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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팀이 폴리매스다

“우리는 이제 신의 언어를 읽기 시작했다.”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가 성공한 뒤 나온 말이다. 이 말에는 희망과 두려움이 모두 섞여있다. 대중은 두려움에 더 익숙할지도 모르겠다. 〈가타카〉 같은 영화는 유전자 과학 발전의 어두운 면을 보여준다. 유전자 검사를 통해 한 사람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건 분명한 비극이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책 《게놈 오디세이》는 반대로 희망을 선사하는 책이다. 우리가 우리의 유전자를 완전히 파악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을까? 우선 의학 분야가 치료 중심에서 예방 중심으로 탈바꿈할 것이다. 많은 연구가 예방 의학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질병 때문에 들어가는 사회적 비용을 천문학적인 수준에서 절약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환자의 삶이 질병에 고통받지 않도록 막아줌으로써 행복 수준도 비약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의 의료 서비스는 여전히 치료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일단 병이 터지고 나서야 수습하는 것이다. 이 상황을 바꾸는 데 필요한 핵심 기술이 바로 유전자 검사 기술이다. 과거에는 한 사람의 유전자를 분석하려면 수십억 달러가 필요했다. 이제는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가능하다. 비유하자면, 35만 달러짜리 페라리를 1달러에 살 수 있을 정도로 가격이 하락했다. 《게놈 오디세이》는 이러한 기술 발전을 우리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쉽고 상세하게 알려주고 있다. (전문적인 내용임에도 정말 쉽게 읽힌다. 저자의 내공과 필력이 예사롭지 않다)

 

이렇게 놀라운 발전 뒤에는 저자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의 고민과 노력이 있었다. 《게놈 오디세이》는 그 과정을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서술한다. 그들의 노력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감사하다는 마음이 든다. 그들의 고생 덕분에 우리는 최신 의학 기술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이들은 같은 분야의 전문가들이 아니었다. 유전학자, 통계학자, 윤리학자까지 갖가지 분야의 전문가들의 집합이었다. 저자는 이들을 ‘드림팀’이라고 불렀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팀이 폴리매스다.”

 

오늘날 화두가 되는 키워드 중 하나가 바로 융합이다. 지난 200년 동안 학문의 급격한 발전에 따라 전문성의 수준이 매우 깊어졌다. 하지만 동시에 좁아지기도 했다. 그래서 폴리매스가 필요하다. 깊지만 좁은 여러 분야를 하나로 융합해 혁신을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다양한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인재가 필요하다.

 

그런데 오늘날 세상이 요구하는 전문성의 수준은 매우 깊다. 특히 최첨단 분야, 《게놈 오디세이》에 나오는 유전자 분석 같은 경우에는 더욱더 그렇다. 저자와 동료들은 유전학에서도, 통계학에서, 윤리학에서도 모두 박사 이상의 전문성이 필요했다. 저자는 그런 전문가들을 모아 한 팀을 만들었다. 정말 ‘드림팀’이라는 명칭이 절로 어울린다.

 

하지만 전문가들을 그저 모은다고 시너지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저자 말대로 ‘자기 주장 뚜렷한 천재들이 어떻게 한마음 한뜻으로’ 모일 수 있었을까? 나는 그 핵심이 동기부여와 목적의식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인간 유전체를 풀어내어 인류의 삶과 행복에 기여하겠다는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자기 분야를 사랑한다는 확실한 동기도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드림팀이 되었고, 그 팀은 마치 폴리매스처럼 다양한 분야의 전문성을 융합해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앞으로 더 많은 융합이 필요할수록, 더 많은 혁신을 이루기 위해, 우리에게는 폴리매스가 필요하다. 《게놈 오디세이》를 통해 혼자가 아니라 팀으로서 폴리매스를 이룰 수도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래서 앞으로는 리더십이 더욱더 중요해질 것이라 생각한다. 혁신을 이루는 드림팀을 만드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팀이 폴리매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