovecinema@gmail.com으로 메일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팟빵 주소 http://www.podbbang.com/ch/7783
앱스토어 주소 https://itunes.apple.com/kr/podcast/milyeonhan-yeon-ae-sinema/id890712343?mt=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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