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연인이 진실하다고 맹세할 때
나는 그녀가 거짓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를 믿는다
그러면 그녀는 내가 경험이 부족한 젊은이라
세상의 교활한 거짓말을 배우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할 것이다
내 인생 최고의 시기가 지나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가 나를 어리다고 생각한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그녀의 거짓말을 믿는다
우리는 둘 다 단순한 사실을 감추고 있다
그런데 그녀는 무슨 까닭으로 솔직하지 않다고 말하지 않는 것일까?
그리고 나는 무슨 까닭으로 나이가 많다고 말하지 않는 것일까?
아, 사랑의 가장 좋은 습관은 믿는 척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에 빠진 노인은 나이를 숨기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그녀와 함께 누워있고 그녀도 나와 함께 누워있다
그리고 거짓말이라는 잘못을 통해 우리는 서로에게 아첨한다
윗글은 셰익스피어가 쓴 소네트(유럽의 정형시)이다. 아무래도 셰익스피어가 작가이고, 대개 작가들이 그러하듯 냉소와 비꼼의 마스터이기도 하지만, 윗글이 사랑과 거짓말의 관계를 날카롭게 꿰뚫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흔히 거짓말을 사랑을 파괴하는 독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거짓말이 나쁜 것은 아니다. 타인을 배려하는 '선의의 거짓말'을 말하는 게 아니다. 핵심은 거짓말이 꼭 악의 혹은 선의의 이분법으로 나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사실 거짓말을 하는 이유를 살펴보면 중립적일 때가 많다. 다음은 '거짓말을 하는 이유'에 관하여 아이와 성인을 설문 조사한 결과이다.
1. 처벌을 피하기 위해
2. 다른 식으로 얻을 수 없는 상을 받기 위해
3. 다른 사람이 처벌받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해
4. 물리적인 해를 입지 않기 위해
5. 다른 사람으로부터 존경 받기 위해
6. 어색한 상황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7. 수치심을 피하기 위해
8. 프라이버시를 유지하기 위해
9. 정보를 통제함으로써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
*출처 : <텔링 라이즈>, 폴 에크먼
보다시피 거짓말을 하는 동기 중에는 이득을 취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자신이나 타인을 보호하기 위한 경우도 많다. 이것이 악의나 선의가 되려면 '맥락'이 있어야 한다. 그 자체로는 선악을 구별할 수 없다. 따라서 거짓말이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사실 거짓말이 죄악이라면 우리는 벌써 천벌을 받고도 남았다. EBS 2부작 다큐멘터리 <거짓말>에 따르면 사람들은 하루 평균 3번 거짓말을 한다. 연인 사이라고 다를까? 캔자스 대학의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연애 중인 남녀는 일주일에 평균 5회 정도 거짓말을 한다. 이처럼 삶과 사랑은 모두 거짓말에 둘러싸여 있다.
의문이다. 이렇게 거짓말을 많이 하는데, 어떻게 사랑이 유지될 수 있을까? 상대를 믿을 수 없는데도 사랑하는 게 가능할까? 가능하다. 실제로 그렇게 잘들 살고 있지 않은가. 어떻게? "아, 사랑의 가장 좋은 습관은 믿는 척하는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말대로다. 우리는 거짓말을 하지만, 동시에 거짓말을 수용한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우리는 상대의 거짓말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넘어가고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첫 번째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믿음이다. 믿음은 사랑을 지탱하는 기둥이다. 연애 기간이 오래될수록 믿음은 굳건해진다. 그러면 가벼운 거짓말은 가볍게 넘길 수 있다. 그런 걸로 흔들리지 않는다. "거의 다 왔어."라는 말이 거짓임을 알고 있어도 한두 번은 그냥 넘어간다. "어제는 일찍 잤어."라는 말을 믿을 수 없지만 괘념치 않는다. 그 정도는 눈감아 줄 수 있는 더 강력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는 믿음 말이다.
두 번째 이유는 우리가 거짓말 전문가라는 점이다. 우리는 이미 경험적으로 거짓말이 꼭 악의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상대가 온종일 내 생각만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나보다 예쁘고 잘생긴 사람이 많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하지만 "너만 생각했지."라는 말을 좋아하고, "너가 제일 예뻐."라는 말에 기뻐한다. 이 모든 진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우리 모두가 거짓말에 있어서는 경력이 빵빵한 전문가니까. (연간 1,000번 이상 시도한다)
그렇다면 어떤 거짓말이 관계를 망칠까? 무거운 거짓말, 맥락에 악의가 있는 거짓말이다. 예를 들면 불륜, 사기, 위조 등등... 이런 것들은 워낙 심각해서 범죄로 다루기도 한다. 국가에서 처벌할 정도로 나쁜 일이다. 당연히 관계를 한 방에 작살낼 수 있다. 가벼운 거짓말이 다 괜찮은 것도 아니다. 가랑비에도 옷은 젖는다. 가벼운 거짓말이 많아지면 사랑이 식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대항해시대에 바다를 누비던 범선 바닥에는 돌멩이가 있었다. 수면에서 배 밑바닥까지의 거리를 흘수라고 하는데, 흘수가 너무 얕으면 약간의 바람에도 배가 크게 흔들리거나 심하면 전복될 수도 있다. 그래서 안정적으로 배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바닥에 돌을 깔아 무게중심을 낮추는 데 사용한다. 이를 밸러스트라고 부른다. (요즘에는 돌 대신 물을 사용하는데, 15만 톤급 선박의 밸러스트 워터는 약 6만 톤이라고 한다)
거짓말은 사랑의 밸러스트다. 거짓말이 아예 없다면 사랑은 경직되고 갑갑해질 것이다. 그렇다고 거짓말이 너무 많으면 그대로 가라앉고 말 것이다. 사랑이 안정적으로 떠 있을 수 있는 적당량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전복되지도 가라앉지도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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