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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글쓰기 입문자를 위한 최고의 책


  글쓰기를 다룬 책은 넘쳐난다. 특히 '논술'이라는 입시 유형이 존재하는 대한민국에서 글쓰기 교육은 그 위상이 높다. 연역이니 귀납이니 삼단논법이니 글 잘 쓰는 법을 알려주기 위해 논리학부터 수사학까지 갖가지 이론과 기술을 설명한다. 하지만 철학을 담은 책을 찾기는 쉽지 않다. 각종 기술과 규칙과 제약은 설명하지만, 왜 그래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그저 점수를 잘 받기 위한 글쓰기에 머문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은 여타 글쓰기 책과 달랐다. 이 책에는 확고한 철학이 담겨 있다. 어떻게 글을 써야 하는지 설명하면서, 왜 그래야 하는지 독자가 납득할 만한 논리를 제시한다. 그 논리가 책 전반에 걸쳐 일관되게 흐른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저자가 생각하는 글쓰기 사상이 가슴 한쪽에 묵직하게 남는다. 그렇게 가슴에 남은 저자의 철학을 하나씩 짚어보고자 한다. 




  1. 논증이 없으면 글이 아니다


  유시민이 처음 꺼낸 주제는 '논증'이었다. 왜일까? 논증이 없으면 글이 아니기 때문이다. 논증이 없는 글은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헛소리, 개소리, 뇌내망상, 뇌피셜, 행복회로, 쓰레기 등등. 만약 글이 아니라, 말이었으면 다음 표현이 튀어나온다. '이게 말이야 방구야?' 그래서 저자가 가장 먼저 '논증'을 꺼냈다고 생각한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취향과 주장을 구분하는 내용이었다. 취향은 논쟁해야 할 영역이 아니며, 주장은 반드시 논증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나는 영화 비평을 주로 쓴다. 그런데 영화의 좋고 나쁨은 결국 취향의 영역이다. '영화 재밌어요. 재미 없어요.' 이런 식의 취향 고백에 머문다면, 과연 글로 대접받을 자격이 있을까? 서평도 마찬가지다. 책에 대한 평가는 결국 취향이다. 그런데 어째서 우리는 서평을 쓰고, 토론하는 걸까?


  저자는 '장동건이 최고의 미남'이라는 문장을 예시로 취향과 주장의 차이를 설명한다. 미남이라고 판단하는 근거나 이유, 즉 기준을 제시한다면 주장이 된다. 만약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반박할 수 없고, 따라서 주장으로 성립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영화를 평론하고, 서평을 쓸 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지목한다. 바로 '근거'다. 근거가 있으면 취향도 주장이 된다. 그래서 비평이 가능해진다. 논쟁이 가능해진다. 




  2. 글쓰기는 기능이다.


  유시민은 글쓰기를 기능이라고 말한다. 논리적인 글은 누구나 쓸 수 있으며, 훈련하면 누구나 유시민처럼 쓸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글쓰기를 재능이 아닌 기능의 영역으로 바라본 시각에 나는 찬사를 보내고 싶다. 이는 '성장형 사고방식'과도 이어지는 이야기이며, 창의력에 관한 많은 연구와 일맥상통하는 주장이기도 하다. 


  다만 아쉽게도, 저자는 문학적인 글쓰기를 재능의 영역으로 남겨두었다. 아마 본인이 문학적 글쓰기를 잘 모르다 보니 쉽게 단언할 수 없어 그랬으리라. 하지만 진실은, 문학적 글쓰기도 훈련을 통해 나아질 수 있다. 창의력은 신이 내린 계시가 아니다. 천재는 하늘에서 뚝 하고 떨어지지 않는다. 이 점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게 이 책의 유일한 흠이라 생각한다. 




  3. 못난 글은 다 비슷하지만, 훌륭한 글은 저마다 이유가 다르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문장을 꼽으라면 나는 단연코 위 문장을 꼽을 것이다. 이 문장이야말로 글쓰기 입문자에게 최고의 책이 되도록 만든 핵심 사상이기 때문이다.


  글을 잘 쓰기는 쉽지 않다. 심지어 잘 될지 예측하기도 어렵다. 실력 외에도 운이라는 요소가 포함되기 때문이다. 가끔 문장도 전개도 엉망인 글이 '의식의 흐름'이라는 이름 아래 엄청나게 잘 팔리는 걸 볼 때도 있다. 엄청난 내공과 꼼꼼한 근거를 가지고 있음에도 소리소문없이 묻히는 글도 있다. 글이 잘 될지 말지는 오직 신만이 알 수 있다. 


  하지만 못난 글을 벗어나는 건 어렵지 않다. 못난 글을 알아보는 것도 쉽다. 그래서 이제 막 글쓰기를 시작하는 입문자라면 못난 글을 쓰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계속 도전하다보면 언젠가 운이 닿아 터질 수도 있다. 못나지 않은 글을 되도록 많이 쓰는 것. 이게 바로 운이 지배하는 영역에서 글쓰기로 성공하는 유일한 전략인 셈이다. 


  저자는 못난 글을 벗어나기 위한 갖가지 방법을 보여준다. 소리내어 읽기, 외래어 오남용 피하기, 우리말 바로 쓰기, 단문 쓰기, 거시기 화법 피하기, 무늬에 맞춰 쓰기. 그런데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하고 싶다. 소제목으로 구분하지는 않았지만, 모든 단원에 공통적으로 포함되었던 이야기다. 바로 '독자를 배려하는 글쓰기'다.


  글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쓰는 것이다. 물론 자기 혼자 보기 위한 일기도 존재하지만, 그럴 거면 굳이 잘 쓰기 위해 애쓸 필요 없다. 나만 알아볼 수 있으면 그만이다. 그게 아니라면 독자가 읽기 쉽게 써야 한다. 독자가 술술 읽을 수 있다면, 그 글은 더 이상 못난 글이 아니다. 이는 뒤에 나오는 '소통'과도 맥락이 통한다. 자신의 지적 허영을 자랑하는 글은 아무리 문장이 좋아도 못나 보일 뿐이다. 상대와 진심으로 소통하려는 글은 세살짜리 꼬마가 써도 감동을 전한다. 못난 글을 벗어나고 싶다면, 언제나 독자를 생각하면 된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은 최고의 글쓰기 입문서다. 앞에서는 글을 시작하는 사람이 가져야 마땅할 마음가짐을 보여주고, 이어서는 세심한 예시를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독자를 배려한다. 책에서 주장하는 그대로 작성한 책이었다. 그 일관성에 느껴지는 진정성이 담백하면서도 묵직하게 다가왔다. 앞으로 어떤 글을 쓰게 될지 모르지만, 그 기나긴 여정에 나침반이 되어줄 책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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